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5


헤이즐넛 커피에는 헤이즐넛이 없다


이석아, 집에 잘 들어갔지? 오늘 만남 정말 유쾌했다. 좋은 친구들이 모여서 떠들며 울고 웃다 보니 시간이 휙 지나가버렸어. 물고기가 파닥거리는 듯 생기 넘치는 수다, 정말 오랜만의 경험이야. 한 발 물러서서 너희 대화를 지켜보는 것도, 가끔 나이를 잊고 끼어들어 주책을 부리는 것도, 노인네처럼 간간이 꼰대 멘트 날리는 것도 즐거웠다. 모임에 초대해줘서 고마워.

지하철 기다리며 잠깐 나눴던 얘기, 특히 지난번 2유형에 관한 대화 이후에 깨달았다고 했던 것들 말이다. 대견하고 흐뭇해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참에 빨리 진도 빼서 자기들 얘길 들려달라던 3번 삼진이와  4번 사라의 재촉을 살짝 모른 척하고 다른 얘기 하나 주절거려야겠어. 핑계 김에 이 늦은 밤에 커피 한 잔을 또 내렸네. 제대로 짙고 쓴 맛이 당기는 지금, 마침 코스타리카 볶아 둔 게 있어서 딱이다. 하아, 커피 좋다!
아까 칠규가 그럴 듯하게 떠들어대던 헤이즐넛 커피 얘기 너무 재밌었지? 원래 헤이즐넛 커피 종이 따로 있다며 허풍을 떠는 게 어쩜 그렇게 진짜 같애? 그런 커피는 없고 커피에 인공 헤이즐넛 향을 입힌 거라는 불편한 진실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결코 당황하지 않고 인공적인 향이 담아낼 수 없는 자연의 향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떠들어대는 칠규! ㅋㅋ 코스타리카와 헤이즐넛 중에 어느 게 진짜 커피 같으냐고 물으면 웬만한 사람들은 십중팔구 헤이즐넛을 꼽을 거야. 헤이즐넛을 비롯한 향커피들이 인공 향인 줄도 모르고, '아, 커피 향 쥑인다∼' 하면서 한동안 우리가 얼마나 열광을 했었냐?


'나는 싫은 소리 못해요'의 불편한 진실

이석이가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니 참 대견해. 단지 거절하는 걸 배우겠다는 결심 때문이 아니라 그 다음 고백 말이야. 사람들의 부탁이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나 싫은 소리 못하는 걸 은근히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저는 거절을 잘 못해요' 라는 말은 '저는 착한 사람이에요' 라는 뜻이었다고 했지? '나는 거절을 잘 못하고 싫은 소리는 안 하는 착한 사람이다'라며 너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 발견했다는 거지.

너는 별것 아니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별것'이고 굉장한 통찰이다.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유형을 찾고 내적 여정을 걸어가는 거… 대단한 게 아니야. 유형을 안다고 해서 모든 어두운 것들을 확 벗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렇게 자기 자신도 모르던 속마음을 하나씩 알아가고 인정해 가면 되는 거야. 나조차도 속아 넘어가던 마음의 숨은 동기를 하나씩 발견해 사랑의 빛 앞에 비추는 것, 그것이 에니어그램을 통해 안내하고 싶은 마음의 여정이란다.


이미지에 죽고 이미지에 살고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있다. '부정적인 말은 절대 하지 않기'(또는 결코 못하는 것)를 방어기제로 쓰는 2유형만 그러는 게 아닌 것 같아. '나는 딱 부러지게 거절을 잘한다. 할 말 다 하고 산다'는 사람이 그리 흔한가? 거의 못 본 것 같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과 상관없이 자신은 거절을 잘 못하고 부정적인 얘기는 더더욱 못(안)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 대표선수가 바로 이 모님이시다.

내가 영성지도를 받으며 감정에 관해 공부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야. 강의를 듣고 바로 수련활동을 하는데,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마주 앉으래. 그러더니 마주 앉은 짝과 서로의 매력적인 점을 얘기해주라는 거야. 좀 오그라들긴 했지만 시간이 길지만 않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 다음 활동으로 서로의 싫은 점, 못난 점 등 부정적인 얘기를 해주라는 거야. 당황!! 마주보는 짝들이 서로 어색한 웃음을 웃거나 서로의 눈을 피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분위기가 됐지. 지도자의 엄한 한마디에 계속 진행을 해야 했는데, 아… 정말 고통스럽고 진땀나는 시간이었어. 상상만 해봐도    음이지?^^
마주앉은 짝에게 칭찬이나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과 그 반대의 경우 중 어느 것이 더 쉽겠어? 나 역시 부정적인 얘기 못하는 걸 꽤 대단한 인격적 자랑으로 여겼거든. '지적한다고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좀 긍정적인 편이라 웬만하면 이해하고 수용을 잘 해요.'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 헌데 이 날 수련활동을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부정적인 얘기 못하는 건 '내 이미지 구겨질까 봐'가 정직한 답이었어. 타인을 배려해서 싫은 소리 안.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내 (착한, 교양 있는, 사람 좋은) 이미지 망가질까봐 못.하.는.것.이었더라고. 내 이미지 구기지 않고 내 스타일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하는 지극히 자기애적인 발로였으면서 거기에 온갖 좋은 해석을 끌어다 붙여 놓았던 거야. 뼛속 깊이 새겨진 자기기만의 습관이지.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혼을 내기도 하고 불같이 화를 낼 때도 있어. '너 아까 왜 인사를 제대로 안 했어? 어른들께 왜 그리 예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해!' 씩씩거리며 언어의 포탄을 투하하는 거지. 헌데 이런 경우 내가 그렇게도 화가 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애 교육을 엉망으로 시켰다는 소리 듣는 거 아냐?' 이런 데 걸려 있더라고. 아이들 교육 제대로 못한 엄마로 비쳐지는 게 싫은 거야. '바르게 양육한다'는 건 허울 좋은 명목이고, 그럴싸한 명목에 제일 먼저 속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더라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울고 웃고 좋아하고 걱정하는 많은 이유가 사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이거야. 조금 전에 내가 자기애라는 표현을 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기애도 아니고 단지 '나의 이미지 보존'에 대한 관심뿐이더라니까.


끝까지 붙드는 아홉 개의 자아 이미지

에니어그램 아홉 유형의 자아 이미지는 우리가 붙들고 있는 그 많은 이미지 메이킹 놀이에서 끝까지 내려놓지 않는 마지막 카드일지도 몰라. 조금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거야.


1유형
(뭐든 올바르게 해야 해. 올바르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수는 없어.)
 그래! 나는 올바르고 착한 사람이야.

2유형
(절대 이기적이거나 불친절한 사람으로 비치지는 않게 할 거야.)
 그래! 나는 도와주고 봉사하는 친절한 사람이야.

3유형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리 사소한 일에도 실패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겠어.)
 그래! 나는 유능한, 성공한 사람이야.

4유형
(보통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따르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게 할 거야.)
 그래! 나는 남다른, 특별한 사람이야.

5유형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어리석은 바보처럼 보이게 하진 않을 거야.)
 그래! 나는 많이 아는, 현명한 사람이야.

6유형
(무책임하거나 일탈행동을 해서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겠어.)
 그래! 나는 책임감이 강하고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내는 사람이야.

7유형
(재미없고 지루하거나 불행해서 꾀죄죄한 사람으로 보일 수는 없어.)
 그래! 나는 행복하고 멋진 사람이야.

8유형
(어떤 경우에도, 누구한테도 약한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을 거야.)
 그래! 나는 힘이 있는 강한 사람이야.

9유형
(문제를 일으키거나 갈등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보이긴 싫어.)
 그래! 나는 평화로운 사람이야.


유형의 설명을 듣다 보면 이 유형에도 좀 속하는 것 같고, 저 유형 얘기도 내 얘기 같고 그렇지? 결국 아홉 유형이 우리 안에 다 있는 거라고 봐. 평화롭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치? 내 안에 다 있지만 그 중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는 자아 이미지, 그걸 내 유형이라고 하는 거지.


가면을 벗고 내쉬는 숨

인공의 헤이즐넛 향을 입힌 커피가 더 그럴듯해 보이는 것처럼 사랑받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쓴 거짓 자아가 더 그럴듯한 나같이 보여. 유형의 페르조나를 쓰고 이미지와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할 때 오히려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느낀다는 거야. 자아 이미지에 부합하는 노력을 하니까 뭔가 사랑 받을 만하다고 느끼며 안심하는 거지. 그러다 자기가 만든 이미지일 뿐인 얼굴이 '진짜 나'라고 믿게 되는 거야. 내가 만든 가면을 쓰고선 가면이 나라고 믿는 거지.

아까 그랬지? 이석이 자신이 왜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모습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밤중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이석이라는 후배의 말에 완전 뿌듯하다고 했었지? 친구들의 궂은 일을 내 일처럼 함께 해주는 이석이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참 좋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살맛이 나면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열심히 몸을 아끼지 않고 돕게 될 거야.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이 메말랐다고 느낄수록 더 열심히 돕고 친절을 베풀며 애를 쓸 수도 있을 거야.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통해 내 존재감을 확인하고, 이에 부합하는 행동을 열심히 해서 다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으로 확인받고…. 이런 패턴이 반복되겠고, 그럴수록 점점 견고해지겠지. 이 패턴 속에서 거절을 하거나 부정적인 얘기를 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이석이뿐 아니라 각 유형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렇게 왜곡된 자아 이미지를 고착시켜 가게 돼. '자아 이미지'가 '자아'가 되어 버리는 거지.
이러다 보면 결국 하나님 앞에서조차 이 가면을 벗지 못하는 거야. '있는 모습 그대로 와라. 빈 손 들고 와서 십자가를 붙들어라.' 하시는 음성이 가면으로 인해, 막힌 귀로 인해 들리지가 않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조차도 올바른, 긍정적인, 책임감 있는, 평화로운, 강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거야. 그런데 이석이가 정직하게 자신을 성찰했을 때 '아, 내가 내게 속고 있었구나'를 깨달았잖아. 그 순간이 은총인 것 같아. 그렇게 알아차린 순간에 자아의 왜곡된 패턴이 끊어지며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스러운 자신'을 힐끗 보고 진리로 인해 자유의 숨을 쉬어보는 거거든. 참 감사하다. 한 번의 경험이 두 번이 되고 그러면서 영원에 잇닿은 자유의 호흡 또한 조금씩 길게 내쉴 수 있게 될 거야. 주님께 감사, 이석이에게 사랑을 담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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