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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외로움이지? 맞지?

larinari 2008. 4. 29. 22:35

<QTzine 5월호>유브♥갓♥메일_목적이 이끄는 연애5

이 글을 연재하면서 젊은 친구들의 연애상담 메일을 종종 받습니다. 그 달 그 달 주제와 자기 상황이 맞아 떨어지는 청년들이 메일로 넋두리 내지는 질문을 해오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메일들이 또 글의 소재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요....
오늘 메일함을 열었는데 열혈독자를 자처하는 스물 네 살의 자매가 메일을 보내왔네요. 큐티진을 기다리는 이유가 큐티보다 제 글이라면서 자신의 얘기를 건네왔어요. 칭찬받아 기분 안 좋은 사람 없지만 글에 대한 이런 반응은 훨씬 더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얼굴도 보지 못한 어떤 사람에게 내가 쓰는 글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니 말이죠. 벌써 5월호가 나와서 책까지 받았는데 올리기를 미적거리고 있다가 그 메일에 고무돼서....ㅎㅎㅎ
헌데 내일이 6월호 마감날인데 아직 한 자도 못 쓴 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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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밤, 이 안 좋은 느낌은 뭐지?

‘주일 지낸 늦은 밤,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 메일의 제목만 보고도 은혜가 어떤 얘길 해을지 알겠더구나. 선생님이 메일을 열어보지도 전에 담겨 있을 얘기들 다 알아맞혔지.^^ 귀신이지? 이제 은혜 속마음을 아예 훤히 꿰뚫게 되어버린 걸까?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쉴 새 없이 진행되는 예배와 봉사와 사람들과의 교제, 좋을 땐 좋지만 힘들 때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는 일이지. 예배와 설교를 통해서 충분히 은혜도 경험했고 공동체의 사랑도 느낀 것이 분명한데 주일 밤 혼자 집에 돌아와 느끼는 허전한 마음을 말하는 거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 시간 그렇게 소진된 상태로 힘들 일이 아닌데 너의 영적생활이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 하루 종일 교회에서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고 은혜 충만한 얼굴로 사람들 앞에서 찬양을 드리던 너의 모습이 가식이라고만 느껴지는 것이니? 다른 날도 아니고 은혜로운 예배 후에 찾아드는 이 우울함으로 인해서 너의 신앙생활이 잘못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구나. 게다가 GBS 모임 에프터 후에 나란히 걸어가던 동기 커플의 뒷모습이 그렇게도 보기 싫었고, 무엇보다 혹여 니가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기도 한가보구나. 은혜의 말대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주일 저녁이 이렇게 힘겨워졌을까? 은혜의 메일에서 느껴지는 건 그 시점이 K의 거절 이후라고 보는 것 같은데.... 그래 그럴 수 있을 거야. 그 이후로 교회생활이든 교회 밖 생활이든 한층 우울모드가 된 것은 분명하지. 그런데 꼭 그럴까? K의 거절 이후로 너의 영적생활이 엉망이 되면서 주일 오후가 이렇게 힘겨워진 것일까? 잘 한 번 생각해 보겠니? 예전에는 이런 느낌이 없었나?

이름을 불러주자. ‘너, 외로움이지?’

‘주일 저녁에 밀려오는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에 선생님 식으로 이름을 좀 붙여볼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익숙한 성경말씀이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하나님이 좋지 않게 보셨다는구나. 아담이 혼자 있으면서 느낀 느낌이 은혜의 지금 느낌 아닐까? 독처함으로 인해서 느낄 수밖에 없는 외로움 말이다. 외로움이란 것이 ‘홀로 있다는 느낌’ 이니까 여러 사람과 함께 있다가 홀로 물러날 때 더 강하게 느껴지겠지. 주일 같은 경우가 그렇지 않겠니. 무엇보다 외로움이라는 느낌은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느낌인데 주일에는 평일에 만나는 사람들보다는 더 깊이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게 될 테니까 말이야. 아마도 은혜가 느끼는 외로움은 ‘독처로 인해서 오는 외로움’, 무엇보다 ‘이성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것 일거야. 그리고 그 감정은 K와의 관계 이후로 더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잘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있었던 느낌이란 걸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은혜에게만 유난스럽게 크게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너의 친구나 아직 싱글인 대부분의 청년들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을 정도였으니 아담이 얼마나 외로워서 오만상을 긁고 에덴동산을 배회했겠느냐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하나님 공식 인정 외로움’ 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니 주일 저녁 특히 이런 정서가 밀려올 때 ‘뭔가 잘못되었다’든지, ‘부적절한 느낌’ 이라든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또 K로 인한 아픔이 영향을 미치기는 했을지언정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지. 돌아보면 선생님도 네 나이 때 정말 절절하게 느꼈던 느낌인 것 같거든. 아마 요즘처럼 개나리가 흐드러진 아름다운 봄날이었을 거야. 대학 때였는데 강의를 마치고 나와 캠퍼스를 걷는데 여기 저기 너무 아름다운거야. 그 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뭔 줄 아니? “하나님! 꽃은 저렇게 예쁘게 폈는데... 저는 너무 외로워요. 외로워서 죽을 거 같아요.”였어. 우습지? ^^;; 아직도 그 날의 따뜻한 봄 햇살과 흐드러진 꽃들, 그 가운데 진한 싱글의 외로움으로 힘겨웠던 느낌들이 생생하구나.

외로움, 맞습니다. 맞고요.

어때? 선생님 식대로 붙인 이름이 적절한 것 같니?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외로움이 강하게 밀려올 때 ‘아, 이건 외로움이구나. 하나님께서 보기에 별로여서 얼른 해결해주고 싶어 하셨던 바로 그 독처의 외로움이구나. 올 것이 왔다. 이건 내게 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당황하지 말고, 죄책감을 느끼지도 말고 그 외로움을 직면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선생님의 청년시절을 돌아보면서 또 너희 또래 친구들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외로움에 대처하는 몇 가지 방식들에 대해서 생각해 봤단다. 일단 외로움 자체를 못 견디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애. 끊임없이 사람을 찾아다니는 거지. 그것도 단지 외롭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이성 친구를 사귀는 거 말이다. 그건 안타까운 선택이다. 외로움을 직면해서 잘 풀어내는 싱글이 궁극적으로 건강한 이성교제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거든. 혼자 잘 지내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어떤 좋은 사람과도 성공적인 이성교제를 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외로울지언정 쉽게 사람을 만나는 선택을 하지 않는 은혜가 참 귀하다고 여겨져. 한편, 싱글의 외로움에만 마음을 집중하다보면 이성을 볼 때 ‘내 짝이 될 수 있을까? 아닐까?’ 의 잣대로만 이성을 보게 되고 그야말로 ‘우는 사자와 같이 남친을 찾아다니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가끔 보면 자매들을 향해서 작업 그 이상이 아닌 행동은 할 줄 모르는 형제들이 있지 않니?^^ 스스로에게 외로워 볼 틈을 주지 않기로는 꼭 이성교제 뿐은 아닌 것 같애. 학교나 직장, 특히 교회에서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서 많은 봉사와 단기선교 등으로 외로운 시간이 없는 친구들도 있지 않나? 그런 모든 일들의 동기가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 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행여 ‘외롭지 않기 위한’ 선택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지.

외로움에 이름을 붙이고 정체를 안다고 그에 맞서는 고통의 무게가 줄지는 않는다는 것 선생님이 잘 알고 있다. 정체를 알아도, 하나님의 짝을 주시는 계획이 숨어있음을 알아도 외로움을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나는 올 해 고난주간에 ‘싱글이셨던 예수님’을 묵상해봤단다. 친히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고 하니 지금 은혜가 겪는 ‘독처’의 외로움 또한 체휼하시지 않겠니? 선생님 또한 기도할게. 은혜가 외로움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데 앞서 겪으신 그 분의 빛이 비추도록 말이다. 힘내고 잘 지내기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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