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기도하러 와요."
수녀님들과 수사님들은 '우리 집'이란 말을 흔하게 쓰신다. 몸담고 살고 있는 수도공동체를 '우리 집'이라 부르신다. 대학원 졸업동기 수녀님이 "선생님, 우리 집에 기도하러 와요. 벚꽃 필 때 우리 집 참 예뻐요. 한 번 와요." 하셨었다. 빈말이 아니었던 게 이 봄에 연락을 주셨다. 남편 안식월이 내게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月'이 되어버려 도통 시간이 나지 않았는데... '꿈과 영성생활' 여러 그룹을 동시에 종강하고 틈이 생겼다. 저녁기도 시간에 맞춰서 방문했다. 건축하는 공동체 수녀님이 직접 설계를 하셨다는 수녀원의 작은 성당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녁기도 시간이 20분인데, 그 시간에 대기 위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2시간을 갔다. 시편으로 드리는 베네딕토 수녀원의 저녁기도는 20분으로 끝났지만, 그리로 가는 길 이미 기도였으니 내게는 2시간 20분의 기도이다. 해가 떨어지고 있고 지붕 위의 닭이 울고 있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밤이든 닭이 세 번 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분이 말씀하신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부인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시고,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돌이킨 후에 내 양을 돌보라"라고 하셨다. 수녀원 여기저기 소개해 주시며 수녀님께서 "지붕 위의 저 닭은 깨어 있으라 뜻이에요."라고 하셨다.  20분, 2시간 20분, 오는 시간까지 4시간 20분... 기도는 모두 그분 앞에서 깨어있기 위한 시간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 남편과 함께 베네딕도 수도원 순례 여행을 떠난다. 순례 준비를 위해 묵상하고 있는 '베네딕도 수도규칙'의 지혜와 통찰이 믿기지 않게 놀랍다. 부러 신경 쓴 것도 아닌데, 마침 오늘 여기를 다녀오게 되었으니 이끄심이 신비롭다.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순례 여행을 통해 분별하고 결정할 일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답을 주신 것인가 싶기도 하다. 여기서든 저기서든, 이것을 하든 저것을 하든, 떠나든 남든 뭘 하든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 

 
뉴질랜드 남섬에서 본 엄청나게 키가 큰 미류나무를 보았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수녀원 동산에 이런 나무가 있었다. 놀라서 탄성을 내지르니... 수녀님께서 "내 성소예요. 이 미루나무 때문에 이 집에 온다니까." 했다. 성소聖召란,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이란 뜻이고 성직자나 수도자로 부름을 받아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온전히 봉헌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 커다란 미류나무를 보고 반해서 수녀님이 되셨다.... 는 것은 아니겠지만, 부르심을 확인하는 수녀님만의 무엇이었다는 것이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 표현에 의하면 이 미루나무는 수녀님의 '집으로 가는 길'의 이정표가 된 셈이다.


 나오는 길에 정원에서 본 붓꽃. 어릴 적 우리 집과 교회 사이의 둔덕에 흐드러졌던 것이 붓꽃인데... 어쩌면 내 마음의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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