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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SS 영혼의 친구

치유하는 글쓰기, 어머님이 쓰시다

larinari 2014. 6. 6. 20:13

 

 


퇴원한 엄마는 아무래도 병원에 있을 때보다 심심해지니 전화가 잦다. 딸 목소리 듣고 싶어서, 기도제목 부탁할 것이 있어서, 우리 딸이 지혜로웅게 의논 헐라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전화가 잦다. 시어머님도 마음은 엄마랑 비슷하실텐데 딸이 아니라 며느리니까 애써 참으시는 것 같다. 전화 또는 '집에 좀 들러라' 하실 때마다 피치못 할 이유를 대시는 것이 느껴진다. 엄마나 시어머니나 하염없이 얘기를 들어드릴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모두 바쁘다. 그래서 노년은 쓸쓸하다. 알아도 잘 못해드리는 나는 죄책감과 무력감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친정과 시댁을 왔다리 갔다리 한다.


엄마는 내 엄마라서 한 방 웃겨 드리는 것으로 엔돌피 주사 효과를 낼 수가 있다. 어머님은 여러 모로 어렵다. 무엇보다 초반에 내가 너무 열심히 한 탓이다. 며느리 기능에 상담 기능에 운전사 기능까지 하면서 한계를 모르고 열정을 쏟아부었다. 좋은 며느리라는 자의식도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내가 애쓰면 어머님의 몸과 마음의 병이 나아지실 거라고 굳게 믿었다. 열정(일종의 사랑), 좌절, 다시 찌질한 열정을 오가면서 어머니를 섬기는 일이 내 마음에서 더 복잡해졌다.  그래서 90대 엄마의 쓸쓸함 보다 60대  어머니의 쓸쓸함이 한결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어머니 얘길 많이 들어드리면 좋겠는데 내게 여력이 없다.


몇 가지 경험으로 지적인 어르신들이 노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어머님은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않으셨지만 읽고 쓰는 것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분이다. 눈이 안 좋으셔서 책을 많이 볼 수 없어 아쉽고, 신경을 많이 쓰시면 머리가 아파지기 때문에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께 자서전 쓰시길 제안했다. 캄캄했던 어린시절에 촛불 하나 켜서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가게 되고, 나름대로 옳다고 믿으며 살아오신 생에 대한 변명도 마음껏 하실 수 있는 장을 마련해드리면 어떨까? 싶어서 살아오신 이야기 쓰실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강화물도 계획했다. 어머님이 쓰시면 즉각 워드작업을 해서 가져다 드리기. 대충 쓰시면 내가 손을 봐서 멋진 글로 만들어 드리기. 매주 쓰시면서 올라온 감정이 있으면 들어 드리기. 다 모아지면 책으로 묶기.


이런 계획을 말씀 드렸다. 심드렁한 반응이시다. "어머니 살아오신 인생이 보통 사람들과 견줄 수 없잖아요. 한 번 써보세요. 책 만들어서 제가 작은집이든 어디든 다 돌릴게요" 했더니 "내가 내 얘기를 쓰자면 책 한 권에 못 쓰지. 수십 권은 써야하지" 하시며 다시 심드렁.  "에미가 나 피정 보내줬었잖어. 거기서 별명을 지으라는데 처음엔 혹덩이라고 지었어. 나중에 내가 별명을 바꿨지. 복뎅이라고. 내가 처음에는 혹뎅이로 남의 집 살이 갔지만 하나님 은혜로 복뎅이로 살고 있는데 그런 뜻으로 해서 쓰면 되겠네" 하시며 또 심드렁. ㅎㅎㅎㅎ


"엇! 어머니, 책 제목 정했어요. 제목은 혹댕이에서 복댕이로! 이거예요" 그렇게 던져만 놓았었다. 치유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발성이 필요했기에. 어머님께 떡밥을 두고 온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지난 주에 갔더니 A4  용지도 마련해 놓으시고 연필도 여러 자루 깎아놓으셨다.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고 계셨다. 자발성 확보! 내일은 아버님 3주기 추도식이다. 그야말로 3년 탈상의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저렇게 준비한 파일을 가져다 드리려고 한다. 과연 지속적으로 쓰실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여러 모로 유익한 일이라 여겨진다. 일단 어머님이 오래 된 상처와 감정들 쏟아놓으실 장이 마련되었고, 나는 나대로 끝없이 말로 들어드리기보다 글로 오가며 한결 쉽게 어머니와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혹덩이에서 복덩이로'
글을 쓰시면서 어머님이 이 말을 진정 가슴으로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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