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이었던 12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추도식이었습니다.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조퇴를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 없이 지냈던 1년 중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이었습니다. 누구도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아닙니다. 그리고 갑자가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은 많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예고 없는 당하고 어~ 하며 놀라고 당황하다 미처 슬퍼하지도 못하고 어느새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적응해 살게 됩니다. 선생님께 가서 아버지 추도식을 이유로 조퇴를 받는 일은 ‘내가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것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하러 혼자 선생님께 가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보통은 ‘제사’라고 부르는 것을 종교적인 이유로 ‘추도식’이라고 부르는 것도 창피했습니다. 선생님께 가서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조퇴를 맞고 운동장으로 나왔습니다.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고 있어서 눈발이 맨얼굴에 세차게 부딪혀왔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었고, 다행히 눈바람이 모든 걸 흐릿하게 해주어 비로소 엉엉 울 수 있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너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입니다. 텅 빈 운동장에 온몸으로 추위를 가르며 혼자 걷는 것은 바로 아버지 없는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과 같았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던 즈음 저의 꿈과 사랑은 이 장면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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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둘째 날에 했던 간증문의 시작이다. 일단 '간증'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증으로 은혜받은 기억보다 간증으로 열받은 기억이 훨씬 더 많다. 내가 들은 최악의 간증, 백미는 이것이다. 가정교회 목자를 했는데 연봉이 올랐다!!(이미 미국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분이었음) 몇 년 전에 라디오에 간증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다(내가 미쳤지). 간증거리도 안 되는 걸 가지고 나가서 얘기하다 맥락없는 얘기를 하고 마친 것 같다. 진행자의 미끈한 화술에 그나마 진솔하게 내놓은 얘기도 간증스러워지는 바람에 저렴해진 것 같아 생각할수록 낯이 뜨거운 경험이다. 다시는 '간증'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서지 않을 것 같았는데 또 하고 말았다. '간증'보다는 '삶의 현장'이라 부르는 이름 때문에 거부감이 덜했고(변명 어설프다. 걀걀걀), 작년에 한 번 고사를 했기 때문에 두 번 거절하기가 죄송했고, 무엇보다 올해 컨퍼런스 주제가 '약함'이었기 때문에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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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를 통해서 나의 일상 즉, 엄마로 아내로 강사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려 한다. 좋은 일, 잘하는 일보다는 잘 못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돌아보는 나의 약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약점이 아니더라도 쌍방간의 소통의 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항상 약자이다. 누가 읽을지도 모르는 이 공개된 장에 내 내면의 얘기를 드러내고 있으니 누구에게든 나는 보여줄 패를 다 보여주는고 시작하는 셈이다. 나는 불리하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이러고 있고, 쓰는 것을 멈출 수도 없기 때문에 그저 '안전하려니,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려니'하면서 나는 오늘도 쓴다. 내 입으로 내 약점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물론 고도로 고상한 자기 현시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나의 약점까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어마 무시하게 성숙한 인간이거든!) 단지 어떤 인격적인 부족함 정도가 아니라 인생 가장 치명적인 상처, 오직 그걸 숨기기 위해 전생애를 바쳐 노력해왔던 바로 그 비밀이라면 어떤가. 내 입으로 그걸 까발리는 것은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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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서두에 붙인 글로 시작하는 '아버지'이야기였다. 아버지 없는 아이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이날 이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았던 것 같아. 아버지 없어서 본 데 없는 아이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버지 없어서 그늘진 아이, 아버지 없어서 구질구질한 아이, 아버지 없어서 막 되먹은 아이, 아버지 없어서 매력없이 강한 아이.... 이런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과거형으로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증을 하기로 하고 간증문을 쓰고, 담당 간사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그리고 간증을 마치고 한 문장으로 정리된 것은 이것이다. '아버지 없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을 거야!' 45년의 생을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 간증을 통해 얻은 최고의 선물이다. 그동안 내가 애쓰며 살아온 것의 큰 원동력에 이름 붙일 수 있게 된 것.
코스타 마치고 은혜네 가족과 만나서 여행을 하는 중 주일 예배를 윌로크릭 교회에 가서 드리게 되었다. 빌 하이블스 목사님은 아니었지만 참 감동적인 예배, 설교였다. 모세의 이야기였는데 무대에는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여서 모래로 덮어 만든 모래더미에 삽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여러 신발들이 주렁주렁. 감추고 싶은 모래무덤으로부터 끝없이 도망가는 모세, 묻어둔 비밀로부터 도망가는 모세를 만나주신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 하셨다. 모세가 아니라 내게 말씀하셨다. 1982년 12월 16일, 강동중학교 운동장에 비밀처럼 세워 둔 아이를 불러내어 만인 앞에 세운 것 잘 했다고. 신을 벗었으니 더 이상 혼자 애써서 나를 방어하는 옛 방식으로 도망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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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일방적으로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유희열의 스케치북'식의 간증이라서 부담이 훨씬 덜 했다. 유희열보다 잘 생기시고 따뜻한 DM 간사님은 이 순서를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테고, 나름 생각이 있으셨을텐데 내 간증문 그대로를 살리는 방식으로 진행해주셨다. (정말 감사해요. 간사님!) 실은 간증을 마치고나서 집회가 계속되는 그 자리에 앉아 있고 싶지가 않았다. 빨리 숙소로 도망가서 혼자 있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간증하다 울게 될까봐 가장 많은 걱정을 했지만 정작 무대에서 나는 슬픈 이야기를 웃기게 하고 있었다. 마치고 내려오니 모멸감이 엄습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희화시켰다는 것, 제대로 감동도 주지 못하고 어설프게 웃기다 끝났다는 것. 그러나 그 이후에 만난 코스탄이나 강사들 중에 일찍 아버지나 어머니를 잃은 분들의 공감의 말을 들었고, 위로받았다는 그들의 말에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졌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힘들어 할 필요가 없음을 오전 마르바 던 강의를 통해서 깊이 배우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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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의 주제가 '우리의 약함, 주님의 강함'이었다. 우리의 약함이 주님의 강함이 된다는 얘긴가? 우리의 약함을 들어서 주님이 쓰시면 강함이 된다는 얘긴가?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약함이 강함이 되었던 예가 있나? 약함은 그저 끝까지 약함이 아니었던가? 일찍이 신체에 많은 핸디캡을 가지게 된 마르바 던. 그 약함이 치유되어 강해졌나?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은 내게 다시 아버지가 생겼나? 아니면 그 상처를 치유받아 말끔해졌나? 우리의 약함은 항상 약함이다. 그 약함으로 인해서 강하게 될 것을 바라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실 우상숭배다. 약함은 약함이고, 약함은 인간조건이다. 우리의 약함은 주님의 강함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은 우리보다 더 약해빠진 모습으로 이땅을 살아가신 주님을 만나는 자리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우리의 약함에 주님이 능력을 나타내시면 없던 애인이 생기고, 그렇게 나를 씹고 돌아다니는 그 사람이 내 장점을 발견하여 감동받고, 채윤이 같은 아이가 드디어 천재성을 발휘하여 수학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기랄) 나보다 더 가난하고 연약하고 미천하게 사시다 극형으로 돌아가신 그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다. 나는 그 나이의 딸을 가진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12월의 그 차거운 운동장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꽤 자유로워졌고, 조금씩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 중이다. 극형에 처해졌던 그분의 부황을 오늘 내 삶에 살아내는 만큼, 그 만큼씩 나는 차거운 운동장으로부터 자유롭다. 간증문의 맨 마지막은 이러하다.
눈보라 가득한 텅 빈 운동장에 얼어붙은 채로 그대로 얼어붙은 열네 살 아이가 있습니다. 추위와 슬픔과 부끄러움으로 꼼작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가장 떠올리기 싫은 제 인생 한 장면입니다. 그 조그만 몸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대단한 삶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고 꽤 자유롭고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그 장면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그 아이를 조금씩 녹여내면서 힘도 열정도 사랑도 흘러나옵니다. 그 해동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남편과 친구와 아이들의 사랑이, 제 강의를 듣고 글을 읽는 독자들의 사랑이 그 아이를 녹이는 온기가 됩니다. 여전히 저는 아버지 없는 아이처럼, 비빌 언덕 없이 방황하는 날이 많습니다.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로 인한 걱정, 늦게 신학을 하고 목회자로 살며 고뇌하는 남편을 바라보면 밀려오는 안타까움, 연로하신 엄마가 한 번씩 입원하실 때마다 입원비 걱정을 해야 하는 경제적인 현실, 여전히 낮은 자존감으로 내 글과 강의가 비판받지 않을까 두려워 오그라드는 심장으로 여기저기 눈치 보며 살기.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아버지 없는 아이로 살았기에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깊은 그리움이 하늘 아버지께 닿아 있음을 긴 여정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움의 깊이만큼 아버지 사랑의 깊이를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그리움이 있어 슬프고 또 기쁘며 외롭고 또 충만합니다. 오늘을 사는 행복은 영원에 잇댄 오늘이고, 그 영원한 곳은 내 육신의 아버지, 하늘아버지가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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