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일,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다.

결혼식 당일 오전에 도산공원에서 야외촬영을 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사람 뿐이다.

야외촬영에선 저 사진의 철쭉이 진홍빛으로 강하게 남아 있을 뿐.


20년이나 살았다니, 내가 김종필과 20년을 살았다니, 헐헐헐.

자꾸 노래를 부르니 남편이 그런다.

왜애? 억울해? 너무 오래 살았어? 5년만 살려고 했어?

아니, 청년 김종필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그 사람과 20년을 살았다니 말이야.


눈 뜨면 베란다 창에 매달려 있다.

미세먼지 가득한 봄날을 견디게 해준 고마운 풍경이다.

저 풍경이 아니었으면 미세먼지 스트레스에 폐암이 걸렸을지 모른다.


20년 전 5월1일도 저렇듯 푸르렀겠구나.

결혼식 마치고 양평길을 드라이브 했지만 저 빛깔을 본 기억이 없다.

온통 사람이었다.

20년이 지났고, 50 나이를 먹은 덕에 나무 하나하나가 보인다.

지구에 사람만 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들풀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결혼기념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문득, 남편 김종필이 참 좋고 고마워서 아이들과 있는데 말했다.

엄마는 엄마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았어. 뭔 줄 알아?

아빠를 만나기 위해서였어. 아빠를 만나러 이 세상에 태어났어.

사춘기 현승이는 비위가 안 좋은지 슬며시 자리를 떴다.


그가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모습을 본다.

무력하게 지켜본다.

저 사람만의 사막 필살기를 지켜보며 내가 배웠고 성장했다. 

그것이 처음부터 좋아 보이진 않았었다.

좋거나 나빠 보이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가 존재하는 방식, 그가 인생의 사막과 강을 마주하는 방식에 이제 난 입을 닫는다.

깊이 존경한다.


사춘기 아들도, 블로그 독자도 느끼해 속이 울렁거리겠지만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 

저 사람을 만나 인생 30대 이후를 함께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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