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부슬비

                                                                      티슈남, 김현승


하늘에서 보슬보슬 비가 내린다.
포도알 같은 이슬이 새싹 위에 앉았다.


하늘에서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왕구슬 같은 빗방울이 내 우산 위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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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교회 소그룹(당시 '목장'이라 불리던)에서 제대로 망가지며 맘 먹고 내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창 재밌게 모이던 모임에서 떨어져 나온 상태였고 새로 만난 분들과의 어색한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눔이라고 한 마디 내놓으면 설교나 훈시가 돌아오곤 해서 점점 모임에 대한 기대도 떨어져 갈 즈음이었다. 인도하시는 리더부부(당시 '목자'라 불리심)를 돕겠다는 마음,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솔직한 내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주 중에 겪은 예상치 못한 어려운 경험을 나누면서 스타일 무너지는 것을 각오하고 속 얘기를 했다.



그로 인해서 모임이 어떻게 되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우아하고 진솔한 나눔은 없다.' 이걸 배우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 고상한 이미지도 지키고, 적당히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거리도 유지하는 이야기로는 안될거라는 교훈이었다. 적어도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든 내놓으면 상처받을 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그렇게 내놓을 수 있는 사람만 그렇게도 목말라하는 공동체를 얻을 수 있다고 표현해도 될까?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될 때 까지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하겠지만 무장해제를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


블로그는 물론이고 밖으로 내보내는 글에도 내 이야기를 많이 드러내는 편이다. 오래 전 목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들을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피드백은 내게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꼭 이런 식으로 밖에는 쓸 수 없는 나의 한계를 가끔은 탓하기도 한다. 진실게임 하기로 해놓고(언제 하기로 한 적도 없으면서) 나만 진실을 까발렸는데 그 누구도 자기 얘기를 하지 않을 때 느끼는 손해본 느낌도 없지 않다. 약간의 전문용어를 섞어서 내 얘기가 삐져나오는 것을 희석시켜볼까 하는 노력을 한 적도 있다. 그럴 때 마다 글이 죽사발이 되는 경험을 했다.ㅠㅠ


내 한계이며 강점이라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와, 나의 이야기, 나의 일상을 드러내지 않고는 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을 말이다. 이 바닥에서 (이 바닥은 어느 바닥인가?) 여성의 글, 일상을 담은 글, 쉬운 말로 씌여진 글은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과, 그래서 약간이 피해의식 같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이젠 좀 당당해지려고 한다. 나의 한계와 강점이 공존하는 그 곳에 내 글이 있고, 한계와 강점이 한 지점에 있기에 내가 '사람'이지 않겠다. 남달리 애정이 가는 저자들이 있다. 유난히 자기의 이야기를, 자기의 실패담을 많이 들려주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회고록으로 만난 브레넌 매닝이 그렇고, 댄 알렌더가 그렇고, 도널드 밀러가 그렇다.


남편이 톰라이트를 읽을 때 나는 댄알렌더를 읽는다. 부부를 한 몸으로 부르셨으니 톰라이트도 내 꺼다. 남편이 <배제와 포용>을 붙들고 있을 때 나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붙들고 씨름한다. 필요하면 톰라이트와 미로슬라브 볼프가 들어있는 남편의 머리를 잠시 빌려쓰면 된다. 물론 남편 역시 내면아이가 들려준 인간의 마음에 접속된 내 마음을 설교에 갖다 쓰기도 한다. 나의 지성과 글쓰기의 한계를 인정하며 자족하며 감사(하려고)한다. 내 곁에 '인간의 얼굴을 한 지식'인 남편을 주셨으니 그를 질투하지 않고 진정한 나의 반쪽으로 인정해드린다.


묻지 않는 얘기 꺼내길 좋아하는 오지랖쟁이로 태어난 내가 어쩌겠나. '내 얘기를 해볼께' 하며 속을 드러낼 밖에.....

 

(오늘 아침도 황금빛으로 시원하게......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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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동안 SNS를 통해서 삶을 정리하고 드러내고 소통해왔습니다. 그로 인해서 더 넓은 곳으로 글을 내보내는 기회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1년여는 특히 페이스북으로 인해서 유난히 SNS에 대한 원치 않는 묵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한 번 빠져들면 잘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독 초기증상을 지병으로 달고 사는 늘 잠정적으로 '~~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인'으로서 SNS생활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소한 일이 단초가 되어 페북탈퇴를 감행한 적도 있었어요. 그로 인해서 마음의 여정에 큰 풍랑이 있었고, 풍랑을 직면하고 잠재우면서 조금은 더 깊은 바다 같은 잠잠함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최근 동생이 페북을 탈퇴하면서 얘기를 나누다 그런 얘기를 했어요. "페북이 참 좋아. 나 바보요~하고 다 드러내줘." 함께 웃었지요. 블로그든 페북이든 누군가 와서 보라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다양하고 재밌는 심리적 국면들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블로그와 페북의 다른 점이라면 페북은 그야말로 시장의 좌판에 다른 사람들의 '글(사진, 생각)' 옆에 나란히 내 것을 펼쳐놓는 것이 돼요. 때문에 블로그에 내놓을 때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타인의 시선'을 훨씬 더 의식하게 되는 것이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인간이겠습니까.


여하튼, 오프에서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조차도 그 사람의 담벼락을 오래 관찰하면 최소한 그 사람이 자신을 규정하고 싶어 하는 이미지는 알 수 있더라고요. '아, 이 사람은 자기를 이런 사람으로 알리고 싶구나.' 좀 부정적인 표현을 해보자면 '가장 붙들려 있는 자아 이미지는 이거구나.'가 금방 드러나는 것이죠. 헌데, 문제는 그것만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사람이 표방하는 이미지가 일차적으로 보이고, 조금만 더 차분히 관찰하면 페북커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그 사람의 이면이 보인다는 거예요. 원래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의 한계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판단을 하는 '인간'이라는 종이니까요. 그냥 보이는 거예요. 동생이 말한 '나 바보요.'한다는 게 그 비슷한 뜻일 것 같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생각을 하니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없는 거예요. 나 역시 페친들에게 그렇게 읽혀질 테니까요. 물론, 저처럼 이렇게 언어로 정리할 수 있는 페부커들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최소한 공유할 수 있는 판단은 있거든요. 페친을 오프에서 만나보면 딱 알아요. 어찌됐든 그게 큰 깨달음이 되더군요. '이래도 저래도 내 본색을 숨길 수 없다.'라는 생각이 더 커졌어요. 그런 생각이 들고 보니 올릴 사진도 글도 없드라구요.ㅠㅠ 한 때 싸이 다이어리에서 어린 청년들이 '인간이 싫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 이런 식의 감정 배설을 해놓고 '누가 나 좀 알아봐줘. 나 좀 인정해주고 사랑해줘.' 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걸 보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곤 했었는데.... 페북 역시 좀 더 정제된 언어로 감정을 배설하는 곳이 되고 있고요.


감정배설로 치자면 말고 글을 끝없이 늘어놓는 제가 갑인데.... 누구를 뭐라 할 수 없지요. 타인의 감정배설이 내게 카타르시스 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고, 꼭 배설해야 하는데 방법을 몰라 묶어두고 있었는데 그걸 잘 하는 글을 보면서 감탄하며 배우기도 하지요. 헌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페북이 슬슬 재미가 없어져요. 대선이 다가오는데 페북 타임라인만 보면 죄다 우리 편 같은데, 총선 때 데인 마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구요. 대선을 이야기 하려면 페북 밖에서 전도하는 마음으로 열심을 내는 게 진정 필요한 일이한 생각이 들면서 괜한 피로감이 앞서요. 높아진 하늘과 서늘해진 날씨와 함께 약간 페북 허무주의 같은 것에 빠졌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탈퇴를 한다면 너무 약한 모습이고.... 사실 지금으로선 책을 홍보하는 일에 페북만 한 것이 없어서 어정쩡하게 붙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CGNTV 영상을 SNS 여기 저기 올리면서 든 생각입니다. 카스는 그야말로 전화번호로 맺어진 관계들이라 훨씬 더 오프라인에 가깝고 주로 아줌마들이라 그야말로 '수다' 같은 편안함이 있는 곳이지요. 아기들 사진, 요리 사진, 여행 사진 등 비슷비슷한 것들이 올라와도 그리 피로감 느껴지지 않는.... 블로그는 안방이고, 페북은 정리됐다 해도 복잡한 곳이고.... 이런 저런 생각하며 설거지 하고 앉아서 감정배설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아침에 한 번 씩 황금색으로 배설하는 게 좋잖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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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덕분에
여름 끝자락에 라디오, 티브이, 잡지와 인터뷰 등으로 여름 끝자락을 보냈습니다. 한꺼번에 몰려 온 일이라 약간 정신없이 치뤄냈고 이번 주에 방송이 나왔네요. 저 자신은 민망하고 오글거려서 손으로 눈 가리고 있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볼 건 다 보고...)  이런 경험을 하면서 몇 가지 생각이 오락가락 했어요. 말하자면....



1. 이런 식으로 가면서 '어, 혹시 나 유명해진 거 아냐? 나 좀 알아주는 사람인가봐. 맞아 맞아 나 유명인사야.' 하게 되겠더라니까요. 그러다 한 방에 훅 가겠어요.



2. '나는 마이크 체질이다.' 은근히 이런 자부심 갖고 있었는데 아니더군요. 임기응변도 부족하고, 말하면서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어버버버 거리고.... 앞으로 나대지 말아야겠어요.


3. 삶의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고, 나의 이야기를 삶으로 써가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책을 내는 것도, 유명해지는 것도, 그 무엇도 '진짜 나'를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정신실이고, 김종필의 아내이고, 채윤과 현승이 엄마.... 이렇게 살아가는 내 자리를 잊어버리지 않겠어요.


4. 내공이 부족하단 생각을 많이 했어요. 책 한 권 내고 전문가 행세하는 것도 우습지만, 전문가 아니라고 손사레 치면서 책임을 피하려하는 건 아닌지 반성합니다. 더 공부하고, 강의안을 업뎃하면서 보이지 않는 노력과 정성을 더 기울여야겠어요.


5. 막상 마이크와 카메라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임기응변도 부족하지만 표정만은 여자 짐캐리 어니 안가네요. 부끄럽습니다. 저 표정들.....ㅎㅎㅎ


6. 집에서 촬영할 때는 정말 재밌었어요. 다영이와 찬이는 인터뷰 길게 했는데...아쉽. 주미 아니고 주미 이상형은 '개그코드'니까 전국에 계신 개그 좀 한다하는 청년들 많은 성원 부탁드리고요.


7.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방송보기가 된답니다. 좀 느끼하실 거예요. 보시고 많이 느끼하시면 제가 콜라 한 캔 정도는 쏘겠습니다.

http://cgntv.net/tv/program.asp?pid=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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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닦고 일어나 글을 썼습니다.
가끔 글은 그 자체로 치유의 기능을 하기도 하고,
막다른 감정의 코너에서 예상치 못한 길을 내기도 합니다.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요즘.


정신실의 일상愛, 일곱 번 째 이야기.

클릭

http://m.crosslow.com/articleView.html?idxno=642&menu=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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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남았네.
나 홀로 남았네.
까만 밤 하늘에 별 하나 같은 외딴섬에
나 홀로 남았네.


나 홀로 남았네.
나 홀로 남았네.
누가 사는 지, 여긴 어딘 지 몰르는 외딴섬에
나 홀로 남았네.


나 홀로 남았네.
나 홀로 남았네.
나 이제 어떻게 살아가지.


동화 <로빈슨 크루소> 를 읽고, 티슈남 김현승님 쓰심.


엄마, 독후감을 시로 써도 돼?
갑자기 시가 떠올랐어. 로빈슨 크루소 생각을 하니까 시가 떠올랐어.
그냥 막 써도 돼?


(시인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시란 그냥 막 떠올라서 쓰는 그런 것이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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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의 지하 감옥을 지키는 이름 모를 간수는 밤을 지새운다. 오늘 감옥에는 이상한 도를 가르치며 군중을 선동하고 소란을 일으킨다는 죄목으로 갇힌 두 죄수가 있다. 상관들은 특별히 당부하며 '든든히 지키라.' 하였다. 이 희한한 사람들은 엄청난 매질을 당하고 살이 문드러지는 상황에서, 발에 착고까지 채워진 상황에서 노래를 부른다. 감옥이 울리도록 노래를 부른다. '이상한 사람들이군.' 하며 듣고 있노라니 어느 새 졸음이 밀려오고 잠이 들었나본다. 갑자기 큰 흔들림을 느끼면 잠이 깼다.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옥문이 열려있다. '아, 탈옥이구나! 든든히 지키라며 특별명령을 받았는데... 그 죄수를 놓쳤구나. 나는 이제 죽었구나. 불명예스럽게 죽느니 차라리 자결을 하자.' 하며 칼을 뽑아든 순간.


"당신의 몸을 해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 있소."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낮에 들었던 그 죄수의 목소리다. 횃불을 들고 감옥 안으로 들어간다. 믿을 수 없다. 감옥 문이 열리고 발에 차여 있던 착고까지 풀어졌는데 죄수들은 도망가기 않고 그 자리에 있다.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열린 문으로도 도망가지 않는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놀라움과 안도 감동과 긴장의 해소로 간수는 두 죄수에게 납작 엎드린다. 그리고 하는 말,


"주님, 제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 질문으로 죄수는 구원을 만난다. '아니, 감옥이 열려 있는데 왜 도망을 가지 않았습니까?' 또는 '당신들 대단한 분들이군요. 아까 낮에 제가 무례하게 군 것이 있다면 용서하십쇼.' 또는 '도대체 감옥 문을 어떻게 연 것이요?' 이것도 아니라 '제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이리이까?'를 물었다. 이 돌발적인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의 아우라에 압도당한 죄수의 질문은 '구원'을 묻는 것이었다. 평소 이 의문을 갖고 살지 않았다면 대뜸 나올 수 없는 질문이다. 간수는 평소 영원에 대한 질문을, 구원에 대한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질문하는 사람만이 답을 얻을 수 있다.
질문이 진지한 만큼만 진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선지자 하박국은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 하박국 1:13) 라며 불의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할 때 끝내 답을 들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솔로몬이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하며 질문하고 성전을 지었다. 성전을 건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질문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성전에 갇혔고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에 갇혔다.


(여기까지 오늘 설교를 각색 요약한 것임)


헨리나우웬 신부님도 그렇게 말했다. '의문을 품으라. 하나님 앞에서 의문을 품으라.' 거짓 선생들은 가르친다. '믿어라. 닥치고 믿어라. 의문을 품는 것은 죄다.' 묻지 못하게 하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여 결국 진짜 하나님을, 진리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오랜 시간 그렇게 배워온 나는 내 안에 자연스럽게 의문이 올라올 때마다 '불경하고 믿음이 없는, 삐딱한 나'라며 스스로 정죄하고 죄책감에 빠지곤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죄책감을 품고도 의문을 버리지 않았고, 질문하는 자에게 답을 주시는 하나님이 많은 문제들에 때론 명쾌하게, 때로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답을 주셨다.


진리이며 사랑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안다는 내가 왜 성숙해지지 않는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하나님 앞에 있는 내가 왜 마음의 변화, 성품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는가?
불의한 권력은 어찌하여 끝도 없이 강해지고 가장 약한 사람들을 소리 없이 짓밟는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의을 행하는 자들이 어찌 위기 때마다 피할 길을 찾아 다시 일어나 활개를 치곤 하는가?
사랑의 하나님 이라 불리는 하나님께서 왜 내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는가?


다 열거할 수 없는 의문을 품고 살아왔다.
여전히 많은 의문들이 올라오고 올라오지만 어느 새 하나 둘 질문에 대한 답이 삶에서 주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2012년 이 곳 양화진에서 또렷하게 주어지는 진지한 답이 있으니... 가끔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명쾌하게 주어질 때가 있으니.....


질문을 품고 살아 온 지난 세월이 이제 와 생각하니 가장 어둡지만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
지금, 여기를 삶이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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