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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이름으로, 팽목항 기도회

larinari 2016.04.24 18:44




세월호 2주기하고도 일주일이 지난 23일 토요일, 팽목항 기도회에 다녀왔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기독인 모임​'이 도모한 긴 하루의 일정이었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준비하여 서울역 앞에서 7시에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40분. 열 시간 넘게 버스를 탔으니 기도회는 짧고 멀미는 길었다. 사서 고생을 하면서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다. 기사를 보는 순간 '어머, 여긴 가야해!'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신청했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툭 올라온다. 가기 전에도 그랬고, 당일도 내내 마음 한 구석 편치 않았다.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은 이거였다. '미안해할 것 없어. 가족 대표로 가는 거잖아. 김종필, 김채윤, 김현승을 대표해서 가는 거야' 그래, 가족 대표다.





# 남편에게 미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이 왠지 늘 미안하다. 남편 두고 혼자 놀러갔다 올때는 덜하다. 이런 일, 팽목에 기도하러 가거나 이런 저런 집회에 혼자 다녀올 때 '그래, 갔다와' 하는 남편 목소리가 참으로 쓸쓸하게 들려 긴 여운으로 마음에 남는다내가 김세윤 교수님의 북토크에 가고, 꿈공부 모임에 가고, 팽목을 다녀온 금토 이틀 남편의 일정은 늘 하는 행정업무 이외에 주례, 심방, 상담, 선교사 묘원 비석 닦기?였던가, 용인 순교자 기념관 청소하기였나? 그러했다. 마음은 거기 있어도 집회 한 번 함께 하지 못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산다. 단지 물리적인 시간의 제약만도 아니다. 공인인듯 공인이 아닌듯 공인같은 민간인 목회자로서 경계에 선 긴장이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래, 갔다와' 하는 말에서 많은 것이 느껴진다. 금, 토를 내 좋아서 하는 일로 다니다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왔다. 주일 새벽 출근 준비하는 남편이 장롱문 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엇, 셔츠 다려놓은 것이 있나?' 잠이 확 달아났다. 자는 척 숨죽이고 있다 실눈 떠보니 양복(이라 쓰고 목사의 작업복이라 읽는다)착용 완료상태다.


미안해, 여보. 내가 당신 대신해서, 대표해서 다녀온 거야. 진실로 그래.


# 채윤 현승에게 미안


현승이는 금요일에 친구 집에서 자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에 학교 농구교실을 가야하는 현승이를 위해 프라이팬에 밥을 볶아놓고 나왔다. 카톡으로 일러둔다는 걸 깜빡 잊었더니 냉장고 뒤져서 먹다 남은 충무김밥을 꺼내 먹었는데 오징어 볶음이 매워서 우유 한 통을 다 마셨다며 전화가 왔다. 점심은 어떻게 하냐며, 김밥을 사먹으려 해도 돈이 없다며, 엄마 어떻게 점심 값도 안 놓고 갔냐며, 게다가 자기 돈 오만 원 짜리가 없어졌다며.... 그, 그 돈 엄마가 빌려왔어. 라면을 끓여 먹든 알아서 하겠단다.  채윤이 기상시간은 10시. '일어났는데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외롭다'다고 가족 톡방에 기상을 알렸다. 하루 세 끼를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 해놓고, 뒤져도 먹을 것 변변히 없는 냉장고를 해놓고 나온 게 됐다.


얘들아, 미안! 대충 먹고 엄마 없는 하루 종일을 지내준 너희 덕에 다녀온 거야.

너희 대표로 말이야.



# 가족의 이름으로 함께 함


팽목이란 말만 들어도 슬픔과 억울함과 분노의 통곡이 들리는 듯한데 차거운 그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려니 감정의 폭풍이 일어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자꾸 식구들에 대한 미안함이라니. 가족의 이름으로! 라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세월호 2주기 어간 가족들 카톡 프로필 사진이 똑같았다. 정작 피켓을 만들고 들었던 현승이는 '이히히히'와 함께 쌩뚱맞은 사진이었지만. '현승아, 너 엄마 아빠 누나 톡에서 피켓 들고 있느라 고생이 많다'하고 농담도 했다.

기도회를 마치고 미수습자 가족 대표인 은화 엄마와 혁규 큰아버님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가족 대표로 간 채윤이 엄마가 미수습자 가족 대표 은화 엄마를 만난다. 얼굴을 마주하고, 육성을 듣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것이 만남이다. 그렇게 얼굴을 대하면 이념이고 정치고 명분이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 느끼게 된다. 몸으로 느끼게 된다. 가족이란 몸을 부대껴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더 이상 세월호 가족은 세월호 유가족이나 미수습자 가족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다. 마음이 그렇게 말했다. 


은화 엄마의 말이다. (뉴스앤조이 기사에서 가져옴)


"유가족들이 아이 찾아서 올라갈 때 우리 보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축하한다고 했습니다. 아빠로서 엄마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던 곳이 바로 목항입니다. 저도 정말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진실 규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인양이 먼저입니다. 세월호가 물속에 있으면 진실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다섯 살 혁규가 지연이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줬습니다. 그냥 오빠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여야·이념, 그런 정치 논리 다 버리고 일단 사람 찾아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원하는 인양은,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와 아홉 명을 다 찾는 것입니다."




가방과 옷, 자동차의 달린 세월호 리본과 뱃지는 늘 외롭다. 운전하고 가다 노란리본 스티커를 붙인 차를 보면 차선을 바꿔 옆으로 가게 된다. 조금 앞질러 가 내 차 뒤 유리에 붙은 리본을 보여주고 싶다. '나도 같은 마음이에요. 힘내요. 우리 잊지 말아요' 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 40인승 버스에 탄 분들의 가방과 옷에는 주렁주렁 노란리본이다. 사실 그것만 봐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함께 한 친구, 우연히 반갑게 만난 장로님 부부, 한 버스에 탄 분들 모두가 가족이다. 존재로 고맙다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가슴열어 그분이 사랑하는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 더 큰 가족을 일구어 가기 위해 나를 넓히는 일인지 모른다.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 우리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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