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 있던 일정을 끝내고 휴우~ 하면 거실 내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창가의 다육이 화분.

어머, 저게 뭐야?

떨어진 잎에서 싹과 뿌리나 나고,

흙지 붕 뚫고 새싹이 하나 돋아난 것이다.

두 생명체가 서로를 향하고 있다.

가 닿으려는 듯.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 정성 들여 돌보지도 못했는데.

시들시들 고개를 떨굴 때야 깜짝 놀라 물을 주기도 했는데.

나 모르는 사이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고 있었다니.

뭉클한 감동이다.


전에 [큐티진]에 썼던 글의 일부이다.

보이지 않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한다는 것,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미국의 낭만파 시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시를 쓰고 가르치는 일을 노년이 되기까지 열정적으로 했다고 한다. 그 비결을 묻는 말에 정원 한 구석의 고목을 가리키며 이렇게 답했다고. “죽은 듯 보이는 저 나무가 봄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네. 그 이유는 저 나무가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도 그렇다네.” 살아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사랑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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