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설교 준비 부담으로 가장 무거운 발걸음, 토요일 출근의) JP 아빠 

또는 남편이 부드럽게 명했다.
장보러 나간다고 했지? 나 김밥 하나 사다 줘.


아내와 딸, 두 여자의 장보기는 늘 그렇듯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늦게 출발, 

도로는 늘 예상보다 밀리고, 한두 번 네비를 잘못 보고 차를 돌리고 돌리고 한다.

두 여자에겐 일상이거니와, 점심을 기다리는 남자에겐 혹독한 시간.

(일까? 아니면 익숙해진, 각오 된 일상일까)


엄마, 시간이 이러면 아빠 점심이 너무 늦어지는 거 아냐? 배 고플텐데.

그러네! 아빠한테 전화 해.

뭐라고? 그냥 아빠가 사서 먹으라고?

아니. 우리가 늦게 갈 거니까 배 고프지 말라고.

일단 걸어. 엄마가 말 할게.


여보, 설교 준비 잘 돼? 우리가 장 보고 당신 점심 갖고 가면 늦을 거 같거든,

그러니까 당신 배 고프지 말라고. 배 고프면 안 돼. 알았지?

어, 알았어.

그래.

어.

응.

그래.

어.

응.

갔다 올게.

응.

끊어.


용건보다 긴 어, 응, 음, 그래....... 를 듣다 일그러진 채윤이 얼굴.

아니 썩어버린 딸의 표정.


김채윤, 부럽지.

어.

모가 부러워?

맘대로 조종 할 수 있는 남자가 있는 게 부러워,

배 고프지 말라면 배 안 고프고, 화를 내도 이쁘다 하고, 

넘넘 부러워.

야, 그런데 이런 남자는 세상에 없어. 너 아빠 같은 남자 찾지 마.

싫어!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아빠 같은 남자 찾아서 결혼 할 거야,

그게 내 복수야, 그런 남자 찾아서 엄마빠 앞에서 더 꽁냥꽁냥 할 거야, 

나는 교회 안 다니는 사람 이런 사람 만나는 게 복수가 아니야, 

반드시 아빠 같은 남자 만나서 엄마 약 올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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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근이 먹고 살아간다.

삼시 세끼 집밥 먹는 네 식구 돌봄 노동이 무보수 극한직업이지만,

굶기지 않고 먹여 살리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에 꽂힌 현승이,

스스로 감자볶음도 만들고 스팸에 구멍 뚫어 계란 채워 부치는 요상한 반찬도 창작하는 채윤이,

그리고 많은 집안 일을 하지만 요리는 통 못하는 JP.


그럭저럭 굶지 않고 먹고 살고 있다.


일(또는 공부)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 더욱 멀게 느껴지는 것은

집으로 고고씽!을 시원하게 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마트 들러 불편한 주차를 하고, 장을 보고, 낑낑거려야 돌아올 수 있는 집이라 그렇다.


식탁 차릴 때마다 공치사 한 스푼, 유세 한 사발을 애피타이저로 먼저 내놓으니

식구들도 꽤 지겹고 더럽고 치사하겠지만

진짜 삼시 세끼 밥 먹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그럭저럭 화평 이루며 먹고 살고 있다.


이번 설은 밖에서 식사 한 끼 하고  끝내기로 해서 따로 음식 할 일은 없는데

색다른 요리 하나 해보고 싶어서 머리를 굴려봤다.

이렇듯 자발적 에너지가 솟구칠 때, 이런 때만 밥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밥은 또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일본 가정식 식당에서 먹어본 연어장 덮밥을 종필, 채윤, 현승 모두 좋아한다.

그래서 도전했다. 연어장 덮밥.

짜다, 물 더, 엇, 간장 더, 엇, 혀에 감각이 없어.

간 맞추는데 고전 했지만 약간 조금 성공적.


시댁, 친정에 가져가려고 따로 담아둔 걸 현승이가 탐낸다.

정말 가져갈 거냐, 굳이 뭘 가져가냐, 얼마 되지도 않는데 두고 먹는 게 낫지 않겠냐.

이것은 칭찬. 맛있다는, 최고의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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