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더위는 언제 끝나나? 여름 내 여름의 끝을 기다리지만 막상 보내려면 아쉬운 이유가 있었다.

더 이상 수박을 먹을 수 없다는 아쉬움은 더위와 싸우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의 크기와 막상막하였다.

('이다' 아니고 '였다'임)

수박을 향한 열정이 서서히, 인식도 못할 만큼 식어가고 있었다.

오늘에야 식어버린 수박 열정에 대하여, 그 이유에 대하여 깨달음이 온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도 수박 한 통을 사서 나르는 일이 버겁다고 느꼈지만,

이젠 수박 들고 집 계단을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아 살 생각을 못한다.

돌쇠 1,2,3이 함께 장을 봐줄 때 한 통씩 또는 반 통씩 사기도 하지만

계단 등반에 성공하여 싱크대 앞까지 운반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이 무겁고 딱딱한 놈에 칼을 집어 넣어 반으로 가르고, 먹기 좋게 썰어서 통에 담아 놓기.

계단 오르는 일이 다리의 수난이라면 썰기는 팔목의 노역이다.


팔 다리의 힘이 노역에 부응하지 못한 탓으로 수박 먹는 즐거움을 알아서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한 5년, 삼시세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베스트 허즈밴드로서 아내에게 최상의 가사 복지를 제공했던 그가,

그랬던 그가! 삼시세끼를 집에서 먹는 三食이 세끼 님이 되신 것이다.

심지어 지병을 하나 얻으셔서 빵이나 씨리얼도 아닌 섬유소 많은 반찬에 국에 밥을 챙겨 드셔야 하는......

그러니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은 땀뻘뻘 '체험 삶의 현장'이 되었다.

수박의 단물이나 빨던 시절은 다 지나간 것.


착한데다 아프고, 아픈데다 내게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삼식이 남편을 미워 할 수도 없네 그려.

돌덩이 같은 수박 한 통이 싱크대 위에 오른 어느 날, 삼식이 남편에게 칼자루를 쥐어 주었다.

도저히 내 힘으로 칼을 꽂을 수 없으니 힘 좋은 삼식이 돌쇠께서 어떻게 좀 해보라고.

그날 이후로 삼식이는 수박 썰기에 취미를 붙였다.

크기와 두께 딱딱 맞춰서 썰어 내는 것이 나름 적성에 맞고 신나는 모양.

애들은 적응이 참으로 빠르다. '아빠, 우리 수박 먹으면 안돼?' 칼자루고 아빠 쪽으로 간 것에 금방 익숙해졌다.


저녁식사 마지막 숟가락들을 놓는데 삼식이 아빠가 뭔가 앞북 치는 느낌으로

'과일 뭐 먹을까? 살구 먹자. 살구! 수박은 내일 먹자'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데, 발연기 일인극 쩐다.

(어리숙한 꼼수쟁이 가트니라구!)

얕은 꼼수에 대한 응징으로 관객은 엊나간다. 나는 수박, 나도 수박, 아빠 수박 썰어줘.

발연기 꼼수 실패로 칼 잡은 김에 수박 예쁘게 썰더니 아티스트로 변신하여 작품을 내놓았다.

작품의 모티브는 현승이 얼굴,

제목은 [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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