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이었던 12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추도식이었습니다.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조퇴를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 없이 지냈던 1년 중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이었습니. 누구도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아닙니다. 그리고 갑자가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은 많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예고 없는 당하고 어~ 하며 놀라고 당황하다 미처 슬퍼하지도 못하고 어느새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적응해 살게 됩니다. 선생님께 가서 아버지 추도식을 이유로 조퇴를 받는 일은 내가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것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하러 혼자 선생님께 가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보통은 제사라고 부르는 것을 종교적인 이유로 추도식이라고 부르는 것도 창피했습니다. 선생님께 가서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조퇴를 맞고 운동장으로 나왔습니다.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고 있어서 눈발이 맨얼굴에 세차게 부딪혀왔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었고, 다행히 눈바람이 모든 걸 흐릿하게 해주어 비로소 엉엉 울 수 있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너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입니다. 텅 빈 운동장에 온몸으로 추위를 가르며 혼자 걷는 것은 바로 아버지 없는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과 같았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던 즈음 저의 꿈과 사랑은 이 장면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
코스타 둘째 날에 했던 간증문의 시작이다. 일단 '간증'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증으로 은혜받은 기억보다 간증으로 열받은 기억이 훨씬 더 많다. 내가 들은 최악의 간증, 백미는 이것이다. 가정교회 목자를 했는데 연봉이 올랐다!!(이미 미국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분이었음) 몇 년 전에 라디오에 간증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다(내가 미쳤지). 간증거리도 안 되는 걸 가지고 나가서 얘기하다 맥락없는 얘기를 하고 마친 것 같다. 진행자의 미끈한 화술에 그나마 진솔하게 내놓은 얘기도 간증스러워지는 바람에 저렴해진 것 같아 생각할수록 낯이 뜨거운 경험이다. 다시는 '간증'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서지 않을 것 같았는데 또 하고 말았다. '간증'보다는 '삶의 현장'이라 부르는 이름 때문에 거부감이 덜했고(변명 어설프다. 걀걀걀), 작년에 한 번 고사를 했기 때문에 두 번 거절하기가 죄송했고, 무엇보다 올해 컨퍼런스 주제가 '약함'이었기 때문에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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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를 통해서 나의 일상 즉, 엄마로 아내로 강사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려 한다. 좋은 일, 잘하는 일보다는 잘 못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돌아보는 나의 약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약점이 아니더라도 쌍방간의 소통의 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항상 약자이다. 누가 읽을지도 모르는 이 공개된 장에 내 내면의 얘기를 드러내고 있으니 누구에게든 나는 보여줄 패를 다 보여주는고 시작하는 셈이다. 나는 불리하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이러고 있고, 쓰는 것을 멈출 수도 없기 때문에 그저 '안전하려니,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려니'하면서 나는 오늘도 쓴다. 내 입으로 내 약점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물론 고도로 고상한 자기 현시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나의 약점까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어마 무시하게 성숙한 인간이거든!) 단지 어떤 인격적인 부족함 정도가 아니라 인생 가장 치명적인 상처, 오직 그걸 숨기기 위해 전생애를 바쳐 노력해왔던 바로 그 비밀이라면 어떤가.  내 입으로 그걸 까발리는 것은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 아닌가.


***
바로 서두에 붙인 글로 시작하는 '아버지'이야기였다. 아버지 없는 아이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이날 이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았던 것 같아. 아버지 없어서 본 데 없는 아이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버지 없어서 그늘진 아이, 아버지 없어서 구질구질한 아이, 아버지 없어서 막 되먹은 아이, 아버지 없어서 매력없이 강한 아이.... 이런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과거형으로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증을 하기로 하고 간증문을 쓰고, 담당 간사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그리고 간증을 마치고 한 문장으로 정리된 것은 이것이다. '아버지 없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을 거야!' 45년의 생을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 간증을 통해 얻은 최고의 선물이다. 그동안 내가 애쓰며 살아온 것의 큰 원동력에 이름 붙일 수 있게 된 것.
코스타 마치고 은혜네 가족과 만나서 여행을 하는 중 주일 예배를 윌로크릭 교회에 가서 드리게 되었다. 빌 하이블스 목사님은 아니었지만 참 감동적인 예배, 설교였다. 모세의 이야기였는데 무대에는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여서 모래로 덮어 만든 모래더미에 삽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여러 신발들이 주렁주렁. 감추고 싶은 모래무덤으로부터 끝없이 도망가는 모세, 묻어둔 비밀로부터 도망가는 모세를 만나주신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 하셨다. 모세가 아니라 내게 말씀하셨다. 1982년 12월 16일, 강동중학교 운동장에 비밀처럼 세워 둔 아이를 불러내어 만인 앞에 세운 것 잘 했다고. 신을 벗었으니 더 이상 혼자 애써서 나를 방어하는 옛 방식으로 도망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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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일방적으로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유희열의 스케치북'식의 간증이라서 부담이 훨씬 덜 했다. 유희열보다 잘 생기시고 따뜻한 DM 간사님은 이 순서를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테고, 나름 생각이 있으셨을텐데 내 간증문 그대로를 살리는 방식으로 진행해주셨다. (정말 감사해요. 간사님!) 실은 간증을 마치고나서 집회가 계속되는 그 자리에 앉아 있고 싶지가 않았다. 빨리 숙소로 도망가서 혼자 있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간증하다 울게 될까봐 가장 많은 걱정을 했지만 정작 무대에서 나는 슬픈 이야기를 웃기게 하고 있었다. 마치고 내려오니 모멸감이 엄습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희화시켰다는 것, 제대로 감동도 주지 못하고 어설프게 웃기다 끝났다는 것. 그러나 그 이후에 만난 코스탄이나 강사들 중에 일찍 아버지나 어머니를 잃은 분들의 공감의 말을 들었고, 위로받았다는 그들의 말에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졌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힘들어 할 필요가 없음을 오전 마르바 던 강의를 통해서 깊이 배우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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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의 주제가 '우리의 약함, 주님의 강함'이었다. 우리의 약함이 주님의 강함이 된다는 얘긴가? 우리의 약함을 들어서 주님이 쓰시면 강함이 된다는 얘긴가?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약함이 강함이 되었던 예가 있나? 약함은 그저 끝까지 약함이 아니었던가? 일찍이 신체에 많은 핸디캡을 가지게 된 마르바 던. 그 약함이 치유되어 강해졌나?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은 내게 다시 아버지가 생겼나?  아니면 그 상처를 치유받아 말끔해졌나? 우리의 약함은 항상 약함이다. 그 약함으로 인해서 강하게 될 것을 바라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실 우상숭배다. 약함은 약함이고, 약함은 인간조건이다. 우리의 약함은 주님의 강함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은 우리보다 더 약해빠진 모습으로 이땅을 살아가신 주님을 만나는 자리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우리의 약함에 주님이 능력을 나타내시면 없던 애인이 생기고, 그렇게 나를 씹고 돌아다니는 그 사람이 내 장점을 발견하여 감동받고, 채윤이 같은 아이가 드디어 천재성을 발휘하여 수학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기랄) 나보다 더 가난하고 연약하고 미천하게 사시다 극형으로 돌아가신 그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다. 나는 그 나이의 딸을 가진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12월의 그 차거운 운동장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꽤 자유로워졌고, 조금씩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 중이다. 극형에 처해졌던 그분의 부황을 오늘 내 삶에 살아내는 만큼, 그 만큼씩 나는 차거운 운동장으로부터 자유롭다. 간증문의 맨 마지막은 이러하다.


눈보라 가득한 텅 빈 운동장에 얼어붙은 채로 그대로 얼어붙은 열네 살 아이가 있습니다
. 추위와 슬픔과 부끄러움으로 꼼작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가장 떠올리기 싫은 제 인생 한 장면입니다. 그 조그만 몸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대단한 삶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고 꽤 자유롭고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그 장면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그 아이를 조금씩 녹여내면서 힘도 열정도 사랑도 흘러나옵니다. 그 해동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남편과 친구와 아이들의 사랑이, 제 강의를 듣고 글을 읽는 독자들의 사랑이 그 아이를 녹이는 온기가 됩니다. 여전히 저는 아버지 없는 아이처럼, 비빌 언덕 없이 방황하는 날이 많습니다.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로 인한 걱정, 늦게 신학을 하고 목회자로 살며 고뇌하는 남편을 바라보면 밀려오는 안타까움, 연로하신 엄마가 한 번씩 입원하실 때마다 입원비 걱정을 해야 하는 경제적인 현실, 여전히 낮은 자존감으로 내 글과 강의가 비판받지 않을까 두려워 오그라드는 심장으로 여기저기 눈치 보며 살기.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아버지 없는 아이로 살았기에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깊은 그리움이 하늘 아버지께 닿아 있음을 긴 여정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움의 깊이만큼 아버지 사랑의 깊이를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그리움이 있어 슬프고 또 기쁘며 외롭고 또 충만합니다. 오늘을 사는 행복은 영원에 잇댄 오늘이고, 그 영원한 곳은 내 육신의 아버지, 하늘아버지가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2014 코스타에 가기로 결정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던 가장 큰 이유는 '마르바 던'이었다. 오전 성경 강해의 강사가 마르바 던이었다. 아, 마르바 던의 강의를 직접 듣는다니! 나는 바로 그 코스타에 있었고, 어느새 그 시간을 추억하고 있다. '역시! 마르바 던,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거나 '기대 이상이었다'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그런 식상한 표현을 하느니 침묵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으리라. 도대체 그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 지점에 걸려서 며칠째 쓰다 멈추고 쓰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리 골라도 적절한 언어가 없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아니, 비주얼 만으로는 '걸어 다니는 중환자실')이라 불리는 몸으로 굳이 서서 강의를 하셨다. 오래 전부터 기능을 하지 못하는 한 쪽 다리, 절단하여 의족을 끼워 넣은 나머지 다리. 그 두 다리로 서서 강대상에 의지한 채 세 번의 강의를 하셨다. 매우 무리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의 약함, 그분의 능력'이라는 이번 집회의 주제를 존재 자체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대 한구석에 휠체어를 두고 굳이 걸어서 강단까지 걸어가시는 모습, 강의를 마치고 몸을 휠체에 맡기고, 휠체어는 무대의 자동 하강장치에 맡겨져 스르르 내려앉던 모습이 내겐 참 인상적이었다. 내게만 그러했을까? 절도 있어서 오히려 위태해 보이는 그녀의 걸음걸이가 시작을 알렸고, 스르르 내려앉는 무대에 맡긴 휠체어, 거기에 기댄 그녀의 무력한 몸이 말로 했던 그녀의 강의에 긴 여운을 남기는 마침표를 찍는 것 같았다. 그 순간 900여 명의 눈길과 숨결은 한마음으로 멈추는 것 같았다. 모두 자기만의 마음의 눈으로 그 장면을 새겼을 것이다. 

 



처음엔 몰랐는데 마르바 던은 자신이 맡은 오전 성경 강해 시간뿐 아니라 모든 전제집회 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연약한 몸을 보더라도 최대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당연함인데 남편과 더불어 맨 뒤쪽에 앉아 계셨던 것이다. 간증이며 저녁집회의 설교 같은 것들을 통역을 통해 몸뿐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함께. 흔히 이런 집회에 참석하면, 특히 강사로 참석하면 특권의식이 발동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강의 외에 웬만한 강의나 설교는 '어디 잘 하나 보자'는 식으로 바라보기 일쑤이고, 오직 speaker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지 가만히 잘 듣는 태도를 가지기가 어렵다. 그런데 일개 연애강사도 아니고 무려 마르바 던 아닌가! 

 

 

감동적이긴 하지만 사실 여기까지 이야기의 등급을 매기자면 '기대만큼'이다. '기대 이상'의 이야기는 이제부터이다. 마르바 던의 첫 강의를 들은 화요일 오후에는 나도 첫 강의가 있었다. 첫 강의를 마치고 준비했던 강의안과 PPT를 싹 뜯어고쳤다. 가져간 노트북을 직접 프로젝터에 연결해 쓰지 못해서 PPT에 쓴 폰트가 깨졌기 때문에 일단 손을 볼 수밖에 없었다. PPT 폰트를 수정하다 아예 PPT 자체를 고치고, 강의안까지 고쳐버렸다.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얼마를 고민해서 준비해간 것인데 그렇게 휙 뒤집어 버렸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완전히 마르바 던 탓, 또는 덕분이다.

 



마르바 던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료했다. 불필요한 것이 덧붙여지지 않아 거슬리는 바가 없었다. 정말 하고자 하는 바로 그 말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직 그녀의 관심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청중이 알아듣는가였다. 그래서 가끔 잘 따라오고 있냐고 물었다. 진심으로 잘 따라오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미 시력을 잃은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에 손을 모아대고는 청중을 살피곤 하였다.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은 이 장면이다) 청중의 반응이 그저 진정성 없이 예예 하는 것이라 느껴지면 마음을 담아 다시 대답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하였다. 청중과 깊이 소통하기를 바라면서도 청중의 반응에 중심이 휘둘리지는 않는 태도가 엿보였다. 병약한 할머니 신학자의 이 부드러운 단호함을 정말로 배우고 싶다.

 

 

<언어의 영성> 내가 읽었던 마르바 던의 책이다. 언어, 오염되지 않은 언어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이다. 비록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나 설교하는 그분의 언어가 단순하며 화려하지 않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강의 중에 어떤 성경 구절을 한국말로 다 같이 읽어달라는 주문을 하셨다. 다 듣고 난 후에 나이가 젊어서 다시 기회가 있다면 한국말을 꼭 배워보고 싶다고 하였다. 간간이 통역하시는 김종호 대표님이 영어와 우리 말 사이를 오가며 재치를 부릴 때 웃음이 터지곤 했는데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 역력했다.  


유학생 수련회이다 보니 영어로 하는 대화가 흔한 곳이 코스타 집회이다. 울렁증은커녕 영어 앞에서 입을 떼겠다는 의지도 없는 내게 그 자체로 외국과 같은 곳이다. 남들 하는 걸 못하니 열등하다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다 보니 심지어 우리 말이 영어보다 열등한 것처럼 생각된다. 마르바 던이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태도는 이런  내 뒤틀린 의식을 바로잡아주었다. 그렇다! 영어를 못하는 나, 한국어를 못하는 마르바 던은 같은 한계를 가지고 마주 서 있는 것이다. 찬양 시간 중간에 주변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평화의 인사를 전하는 시간이 있었다. 근처에 마르바 던이 앉아 계셨는데 주저함 없이 다가가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우리 주님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알아듣지 못하여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러나 언어 너머의 내 마음을 듣고자 진지한 태도를 짧은 순간이지만 느낄 수 있었다.


 


 

용기 내 다가가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났더니 그 이후로 깊은 곳에서 어떤 갈망이 꿈틀거렸다.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대화를 시작하면 금세 깊은 영혼의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분은 오랜 기간 사랑과 존경으로 관계 맺었던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아 바라보기만 하였다. 무엇보다 그분과 나 사이엔 언어의 장벽이 높았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계시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면서 두 분을 위해서 깊은 언어로 기도했다. 그리고 마음으로 마르바 던에게 말했다.

"제 영혼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당신의 남을 날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두 분이 이 땅의 마지막 날까지 더욱 행복한 날들 보내시길요. 지금은 저의 깊은 이야기를 당신께 전할 방법이 없지만 우리 천국에서 꼭 만나요. 그 좋은 곳에서 만난다면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전하고 듣는 대화를 나눌 거라고 믿어요. 고맙습니다. 마르바 할머니! 아름다운 여성으로, 신학자로, 강사로 거기 계셔 주셔서요. 당신이 보여주신 예수님은 정말 최고였어요. 어떻게 최고였는지, 천국에서 만나면 꼭 알려드릴게요. 다시 뵐 때까지 잘 지내세요"  

 

 

내가 하는 첫 번째 강의를 마치고 새벽 2시까지 강의안을 새로 손본 이유는 내가 거기 있는 이유에 대한 성찰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했다. 마르바 던은 말씀과 태도로 내게 계속 물었다.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여기까지 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코스타 강사라는 이력을 얻기 위함인가? 저명한 강사들과 안면을 트고 인맥을 넓히고자 함인가? 많은 똑똑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내 강의와 상담의 신통함을 확인하고자 함인가? 강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간이 웃기고 약간의 감동까지 주면서 강사로서 그럴듯한 이미지를 남기고자 함인가? 인생의 선배로 신앙의 선배로 내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를 자랑하고 확증받고자 함인가? 


나는 나를 위해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통해 경험한 그분의 이야기를 위해서 거기 있는 것이다. 4박 5일 내내 걸고 다녔던 명찰에 'Speaker 정신실'이라고 씌여있지 않았던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서 거기에 있는 것이다. 10을 알면서 20을 아는 것처럼 말할 이유가 없고, 내 이미지 까이더라도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히 해야한다. 어설픈 유머로 논리의 허술함을 무마하려 하지 말고 하고자 하는 말 이외에 무엇이든 과정하여 덧대지 말아야 한다. 내가 거기 있는 이유는 정말 전하고자 하는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마르바, 마르바 할머니 같은 speaker로 늙어가면 참 좋겠다. 앞으로 강의할 때마다 마음의 사진첩에 담아둔 마르바 할머니의 부드럽고 단호한 모습을 꺼내보고 또 꺼내보려 한다.

 

 

* 사진은 kosta facebook에서 가져왔고요,
마지막 사진은 통역을 하셨던 김종호 대표께 부탁하여 급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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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 남성성

이 즈음 내 지적 심장(말이 되나?)을 펄떡펄떡 뛰게하는 화두이다.
왜냐하면, 이라고 시작하면 할 말이 너무 많다.
이성교제 강의를 하면서 파고들지 않을 수 없는 주제였고,
융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페르조나, 그림자 찍고 아니마 아니무스에 꽂혀 있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늘 성장하고픈 내게 융이 제안하는 아니무스(여성 안의 남성성)의 통합은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안내가 되고 있다.

대학 다닐 때 '너 여성학과야?'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4년 내내 여성학 책을 끼고 다녔다.
대학원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돈을 모았던 것은 여성학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 시험을 치면서 '이 산이 아닌개벼' 하게 되었고,
그때 눈 앞에 떡 나타난 것이 '음악치료'였댜.

거실의 책꽂이 한 켠에는 20년 된 여성학 책들이 다수의 원서까지 줄을 서서 꽂혀 있다.
거의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최근에 이 책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중이었다.
책 한 권을 빼서 선 채로 몇 줄을 읽어본다.
'내가 그 시절 이걸 이해하고 읽었나?'  진심 되묻게 된다.


아버지의 딸

개인적으로 나의 여성성(억압해놓은 남성성)을 숙고하게 되는 것은,
아버지의 딸로서의 나. 를 맑은 눈으로 다시 바라보기로 결정한 이후이다.
이 결정에 관한 이유 역시 너무 많다.
결정에 관한 결정적인 것은 이번 코스타에서 맡은 '삶의 현장'이라는 간증 때문이다.
간증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나이브하게 느껴지는데 딱히 다른 말이 없네 그려)을 쓰면서,
자주 겪었던 희한한 경험을 했다.
그 얘기를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그 얘기를 먼저 꺼내놓고,
계속 그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얘기는 다름 아닌 아버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야기였다.
정말 정말 내 입으로 하기 싫은 말, 싫었던 말.
"아버지 안 계세요"
이 말을 만인 앞에서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아버지 안 계세요"라고 말하려면  (지금 쓰면서도) 입술이 떨리거나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는데 말이다. 
어쩌자고 이 얘기를 꺼내놓는 것인지.
이렇게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다 삶과 내면의 실타래들이 한 번 더 풀리려나 싶다.
그러면서 나의 '여성성'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의미로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래래 크랩, 우리 정말 천국에서 꼭 만나 커피 한 잔 해요.

이런 시국인데,
어제 그제 남편이 '래리크랩 신간 나왔네' 하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목이 <에덴 남녀>.
30년 임상심리학자로 살아온 래리님께서 '평생토록 쓰고 싶었던 그 책'이라며 내놓은 책이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이야기 이다. 왜 하필 지금?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서 신기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몇 년 전에, 교회에 대한 실망과 좌절로 벅벅기고 있을 때 내놓으신 책은 무려
<교회를 교회되게:Real Church_Does it exist? Can I find it>이었다.
공감포텐 터지는 내용이었고, 그때도 왜 하필 지금? 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가끔 현승이가 "엄마, 나는 하나님을 믿긴 믿는데에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은 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라며? 그런데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 아냐. 자기가 믿는 신이 진짜 신이라고. 어차피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때 하나님도 그럴 거 아냐? 정말 하나님이 살아있어?" 라고 물어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당황하지 안코오~ 정답을 강요하지 않으며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속으로 나도 살짝 '정말 그런 거 아냐?' 하며 흔들릴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신기하고 놀라운 만남을 창조해시는 손길을 느낄 때면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확신하고 또 확신하게 된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방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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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낯선 모임에서 자기소개할 일이 있었다. 글을 쓰는 것과 출간한 책과 관련된 일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지만, 그와 관련하여 나를 소개하는 일이 쑥스럽고 민망하다. '음악치료사'라고 소개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물론 그렇게 소개해도 '어머, 그래요?' 하면서 질문 몇 개가 들어오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연애나 에니어그램에 관한 글을 쓴다거나 강의를 한다고 소개하고 나서 받아야 하는 질문보다 곤란하지는 않으니까. 몇 번의 만남이 거듭되면서 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책을 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아, 그러냐. 책을 내셨냐' 하는 리액션들이 나왔다. 그리고 '책 좀 하나씩 줘보라'고들 했다. 길게 얘기하기가 민망해서 '네, 네'하고 말았다.


다음 모임 하는 날이 되었다. 대답을 했고 약속이 되었으니 가져가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왠지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가져가지 않았다. 모임에 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해보았다. 책을 달라는 얘기가 나에 대한 호의라는 것을 모르지 않음에도 나는 좀 과하게 불편한 느낌을 붙들고 있으니 말이다. <인사이드 르윈>에서 골페인 교수 집의 저녁 식사 한 장면이 떠오른다. 르윈이 가수라는 것을 알고 그러면 노래 좀 해보라고 한다. 내키지 않은 르윈, 어쩔 수 없이 기타를 든다. 그리고 (자살한 친구) 마이크와 듀엣으로 불렀던 노래를 부른다. 음악을 좋아하는 교수 부인이 여기에 하모니를 넣으며 끼어드는데.... 노래하던 르윈 불같이 화를 내고는 판을 엎고 퇴장한다.



 

르윈에게는 마이크와 불렀던 노래, 영화 전반에 깔린 핵심적 트라우마 사건에 관련된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듀엣으로도 그닥 빛을 보지 못한 가수 르윈이 솔로로 살아내야 할 가수인생의 빈곤함 그 자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프다. 그 장면에서 판을 엎으면 내뱉는 르윈의 대사가 내겐 더 디테일한 의미로 와 닿는다. 좋은 분위기로 '노래해! 노래해!'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던, 둘러앉은 교수들에게 퍼붓는다. 내가 밥을 먹다가 당신들한테 '교수니까 강의 좀 한 번 해주라고 말하면 좋겠냐?' 간단히 이런 내용이었다. 기분 좋게 저녁 먹고 기타 들고 흘러간 노래도 부르고, 마음 흘러가는 대로 찬양도 하고.... 얼마나 좋은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면 더더욱. 그런데 적어도 르윈에게 노래는 실존 그 자체이기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앉아서' 부를 수 있는, 싱어롱 타임에 소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에니어그램 강의를 하고 나서 마음이 힘들었던 두 번의 강의는 지인이라는 이유로, 좋은 마음으로, 저녁 먹다 노래 한 곡 부르듯 했던 강의였다. 나에게는 실존, 듣는 사람들에게는 껌 씹으면서 듣는 강의. '(듣보잡)애.니어그램인지 애니메이션이 뭔지 모르겠지만 어디 가서 강의 좀 한다니까 여기서도 한 번 해봐라. 듣겠다고 동원돼 준 걸 고맙다고 생각하고. 나나 모임에 불편한 얘기는 하자 말고. 자, 어디 한 번 해보시지' 이런 느낌으로 다가온 태도들이 강의 후에 나를 몹시 힘들게 하였다. 언감생심 르윈의 예술가적 자존심과 비교할 수 있을까마는. 이런 강의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껌 씹으면서 듣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낮은 내 자존감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신앙인으로서, 마음에 관한 강의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이 더욱 자라고 성숙해야 할 텐데.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해가는 중요한 지표가 '거칠 것 없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전에는 긴 시간 걸리던 문제가 빨리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대견한 부분이 없지 않은데. 어떤 면에서는 더욱 완고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말랑한 척이 아니라 진정 내면이 말랑한 사람이 되어 나 자신에게는 물론 타인에게도 안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가끔 나의 안전과 타인의 요구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그때 내가 내 편이 되어주기 위해선 표면적으로 완고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내놓은 내 이름을 잘 지키는 것은 때로 터무니없는 완고함의 힘이 아닐까 하는 싶기도 하다. 아낌없이 내어주되 적어도 값싸게 나를 소비하진 않을 생각이다.

 

 

 

 

 

 


에니어그램 강의를 하거나 상담을 하면서 가끔 정말 완고한 자아의 소유자를 만납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않기 위해 주변의 모든 사람을 환자 또는 악마로 만드는 사람들. 그래서 스캇펙 박사가 <거짓의 사람들>을 쓸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 상담을 하면서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보셨겠지요. 바위처럼 완고한 영혼을 만나며 고뇌한 흔적이 책 곳곳에 붇어납니다. 결국, 그 사람들을 '속이는 자(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속이겠지요)'들의 이야기가  <거짓을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런 유의 사람들이 몹시 불편합니다. 너 자신을 좀 객관적으로 보라고 찔러주고 싶지만 찌른다고 찔리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속을 부글거리며 바라만봅니다 . 그.런. 데.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오늘 말해주었습니다. "자아가 강하기로 치면, 완고하기로 치면 너도 만만치 않아. 글과 강의로 그럴듯한 말을 내놓지만 그 뒤에 숨어서는 누구보다 더 교묘하게 완고해. 너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너의 그림자를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 찐따로 만들려 애쓰는 걸 보라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꿈'입니다. 그리고 꿈의 목소리는 솔로가 아니고 불협화음 같은 전혀 다른 목소리의 듀엣입니다. 똑같은 꿈이 이렇게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니까요. "휘둘리지 않는 중심의 힘이 있네!" 라고요. 이 목소리 역시 받아들이며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기도해왔습니다. 내면의 가벼움에 대해서요. 어제 만난 어떤 분이 헤어지고 난 다음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확고한 신념 속에 유연한 사모님'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지요.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 무던히 애를 쓰며 살지요.  기분이 좋았습니다.


같은 꿈이 상반된 두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완고한 자아/휘둘리지 않는 중심을 가진 자아' 둘 다 나라고 생각합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이렇게 반대색깔을 가진 나와 내가 격돌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면은 가장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전쟁 중인 내면을 끌어안고 용케도 평온한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다 은총입니다. 도대체 무슨 꿈이냐고 물으신다면 안 아르켜주~우지. 라고 말하겠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은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분입니다. 얼굴 한 번 뵌 적이 없는 중매쟁이니까요. 아니 어떻게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 중매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안 아르켜주~우지, 궁금하면 <와우결혼> 사 보시든지'라고 말하겠습니다. 여하튼 20대 때 이현주 목사님의 책을 읽고 총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고 신앙의 새로운 눈이 떠졌었습니다. 그리고 이분의 책이 출간되는 족족 읽었드랬죠. 한동안 뜸했었어요.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납니다. <이현주 목사의 꿈 일기> 그동안 어디 가셨었나 했더니 제가 이 즈음 이러고 있을 줄 미리 알고, 이런 책을 써놓고 계셨군요.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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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친구 엄마들과의 만남을 안 좋아한다. 시간이 안 되기도 하거니와 영어 뭐해요?수학 어느 학원 다녀요? 깔대기 대화에 어디 낄 자리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 현승이 수영하는 걸 기다리느라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서 흘려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된다. 언젠가 2월 말 어느 날 수영장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엄마들 수다 주제는 다음 학년 담임 선생님 얘기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몇 반에 어느 선생님 정보는 물론, 선생님의 스타일이며, 좋아하는 아이 유형까지 꿰고 정보를 나누고 있는데 기겁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애 키우면서 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 너는 뭐 그리 고상을 떨었쌌냐? 돌이 날아올 수도 있게지만 어쨌든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자리가 학교 엄마들과의 만남이다.


그런데 솔까말.


신앙 좋은 여자들 모여서 '하나님, 은혜, 축복, 기도, 감사...' 이런 몇 단어만 가지고 얘기하는 모임보다는 학교 엄마들 수다가 차라리 낫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무조건 감사에다 성령은 충만한 나눔이면 여기 역시 낄 자리 없다고 느낀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의 삶이 진정 말과 같아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분들이라면 모를까. 말과 삶의 괴리를 피차에 아는데도 공식 나눔 시간만 되면 은혜, 감사, 축복 이럴 때 참 듣고 있기가 어렵다. 한 두 사람이 그럴 수 있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거룩해지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믿음은 없는데다 까칠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의 늪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무소부재한 하나님라지만 우리 일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자주 힘겹고 막막하다. 은혜의 하나님이지만 그 은혜를 삶에서 몸으로 느끼기엔 얼마나 막연한 것인가. 사랑의 하나님을 믿지만 정말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은 얼마나 되는가. 그러니 차라리  학교 엄마들처럼 있는 말과 욕구가 일치하는 얘길 듣는 걸 참아내는 것이 더 쉽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솔까말.


균형잡힌,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자신의 거친 욕구와 그림자를 두려움 없이 드러낼 수 있을까? 하나님의 부재로 인해서 메마른 나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나는 경험해 보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마치 이것을 진하게 경험해 본 사람처럼,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이름 붙이고 나는 갈망한다. 진실로 갈망한다. 언젠가 모든 것이 갖춰진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가능할 거라고 믿었던 시절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온전한 공동체에 대한 가능성도, 불가능성도 각각 100%라는 생각이다. 너무 어려운 일지만 아주 쉬운 일이기도 하다는 걸 안다. 래리크랩이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 초반에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어쩌면 나란히 앉아 있던 사람들끼리 의자를 돌려 마주보고 앉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선택은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규명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래리크랩 식으로 표현해보자. 인간 마음에는 윗방도 있고 아랫방도 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내 영혼의 윗방도 분명 존재하지만 뱀이 기어다니고 구정물이 이는 내 아랫방에 대한 직면하고 통과하지 않고 내 윗방으로 올라갈 수 없다. 아니, 윗방을 사는 것과 누리는 것은 아랫방에서 뒹굴고 있는 나를 인정하면서 '내게는 윗방도 있는데 난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라고 묻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참된 공동체는 자신의 아랫방의 욕구들을 두려움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곳이고, 드러내고 받아들여졌을 때 비로소 함께 꿈꾸고 누릴 수 있는 곳이 윗방이다. 그러면 모두 누가 누구를 안전하게 받아줘야 하는가? 나를 거절하지 않고 수용해줄 안전한 사람은 누구인가?


누구라도 자신 안의 선함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다. 사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것이어서 아주 작은 한 방울이 떨어져 적시면 이내 흥건해지고 이리저리 흐를 만큼 불어난다. 때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난다. 한 방울을 떨어뜨려서 상대에게서 더 선한 것이 더 많이 흘러나오는 것을 맛본 사람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대한 꿈을 놓을 수 없다. 설마 내게서 이렇게 좋은 것이 나갔을 리가? 라고 물으며 다시 한 번 자기를 포기하고 한 방울 떨어뜨리기를 시도했을 때 우리들의 의자가 서로를 향해 돌려지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부부관계에서 그렇고 사춘기 아이와 그렇고, 소그룹 공동체에서도 그렇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신앙적 가면을 쓰고 은혜 축복을 반복하는 모임에서 편치 않은 나 자신이 까칠하고 약간 재수없는 아줌마라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은근한 불안이 밀려올 때가 많다. 불안하지만 이대로의 나를 옳다 여기며 살기로 한다. 래리크랩의 책 속 세상에서는 불안한 나의 정체성까지도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꿈꾸는 아줌마가 이렇듯 까칠한 캐릭터라는 적에게 알리지 말라! 그러나 포기하진 않는다. 그 어디나 가장 안전한 곳 되도록 깨진 나를 드러내고 깨진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노력 만큼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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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크랩의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라는 새 이름을 달고 재출간 되어 나왔다.
이 블로그의 간판이기도 한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 내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철들고 시작된 자아, 신앙, 행복, 교회, 소명에 관한 고민들에 총체적인 답을 얻은 책이다.
나는 다분히 에피쿠로스적이라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일을 어떤 명분을 갖다대도 살지 못한다.
내가 '공동체'에 꽂히는 이유는 제자도로서의 당위가 아니라 내 행복을 찾고자 함이다.
때문에 가정교회 목장을 하면서,
남편이 청년부 사역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서 밥을 하며 모임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지만, 힘들지 않았었다.
공동체는 내게 당위가 아니라 존재론적 행복의 근거이다.
이런 나 자신에 대해서 인식하게 해줬고,
통합해 정리해준 책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한 저자와 함께 여정을 같이하는 것은 행복이다.
이 땅의 여정을 끝내고 천국으로 이사가신 나우웬 신부님과 브레넌 매닝님, 스캇 펙 박사님.
이 나이에 그 훌륭한 분들의 삶의 여정은 물론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래리크랩의 저술은 나의 여정과 기가 막히게 맞물리면서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다.
정직하고 정답을 던지지 않는,
철저하게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고민을 드러내되
전문가인 척 하지 않는,
나의 래리 크랩이다.


<결혼 건축가>는 그의 초기작이다.
젊은 시절, 결혼을 통해 관계의 단맛 쓴맛을 맛보며 쓰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을 것이다.

<영적 가면을 벗어라
>는 내게 충격적인 책이었다.

에니어그램을 만날 때가 아니라 이 책을 만났던 그때 내 내면여정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남편과 처음 교제하다 헤어졌던 청년부 시절,

헤어짐의 고통에 더하여 청년부에서 어떤 일로 관계가 다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죽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그때 읽은 <격려 상담>이 나를 살렸다.

래래크랩이 아들과의 갈등을 겪으며 상담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바닥에 팽개치고 써 낸 책이

<끊어진 관계 다시 잇기>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자신이 이뤄온 저술과 강의에 누가 될지 모르는 고백을 담아 썼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내 영혼은 이런 대화를 원한다>
암선고를 받고나서 그 경험으로부터 시작한 책이다. 죽음을 코 앞에 둔 사람이, 영혼이 원하는 대화는 무엇이겠는가. 대화의 기술이 아니라 영혼의 목마름, 내 존재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내가 기도에 목말라하고 있을 때 기도에 관해 가장 정직한 책, <파파기도>가 나왔다. 거창한 관상기도, 렉티오 디비나... 이런 거 아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을 지도 위에 빨간 압정 꽂듯 정직하게 짚고 기도로 가라는 얘기다.


교회에 대해서 미치도록 회의하고 있을 때 <교회를 교회되게>가 나왔다. 이 책을 손에 넣은 시기, 노 신앙이 그 연세에 교회에 대해에 대해서 쏟아놓는 고민. 둘 다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유진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으로 성경에 대한 새로운 눈이 떠졌을 때

<하나님의 러브레터>가 나왔다. 이 책과 함께 메시지를 읽으며 나눈 벗이 있었다. 그 시간이 참 귀했다.


이러니, 내 아이디 larinari에 래리 크랩을 모셔들인 것이 오버는 아닐 것이다.
나의 래리 크랩이 페북에서 조롱당하는 것을 보았다.
신간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어떤 이들의 대화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 래리 크랩이 정신실도 아니고. 어쩌다 블로그질 열심히 하고, 여기 저기 연재 좀 하다가 운 좋게 책 한 권을 낸 정신실도 아닌데..... 그런 모욕을 당하시다니.
그 대화를 읽고 밤잠을 설쳤다. 정작 거기에 한 마디도 못했다. 래래 크랩, 지못미! ㅠㅠ


유진 피터슨이 쓰신 서문 일부이다.
'하지만 의외로 래리 크랩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이것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충고일 것이다. 순식간에 친밀해지는 경우는 없다. 지름길도 없다. 혼란과 실망을 피할 수도 없다. 오히려 우리처럼 허둥대거나 절뚝거리는 깨어진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 예수를 따르는 힘겨운 모험을 평생 동안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인 정직함과 절박함은 공동체를 상품화하는 우리 시대의 상업주의 정신과 대비된다.'


래리 크랩 특유의 정직함과 절박함이 독자연(讀者然) 하는 이들의 눈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온전히 다독여지질 않아서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 곳에서 뒷담화 하는 바이다. 나의 래리 크랩, 그분의 친구인 댄 알렌더의 책 한 권 한 권에 눈을 맞추면서 이런 저런 마음을 달래본다. 그리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그분이 계신 콜로라도 덴버를 향해 띄워본다. 천국에 가서 만나면 한국식으로다가 제대로 큰절 한 번 올리고 말 것이다.

 


 

 

 


 


삶과 신앙에 대한 고민이 사뭇 진지해져 풋내기 구도자가 되어가던 여고생 시절이었다. 어쩌다 손에 든 루이제 린저의 <고독한 당신을 위하여>라는 책에서 읽은 구절이 한 장의 사진처럼 마음에 남았다. 수녀 두 분이 기차 안 맞은편 자리에 앉은 한 여자를 보고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더라는 이야기이다. 여자는 화려한 복장과 진한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마주앉은 수녀님들과는 다른 차림새였다. 그 여자의 외모와 두 수녀의 눈빛을 길게 구체적으로 묘사해놓았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심플한 정의를 내렸다. 사랑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제 막 신앙의 눈을 뜨기 시작한 여고생은 이것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낯선 여자를 향한 두 수녀의 공격적 시선이 클로즈업 되고 그 위로 사랑이란?’ 하는 자막이 올라오며 화면이 정지된다. 이 화면 그대로 액자가 되어 내 의식의 한 벽면에 걸려있다.

 

오래 된 숙제

이것은 내게 막 베어 문 선악과 한 입이 되었다. 그로부터 눈이 밝아져서 내 안의 수녀님 시선을 알아채게 된 것이다. 그 시선은 사랑에 반하는 것이라 하니 당장 떼어내고 싶었지만 안경을 벗듯 휙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안의 수녀님 눈빛 제거하기신앙 여정에 가장 부담이 되는 숙제가 되었다. 여고생 때 받은 숙제를 중년이 된 지금까지 붙들고 있음에도 딱히 큰 진전이 없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차마 내보이지 못하고 온유함의 선글라스같은 걸로 위장하는 기술만 늘었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에게는 여과 없이 비아냥과 경멸의 시선을 쏘고 지나친다. 그런 나를 의식하는 순간 느끼는 고통은 매우 크다. 그 시선은 다름 아닌 나와 다른 모든 것을 향한 비판 또는 비난의 태도이다. 그리하여 비판이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 맞닥뜨려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며, 내게 죄책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나는 또 한편으로 비판의 화살을 맞고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잠정적 피해자로서의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이렇듯 내 안에 충만한 비판주의오랜 시간 학습한 과제이지만, 안팎으로 오가면복잡하게 얽혀버려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이다.


비판의 기술,
or 예술

이런 내가 <비판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일단 카트에 담고 볼 일이다. 물론 기술이란 말이 목에 걸려 잠시 주춤하긴 했다. 한때 논쟁에서 이기는 법류의 책에 목을 매던 적이 있었다. 예의 그 수녀님 시선을 벗어나보자는 노력이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내가 쏟아내는 비판에 대해서,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논리적 근거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수녀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고도의 세련된 기술을 제대로 익혀보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비판을 잘 하는 기술이라면 더 배우고 싶지도 않다. 아니, 그런 것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대화의 기술, 용서의 기술, 비판의 기술.....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지난한 일에 따라붙은 기술이란 말은 빠르게 달리는 달팽이라는 말처럼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편치 않은 마음으로 책을 살피던 중 원제에 눈이 꽂혔다.

“Making Judgments Without Being Judgmental”

그렇지! 딱 좋네. 그러고 나니 책 표지의 부제, ‘정죄를 벗어나 분별에 이르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책을 펼쳐 몇 페이지 읽어나가니 기술때문에 가졌던 부정적 혐의는 금세 사라졌다 

비판주의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첫 번째 단계는 비판주의가 얼마나 미묘한 문제인지 분명하게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덜 비판적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혀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비판주의라는 주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모두가 비판적인 사람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p24)”  


수녀님 눈빛 치유하기

책의 미덕은 끝까지 이 전제에 충실하게 풀어간다는 것이다. 미묘한 비판주의를 신중하게 다루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비판주의에 겸허하게 접근한다. 그러면서 비판주의의 그늘에 숨어 있는 것들을-차이를 견디지 못하는 불안과 두려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죄스럽게 느끼는 수치심, 나르시시즘- 하나하나 드러내 보여준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비판주의의 원고석에서 피고석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며 좌불안석이었다. 진실로 비판주의로부터 자유롭기 원한다면 감수해야할 불편함일 것이다. 내 안의 수녀님 눈빛치유하기는 참된 빛을 마주하기 위해서 선글라스를 벗는 것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자면 강렬한 태양빛으로 인한 아픔과, 암흑의 고통을 견뎌야 할 것이다. 이것은 비판주의의 그늘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과 권위적이고 경직된 태도가 모두 내 것임을 머리 아닌 가슴으로 인정해야 하는 고통이다. 그러자니 정죄를 벗어나 분별에 이르는 길은 한두 가지 기술을 익힌다고 해서 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여정은 내 은밀한 내면을 깊이 성찰하며 나의 중심에 거하시는 그분께로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는 길이었다.


1
1초가 멀다하고 접속하여 마음을 뺏기는 SNS로 대변되는 우리의 일상은 크고 작은 비판의 향연 같다. 선한 가치를 위한 꼭 필요한 비판, 예의바른 언어에 포장된 독기 가득한 비판, 혼잣말 같으나 누군가 들으라는 비아냥조의 비판. 이 모든 비판에서 주어이기도 목적어이기도 한 우리에게 한 발 물러나 독을 빼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럴 때 좋은 안내가 되어줄 책이 <비판의 기술>이다. 물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비판 기술자를 만들어주는 비법은 없다.

 

IVP 북뉴스 2013 11-12월 호

 

 


 


내가 중학교 1학년, 동생이 초등학교 4학년.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금 우리 채윤이가 중하교 1학녀, 현승이가 4학년.
중학교 1학년 여자 아이에게,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에게
아버지를 갑자기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올 가을엔 우리 아이들 보면서 그때 나와 동생을 떠올려보게 된다.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고,
갑자기 당한 이 인생의 테러에 슬퍼하지도 못할 나이이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다 그저 시간을 보내고 어른이 된 것이다.
그날로부터 그냥 얼어붙은 채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추도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버지 추도식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만큼이나 엄마 걱정을 하며 자랐다.
그렇잖아도 나이가 많은 엄마, 엄마마저 돌아가시면 어쩌나.
요즘도 아버지 추도식마다 엄마 걱정을 더 많이 한다.
내년에도 엄마랑 같이 추도예배를 같이 드릴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소식 들었던 그 12월,
그때 얼어붙은 중학교 1학년 나는 늘 갑자기 들이닥칠 죽음에 두려워 떨고 있다.
죽음이 갑자기 들아닥쳐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늘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상상하곤 했었다.


이번 주 어느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참 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질문의 아름다움이 기억의 아름다움을 꺼내게 만든 것이다
힘들었을텐데 어쩌면 그렇게 꿋꿋하게 잘 지내고, 이렇게 잘 자랐어요?
그 질문에 나도 모르게
사랑이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 사랑 듬뿍 받았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나를 안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사진 속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어릴 적의 상실감이나 사랑이나 이제 와 생각하면 그리움이다.
여전히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만날 때마다 보듬어 안아주듯
내 곁의 두 어린아이 채윤이와 현승이를 더 따뜻하게 보듬어야지 결심하게 된다.

 

 


 

 


주제가 있는 책소개 - 소명 <QTzine> 10월호

 

고든 스미스 <소명과 용기> 생명의 말씀사

 

프레드릭 뷰크너의 소명에 관한 정의를 처음 접했을 때 , 이거다!’ 무릎을 쳤다. ‘소명이란 우리의 가장 큰 기쁨과 세상의 가장 큰 필요가 서로 만나는 자리를 말한다.’ 지지부진한 고민들이 단칼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제 소명을 찾아 갈림길에 선 사람들,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 친구들에 의해서 흔히 인용되는 교과서적 정의로 자리 잡은 듯하다. 문제는 이 명문(名文)이 어떻게 하여 나만의 문()이 되어 밝은 내일을 열어주겠냐 하는 것. ‘나의 기쁨은 도대체 무엇이고 그것과 조우할 세상의 필요는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과연 자신의 소명(좁은 의미의 직업)을 통해서 기쁨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게다가 그것이 세상을 위한다는 확신까지 품은 사람은 또 얼마나 있겠나. 세상의 필요는 둘째 치고 내가 무엇을 기뻐하는지도 모르는 것이 소명 앞에 선 우리의 막막함일지도. 또 나의 기쁨이 무엇인지 안다한들 그 기쁨을 누릴 소명의 자리가 떡 하니 나타나거나, 나타나더라도 덥석 내 것이 되어준단 말인가? 한창 진로를 고민하는 제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런 막막함에 나까지 빨려드는 느낌이다. 대졸자 실업률이 고공행진이라느니 비정규직이 어떻다느니 하는 세대에 소명을 생각하다니 너무 잉여로운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인가.

 

고든 스미스의 <소명과 용기>는 이 막막한 시대의 위기를 진단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자리가 부족하여 원할 때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는 고용의 위기, 그 와중에 능력부족을 절감하며 겪는 자신감의 위기는 직업이 있고 없음에 상관없는 보편적인 불안이다. 여기에 더하여 초점 없는 분주한 일상을 반복하는 의미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우리의 세대이다. 현실감각 충만한 신학자인 저자는 위기에 맞선 깊이 있는 신학적 통찰을 들려준다.

구인광고를 찾아 부지런히 인터넷 사이트를 서핑하고, 멘토를 만나 조언을 듣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들고 나를 알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모름지기 무엇을 찾는 자의 자세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마음 에너지의 방향을 밖에서 안으로, 급진적으로 선회하라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읽혀진다. 저자는 로마서 12:3-5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소명을 주셨으며,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요구하시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답으로 두 가지 명령을 주신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너 자신에게 충실하라.’. 문제에 대한 이 아니라 숙제같은 명령을 주신다. , 답은 그 명령을 이행할 때 각자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존경하는 목사님이 기도해보셨더니 딱 이 길이다.’가 아니라 자신을 깊이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어렵지만 흥미진진한 인생의 보물찾기 일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는 소명 발견을 위해서 자신을 아는 것에 대한 친절 안내가, 후반부에는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필요한 용기에 대한 독려가 담겨 있다.

 

 

 

 

 

 

 

 

 

 

 

헨리 나우웬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IVP

 

헨리 나우웬의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은 차분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구인 사이트를 닫을 뿐 아니라 컴퓨터를 끄고 기도하듯 읽으면서 마음 깊은 곳에 울리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세상의 길이냐, 그리스도의 길이냐. 고지를 향해 올라가는 상향성의 삶이냐, 십자가를 향해서 끝없이 내려가는 하향성의 삶이냐. 중간지대는 없다. 고지를 선점한 후에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이끌겠다는 식의 중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소명, 그 다음은 용기일 수밖에. 하향으로의 부르심에 따라 캐나다의 장애인 공동체에서 생을 마감한 저자의 삶이 그대로 글이고 책이 된 셈이다. 때문에 침묵처럼 고요한 그의 말은 영혼의 깊은 갈망을 일깨운다. 고든 스미스가 소명을 찾기 위해 안으로의 방향 선회를 제안하듯 헨리 나우웬은 아래로의 방향지시등을 조용히 밝혀준다.

가을이 깊어간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가 저절로 읊조려진다.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나를 가꾸기 좋은 비옥한 시간이다. 비상등을 켜고 멈춰 서서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를 점검하기 좋은 날들이다. 두 권의 책을 네비게이션 삼아, 두 분의 목소리를 따라 소명을 향한 영혼의 여정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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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을 읽는다. 소설, 특히 연애소설은 젊었을 때도 거의 눈길을 주지 않던 분야이다. 중년의 아줌마가 카페에서 연애소설을 읽고 있는 풍경이라니.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양 갈래로 묶은 머리처럼 부조화하지 않은가. 그래도 읽는다. 재미도 있다. <내 연애의 모든 것> 대한민국 보수정당 남자 국회의원과 진보정당 대표인 여자 국회의원이 사랑에 빠지는 얘기다. 중반까지 아주 재밌었다. 연애라인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집중적으로 연애 얘기만 나오기 시작하니 급 재미가 없어졌다. 연애는 주변인들, 다양한 정황들과 맞물려서 흐릿한 스토리 라인일 때가 제 맛이다.


연애 상담을 하면 길게 잡아 10분 안에 그 친구가 가장 힘들어하는 관계문제, 자아상, 의존문제, 부모와의 관계 등 본질적인 문제로 다가갈 수가 있다.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흘러간다. 연애 문제는 단지 로맨틱 러브에 그치지 않고 싱글들의 삶 자체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박동 같은 것이다. (연애 하든 안 하든, 스스로 인식하든 못 하든) 그래서 연애는 전인격적이다. 인생이 문제는 결국 '궁극적 사랑'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넓은 의미에서 로맨틱 러브 역시 사랑이고 그 사랑은 전인격에 달라붙을 수밖에 없다. 


박원순 시장님과 스쳐 지나간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몇 년 전에 연대 앞 창천 교회에서 '데이트 코칭 스쿨'인가? 하는 스쿨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몇 주 과정이었는데 나는 두 번의 강의를 맡아서 했다. 그분의 블로그에 갔는데 창천 교회 앞에 내걸린 '데이트 코칭 스쿨' 플래카드를 찍은 사진에 '요새는 데이트를 가르치는 학교도 있군요.'라는 조금 어이없다는 멘트를 날리셨다. 댓글에 '제가 거기 강사예요.'라고 밝히고 주절거렸다.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데이트란 전인격적인 문제다. 자아상, 소명과 진로 등 젊은 날의 총체적인 고민과 맞붙어 있는 것이 연애 문젠데 다면적인 접근으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블라블라....  했더니 역시 원순님답게 '아, 그럴 수 있겠다'며 수용을 하셨더랬다. 


'연애 강의'라 하면 어떻게 좀 남자(여자)를 잘 꼬셔보는 꼼수나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교회 안팎의 연애 강사들이 뿌린 걸 스스로 거두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연애 강의를 하는 나 자신조차 '연애 강의는 기술이거나 설교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누워서 침뱉기식 선입관을 가지고 있으니. 상대방을 특히 여성을 대상화하는 연애강의, 나이 많은 자매들을 희화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연애강의에는 분노에 가까운 피로감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엄밀히 따져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이기에 피로감이 아니라 책임감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책에 다 나와 있는데 왜 고민을 할까?'라며 인생의 모든 문제를 독서로 풀고자 하는 강박 같은 것이 내게 있다. 사람들이 다 나 같은 줄 알고 대화 중에 엄청 책소개를 하고 흥분하는 적이 많다. 청년들과 더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대부분 청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생각보다 더 읽지 않는다. 어려운 책은 아예 읽지 않는다!

<오우연애>나 <와우결혼>을 앉은 자리에서 한 방에 다 읽어 버렸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칭찬이라고 하는 말씀들이지만 살짝 내 마음엔 팔자 주름이 생긴다. 쉽게 읽힌다? 내용이 없다는 얘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책 읽지 않는 청년들에게 읽히는 책을 써서 어쨌든 읽게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내가 싱글일 때와 달리 지금은 모든 좋은 것이 과잉인 시대라 연애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매우 많다. 청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안 이상 더 많이 읽어서 내 강의에 더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또 다른 강박에 시달린다. 어려운 책들을 읽어서 쉬운 말로, 말랑말랑한 말로 전해주는 것이 내 소명일까.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에 양 갈래 머리처럼 어울리지 않는 책을 붙들고 '아이구, 내 팔자야' 한다. 좋으면서 싫은 척.


연애는 전인적인 문제라 심리학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이성과의 관계맺기를 말하면서 부모와의 관계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울지 않는 연애는 없다>는 딱 정신분석적인 연애상담이다. 필요하다. 이런 접근.
모든 연애가 다 개인사기인 하지만 '사랑'은 단지 심리학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연애와 사랑을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볼 때 나이 먹은 자매들은 늘 '내려놓겠다'고 한다. '눈을 낮추겠다'고 한다. 어디서 연애강의만 듣고 오면 내려놓겠다는데 뭘 얼마나 더 내려놓아야, 얼마나 더 자신을 바꿔야 애인이 생긴다는 말이다. 사랑이 아픈 이유를 사회적, 문화적 현상으로도 이해하게 해주는 <사랑은 왜 아픈가>는 고마운 책이다.
심리학적, 사회학적으로 설명 해도 '사랑이 왜 아픈지'에 대한 답은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랑은 원래 아픈 것이니까. 사랑의 존재인 우리는 사랑의 근원과 단절되어 있을 때 아플 수밖에 없다. 사랑의 근원으로 연결되는 길은 '고독, 홀로 있음'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헨리 나우웬 신부님께 배웠다. 기독교의 언어가 아니라 정신분석학자의 목소리로 듣는 '홀로있어 자기 자신이 됨'에 관한 통찰이 내게는 신선하다. <고독의 위로> 좋다.


연애에 관한 수 많은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로 귀결된다. '연애'는 내게 재미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연애를 빙자한 올 카인즈 오브 존재론적 고민은 흥미진진진진진. 연애 강의라는 낚시밥을 던지고 룰루랄라 강의하러 다니며 이 나이에 연애계를 못 떠나는 이유일 것이다.

 

 

 

 

'SET FREE INTO FULLNESS'의 빨간 플래카드로 남을 2013년 시카고 코스타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다녀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일상의 모든 경험과 묵상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 없다. 헌데 코스타 이야기는 내게 '쓰고 가라, 쓰고 가~아라' 하며 지친 내 어깨를 떠민다. 밀쳐뒀던 원고 약속을 지키려면 뭔 얘기가 됐든 코스타를 끄집어내 정리해야 그 밑에 있는 글이고 말이고 나올 길을 찾을 것 같다.

 



1.

수년간 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오면서 이번처럼 맘에 든 적이 없었다. 같은 강의를 세 번에 걸쳐서 했다. 세 번이 다 좋았고, 뒤로 갈수록 더 좋았다. 거두절미하고 잘 들어서 좋았다. 특히 수련회 같은 데 강의를 가면 나는 그렇게 힘든 것이 안 듣는 아이들이다. (물론 전혀 개의치 않고 강의하는 척은 잘 하고 있다) 딱 봐도 얼굴에 '엄마가 강제로 보내서 왔어요. 조장 형한테 끌려 왔어요.' 쓰여있다. 맨 뒤 벽에 기대고 앉았는 그가 강사인 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수월찮이 신경이 쓰인다. 코스타에서 세 번 강의를 하는 동안 정말 진지하게 듣는 눈동자들이 강의를 밤무대 삼아 뛰는 내 강사생활 동안 최고라 할 수 있는 감동을 남겼다.

2.
개별 상담도 좋았지만 한 조를 함께 만나는 그룹 상담이 참 즐거웠다. 즐겁다는 표현이 살짝 부적절한 것은 오고 간 이야기가 가슴이 미어지는 얘기도 있었고, 나도 그들도 울컥하는 장면이 여러 번이었다. 그럼에도 즐거웠던 건 그야말로 '오고 가는' 말의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그들은 숨기지 않았다. 나는 어쭙잖은 설교할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애매하게 돌려 말하기로 자기 문제 포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케케묵은 내 연애사까지 꺼내놓게 되었고 그 와중에 20년이나 된 내 상처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도 했다. 중요한 건 여럿이 함께 한 자리에서 누구의 눈치도, 강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툭툭 내뱉는 질문들이 우리를 무장해제 시켰다는 것이다.

 

 

3.
주변에서 '난 코스타 안 좋아해요.' 이런 직접적인 표현도 들었고, 코스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심지어 코스타 강사로 가는 일이 무슨 몹쓸 권력과의 타협을 선택한 것 같은 느낌에 말하기가 꺼려지기도 하였다. 반면에 확인된 바는 없지만, 강사로서의 네임 벨류를 높이기 위해서 코스타에 목을 매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미확인 소문 역시 내 자유를 앗아간 또 다른 미확인 비행물체이다. 그저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가보니까 목마른 젊은이들이 있더이다. 말씀, 좋은 특강, 멘토, 혹여나 있을 이성과의 만남.... 등을 기대하면서 몇 시간 씩 비행기 타고 모여든 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있더이다. 미확인 비행물체를 붙들고 좋다 나쁘다 대단하다 아니다 하시지 마시고요. 코스타는 잘 준비된, 유학생들을 위한 수련회입디다.

4.
코스타를 불편해하는 분들에게 내가 유일하게 공감이 되는 것은 그것이다. '고지론의 산실'이라는 것. 이것은 내 표현이고 내가 가진 선입관이다. 근거는 코스타가 사랑하는 주강사들의 면면이다. 안타깝게 몰락한 전**, 오** 두 분과 페이스북을 통해서 서서히 몰락해가시는 김** 목사님들 말이다. 이 분들이 마이크를 잡고 침을 튀기며 말씀을 전하고 청년들을 헌신시키는 그 뜨거운 자리에서 '고지론' 말고 무엇이 선포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는 그게 가장 큰 부담이었다. 그 고지론이 어떻게 어떤 모양일지도 모르면서 단단히 결심을 했다. 소신 있는 강의를 하자. 비록 이성 교제 강의지만 '축복'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전인적인 성숙'을 전하기로 하자. 허무하게도 '고지론'과 제대로 맞짱 뜰 일은 없었다.

5.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코스타가 사랑한 고지론 주강사들의 몰락으로 시카고 코스타는 과도기 같은 걸 겪고 있는 것 같다. 리더십이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리더십이 세워지지 못한 탓일까?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집회 주강사들의 메시지 때문인 것 같다. 매우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도통 '자유케 하는 복음'의 힘을 느낄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는 '나의 삐딱하고 눈만(귀만?) 높은 교만' 때문일 것이다.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고지론이 실패한 자리에 확실한 방향 선회(이게 회심인데)이 없는 것 아닐까. 대놓고 '고지론'만 아니면 되는 복음이어서일까? 도통 이 어그러진 세상에서 자유케 되는 참된 능력이 무엇이라는 것인지, 열심히 들어도 나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아, 물론 그럼에도 100여 명의 참가자가 선교사로 헌신 했고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한 사람도 꽤 됐다. 그런 결실들을 보며 감사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청년들은, 아니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기본적으로 무슨 설교를 들어도 은혜받을 태세가 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더더욱 말씀을 전하는 분들은 진지해야 하고 성실해야 한다. 청중이 청년이니까, 들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저 몇 번 빵빵 터뜨려주고,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깊은 성찰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설교'는 들을 만큼 들었다 아이가. 


 

6.
오프닝 특강으로 김근주 교수님의 메시지를 듣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코스타에 실망하고 삐칠 뻔 했다. '어그러진 세상'에서 자유케 되는 복음을 그 강의를 통해서 확실히 들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어쩌면 첫 강의가 너무 좋아서 기대가 한껏 높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자유'는 자기 발로 서서 걷는 것이다. 무엇인가에 붙들려 있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선착순 세상, 기회균등이라고 하지만 그 기회란 결국 돈과 능력을 이미 선점한 사람들에게 일착으로 주어지는 세상 말이다. 이렇게 어그러진 세상에서 너도나도 유일한 '고지'(김 교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으로 표현했다)를 향해 달려가며 '욕망'과 '두려움'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자유의 발목을 잡는 이 욕망과 두려움에 대한 진단, 그리고 베데스다 따위에는 도통 관심이 없으신 예수님이 메시지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어그러진 세상'에 대한 눈이 열리지 않고 진정한 '자유'란 없다. 어그러진 세상이 달려가는 방향에서 선회하지 않는 이상 자유란 없다. 개인적으로 코스타 주제에 부합하는 가장 힘 있는 메시지였다. (고지론이 무너지고 난 자리에서 전해져야 할 진짜 복음은 이것이라 생각한다. 부디 내년에는 이런 분들이 집회의 주강사 되시길)

 

 

7.
아, 어메리카에 가니 난 정말 작아도 너무 작은 사람이더라. 어디 앉아 있어도 보이지도 않는 사이즈. 초딩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얼굴만 안 보여준다면 못 골라낼 사이즈. 몸 뿐이 아니라 어떤 존재의 사이즈 자체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작은 나 자신을 더 또렷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나 자신에 걸맞은 삶 그 이상을 욕망하거나 그 욕망을 붙드느라 두려움에 발목 잡히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주는 청년들을 대상화하는 누를 범하지 않도록, 강의하거나 글을 쓸 때마다 '작은 나'를 인식하고 또 인식하려고 한다. 코스타를 경험하고 한 달 동안 곱씹어서 남은 것이 그것이다. 자유. 하루하루 더욱 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불같은 성령 임하소서. 지금 임하소서. 태우소서. 역사하소서이런 가사의 찬양을 애타게 부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수련회나 기도회에서 이런 류의 찬양을 부를 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에 엄청난 방점을 찍는다. 갈급한 마음으로 그야말로 목마른 심정으로 지금, 바로 지금이요!’를 목 놓아 외쳤었다. 첫 기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중학교 1학년 여름 수련회 때였다. 여전히 나는 멍석만 깔린다면 성령이여. 임하소서. 지금, 바로 지금 임하소서라고 부르짖을 태세가 되어있다.


유난히 성령 하나님을 구할 때의 목소리는 애가 타고 시급한 것 같다
. 이렇게 급하게 임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구하다가 오늘날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도 모른다. 눈앞에서 턱턱 사람을 쓰러뜨리고, 방언이 터지게 하고, 불치병을 치유하시되 이 모든 일을 순간적으로 처리하시는 분, 심지어 한 사람의 인격조차도 순간적으로 전혀 다르게 바꿔놓으시는 분으로 성령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믿음이 이렇듯 바로 지금, 눈에 보이는 복을 따라 부유하는 가벼움인 것은 그 오해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까.
 

 그리스도인 즉, 예수쟁이 된 우리는 예수의 음성을 사모한다. 고든 스미스는 그의 책 <예수의 음성>에서 말한다. 예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라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성령께 응답하고, 인도함 받고, 그분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 한다. 성령께 응답한다고? 매년 수련회 때마다 그렇게 애타게 불러도 또렷한 답이 없으셨던 성령님에게 내가 도리어 응답을 한다고? 그렇다. 오순절 사건의 매우 큰 의미는 모든 신자가 각.. ... . ... 성령의 직접적인 임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우리의 속사람에 대한 성령님의 직접적인 감화에 대한 균형 잡힌 분별에 대해 안내한다. 그 안내에 마음의 귀를 열어 젖어들다가 어느새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책을 읽다가 성령 충만을 받는다? 내게는 가물어 메마른 땅에 폴폴 먼지만 날리던 날이 있었다. 영혼의 메마른 나날이 오래 지속되었다. 방언을 주시던가, 하다못해 능력 있는 사역자의 터치를 통해 기름부음을 주시던가 어떻게든 좀 해달라는 마음만 간절했다. 그 때 손에 들려진 이 책을 통해 인격이신 성령님이 나의 감정과 지성이 교차하는 속사람 안에 아주 가까이 계심을 알게 되고 느..게 되었다. 독서라는 지적인 활동을 통해 내게 아주 가까이 계시는 성령님을 느끼게 되었다니 기적이라면 이런 것이 기적이 아니겠나? 성령을 통한 예수의 음성은 양철 지붕에 소낙비 떨어지듯이 아니라 스펀지가 물에 젖듯임하는 것임을 마음으로 깨닫고 느끼게 된 것이다. 중학교 1학년 그 여름의 수련회 때 시작된 긴 목마름이 그렇게 해갈된 것 같았다. 능력을 행하는 성령사역자가 아니라 영성 깊은 신학자의 차분한 가르침으로 말이다.

 

<성령충만,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의 저자 박영돈 교수는 존 오웬을 인용하여 말한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던 유대인들이 성자 하나님을 배척했다면, 교회시대의 신자들은 성령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다.’. 수천 년을 기다리던 메시아가 갈릴리 빈민촌의 무력한 목수의 아들일리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능력주의 시대에 세미한 음성으로 일하는 성령님이라니 가당키나? 질병과 인생의 문제들을 꾸짖어 떨쳐내는 왕의 권세가 필요할 뿐이다. 사랑을 확증하고 죄를 깨닫게 하는 성령님? ‘하나님 아냐, 눈앞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 하나님은 좀 그래이렇게 우리는 성령하나님을 거부한다. 이러한 세대를 향해서 불을 뿜어내는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시들게 하고 쇠하게 하는 성령의 후폭풍을 설파하는 신학자의 뜨거움 외침을 들을 필요가 있다. 성령 충만에 관한 깊은 신학적 통찰이 담긴 글의 행간에서는 한국교회를 향한 저자의 아프도록 절절한 애정이 읽혀진다. 성령의 은사를 도구삼아 스스로 영광을 취하는 자칭 성령사역자들과 목회자들이 들어야 하고, 영적 조급증에 허덕이며 그런 지도자들의 설 자리를 만들어주는 우리들이 들어야 한다. 성령님에 대해서 새롭게 배워야 할 때이다. 배우고 깨닫다가 느껴지고 들리는 참된 기적이 있기를.

 

* <QTzine> 7월호, 주제가 있는 책 소개 - 성령충만

 

 

 

브레넌 매닝의 <아바의 자녀>를 만난 것은 에니어그램에 빠져서 꿀을 빨던 시기였다. 에니어그램 지도자 과정을 마치고 뜻밖에 연구소 강사 제안을 받았다. 고민 끝에 수락을 하고 가톨릭 단체인 연구소에 몸 담고 있던 기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수련을 받으면서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남편이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교회에 대한 희망이 메말라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신앙의 성숙과 인격의 성숙, 그리고 영적인 성숙에 대해서 풀지 못한 의문으로 살아온 내게 매일 매일 무릎을 치는 답이 주어지는 나날이기도 했다. 개신교 모태신앙으로 자란 내가 가톨릭 단체에 가서 지내면서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은 또 다른 과제였다. '같은 예수님이었는데, 사랑의 하나님이었는데 왜 이걸 교회에서 배우지 못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하면서 동냥젖을 얻어 먹는 아이처럼 주눅들고 긴장되었었다. 그때 브레넌 매닝을 만난 것이다. 사제서품을 받았던 그가 프란체스코회를 탈퇴하고 결혼을 했다는 것, 개신교의 (특히 나의 래래크랩!) 영성작가들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저자소개만 보고 <신뢰>라는 그의 저서를 집어 들었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넘너드는 저자라는 것만으로 꽂혔다. 그리고 <신뢰>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저서 <모든 것이 은혜다>까지, 어린이를 위한 책 <아바를 사랑한 아이>까지 읽고 또 읽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오가며 혼란스러운 내게, 한편 죄책감에 시달리는 내게 <아바의 자녀>는 꼼꼼하게 답해주었다. 놀랍도록 필요한 말을 내 마음에 넣어주었다.


사람의 내적동기를 살핀다는 에니어그램을 좀 배우고 나서 '남의 동기가 다 보인다'며 자만하고 판단하고 정신 못차리던 내게 브레넌은 말했다. '이 자리에 앉은 우리 중 누구도 한번이라도 남의 동기를 본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행동 이면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말이 아니었으면 나는 에니어그램이라는 그 좋은 도구를 가지고 사람을 난도질 하는 일을 멈출 수 있었을까? 나를 구원시킨 말이었다.


진정성이란 느껴지지 않는 설교, 공허한 기도 소리, 은혜를 가장한 영적 게으름과 완고함 등으로 환멸이 깊어질 즈음이었다. 종교적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종교의 권위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향해서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우리 내면의 바리새인은 거짓자아의 종교적 얼굴이라고 그가 가르쳐 주었다. 내 안에 타오르던 분노와 환멸이 다른 사람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충격적 깨달음으로 나는 다시 태어나야 했다. 내 거짓자아는 싸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끌어 안아야 하는 진리를 알았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거짓자아의 이런 저런 면을 끌어안지 않을 때 그것은 적이 되어 우리를 방어적 자세로 몰아간다. (중략) 자신의 죄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자신의 참 자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베드로는 내면의 거짓 자아와 친구가 됐으나 유다는 자신의 거짓자아에 격분했다.


마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나는 그런 잠정적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사람들을 향해서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웬만한 요청들을 거절하지 못한다해도 내 마음이 외부에 영향받지 않을 딱딱한 상태이면 드러나는 것은 가짜요, 자기방어일 뿐이다. 브레넌은 이렇게 정리해 줬다. '영향을 입을 줄 모르는 심장은 인간 실존의 어두운 신비 중 하나다. 그 심장은 게으른 마음과 나른한 태도와 묵혀 둔 재능과 묻혀진 희망으로 인간 내부에서 차겁게 뛰고 있다.' 내 마음이 타인을 향하여 말랑말랑해지는 것, 무엇보다 아바의 사랑을 향해 말랑말랑해지는 것이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마지막 저서 <모든 것이 은혜다>에서 보여준 그의 적나라한 고백은 한 글자도 빼놓을 수 없이 '모든 것이 내게 은혜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사제였고, 영적 지도자였고, 유능한 강사였고, 저자였던) 브레넌을 그 이름 외에 달리 부를 호칭이 없다. 별다른 호칭을 가지지 않은 그가 마지막 저서에서 보여준 것은 '언해피 앤딩의 인생'이었다. 사랑을 위해서 사제 서품을 버리고 결혼을 했으나 이혼의 아픔을 안고 외롭게 노년을 보내는 그 쓸쓸함, 유능한 강사로 사람들을 감동시켜 주께 돌아오게 한 후 잠수를 타서는 알콜에 빠져들었음을 자기 입으로 고백하는 그 처절한 굴욕. 그런 적나라한 고백들은 '나는 인생 잘못 살았다.'라고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그의 삶에 어찌 자랑거리가 없으며, 성공한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례가 없겠는가. 말년의 그에겐 '부랑아'의 여정 외에는 내세울 게 없었고 그럴 때 비로소 가슴으로 고백할 수 있는 말이 '모든 것이 은혜다'인 것이다. 온 몸으로, 전 인생으로 브레넌이 고백하는 것은 '은혜, 그렇게 값 싼 종교적 유희가 아니다' 라고 들린다.


지난 주일 아침, 그가 이 세상을 떠났단 뉴스를 들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을 잃은 것처럼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주일 예배에 가서는 그를 마음에 품었고, 때문에 그 예배는 '브레넌 매닝 천국 환송예배'가 되었다. 다시 한 번 천국을 향한 소망으로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한 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한 없이 고마운 분이다.


브레넌,
아바의 안전한 품에서 편안하시죠?
2년 전에 먼저 그 곳에 도착하신 그리운 저희 시아버님, 청년 한솔이,
오래 전, 어린 제게 크나큰 이별의 상처를 남기고 떠나
곳에 터줏대감이 되셨을 우리 아버지. 모두 만나셨나요?

헨리 나우웬 신부님과도 기쁘게 얼굴 마주하셨겠죠?
그 분들께 안부 전해 주세요.
특히 최근에 그 곳에 가신 저희 작은 고모 좀 챙겨 주세요.
이 곳에 사실 때 저희 남매와 엄마에게 굴욕감과 상처를 많이 주신 분이에요.
입관식에서 고모한테 말했거든요. 우리 아버지 만나면 싹싹 빌고 사과하라고요.
사과한 것이 확인되시면 이 말씀 전해 주세요.
고모도 누굴 사랑하거나 다독여 줄 처지는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고요.
그렇지만 고모를 용서하는 것은 제가 나중에 가서 직접 할게요.
저 역시 그 곳에서 그립던 모든 얼굴들 만날 수 있음을 알아요.
'나는 삶이 가장 두려울 때 죽음도 가장 두렵다' 라고 한 당신의 말을 기억해요.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가 있는 그 곳,
그 곳을 향해 한 걸음 씩 더 가까워지는 삶을 기쁘게 살아가며
죽음에 용감히 마주설 수 있도록 현존하는 부활을 살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책 <아바의 자녀>에서 전해 준 그 고백들을 제게 선물처럼 주어진
에니어그램을 가르치면서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 일을 제 남은 인생의 소명이라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고마워요. 브레넌.
거칠 것 없는 그 곳, 아바의 품에서 잘 지내세요.
안녕.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강가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 지도 몰라요.’(시인과 촌장의 ‘좋은 나라’)

 

어려워진 관계를 풀어보려고 애를 써보는데 풀리기는커녕 더 골이 깊어지는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을 때 생각나는 노래다. 이 세상에서 온전한 회복이 있겠는가. 온갖 오해와 미움 벗어버리고 맑은 얼굴로 만날 날이 있으리라. 지금 여기 말고 그 나라, 그 좋은 나라 말이다. 이 노래가 주는 위로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천국은 너무 멀고, 당장 이번 주일에 ‘당신’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문제’는 나남이 다르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소그룹 모임에서 반드시 피해야할 토론 주제가 있는데 ‘정치’ 라고 한다. 분명하게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맞붙어 얘기해 봐야 서로의 말에 베이고 찔려 피차 상처받는 것 외에는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제랄드 싯처가 <사랑의 짐>을 통해 내놓는 해법은 ‘서로’에 방점을 찍고 ‘사랑하라’는 단순한 명령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 되었을 때 달고 나왔던 제목, <차이를 넘어선 사랑:Loving Across Our Difference>은 ‘서로의 차이 vs 서로 사랑’의 공식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첫 장을 ‘서로 반가이 맞아들이라’, 즉 ‘인사하라’는 제안으로 시작한다. 나와 달라 힘겨운 그 사람이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봐도 심장이 쿵 내려앉지만 ‘인사’하는 정도의 ‘사랑’은 다시 해 볼 수 있겠다 싶어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으니 관계 문제로 인한 분노와 죄책감의 ‘수고롭고 무거운 짐’ 을 내려놓고 대신 쉽고도 가볍다고 하는 그 분의 멍에, ‘사랑의 짐’을 지겠노라는 결심 같은 것이 선다.

 

 

 

 

살짝 틀어진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것은 '그 사람은 나쁘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꼬리표를 붙여버릴 때다. 그 사람이 나쁜데 그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선할 수 없다. 결국 나도 같이 나빠지기로 하면 끝도 시작도 없는 미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심리상담가이지만 성경적 인간관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 저자는 끊어진 관계가 다시 결속되는 것은 내 안의 선한 충동이 이끌어져 나올 때라고 한다. 내게 선한 충동이 있다고? 설령 있다 해도 그 선한 충동이 나에 대해 험담하는 친구, 고집대로만 사는 대화가 안 통하는 남편,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성경의 권위를 내세우며 통제하는 목사님에게 풀려나가야 한다니? 래리크랩은 독자보다 먼저 이 의문을 제기하고 답한다. 그렇단다. 그런 사람에게조차 흘러갈 선한 것이 내 안에 있단다. ‘선한 충동’은 제랄드 싯처가 말하는 ‘서로 사랑’의 다른 버전이다. 그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이미 주어진 선물이라 하니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끊어버린 페이스북 친구를 다시 구제하여 연결되는 그런 소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좋은 나라에 가기 전에 바로 여기서 말이다.

 

 

인면수심의 범죄자 이야기에 치를 떨지언정 솔직히 말하면 그를 용서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 내 자존감에 치명적인 상처를 낸 그(그녀)에 대한 분노를 내려놓는 것보다는 말이다. 아니 말 자체의 모순이다. 그 범죄자는 아무리 지은 지가 중해도 내가 용서하고 말고 할 대상은 아니니까. 힘겨워진 관계를 풀고,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기 위해서 크든 작든 ‘용서’는 필수 과정이다. ‘내게도 잘못이 있다.’며 쌍방과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틀어진 관계는 용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필립 얀시가 ‘용서 전문가’라고 부르는 루이스 스미디스의 <용서의 미학>은 다짜고짜 용서하라 설교하지 않는다. 용서의 ‘용’자도 떠올리기 싫은 해를 당한 우리 마음을 깊이 알아준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잘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쓰라린 마음과, 그가 나의 또 다른 지인과 아무렇지 않게 히히덕대는 걸 보면서 분노로 빨라지는 심장박동도 말이다. 그리고 천천히 안내한다. 결국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하게 되는 것임을. 용서전문가의 안내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날엔가 그(그녀)가 ‘정말 잘되기를’ 바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 용서를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잠깐의 위로나 받자고 부르는 자위의 노래가 아니라 온전히 회복되는 그 날을 기대하는 참된 소망의 노래로 말이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곳에서 만난다면 서로 하고프던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그냥 마주보고 좋아서 웃기만 할 거예요.’

 

<큐티진> 4월호, 주제가 있는 책 소개 -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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