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정해진 약속을 깨지고 남는 시간 떼우려 돌아다니다 우연히 만난 친구가 있다고 치자.

어머, 너 여기서 만나다니! 뭐 해? 시간 되는 거야?

아니면 모임에 참석했다 돌아가는 길, 그 모임에서 본 사람과 지하철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친구와, 우연히 옆 자리에 앉은 거의 초면인 사람과 대화를 시작했는데

한두 마디 오가는 중 삘이 빠악 통하면서 베프 될 예감이 드는 경험.

드물지만 있다.


출간 되었다 조용히 묻힌 [융 심리학] 책 찾기 놀이가 취미인데, 

그 놀이 하다 찾은 책이다. 

영웅의 딸 : 여성들의 영웅 심리와 그 불안을 파헤치는 새로운 페미니즘 에세이


은유와 상징에 꽂혀서 그 동네 책을 찾아 검색, 검색, 검색 하는 중 만난 책이다.

『여성, 타자의 은유 : 주체와 타자 사이


두 책, 아니 두 여성 저자를 오가며 새로운 나를 만났다.

줄을 서 있던 후보들을 제치고 여름 휴가 책으로 선정된 것이 『여성, 타자의 은유』이기도 하다.

두 책, 아니 두 저자와의 만남이 신선하고, 고요하고, 깊었다.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그 어려운) 여성학 (고천) 책들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갔던 것처럼.

까지는 아니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여성주의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도록 눈을 닦아 주었다.

젊고 열정 넘지고 독이 오를대로 오른 페미니즘에 위축 되기도 하고,

피로감도 느껴져 그 분야 책이 장바구니에 담아지질 않았다.


융 심리학을 찾다 얻어 걸려서, '은유와 상징'이란 주제에 낚여서 

지금 꼭 먹어야 할 책을 먹게 된 것 같다.


<영웅의 딸>이란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성공을 추구하는 가운데 남성을 모방하는 여성을 일컫는다. 그녀는 어린 소녀였을 때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지를 이상화 하고 어머니는 거부한다. (중략)

아버지와의 지나친 동일시와 아버지처럼 되고하 하는 아버지의 딸들의 욕망은 그들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편안하게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중략)

<아버지의 딸>이 아버지와 남자들의 세계를 모방하면서 일찍부터 그녀의 남성적인 성품을 발전시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지나친 자기 동일시는 딸에게 자신감과 세상에서의 경쟁력을 심어주지만, 어머니와의 분리 속에서 그녀는 여성성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중략)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글쓰기 자조모임에서 '부정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를 떠올리며 글을 쓴 적이 있다. 참가자 넷  중 세 사람의 주제가 아버지였다.  내적여정에서 어린시절 작업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보다 엄마를 동일시하는 딸이 더 많고, 둘 다 고통의 근원이었을 테지만 아버가 준 고통을 더 강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와 생각하면 이 지점에서 감정이입 하지 못했다. 강의 할 때나 글에서 공공연히 밝히곤 했지만, 내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버지와 동일시 되어 있고, 심지어 우상화 했고, 동시에 아버지의 착한 딸이 되고자 애를 쓰고 있었는지. (알았지만 실은 몰랐다) 엄마를 혐오하고 아버지를 이상화 하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여성인 나를 스스로 낮추며 이율배반적으로 외부의 남성 권위에는 분노하고 대항한다. 당연히 왜곡된 가부장적 하나님이 이미지를 가졌고, 그것이 영적 여정의 걸림돌이기도 하다.(역시나 알았지만 몰랐다) '아버지의 딸인 나'와의 갈등이 페미니스트로, 나다운 여자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부대꼈던 바로 그 지점 중 하나였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지식이 아니라 성찰의 거울로 새로 배울 여성주의이다. 이 나이에.  


메리온 우드맨(Marion Woodman)은 세상의 모든 딸들은 개인적인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버지의 딸>들이 아닐지 모르지만, 지배적인 가부장적 문화의 측면에서는 대부분 여성들이 <아버지의 딸>이라고 했다. 현대 여성해방운동의 출발 이후로 여성들은 직업 세계에서나 가정, 학교, 그리고 정치적인 분야에서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해 남성드을 상대로 투쟁해 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얼마나 깊게 그들 아버지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딸>은 자신 속에 아버지의 시각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자신을 강하게 동일시하면 할수록 그녀는 더욱더 개별적인 정체성 수리에 어려움으르 겪게 된다. 


'사이' 또는 '경계'라는 말에는 늘 끌린다. 몇 년 전 <철학상담>을 들을 이후로 '레비나스'는 늘 마음 한 켠에 살아 있는 이름이다. 니체, 레비나스, 데리다를 저자 자신의 말로 들려주니 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타자 철학자들이 언어화의 한계 너머에 있는 타자의 타자성을 가시화 하기 위해 여성 은유를 사용하지만', 이때 여성은 현실의 여성이 아님을 잘 설명해준다. 타자의 철학에 있어서조차 여성은 타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지의 눈으로 나를 타자화 시켜 50년을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결론이 철학자답게 관념적이어서 차라리 실천적으로 다가온다. 책의 마지막 부분이 참 좋다. 내 주장을 잠깐씩 침묵에 가두고 들어야 한다.  주체와 타자 '사이', 그 비결정적인 것에서 '들어야'한다.


이 모든 비판적 읽기 이후에,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타자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주체가 타자로 하여금 말할 수 있게 하여야 하는가? 주체가 타자를 해할 수 있다고, 이해하고자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타자의 자리에 들어설 수 있다고 믿어야 하는가? 주체 안의 타자들, 확실성과 동일성으로 말끔히 포착되지 않는 이질성의 요소들, 그것이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타자의 분절화되지 않은 소리, 구조화를 거부하는 이야기, '비결정적인 것', 침묵으로 가라앉지도 언어로 떠오르지도 못하는 흔적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거싱 아니겠는가?

사람들 사이, 주체와 타자 사이,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아니다. 사이에 섬은 없다. 오직 경계 지워지지 않는는 이질성과 혼동이 있을 뿐이다. 그 사이를 들어야 한다. "우리가 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라면......"









계란 한 판과 고기 한 팩으로 장조림을 했다.

아이들은 또 싸울 것이다.

누가 고기를 더 많이 먹느냐, 고기를 골라 먹지 마라, 며 싸울 것이다.


지난 번에는 계란을 가지고 싸웠다.

야, 한 끼에 계란 하나만 먹어! 

아, 왜애~ 누나는 지난 번에 두 개 먹었잖아.

내가 언제~에? 

다 봤거든! 


고기가 맛있거나 계란이 맛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무엇을 더 많이 먹고 싶어서도 아니다.

누나보다, 동생보다 적게 먹는 것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이고.

계란과 고기 중 더 결핍된 자원이 무엇이냐의 문제이다.


오래 전 어느 날, 깎은 복숭아를 놓고 협상하던 남매 모습이 떠오른다.

야, 어차피 싸워야 하니까 그냥 처음부터 나눠놓고 먹자.

그래, 알았어. 

크기와 갯수 맞춰 나누고, 홀수라서 남은 하나는 반으로 정확히 잘라 나눴다.

어차피 싸울 싸움이니까.

어차피 남매니까.


계란을 까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얘네들 이번엔 분명히 고기가 가지고 싸울 거야.

어차피 싸울 싸움이야.


남편이 말했다.

존재론적인 싸움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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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공과 본업은 음악심리 치료사입니다. 아이들을 치료했고, 요즘은 학부 전공까지 살려 어린이집의 아기들 치료교육과 함께 부모 상담으로 일주일 중 하루를 보냅니다. ‘유리드믹스’라는 음악교육을 하며 아이들 발달을 개별 체크 하고, 이것을 근거로 부모 상담도 합니다. 전공에 부합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노래 ‘도레미송’을 시작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 OST로 한 6주 수업을 했습니다. 각각의 음이 개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교육적, 치료적으로 큰 의미이지요. 이 빨간 원통 안에는 음악 선생님보다 노래를 쪼~금만 더 잘하는 아줌마가 들어 있다는 말을 아이들은 철썩 같이 믿습니다. 스피커만 보면 '어, 아줌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인사를 합니다. 예, 줄리 앤드류스, 즉 마리아지요.

마리아의 노래를 들려줄 때는 꼭 아이들 입에 m&m 초콜릿을 하나 씩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줌마가 전해달래. "음악은 달콤한 거야. 초콜릿처럼!" 6주 동안 미각과 청각에 동시 자극받은 아이들 기계적으로 말합니다. (초콜릿 통에서 눈을 떼지를 못하지요) “음악은 달콤한 거야, 초콜릿처럼”


오늘은 마리아 아줌마와 작별하는 시간입니다. (음계, 도레미송으로 뽕을 뺐다는 얘기지요) “아줌마가 오늘은 어떤 친구를 데려왔어. 아줌마의 친구가 새로운 노래를 들려줄 거래. 들어볼래?” 트랩 대령의 ‘에델바이스’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 저 표정을 보십시오. 달콤한 음악에 빠져든 저 표정. 예, m&m 초콜릿 한 알의 기적입니다.


물론 마지막엔 초콜릿 없이 에델바이스 왈츠 버전에 춤을 추었습니다. 이 시간을 위해 6주를 달려온 것이고요. 아이들, 음악, 춤. 이 셋은 자유의 삼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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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의 시바타 할머니,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토쿠에 할머니

키키 키린이 영화에서처럼 정말로 돌아가셨다.


<어느 가족>에서 가장 마음 시린 장면이 가족들의 해변 점프샷이었고

그걸 지켜보는 시바타의 시선이었다.

시바타가 마음으로 말했다. 

"다들 고마웠어"

영화 속 시바타 생의 마지막 대사였다.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이 올해 1월 3일에 돌아가셨다.

융 심리학을 바탕으로, 융 심리학을 넘어 

꿈의 영성적 의미을 한층 실제적으로 밝혀내고, '온전함'의 깔대기로 꿈 언어를 해석하고,

안전하고 강력한 치유 그룹인 '집단 꿈 투사(projection)' 안내하신 분이다.


그분의 제자 고혜경 선생이 밝혔다고 하는 얘긴데.

평소 강의 시간에 자주 말했단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기도는 'Thank you!' 하나로 충분하다고.

작년 12월 31일 늦은 밤, 스승인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께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평소답지 않은 짧은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Thank you!   

J.


J는 물론 제레미 테일러이고, 메일 발신 3일 후 돌아가셨다.


실제 암환자로 암투병을 연기하고,

온몸에 암이 퍼진 채로 여전히 작품활동을 하다 떠난 키키 키린의 마지막 인사도


Thank you!


생의 마지막 순간 "고마웠어" 인사할 수 있는 삶.

억울해, 아쉬워, 원통해, 미안해.........가 아니라

고맙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오늘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적어도 이 말을 차곡차곡 쌓는 삶은 아닐 것이다.

 

이것들이 고마운 줄을 몰라. 내가 해준 게 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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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주고 상처 받는 인간관계에 대해,

마음과 영성에 대해, 

인간성장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삶에 대해,

예수님처럼 자기다움의 꽃을 활짝 피워 나 자신이 되어 사는 오늘에 대해

고민할수록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착한 나쁜' 사람. 

최근에 읽거나, 전에 읽고 다시 읽은 세 권의 책이다.

가장 위험한 사람, '착한 나쁜' 사람의 그라데이션을 보여주는 듯하다.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하니 '인용'을 위주로 시각화 해보자.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는 사람'들에 관한 여러 편의 이야기이다.


그는 김숙희뿐 아니라 다른 유치원 관계자들 모두에게 친절했다. 김숙희는 퇴근길에 몇 번 집 앞까지 태워다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집 앞에 도착해도 쉬이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때만 많았다. (정대리)


어쩐지 나는 바로 내리면 안 될 것만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럼 실례가 되지 않을까, 그가 무시받았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혼자 돌아가는 마음이 초라해지지는 않을까. 나는 그것이 염려됐다. 그래서 그 염려가 사라질 때까지 그의 승합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김숙희)


그저 이렇게 연인 아닌 인연이 되어 버린 정대리와 김숙희. 김숙희에게는 이미 착.한. 남편이 있었다. 불륜의 나날 일 년여를 보내고 착한 김숙희가 더 착한 남편에게 말했다. "만나는 남자가 있어요"


저기, 다음에 말하면 안 될까? 남편이 내 말을 끊으면서 말했다. 나, 내일 또 새벽같이 일 나가야 하잖아. 남편은 그렇게 말하곤 안방으로 걸어갔다. 남편은 마치 아무 말도 듣지 않은 사람처럼, 이제 막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허리를 뒤로 활처럼 젖히며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남편을 따라 들어가 계속 말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중략) 무언가 외면당하고 수치스러운 기분도 들었지만, 그서 마음이 편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니까, 착하고 성실한 남편이니까, 잘못을 저지른 것은 내가 맞으니까..... 나는 그 말만 주문처럼 웅얼거렸다. (김숙희)


그리고 결국 김숙희는 남편은 잔인하게 살해하게 된다. 김숙희도, 정대리도, 남편도 누구도 착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착함을 견디다 못해 덜 착한 아내가 가장 착한 남편을 살해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서 나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조금씩 연민이 가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어쩌면 누군가를 대할 때의 나같기도 한 그런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의 살인 충동이 이해가 가고 남는다니 말이다. 이 사람들, 수치심 유발, 지속적인 수치심 유발로 한 존재의 공격성을 이끌어내는 이 사람들은 착하지만 나쁜 사람들이다. 착한 나쁜 사람 1단계이다. 



『니체의 인간학


니체의 아포리즘들이 귀에 쏙쏙 꽂혀서 기회가 되는대로 읽곤 했지만. 여성에 관한 글들을 보면 이 사람은 열등감에 찌든 환자에 가깝다, 싶어 찜찜함을 떨쳐낼 수 없다. 게다가 철학자의 말이란 늘 어려우니 누가 해설해주지 않으면 알아 듣기도 힘들다. 일본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가 지은 니체의 인간학 을 재밌게 읽었다. 니체의 '노예 도덕'의 쉬운 해설 내지는 적용편이랄까. 자신을 약자로 상정하고, 자신의 유약함과 무력함을 착함으로 정당화 하는 지점을 짚어낸다. '약자 → 착한 사람 → 악한 사람'의 매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다고 할까.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염불처럼 외며, 어떤 일이건 바른길을 벗어난 행동을 삼가고 상식과 관습을 중시한다. (왜냐하면 그쪽이 안락하고 이득이니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둘 필요가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어느 정도는 자신의 약함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자신의 약함이 폭력적이라는 점은 충분히 알지 못한다. 자신의 약함이 약자로 살기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혹여 피해를 주지 않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어째서 생각하지 않는가?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는 강자에 대한 질투 때문이다. 그 질투심을 자기 자신에게 교묘하게 숨긴 채, 약자는 처음에는 조심스레, 나중에는 점차 큰소리로 강자를 손가락질 하며 "자기 중심적이다! 이기적이다! 사회의 적이다!"라고 외친다.


착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사회로부터 말살당하고 싶지 않아서, 즉 악행을 저지를 만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 저항하며 홀로 살아갈 정도로 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착한 사람의 가장 큰 죄는 둔감한 것, 즉 스스로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것, 생각하지 않는 것, 느끼지 않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누구에게도 상처받기 싫으므로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 한다. 누구에게도 비판받기 싫으므로 누구도 비판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로 인해서든 불쾌해지고 싶지 않으므로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리하여 항상 벌벌 떨면서 모든 것을 내버리고 날아나려 하는, 작은 동물 같은 착한 사람 특유의 축 처진 얼굴이 만들어진다. 


착한 사람은 자신의 본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자신의 본심에 귀를 기울이면, 거기에는 타인을 상처 입히고 자신도 상처받는 불온한 언어가 꿈틀거리고 있으며, 이로써 자신의 평온무사함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자신은 약하므로 본심의 목을 졸라 말살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평온무사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착한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해로운 파리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전혀 악의 없이 쏘아대고, 전혀 악의 없이 거짓말을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약하여 착하고 착하여 해로운 사람들을  거짓의 사람들을 통해 조명하고 싶어졌다. 정신의학자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영성적인 과학자, 스캇 펙의 저작에서 '악'의 문제는 명백하다.


『거짓의 사람들


평생 수많은 사람을 심리상담으로 만난 스캇 펙의 저작들은 읽어도 읽어도 놀랍다. 20대 처음 읽었을 때와, 30대, 40대, 그리고 50이 된 지금까지 읽을 때마다 그 통찰이 새롭다. 상담치료를 위해 만난 사람들에게 과학자의 태도를 잃지 않으며, 인간 내면에 관해서는 진지하고 겸허할 뿐 아니라 먼저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로 얻은 깨달음일 것이다. 스캇 펙의 결론은 '악은 존재하고, 악한 사람도 존재한다'이다. 그 악한 사람은 흔하게, 멀쩡히 내 주변ㅇ서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한다. 스캇 펙의 악은 '게으름'과 '나르시시즘' 두 단어로 설명 가능하다. 


악은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심지어는 합리적인 것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전에도 말했듯이 악한 사람들은 위장술의 도사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든 자기 자신에게든 자신의 참된 색깔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이지 못한다. 


악이란 게으름의 극한이라는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사랑의 반대말은 게으름이다. 보통의 게으름이란 그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보통의 게으른 사람들은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의 존재는 단지 사랑 없음의 한 표현일 뿐 아직 악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악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이 귀찮아 회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닫고 지낸다. 그들은 자신의 게으름을 유지하고 병든 자아를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능력이 닿는 한 모든 행동을 한다. 이 목적을 위해 행동하다 보면 그들은 남을 파괴하게 된다. 


악의 본질적 구성요소는 자신의 죄나 불완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드는 점이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악을 의식하는 동시에 그 의식을 피하고자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악은 죄책감의 결손이 아니라 그것을 회피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자신의 양심을 직시하는 고통, 자신의 죄성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고통이다.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의 극한으로 설명하는 스캇 펙의 악인은 '이만 하면 됐다'의 사람이라고 나는 정리한다. 이만하면 도덕적이고, 이만하면 착하고, 이만하면 이타적이고, 이만하면 의식이 있고, 이만하면, 이만하면.......의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로 '나쁜 나쁜' 사람보다 '착한 나쁜' 사람이 더 위험하다. 


여기까지다. 세 책 모두에서 느낀 기시감 때문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기시감은 솔직히 나 아닌 다름 사람에 대한 감각이다. 겉은 착하지만 속은 에고로 빽빽하여 어디 한 군데 들어설 자리 없는 사람들 말이다. 지금 당장 손가락 접어 꼽을 수 있다(고 괜한 분노에 차서 확신을 한다). 언젠가 내가 포기했던, 포기하고 있는, 포기하고 말 철벽 자기방어의 사람들 말이다. 두렵다. 이 지점에서는 늘 두렵다. 자신이 없다. 내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철칙. 내 눈에 그런 사람들이 보인다면 그건 내게 있어서 보이는 것이다. 착한 나쁨의 그라데이션 어디 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지점엔가 내가 서 있으니까 말이다. 


책을 덮으려다 눈에 띈 거짓의 사람들서문 한 구절을 인용하고 마음에 새기라는 계시를 받았다.


자신에 대한 판단과 치유에서 시작하지 않는 한 우리의 판단은 안전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악을 치유하려는 씨름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우리의 최대 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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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하고 실한 전복 열 마리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이 귀한 것을 어떻게 요리하여,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우리끼리 먹을 것인가, 친정만 가져갈 것인가, 시댁만 가져갈 것인가.


검색에 검색, 또 고민, 또 검색.

그래, 전복장이다!

귀한 재료로 새로운 작품 시도하고 폭삭 망한 전적이 있어서

남편이 걱정이다. 

전복 닦을 솔까지 새로 장만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요리에 임했다.

  



어제 시댁 저녁식사에서 전복장의 뚜껑을 열었다.

간장 맛을 보신 어머니가 맛있겠다, 간장이 맛있네.

오늘 아침 먹던 채윤이가 "엄마, 전복은 없어?" 했다는 건 

전복장은 성공했다는 뜻이지.




전복장을 메인으로 하여

시댁으로 간 퓨처링 메뉴는 묄페 유나베




전복장을 메인으로 하여

잠시 후 친정으로 갈 퓨처링 메뉴인 김치찜이 익어가고 있다.

바닥에 돼지갈비 여섯 근 깔고 앉은 김치 포기들이 보글보글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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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음에 섬광처럼 나타났다 없어지는 홍옥이려니.

가슴 시리도록 하늘이 맑고, 바람이 서늘한 이 즈음에 딱 맞는 사과향은 홍옥이려니.

젊고(실은 철 들고 엄마가 젊어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건강했던 엄마를 불러내는 홍옥이려니.  


망원시장 멀어지니 이제 홍옥도 못 먹어보네

라고 오늘 아침인가 어제 아침에 남편에게 말했는데,

글쎄 바로 이 저녁에 망원시장 홍옥을 득하여 먹게 되었다.




벌써 몇 달 전 약속된 강의가 있었다.

그땐 그저 다이어리에 적어 넣었는데, 닥쳐 보니 추석 전야이다.

장도 보고, 준비를 해야 하지만 명절 기분에 강의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한산해진 서울 길 통과해 가 은평구에 있는 교회에서 강의를 했다.

돌아오는 길, 네비 따라 운전하다 보니 어머어머 월드컵 경기장.

수영 하고 집에 가던 길 그대로다.

충동적으로 망원지구 한강공원으로 빠졌다.

마음의 네비게이션이 이끄는대로 갔더니 여기는 망원시장.

주차할 곳 없겠지, 없으면 그냥 가고, 역시 없네, 그냥 가서 동네에서 장 봐야지,

하는 순간 모닝만을 위해 준비된 차 0.8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자리 발견!


그래서 추석 장을 망원시장에서 봤다!!!!!

발 디딜 틈 없는 시장에 들어서니 

전 부치는 냄새, 족발 삶는 냄새, 떡볶이 냄새, 닭 튀기는 냄새가 시끌시끌 하다.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양팔에 빠져라 검은 봉다리 들고 차에 실었는데

마음의 네비게이션이 집을 향해 출발을 안 한다.

더 살 것은 없지만 망원시장 길 건너 월드컵시장에 가보기로 한다.

정장에 하이힐 신고 하릴 없이 시장구경.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과일가게 앞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볼품 없는 사과를 발견.

갯수가 적은 것 하며, 크기가 작은 것 하며, 뭔가 없어 보이는 품새가 딱 홍옥이다.

박근혜가 마트에서 감자 냄새 맡던 폼으로 향을 딱 맡아보니, 

어머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리움의 향기, 홍옥이 맞습니다! 


망원시장 멀어지니 이제 홍옥도 못 먹어보네

누군가 이 말을 새겨 듣고 

홍옥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고, 나를 데려다 그 앞에 세워 놓은 것 아닌가 싶음. 





손가락마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 씩 걸고

지갑 들고, 휴대폰 들고, 차키 들고 정신 없이 다니던 중에

누군가 내 카메라를 눌러 신나는 내 걸음을 찍어 폰에 남겨 놓았다.

오늘 이벤트를 도모한 이, 대체 누굽니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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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 한 노래 있어 22

 

 

쨍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듯이 멀쩡하던 마음이 급히 어두워질 때가 있다. 기분 좋은 대화에 함박웃음 짓다 무심코 확인한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하나에 마음이 뒤집힌다. 친구의 SNS를 보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거나 우울해질 수도 있다. 깊은 실망감 또는 좌절로 좀처럼 마음의 힘을 낼 수 없는 날이 오래 가기도 한다. 교회 나가기 싫고,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 때도 있다. 시험에 들었다! 이 모든 일을 한데 묶는 말이다. 크고 작은 마음의 시험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하는 것이 우리 일상이다.

 

너 시험을 당해 죄 짓지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이 찬송이 좋다. 특히 시작 부분이 좋다. 결코 시험에 들지 말라, 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시험이라고, 너만 그렇게 자주 흔들리는 것 아니라고 토닥이며 시작하는 것 같다. 도종환 님의 시가 생각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그렇다. 이 땅에 한 존재로 피어 신앙의 여정을 간다는 것은 흔들리며 시험 당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시험을 통해 더욱 단단한 줄기로 설 것인가, 부러지고 말 것인가.

 

누구보다 자주 흔들리고 시험에 빠지는 내게는 나름의 이기는 비법이 있다. 시험을 당하되 그로 인해 더 큰 죄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다. 일단은 뒤집어진 내 마음에 대한 인정이다. ‘그래, 나 화났어, 배신감에 화났다고, 이런 대접을 받다니 정말 서럽고 슬퍼, 애썼는데 결국 이렇게 된 결과에 모든 자신감을 잃었어, 무기력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내 진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냥, , 괜찮아.’ 같은 말로 포장하지 않는 것.

 

네 친구를 삼가 잘 선택하고 너 언행을 삼가 늘 조심하라

너 열심을 다해 늘 충성하고 온 정성을 다해 주 봉사하라

 

시험에 빠진 내 마음을 혼자 인식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 토로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선택하는 누군가가 참 중요하다. 공감을 못해줄 것 같은 친구는 당연히 패스. 잘 들어주지만 내 부정적인 감정을 부추길 뿐인 친구 또한 조심해야 한다. 당장은 속 시원 하겠지만 돌아서고 나면 더욱 공허해지는 소통이 있다. 시험 당했을 때 마음 터놓을 친구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찬송 2절의 가사처럼 말이다. ‘네 친구를 삼가 잘 선택하고 너 언행을 삼가 늘 조심하라

 

십 수 년째 연애 강의를 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된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면 갈등은 필수이다. 갈등은 필수이며, 동시에 깊은 사랑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이다. 해결방법은 하나,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이다. 불편한 대화 끝에 헤어질까 두렵기도 하겠지만 끝까지 정직하게 대화하는 것이다. 이것을 잘 하는 커플이 많지 않다. 불편한 얘기를 당사자에게 하는 것보다는 맘 편한 동성 친구에게 넋두리로 쏟아내는 것이 더 편하다. 하지만 이 순간 가장 도움이 안 되는 상담자가 또래의 동성친구일지 모른다. 당장의 위로는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방법은 당사자에게 투명하게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 구주의 힘과 주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나는 일상에서 맞는 모든 시험의 당사자는 예수님이라 생각한다. 영원불면의 당사자. ‘어머, 웬일이니!’ 공감 잘 해주는 친구가 주는 위안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인 담판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왜 이렇게 저를 막 다루시는데요? 저 할 만큼 했잖아요?’ 이런 질문은 하나님 앞에 버릇없이 구는 믿음 없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믿음이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온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으로 덮여 있더라도. 끝을 알 수 없는 장맛비가 계속 되는 날이라도. 구름 너머 푸른 하늘이 있음을 안다. 구름 너머의 푸른 하늘을 믿듯 그분의 선의만큼은 믿는 것이 나의 필살기이다. 나는 믿는다. 그분의 선의를 믿고, 선의의 결국을 믿고, 잘 이긴 후 내가 받을 상을 믿는다.

 

잘 이기는 자는 상 받으리니 너 낙심치 말고 늘 전진하라

네 구세주 예수 힘 주시리니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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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있는 공간만 찾아 다니며 견딘 여름이 갔다.

버스라도 타려고 맨몸으로 걸으려면 극기훈련 하는 심정이었지.

바로 저 길이 그 극기훈련 코스였다.

맨몸으로 걸어도 겁나지 않는 길,

정도가 아니라 높고 푸른 하늘과 딱 좋은 바람이라니.


맑은 날 하루하루가 아까운 시절이다.

학교 다녀온 현승이가 노트북 앞에 앉는 나를 보면 혀를 끌끌 찬다.

엄마, 오늘 한 번도 밖에 안 나갔어?

밖에 날씨 엄청 좋아.




(남자 였음) 수염 덥수룩 했을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았다

벌떡 일어나 아까운 가을을 붙들러 나간다.

책도 안 들고 휴대폰 케이스에 든 카드 하나 덜렁 들고 나간다.

한 달 전만 해도 지옥 훈련장이었던 길을 발길 닫는대로 걷고,

걷다 반찬 가게 앞에서 물김치 한 봉지 하고,

몇 걸음 걷다 옥수수 찌는 냄새가 좋아 한 봉지 산다. 


검은 봉지 손에 들고 덜렁덜렁 걷는데 까치 녀석 옆에서 알짱거린다. 

지금 여기를 살며 자유로운 친구들은 역시 새, 

새는 우리들의 선생님이지.




공원 앞 어린이집 앞에 서서 목을 빼고 한참 기웃거린다.

예쁜 아기 지효네 교실이 저긴데.

날씨 좋은데 아가들 산책 안 나오나?

머리 큰 형님 반 친구들만 공원 저쪽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미세먼지 없는 공간이 아이들 소리를 빨리 흡수해 버린다.


공원 계단 콘크리트 틈의 초록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지 않은 자신으로 족한 친구는 역시 들풀이지.

우리의 참된 선생님이 말씀하셨지.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나리꽃을 보라!




공원 벤치에 앉아 옥수수 두 개를 뚝딱 다 먹었다.

 저 아래 브런치 카페 디쉬가 부럽지 않구만.

음뇽뇽뇽, 맛있다.




집 앞 골목에 서서 하늘 올려다 보다 꽃을 든 빌라를 본다.

그 위에 이불 빨래 머리에 쓰고. 

아무리 셔터를 눌러도 각이 나오질 않아

얼른 집에 올라와 주방 창문에 매달려 허리 꺾고 찍어 얻은 사진.

빨래 널고 걷는 행복, 돗자리 깔고 김밥 먹고, 커피 마시고, 누웠던 

합정동 집 옥상이 떠오른다.

마음이 쎄하다.




사 온 물김치를 통에 옮겨 담는데 

눈대중으로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이 통? 저 통? 잠시 고민하다 뽑은 통에 담았는데

일부러 맞춘 것처럼 딱 들어간다. 


딱 알맞은 오늘, 지금 이 순간이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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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가요, 라고 톡을 보내고

헤벨레 옷차림 그대로, 부시시한 머리 그대로, 쓰레빠를  신고 나간다.

60초 후, 편의점 앞에서 만난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로 시작되는 유안진의 수필이 생각 나지만,

이 수필 별로 안 좋아하니 이런 느낌이라는 얘기만 해두자.


이 낯설고 척박한 동네에서 

이렇듯 따뜻하고 정성스런 것을 나누는 이웃이라니!

돌아가신 친정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창조성 담아 식혜를 만들고,

또 꿈틀대는 창조성에 조청을 만들고마는 여인이 있다.

그 식혜를 얻어 와 마셔본 남편이 "이거 장모님이 해주시던 맛인데"란다.

재료 중에 '엄마' 성분이 들었음에 틀림 없다. 


늦은 밤 편의점 앞에 서서

중년의 두 여자,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남다른 두 여자,

꿈을 꾸고 꿈에서 가끔 길을 만나는 두 여자,

비슷하지만 다른 길 가는 딸을 키우는 두 여자가 짧은 수다를 떤다.

조청 레시피 얘기, 딸들 대입 얘기, 결론은 딸내미 뒷담화.

 

그리움과 창조성이 농축된 작은 병과

군산 이성당 빵 서너 개를 맞교환 해 돌아온다.

맨 얼굴에 쓰레빠로 만나는 이웃,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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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마지막 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신학기가 시작되는 즈음이 당신에겐 어떤 느낌을 주는 시간인가요? 꿈과 영성생활, 집단여정에서의 나눔입니다. 같은 시즌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보내시는 두 선생님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랜 마음공부, 영적여정 끝에 상담학으로 학위과정을 하시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이분을 곁에서 보면서 공부를 저렇게 재미있게 할 수도 있구나!’ 놀라게 됩니다. 무더웠던 여름 자격시험 준비로 보내시며 힘들다 하시면서도 생기는 여전하시더군요. 개강을 앞둔 8월 마지막 주, 개강 이틀 전부터 잠이 오지 않으셨답니다. 공부 생각에 너무 설레서 말이지요.

 

이 말씀을 듣고 계시던 다른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도 8월 마지막 주, 이즈음이 너무 좋아요. 학기가 시작되는 시즌인데 나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 일찍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박사학위를 땄고, 서른다섯에 강사생활을 하셨답니다. 친구들로부터 결혼, 공부, , 육아까지 모든 걸 다 가진 여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요. 그즈음 경험한 어떤 일들로 내가 지금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지?’하는 질문과 함께 힘들여 강사생활 접고, 다 내려놓고 베이킹을 배우기 시작하셨답니다. 이후로 그렇게 쭉 살아오셨습니다. 그 선택 이후 20여 년은 지났을 텐데 아직도 신학기가 시작되면 새롭게 마음이 홀가분하시다니 이 또한 놀랍습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은 소명을 사는 삶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늘 영적인 물러남이 요구된다고요. 그 물러남은 반드시 자발적이어야 한다고도 하지요. 헌데 각 사람에게 물러남의 방향과 방식이 다 다르다는 것이지요. 헨리 나우웬의 <영성 수업>에 나오는 말입니다.

 

토머스 머튼에게 물러남은 대학교를 떠나서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르틴 루터에게 물러남은 수도원을 떠나서 개혁가가 되는 것이었다. 디트리히 본회퍼에게 물러남은 안전한 미국에서 고국으로 돌아가 나치의 포로가 되는 것이었다.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에게 물러남은 흑인의 평범하고 당연한 자리를 떠나서 민권 운동을 이끄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물러남이란 대단할 것 없는 자신의 일상생활에 충실히 인내하는 것이다. 거창한 망상을 버리고 시장터에서 자신의 사역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유로운 사역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낮아짐의 행위로써 자신의 직업과 안전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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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디야' 


늦은 밤, 강의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졸고 있는데 '땡' 하고 문자 하나 도착.

늦은 밤, 연습실에서 피아노 치는 채윤이가 보내온 것.

내렸어, 나왔어, 효자촌 3-2, 버스 타....... 문자 교신으로 마을버스 도킹 성공.


늦은 밤, 선선한 가을바람 맞으며 둘이 걷는다.


'채윤아, 엄마 발 아퍼. 신발 바꿔 신자'

'뭔 소리야. 내 발이 엄마 구두에 들어가?'

'몰라, 일단 벗어'


뉴발 슬리퍼 짱 편하고,

구두에 끼워 넣은 우리 채윤이 발 너무 귀엽고,

하루 피로가 다 날아가는 듯하다.


오래 전 어느 날, 삑삑삑삑 소리로 자기 동선 생방송 하며 다니던 애기 채윤이,

아이폰 만한 삑삑이 신발 신고 할머니집 우리집 사이 마당을 오가던 채윤이,

엄마 하이힐고 뒷쪽 반은 남기고 앞으로 쏠린 발로 현관에 섰던 채윤이

의 발은 어디 가고......


저 귀여운 왕발이란 말인가.

이다지도 귀여운 왕발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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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기도회 강의하러 갔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 저 사람 누구야? 현수막 한 켠에 얼굴 이따 만하게 나온 저..... 저 사람. [원조 곤지암 소머리 국밥집] 간판의 한복 입은 사장님 얼굴 아니고. 헉! 웹포스터에 조그맣게 나온 강사소개 사진도 늘 조금씩 민망인데. 버스 다니고 사람 다니는 길에 현수막 사진이라니요.  본당에 들어가서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앞쪽에 더 큰 사진 들어간 현수막이 하나 더. (내 얼굴이니 부끄러움은 오롯이 내 몫인 것!)


어머니 기도회. 굳이 정해주신 제목이 ‘엄마가 기도할 때’인데, 그 다음을 강의로 채워야지요. 엄마가 기도하면 아이가 어떻게 될까요? 모의고사 점수 잘 나오고, 원하는 대학에 딱 붙고, 믿는 사람 만나서 얼른 결혼하고..... 이런 간증을 들려 드려야 할까요? 원래 제 강의제목은 [일상의 기도, 마음의 기도]입니다.


엄마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는 손주가 없다’는 스캇 펙의 말을 마음으로 알아 듣게 되고, 걱정과 통제 본능으로 꽉찬, 빽빽한 마음의 숲에 여백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나, 나의 의지, 내가 베푼 사랑으로 빈틈 없는 마음에 아이가, 타자가 들어올 공간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내 앞에 있는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볼 여유,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여유가 생기는 것 아닐까요. 이 비슷한 얘기를 나눕니다.


새학기 첫 어머니 기도회, ‘엄마가 기도할 때’에 담긴 절절한 기도제목과 소망과는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엄마들이 단지 내 아이의 세속적 성공만을 바리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더 높은, 더 깊은 갈망이 엄마들 마음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 갈망이 없다면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의 어머니 기도회들이 ‘엄마 정체성’ 그 너머 하나님 형상으로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깊은 욕구, 영적 목마름에 부응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고3 어머니들이 절절한 마음으로 앉아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이 모의고사 날이라는군요. 생각해 보니...... 아, 맞다! 나도 고3 엄마지! 저도 고3 엄마 입니다. 엄마가 기도할 때, 우리집 고3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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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꿈]_루시 구디슨, 또 하나의 문화


‘밤의 선물인 꿈’을 알기 전에 읽었던 책입니다. 

출판사 ‘또 하나의 문화’에서 나온 책은 빼놓지 않고 읽던 시절이었고, 

제목에서 ‘꿈’보다는 ‘여자’에 꽂혀서 선택했겠지요. 

재미있게 읽었지만 꿈 얘기는 조금 모호했고, 믿어지질 않았던 것 같아요.


낮과 의식의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살다, 

밤과 그림자, 무의식에 조금씩 눈을 떠가며 다시 읽는 이 책은 전혀 새로운 책입니다. 

다시 읽어도 제목에서 '꿈'보다는 '여성'이 훨씬 더 큰 폰트로 보입니다.


프로이트, 융, 프리츠 펄스, 제레미 테일러까지 꿈 작업에 길을 안내한 학자들은 대부분 남성입니다. 

책의 저자 루시 구디슨의 말처럼' 꿈은 남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예를 들어 임신과 양육의 경험, 어머니와 딸의 관계, 여자들 사이의 우정과 성애, 질투, 

그리고 여성 혐오적인 사회에서 우리 몸의 모습, 크기, 외모에 대한 느낌 등이지요.


그러니 여성주의 관점의 꿈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이 책은 특정 꿈의 이론을 절대시 하지 않고, 

여성의 몸으로 살아온 저자가 자신의 꿈, 

꿈작업 그룹에서 만난 여성들의 꿈을 성실하게 기록하고 연구한 결과입니다. 


[꿈과 영성생활 집단여정] 더운 여름 쉬고, 하반기 첫모임 하는 날입니다. 

모임을 준비하며 다시 읽어보는 책입니다. 

애쓰지 않아도 꿈은 ‘여자 사람으로서의 나’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여름 내 마음의 촉촉함이 부족하다 싶었는데 

내 마음의 수분크림, ‘꿈나눔’이 없어서였나봅니다. 

또 새로운 시작, 늘 새로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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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 참 좋아하는데

지난 주에 '닭한마리' 하면서 고기랑 같이 먹는 용도로 부추 한 단을 샀는데

먹어도 먹어도 반은 남아서 난감한데

볶음밥에도 넣고, 제육덮밥 토핑으로도 올리고 그러는데

아직도 한 주먹이 남아 있는데

현승이는 반찬에 부추만 보며 으으으으으 하는데


마침 비가 오는데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수험생 채윤이가 들어와 먹을 것을 찾는데

냉장고에는 부추 밖에 없는데

에라, 그냥 밀가루 반죽에 부추 때려넣고 부추전을 부치는데

애들이 냄새 좋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막상 전을 보더니 오징어 없다고 타박을 하는데

일단 한 번 잡솨봐, 꼬셔 봤는데

일단 한 입 처드시더니 맛있다며 막 드시는데

한 장 부치고, 두 장 부치고, 세 장까지 부쳤는데

아, 막 기분이 좋고 그러는데

나는 이렇게 즉흥적으로 폭발하는 창의성 참 좋아하는데


여름 피정 마지막 날 혼자 시간 보내려 간 남편에게 인증샷 찍어 보냈는데

맛있겠다고 유혹을 막 받는데

남편 페북까지 침투해서 부추전 사진 올리는데

오랜만에 개그감각 살아나 성경개그 혼자 던지고 좋아서 킥킥거리는데


난 이런 게 왜 이렇게 재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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