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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살 만큼 사셨죠. 더 아프지 않고 돌아가시면 복이죠."

라고 말 할 수도 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엄마가 병원에 계셔서요. 곧 요양병원으로 가실 건데... 그 이후에 좀 여유가 생길 것 같아요. 네, 연락 드릴께요"

라고, 요즘 자주 말하고 있다.

"다시 걸으실 수 있을까요?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에... 음.... 그리고 한 쪽이 골절되셨으면 다른 한 쪽도 골절 가능성 있습니다. 꼭 이것 때문이 아니어도 병원에 입원하고 그 날 돌아가시는 분도 있으니까 보호자께서 알아두셔야 하고요..."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은 듯, 원래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살 만큼 살았다구요? 도대체 얼마나 살아야 살 만큼 산 건데! 세상 어느 누구가 자기 엄마를 살 만큼 살았다며 기꺼이 죽음에 내어줄 수 있는데!!! 내 평생 살아 있는 동안에 엄마가 살아 있다해도 살 만큼 산 게 아니라구요!"

"산책도 하고, 혼자 버스 타고 교회도 가던 우리 엄마가 침대에 누워 꼼짝을 못해요. 내가 이 생각만 하면 돌아버릴 것 같아요.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가.... 혼자 화장실도 못간다구요. 그래서 내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약속을 잡고 일상을 살아나갈 기분이 아니라구요."

"뭐라? 다시 걸을 수 있겠냐니! 다시 걸으실려고 노인네가 수술을 했는데. 다시 걸을 수 있겠냐구요? 다시 혼자 걷기 위해 수술하고 이 먼 요양병원 까지 온 우리 엄마를 놓고 의사라는 당신이 고작 할 수 있는 말이 그 날 돌아가시는 분도 있다고? 저 분이 누군줄 알아? 우리 엄마야! 우리 엄마!"

오늘 엄마를 김천에 있는 노인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왔다.
누군가 나를 아이처럼 대해준다면 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누구든 나를 아이처럼 대해 줄 리 없고, 무엇보다 나는 아이가 아니다.
덤덤하게 어른스럽게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나 처럼 사는 이는 나 밖에 없음을 안다.
그래서 '네, 맞아요. 사실 만큼 사셨죠. 엄마가 병원에 계셔서 제가 좀 바빠요. 아, 그렇죠. 연세가 있으니 장담할 수 없겠죠." 라며 살고 있다.
나와 같은 하루를 보낸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슴 한복판이, 몸의 일부분인 가슴이 이런 방식으로 아픈 하루를 보낸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엄마와 인사하고 병원을 나왔다.
코너를 도니 유리벽을 통해서 엄마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엄마가 멍한 얼굴로 바가지를 앞에 놓고 양치질을 하고 계셨다.
내 슬픔에 겨워 가슴이 아파 죽을 것 같지만,
오늘 하루를 엄마 처럼 산 사람은 엄마 밖에 없다.
엄마의 외로움을, 엄마의 쓸쓸함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헤아려지지 않는 엄마의 하루라 생각하니,
엄마처럼 사는 사람은 엄마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엄마의 오늘 하루는 나와 다르고 나는 거기에 다다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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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이 엉덩이에서 방구가 출출출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를 능가하는 음악적 창의력으로 애기 적부터 여러 창작곡을 내놓았던 김채윤. 스스로 가장 만족스럽게 여기며 애창하고 있는 일명 '현승이 방구송'이다.

자신이 만들었던 많은 곡들을 다 잊어버린 지 오래지만 이 곡만은 싱어송 라이터 자신이 사춘기가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침으로 저녁으로 부르고 또 부르고 있다.


자기보다 더 어린데다, 더 귀엽고, 더 착한데다, 더 눈치도 빠른 현승이가 얄미워서 어쩔 줄 모르겠을 때 마음을 달래는 주문같은 노래다. 저 짧은 노래에 첫째로 태어난 누나의 한이 글자마다 서려있다. 그 한을 방구로 풀어내는 풍자와 해학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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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집에 없던 어느 날. 현승이 밥을 챙겨주고 레슨을 가려고 했는데 놀러 나간 녀석이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식탁 위에 남기고 간 누나의 마음이다.  
현승이 엉덩이에서 방구가 출출출...
원활하게 나오도록 끼니를 챙겨 먹이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 누나. 누나 노릇 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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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선생>


                                                               (다형 아니고 티슈남)김현승


지금까지 살면서 나를 거쳐 간 선생님은 정말 많다.

하지만 인생 최고의 선생님은 따로 있다.
바로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내게 가르쳐주신 게 셀 수 없이 많다.
또 논술 선생님이자 삼촌인 외삼촌도 빼먹을 수 없다.
그리고 죽음.
나는 죽음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이런 분들이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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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선생님이자 삼촌인 '왜삼촌'을 만나 글쓰기 공부를 하러 가는 월요일.

유난히 주옥같은 언어가 쏟아지는 날입니다.
오가는 차 안에서 현승이는 쉴 새 없이 질문하고 떠들어 댑니다.

"엄마, 내가 벌써 많은 선생님을 만났잖아. 어느 선생님이 제일 기억에 남는 지 알아?  김우선선생님인 줄 알았지? 김우선선생님이 좋긴 하지만 진짜로 나한테 중요한 걸 가르쳐준 선생님은 따로 있어. 누구게? 바로 엄마하고 아빠야. 뭘 가르쳐 줬냐고? 거의 모든 걸 다 엄마 아빠가 가르쳐 줬지. 아! 이걸로 글을 하나 써야겠다. 집에 가서 선생님에 관한 글을 하나 쓸 거야. 이건 일기도 아니고 숙제도 아니고, 내가 정말 쓰고 싶어서 쓰는 거야. 빨리 가서 써야지."

수다 속에서 건져 올린 통찰로 저렇게 줄줄줄 글을 하나 써댑니다.
'정말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아들 '인생 선생' 일빠로 등극하니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네요 :)
게다가 의인화 된 '죽음님'과 동급이 되다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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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 사이에 구전되는 '목회적 관계 맺기의 법칙'이 하나 있으니 이것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한 두 해 목회질(?) 하신 분들의 노하우가 아닐 것이다. 교우들과 가까이 하면서 상처도 받을 만큼 받으신 분들이 후배들에게 주는 피가 되고 살이 된다며 나눠주시는 지혜일 터. 그러나 이 말처럼 교회의 본질, 예수님의 제자도를 따르는 공동체 정신과 위배되는 말도 없다 생각한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어정쩡한 거리를 두고, 보여줄 건 보여주고 숨길 건 숨기는 관계에서 어찌 신뢰와 사랑이 자랄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은, 신뢰는 친밀해져서 약점을 드러내고 상대의 찔려 피 흘리도록 아파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만 진.짜.가 되는 것이 아니던가.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 남편의 초임 목회생활은 '불가근불가원'의 관계철학에 거스르는 방식이었다. 교회는 바뀌지 않고 평신도에서 목회자로 호칭과 약간의 역할만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관계로 지내던 사람들이 목회의 대상이 되었으니까. 아니 그렇지 않다해도 선택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이제 와 돌이켜보니 젊은 부부들의 모임인 'AP목장'은 물론 청년부 TNTer들과의 만남은 진하고도 끈끈한 만남이었다. 부끄럽고 나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그런 만남이었다.

특히 청년부와의 3년은 내겐 더욱 특별하다. 블로그에선 꽤나 징징거렸지만 아무리 징징거려도 다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지난한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내던 3년 여였으니까. 지하 감옥 같은 마음 상태로도 이들과의 만남에선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돌이켜보니 그러하다. 이 점에 관한 한 감히 나 자신을 칭찬할 수 있으리.) 가끔 '하나님이 도대체 날 사랑하시는가?'라는 의문이 들어서 그 믿음조차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것은 청년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사역지를 옮기면서 어떤 의미로든 의식적으로 단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큰 틀에서 원칙을 지키고 있다. 헌데 <오우 연애> 책을 낸 이후로 내가 지금 어디를 살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책으로 인한 방송출연, 인터뷰 등이 연이어 있었다. 내가 거기서 하는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TNTer들과의 이야기다. 자꾸만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처럼 해야 하는 것으로 인해 마음 한 구석 찜찜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다. 이걸 통해서도 내가 TNTer들과 얼마나 깊이 서로에게 영향받고 있었나를 확인하게 된다.

방송을 위해서 집에서 청년들과 노는 걸 촬영해야 했다. 멤버를 구성하는데 쉽지 않았고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곡절이 있었지만 갑작스레 캐스팅된 멤버들이 모여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모임이 되었다. 녹화 때 하지 못했던 꼭 필요한 말들이 얘네들 입을 통해서 나왔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 즐거웠다. 즐겁다 못해 속으로 눈물 찔끔 나게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우연히 놀러 왔다가 인터뷰 당한 귀여운 커플과 결혼식장의 신부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는 새댁과 센스있는 동네 아가씨와 나의 커피 런닝 메이트 까지. 카메라 켜지자마자 긴장하고 벌쭘하던 모습 간 데 없고 깔깔거리고 낄낄거리는 시간이었다.

어제의 만남들이 오늘 내게 이렇게 힘이 되니 이 고마움을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관계라는 것이 어제와 오늘을 어찌 구분지을 수 있으랴 싶다. 구분지으려 했지만 최소한의 형식에서만 가능한 일이겠구나 싶다. 사랑했었고, 사랑하고 있고, 때문에 앞으로도 사랑하는 사람들일 터이니. 더불어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 이 곳에서 현재의 사랑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내일의 사랑은 없다. 교회가 크다고, 숨어 있어도 모른다고. 누구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오늘 여기서 깊이 연루되고 소통하는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되겠구나. 전에 그러했듯 사랑할 조건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사랑을 일궈가야 겠구나.

 

(고맙고, 또 고맙다. 오늘의 만남이 된 어제의 너희들아....)

 


 

 


엄마, 천국이 좋아?
천국에 가면 몸이 없는데 그러면 엄마를 이렇게 만질 수도 없고.....
아무리 천국이 좋다고 해도 몸도 없이 사는 천국이 나는 좋을 것 같지가 않아.
죽는 게 무서운 건 몸이 꼼짝도 못하고 있다는 거야.


(이런 질문, 어렵다.ㅠㅠ 그래도 엄마니까....)


현승아, 엄마가 잘 설명할 수는 없는데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일거야.
몸은 이 땅에서 너무 중요하고 몸이 '나'이기도 하지만.... 뭐랄까.... 
죽는다는 건,  이 땅에서 '나'이기도 했던 그 몸하고 안녕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말이지... $%%&$ㅓㅏㅛㅛㅑㅆ&%#$%#$#%ㅓㅏ$#$#^^**&*&&*&...
알겠어?
천국은 우리가 여기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좋은 때 보다 수천 배 더 좋은 순간이 쭈욱 이어지는 거?   그런 곳일까? 현승이는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야?


엄마랑 같이 잘 때!


그러면, 천국은 매일 매일 엄마랑 같이 자는 것처럼 좋은 곳! 그런 곳?


무슨 소리야! 그러면 아빠가 화가 나는데.... 그게 무슨 천국이야!


(상황종료. 모르겠다. 나 사실은 천국 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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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21




(일경, 이석, 삼진, 사라, 오필, 육미, 칠규, 팔수, 구민이가 모님과 함께 1박 여행을 떠났습니다. 경기도 가평의 깊은 산 속 펜션을 찾았습니다. 숲으로 난 길을 걸어 봅니다. 가다가 작은 풀잎이 눈에 띄면 그 앞에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앉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눠주는 자연의 품에 나를 맡겨봅니다. 무엇이 되라하지 않고, 좀 더 열심히 하라 채근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자연의 품에서 따스한 아바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저녁으로는 바비큐 파티입니다. 맛있는 포만감으로 기분 좋아진 친구들이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습니다. 모님의 카페는 여기까지 와서 문을 엽니다. 향 좋은 핸드드립 커피가 종이컵에 담겨 각자의 손에 들려집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찾음으로 얻은 유익을 나눕니다. 그리고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습니다. 생각지 못한 감정들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친구의 이야기가 내 안의 이야기를 건드려 잊었던 영화 속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생각지 못했던 지점에서 울컥하며 뜨거운 것이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여 조용해진 공간을 ‘쓰르르 쓰르르’ 풀벌레가 채워줍니다. 누군가의 감탄사에 다 같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이 눈을 맞춰 줍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듯, 우리의 어린 시절 아니 우리가 생기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아련하게 반짝거립니다.)



모님
: 맨 처음 우리 집 거실에 모여서 ‘아홉 개의 거짓자아’ 에 대해 얘기했던 날이 기억나네. 그간 자신의 유형을 찾아가며 각자의 여정을 잘들 가고 있는 것 같아 새삼스레 고마워. 유형을 알고, 그 유형의 메커니즘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를 써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


오필
: 항상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동기’가 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배운 가장 큰 깨달음 같아요. 제가 제 자신에게 정직해지지 않을 때 그 ‘동기’가 타인을 속일 뿐 아니라 저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미
: 저는 무엇이든 안전하게 대비하고 깨알 같은 책임감 속에 사는 것이 제가 괜찮은 사람이라서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 동기가 ‘두려움’ 심지어 ‘공포’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도 됐구요.


팔수
: 다들 자기 유형 전문가들이 된 건가? 나는 전에 들었던 거 다 까먹었는데…….


칠규
: 야, 까먹을 게 없어서 그걸 까먹냐? 그래도 다행이네. 껍질째 안 먹고 까먹어서. 큭큭큭. 그런데 모님, 좀 창피하긴 하지만 7유형의 죄가 ‘무절제’라는 걸 알았을 때 대~애박! 했었는데요...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없어요. 알아도 여전히 무절제 하거든요. 아, 물론 그것 아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도움이 되기는 했지요.

 

모님 : 아주 그냥 엄청나게 도움이 됐구나? 호호. 맞아. 이 그림을 한 번 볼래? 구원받은 우리는 ‘성화’의 과정에 있다고 하지? 성화, 즉 거룩해지는 여정에 있는 우리의 삶이 왜 이리 변하지 않을까? 나 자신은 물론이고 1년 내내 새벽기도 한 번 빠지지 않는 장로님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 신앙인들 말이다. 에니어그램이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 문제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그 아래 동기라는 거지. 표에서 보는 것처럼 드러나는 행동은 거짓자아에 뿌리를 두고, 아홉 개의 거짓자아는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다고 할 때 이제 우리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 같아. 그래서 ‘어린 시절로의 여행’이라는 미명하에 이번 1박 여행을 꾸며봤단다. 지금 나눈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봤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첫 기억, 어린 시절에 경험한 부모님들의 이미지, 소중하게 여겨졌던 경험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경험, 형제자매와의 관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꿈이나 자주 반복되었던 꿈 등을 얘기 했지? 그런 경험들과 연관 지어 ‘왜 이 유형이 되었을 지’ 간단히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 누가 먼저 얘기할까?


일경
: 제가 먼저 할게요. 빨리 하지 않으면 또 눈물이 날거 같아서요. 다섯 살인가, 아니면 더 어렸을 적이었던 것 같아요. 동생에게 함부로 했다고 목침 위에 올라가서 매 맞았던 기억, 그 장면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 때부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하는 모든 것에서 결점을 찾는 버릇이 생겼어요. 저는 어렸을 적에 엄마한데 ‘잘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 자신도 뭔가 늘 올바르게 되어있지 않은 것에 꽂혀 짜증이 나고 그게 다 제 탓인 것 같아서 더 많은 일을 자꾸 짊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래서 저는 1번 유형이 된 것일까요?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건가? 하이튼, 여기까지요. 오빠 하세요.


이석
: 저는 사랑받고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머니가 좀 불쌍해 보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활달하고 친구를 좋아하셔서 밖에 나가시길 좋아하셨는데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못마땅해 하셨거든요. 부모님이 싸우시거나 또 일방적으로 엄마가 당하시는 게 싫어서 아버지가 전화해서 엄마 있냐고 하시면 잠깐 가게에 뭘 사러 가셨다,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 어머니를 보호해야 했었어요. 학교 준비물이나 돈 내야할 것이 있으면 어머니께서 동생 먼저 챙겨주는 게 당연했어요. 어머니가 늘 ‘너 때문에 산다.’ 고 하셨고 딸 같은 아들이라고 하셨어요. 이런 기억들이 2유형의 행동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구요.


삼진
: 에니어그램 책에서 ‘3유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특별한 성취를 이룬 순간에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고 나왔던데요. 정말 딱인 것 같아요. 어릴 적 생각해보면 진짜 지기 싫어했고, 똑 부러진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칭찬받는 게 일상이었고 어린 나이에 그걸 즐겼던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들을 보면 ‘이 선생님이 어떤 스타일을 원한다.’를 딱 알았던 것 같아요. 친구를 사귈 때도 여러 애들을 사귀는 건 시간 낭비잖아요. 친구가 많은 애 하나를 사귀어서 한 방에 친구를 만들었던 기억도 있구요. 어린 것이 일찍부터 3번이었죠. 호호호.


사라
: 음.... 저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비오고 나서 아파트 단지 안에 생긴 물웅덩이가 기억이 나요. 왠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나는 혹시 주워온 아이가 아닐까? 병원에서 바뀐 아이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동생은 똑똑했고 뭔가 엄마 아빠에게 어울리는 아이 같았는데... 저는... 그냥, 제 엄마는 동생의 엄마 같아요. 모님께서 제 유형 설명해 주시면서 ‘감정이 네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는데 뭔가 말로는 잘 설명하기 어려운, 아니 설명하기 싫은 감정이 제 안에 늘 있는 것 같았거든요. 어릴 적부터 왠지 난 ‘지금 이 곳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느낌이었어요.


오필
: 저희 아버님이 7남매의 맏이시거든요. 저 어릴 적에는 고모, 삼촌들이 집에서 다 같이 살았어요. 비좁은 집에서 여러 식구가 살면서 어머니는 늘 힘겨우셨던 것 같고, 몸이 워낙 약하신 데다 집안이 넉넉지 않으니까 제가 아기였을 적 충분히 젖을 못 먹이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제게 유난히 신경을 많이 쓰시고 간섭도 많으셨어요. 저는 그게 참 싫었고요. 그 때문인지 혼자 있는 공간, 나를 숨길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도 그런 게 좀 남아 있는 듯해요. 그러나 그런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은 모두 5유형이 되는 건 아닐 텐데요. 잘 모르겠네요.


육미
: 저희 가족은 아빠의 기분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엄마와 동생 저 셋이서 늘 아빠의 눈치를 봤죠. 언제 버럭 화내실지 모르는 분이고, 늘 잔소리와 걱정이 많으셨어요. 저는 집에 들어갈 때는 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들어가곤 했어요. ‘집에 들어가서 아빠가 와 계실 거고 기분이 엄청 안 좋으실 것이다.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실 것이다’ 이러고 들어가면 상상한 일은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다 방심하면 또 갑자기 혼나고.... 뭘 해도 아빠는 안 좋은 쪽으로 말씀하셨는데 제가 지금 그렇거든요. 제 유형 때문인지 아빠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깥세상은 늘 무서운 곳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칠규
: 저는 뭐 행복했어요. 아, 물론 제가 일곱 살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서 반전이 생기긴 했죠. 그래도, 엄마가 생활력이 강하셔서 나름 저한테는 부족함 없이 해주셨어요. 엄마가 가게를 하시면서 단골손님들이 많았는데 제가 많이 웃겨드리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귀엽다고 돈도 주시고 했구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늘 상위권에 있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가니까 수학이며 이런 게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그 때부턴 아예 손을 좀 놨죠. 큭큭.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저는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7유형이라서 그래.’ 이러실 거죠? 흐흐흐..


팔수
: 이 얘기 하면 다 뒤집어지던데. 초등학교 1,2학년 때였나봐요.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욕탕에서 아버지한테 죽도록 맞았어요. 잘못했단 소릴 안한다고 더 때린 것 같은데 지기가 싫더라구요. 어린놈이 오기가 생긴 거죠. 하이튼 어떻게 마무리가 되고 아버지가 목욕탕을 나가시려는데 제가 침을 탁 뱉었어요. 나가시던 아버지가 바로 다시 들어오셔서 진짜 기절 직전까지 맞았죠. 아버지가 엄마도 많이 때렸어요. 엄마가 맞는 걸 보면서 ‘나중에 힘이 세지면 내가 엄마를 꼭 지켜줘야지.’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이런데 제가 약한 놈이 될 수 있었겠어요?


구민
: 뭐... 저는 그냥 뭐 대체로 괜찮았던 것 같은데요. 그냥 조용히 놀고 그랬어요. 형이 워낙 성격도 까다롭고 그래서 부모님이 많이 힘드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순해서 엄마가 ‘너 같은 애는 열도 키운다.’ 고 하셨어요. 있는 듯 없는 듯 지냈지요. 지금 생각하면 형은 원하는 걸 다 하고 사는 것 같은데 저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뭐 꼭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서 일까요? 지금 진로를 놓고 고민하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게 참 막막하니까요.


모님
: 어려운 얘기들 잘 정리해서 나눠줬구나. 고맙다. 어린 시절 작업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부모님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돼. 사랑으로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반역하는 느낌도 들 거야. 헌데 한 번 쯤은 넘어야 하는 것이 부모님이라는 산이고, 그것은 이런 의미로 이해하면 될 거야. 부모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지. 우리는 모두 온전한 사랑을 기대하고 그리는 존재들이지만 부모님들이 역시 인간이잖아. 그걸 인정하는 작업이 될 거야. 무방비 상태의 아기에게 부모님은 생사를 쥔 하나님 같은 존재야. 때문에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내 방식대로 각색되어 있을 거야. 이제 어른이 된 눈으로 각색되어 고착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단다. 중요한 것은 그림에서처럼 이것 역시 전부가 아니고, 내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야. 내 속사람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성령님의 손을 붙들고 그 분과 함께 가는 길임을 다시 잊어서는 안 될 거야.

(다음 호에 계속)






 


어렸을 적에,
정확히 말해서 중학교 1학년 이후다.
공부하는 게 힘들 때면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를 위해서,
오직 엄마의 명예를 위해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대학으로 알고 있는 서울교대에 가겠노라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고모들이 엄마를 무시했다.
무시해도 너~어무 무시했다.
아버지 추도식에 음식 많이 안차렸다고 엄마를 갈궜다.
갈궈도 너무 갈궜다.
돈을 너무 아낀다고 갈궜다.
엄마가 돈을 아끼는 유일한 이유는 나와 동생, 대학까지 가르쳐야한다는 일념이었다.


밤늦도록 공부하는 날엔
떡허니 서울교대를 간 나.
'역시 애들을 잘 키웠다.'고 엄마를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고모들을 상상했다.


어쨌거나 다 늙어 천국을 몇 정거장 앞 둔 연세가 되어서도 고모들은 우리 엄마를 무시한다.
엄마가 원인 제공하는 면이 있다.
'푼수 이옥금여사'라 불리시는 분이니까.
그랬거나 말았거나 나는 이옥금여사의 딸이니 어쩌랴.


인공관절을 넣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간 엄마를 기다린다.
수술에 대한 염려나 엄마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분노가 마구 일렁인다.
오래 묵힌 분노가 새삼스레 오르락 내리락 한다.



나는!
이 자리에서!
칼슘이 다 빠져나가 뼈가 주저 앉도록 열심히 살아온 우리 엄마,
그런 우리 엄마 인생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 고모들을 고발하는 바이다.
아울러!
마흔 다섯에 낳아서 곱게 길러 시집 보냈으면 그만이지.
뭔 놈의 직장생활 한다고 지 딸까지 맡겨서 늙은 엄마 허리를 망가뜨린 나 자신을 고발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뼈 속의 칼슘을 빨아다가 오장육부를 형성하고,
평생 엄마의 열정과 건강을 갉아먹으며
견고한 인생의 진을 쌓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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