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의 <슬픔을 쓰는 일> 리뷰입니다. '탐독의 시간'이라는 꼭지 제목이 무색하지 않습니다. 글을 쓸 때는 그렇습니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감춰야 하는 것들이 많죠. 감춘다고 완전히 감춰지진 않는다는 것을 구권효 기자의 이 글이 증명합니다. 감추며 발견해주길 바라는 저자의 어떤 마음을 이렇듯 울림있는 글로 드러내주었습니다. 아래는 페이스북에 기사를 공유하며 붙인 저의 글이고, 기사는 링크를 클릭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작년 6월, 강남의 어느 카페에서 구권효 기자를 만났다. 엄마 돌아가시고 연구소 일 외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던 시절이었다. 취재원으로 만났는데 무슨 기사에 대한 취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기자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은 기억만 있다. 아래 글에서 당시 ‘위로의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고 썼지만, 실은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한 위로였다. 이 글도 그렇다. ‘그랬구나, 참 힘들었겠네’보다 더 좋은 공감은 어렵게 얘기를 꺼내놓은 이야기로 건드려진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는 일이라 생각한다. 구 기자가 만나자마자 들려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는 그렇게 느껴졌다. 당시는 애도 일기가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을 때다.

글 쓰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슬픔을 쓰는 일>을 내놓기로 작정했을 때 나 역시 상상하는 독자가 있었다. 일찍 부모를 잃고 ‘고아 의식’으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물론, 언젠가 부모 잃‘을’ 사람도 상정했다. ‘엄마 돌아가시니 후회 많이 되더라, 그러니 살아 계실 때 잘해.’ 같은 하나 마나 한 말을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구 기자가 읽어낸 바로 그 지점인 듯하다. 이 책 <슬픔을 쓰는>일은 단지 엄마 잃은 슬픔이 아니라 엄마와의 오랜 화해의 여정이다. 조심스런 이런 제안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시거나 부모와의 화해 여정을 시작해보자고.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내가 나로 살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 <슬픔을 쓰는 일>은 <포스트 신앙 사춘기>이다. 오늘의 나로 살기 위해서 심정적으로 ‘모’ 교회를 떠나왔다. 엄마의 신앙을 두고 던질 수 있는 모든 비난의 돌을 다 던진 끝에 쓴 글이 <신앙 사춘기>이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입에 달고 살던 엄마에게 ‘종교 중독자’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분노를 쏟아부었다. 이제 와 고백컨대, 만만한 엄마는 투사의 대상이었다. 구 기자의 말처럼 ‘모교회’는 ‘엄마-교회’였으니까. 한국 교회에 대한 절망, 젊은 날 한때 존경했던 교회 지도자들에게 느낀 실망과 배신감을 다 투사하여 엄마를 내 앞에 세웠다. 실은 엄마는 힘이 없는 사람이었다. 영적 학대를 할 수 있을 만큼 권력자가 아니었다. 엄마가 내 앞에 계실 때나, 돌아가신 지금이나 마음 한구석 가장 쓰리고 아픈 것은 신앙 사춘기를 겪으며 엄마를 세워두고 했던 ‘지랄’이다. 언젠가 제대로 사과하고 싶었는데... 이놈의 사춘기는 지나갈 듯, 지나갈 듯 끝나지 않았고. 엄마와 엄마로 대변되는 옛날 신앙(어쩌면 예전의 ‘나’)과 온전히 화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슬픔을 쓰는 일>은 어쩌면 참회록이다. 처절하게 미워했던 엄마에게 미안하단 말을 건네지 못한 것. 엄마를 처절하게 미워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것. 참회록이다. 구권효 기자의 이 글 덕에 뒤늦게 엄마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말할 용기가 생겼다. 여러 번 울컥하며 글을 읽었다. 다 읽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니, 무슨 기자가 이런 글도 잘 써”하고 혼잣말을 했다. 이런 글이 무슨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엄마와 내 이야기를 써 봐야겠다.’는 마지막 문장에 꽂혔다. 언젠가 뉴스앤조이에서 구권효 기자의 어머니 이야기 읽을 날을 기대해본다. 화해란 게 쌍방 간의 일인데 온전한 화해가 있을까. 부모님이, 부끄러운 한국 교회가 우리에게 사과할 일은 없을 테니. 사과하지 않는 존재들과 화해하는 좋은 방법이 ‘글쓰기’인 것 같다. ‘이런 글’도 잘 쓰는 구 기자의 ‘엄마-교회’와의 화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엄마의 신앙'과 화해하지 못한 이들에게

[탐독의 시간] 정신실 <슬픔을 쓰는 일>(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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