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사춘기』 출간한 지 1년 하고도 몇 개월 지났다. 개인적, 국가적, 전 지구적인 위기를 통과하는 시간이 끼어서인지 한 10년은 된 일 같다. 아직 좀 살아 있어야 하는 책인데...... 소도시에서 목회하며 6,7년 꾸준히 책모임 해오시는 목사님들과 '저자와의 만남'이란 거창한 이름의 소소한 '만남'을 가졌다. 만남은 좋은 것이다. 만남이 좋다고 말해서는 소용이 없다. 만나봐야 만남이 좋음을 알게 되는 것. 어쨌든 만나보니, 만남은 좋은 것이다. 덕분에 내게도 희미해진 책 신앙 사춘기』를 다시 떠올렸고, 무엇보다 그 아픈 글을 써낸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독서 모임에서 읽으셨다는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과 , 신앙 사춘기 두 권 모두 보통의 목사님들에겐 불편한 책이다. 어떻게들 읽으셨을까. 보수적인 도시에서 목회하시는 분들께 특히 신앙 사춘기』가 어떻게 다가갈까. 상상되는 바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저자를 만나고자 하시니 긍정적으로 보셨던 걸까? 도둑 제 발 저리는 느낌으로  "책이 불편하진 않으셨냐?"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흔들리는 동공과 주고받는 눈빛으로 답해주셨다. "불편했죠." 그래서 '불편'을 기본값으로 깔고 시작했다.

 

마침 우리 아버지가 속하셨던 교단의 목사님들이다. 신앙 사춘기』 쓴 배경 설명을 아버지 얘기로 시작했다. "아버지가 저를 58세에 낳으셨어요." "네~에?" 여기서 다들 놀라시지만 총알이 하나 더 있다. "더 놀라운 얘기 해드려요? 저한테 동생도 있어요. 동생은 환갑 둥이예요."(기본값 '불편감' 20% 제거 : "세상에 이런 일이!") "아버지는 평안도 철산 출신인데, 1.4 후퇴 때 월남하셨어요. 평양신학교를 다니던 신학생이었고, 월남해서는 부산으로 이전한 '평양신학교'를 다니셨습니다. (불편감 10%  또 제거 : "우리 대선배님이시네!") 홀로 목회하시다 늦은 나이에 교회 집사와 목사로 엄마를 만나셔 결혼하셨고, 그렇게 늦게 저희를 낳으셨어요. 저는 목사의 딸로 태어나서 교회의 딸로 자랐어요. 고등학교 때 주일 끼어서 가는 수학여행 당연히 가지 않았고요. 청년 시절, 토요일 주일은 밥도 못 먹으며 봉사했어요. 청년부 주보 편집, 성가대 지휘에. 직장 생활하는데 주일 출근하란 말에 사표 내고 나왔고요. (불편 값 20% 제거 : "태생이 삐딱한 건 아니구먼. 청년 시절로 치면 나하고 비슷하네!") 한 교회에서 만난 남편이 결혼하고 한 6년 후에 신학을 했어요. 모교회에서 부교역자로 봉사하면서 신앙 여정에서 지진이 났지요. 내 인생 가장 존경하던 목사님이 저런 분이었어? 교인들 대하는 얼굴과 부교역자 앞에서 얼굴이 이렇게 다르다고?!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신앙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로부터 한 10여 년 그야말로 신앙의 사춘기를 겪었고, 그 시절을 통과하고 나서 쓴 글이지요."

 

이런 얘기를 하는 동안 불편감이 조금씩 제거 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무장해제 되었고, 긴장이 사라졌다. 첫 질문하신 목사님께서 "사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불편했는데, 지금 말씀해주신 것으로 이미 다 이해가 되었다"라고 하셨다. 오랜 시간 독서 모임을 이끄셨고, 내 책을 모임에 추천하셨고,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신 목사님께서도 솔직한 말씀을 하셨다. '책을 추천하고 나눔을 하면서 당황했다. 책을 추천하고 나눔을 준비하며 좋은 반응을 기대했다. 내 기대와 달랐다. 나는 저자를 아니까,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한데 책만 읽은 목사님들의 반응이 달라서 당황했고, 나눔을 진행하다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안다는 것은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나눈 대화는 책 너머의 진실을 전하고 듣는 시간이 되었다. 나도 안다. 의식하고 썼다. 신앙 사춘기』는 치우친 책이다. 부러 목사를 몰아세웠다. 목사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많아서 그랬다고, 서문에 썼지만 더 아픈 뜻도 있다. 내 아버지, 내 남편이 목산데 목사가 욕먹는 현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던지는 낫겠다 싶어 선택한 '위치'인지 모르겠다. 내가 먼저 던지자. 내가 먼저 큰 돌을 던지자. 실은 내 마음은 목사님들, 교회 개혁 따위 모르는 착한 교인들에게 가 있다. 신앙 사춘기』를 써내놓고, 여기 담긴 글들이 교회를 조롱하고 목사들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소비되는 것이 가슴 아팠다.

 

여하튼 불편감이 많이 해소 되었다. 책이 아니라, 글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 나누니 불편한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함께 하신 목사님들의 불편감을 얘기가 아니라 내 것을 말하는 것이다. 쓸 때도 알았고, 출간하고도 알았지만 "아, 나 그때 일부러 치우치기로 작정하고 썼던 거구나! 맞아, 그랬지. 그래서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울지 않을 수 없었어." 치우치기로 작정했기에 더 멀어진 반대쪽을 바라보며 울 수밖에 없었음을 다시 알겠다. 그 반대쪽에는 우리 부모님이 있고,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가 있고, 목사로 살아야 하는 내 남편이 있으니까. 불편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불편한 곳에 머물러 내가 쓴 글의 이면을, 나의 이면을, 내 마음의 이면을 새롭게 만났다.

 

인사말로 50% 정도의 불편감은 해소되었다. 대화가 무르익어 가면서 나머지 50%가 해소된 것은 물론이고 200%의 공감으로 연대감이 형성되었다.  그 이야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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