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준비를 마치고 생긴 텅 빈 시간, 

햇살 드는 창가에 앉아 책 읽을 여유가 생겼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탁자에 놓은 순간,

바보, 라는 글자에 조명이 들어왔다.

바보, 으이그 바보, 따뜻한 위로처럼 다가왔다.

긴 하루 일정을 마치고 오랜만에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옆 아파트와 우리 아파트를 잇는 데크를 참 좋아하는데, 

키가 큰 나무들이 있고 새들의 마을회관이다. 

그네들의 수다에 귀 기울이며 천천히 걷게 되는 길이다.

재잘재잘, 푸드덕푸드덕 소리에 어쩐지 '외롭다'는 마음이 든다.

엄마가 보고싶은 것 같기도 하고.

된장찌개 바글바글 끓인 밥상이 차려진 집에 가고 싶다.

아무런 노력하지 않아도 밥이 나오는 집,

이해하려고, 이해 받으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나로 있어도 편안한 어느 곳.

외롭다, 생각하니 외롭고

지치는구나, 생각하니 지친다.

그때, 오늘의 마지막 햇빛이 걸린 초록잎이 눈앞에!

바보야, 나 여깄다. 메롱.

나 여기 있잖아. 

그렇군요, 계속 거기 계셨군요.

음소거 버튼까지 누르셨나.

새들의 요란스런 수다가 뚝 끊어지고,

잠깐, 아주 잠깐 다시 그분과 눈을 맞추었다.

인증샷 남기려고 카메라를 드니 어느새 헐거워지는 저녁 햇살.

사진 몇 장 찍고 풀어헤쳐지는 빛을 보며 한참 서있었다.

음소거 해제되었고, 새들의 수다는 다시 요란하다.

당신 참 수고가 많으십니다.

바보 알아듣게 말씀하시려 애 많이 쓰시네요.

노력이 가상하여 당신 마음 알아드립니다.

실은 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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