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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할 수 있어. 할 수 있다잖아. 본문

푸름이 이야기

난 잘할 수 있어. 할 수 있다잖아.

larinari 2009.12.09 12:22


Photo by  Kim Dong Won 님

사진 : 털보아저씨의 700원 짜리 정말 좋은 카메라가 제법 잘 어울리던 채윤이.
        저 좋은 카메라를 덥석 내주시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급 자존감 상승했던 날.


성적이 뛰어날 필요는 없지만 우리들의 학교는 공부를 못하면 자존감까지 팍팍 밟아주는 곳인줄 알기에 시험공부는 시켰다. 며칠을 시켰다. 주입식 교육, 거두절미하고 외우는 거는 진짜 안 되는 딸을 붙들고 잎의 구조... 달의 모양... 리터와 밀리리터... 주장하는 글쓰기... 열나 공부했다. 그리고 결과는.... ㅠㅠㅠㅠ

'당신 솔직히 말해봐. 어렸을 때 공부 못했지?' 남편과 마주 앉아 허허, 슬프게 웃었다.
근본적으로 채윤이의 학습에 대한 입장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채윤이가 정말 잘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하도록 해주자.
그렇게 힘들어 하는 윤선생 영어도 그만시키는데 합의봤다.
채윤이 같은 아이가 언어를 책상에 앉아 테잎 듣고 죽어라 쓰면서 배우는 건 아니다. 
그래, 내려놓자.

이런 논의를 아빠와 하고 월요일 가정예배 시간에 함께 얘기했다.
가정예배 마치고 자기 전에 주방 정리를 하고 있는데 편지가 하나 놓여있다.

 



그래, 그러자.
언제나 즐겁게 지내고 싶은 본인의 뜻을 100% 받아들여서 영어를 끊.었.다.
어제 선생님께 어렵사리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그만 두기로 했다.

오후 내내 마음이 심란했다.포기해도 되는 걸까?
그것 좀 못 따라와주나? 채윤이한테 화가 나기도 했다.
귀신 같은 김채윤, 도대체 뭣 때문에 화가 난거냐며 친절해지라고 한다.

그런 태도에 더 화가 나 인신공격적인 발언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솔직한 얘기를 했다.
실은, 엄마가 너를 잘 키우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 돼.
영어를 끊기는 했지만 니 친구들은 수학학원, 영어학원 장난 아닌데
그나마 너는 집에서 하던 영어까지 안하게 됐으니 걱정이 돼.
이러다가 내 딸이 나중에 커서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을 때 그거 공부하러 대학교에도 못 들어가고 그러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이 돼서 그래. 니가 힘든 걸 시키고 싶진 않지만 이게 맞는 건가 모르겠어.
하나님이 너한테 주신 달란트가 있는데 그걸 잘 닦으려면 노력도 해야하는데 힘든 건 너무 안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말이야. 그랬더니....

채윤이 훌쩍이면서 이런다.

엄마! 그러면 내 달란트를 잘 쓰게 해줘야지. 피아노를 연습만 하라고 하고 내가  치고싶은 거는 못 치게 하잖아. 저번에 애들이나 치는 거 친다고 뭐라고 했잖아. 그게 애들이 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냥 좋아서 치고 싶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걸 마음대로 칠 수 있게 해 줘.
그리고 엄마, 엄마는 잘 키울 수 있어. 내가 영어는 끊었지만 좋아하는 걸 위주로 해서 학원이나 이런데 보내서 가르치고 그러면 잘 키울 수 있을거야. 원래 엄마가 애들을 잘 키우잖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말고, 마음 풀고 친절하게 대해줘.

참, 급 상담을 받은 느낌이 들더군.
우울의 원인제공자가 바로 상담자로 변신하니 우울에 혼란스러움까지 겹쳐서
묘한 웃음이 새나오더군.


21 Comments
  • 프로필사진 경화 2009.12.09 19:17 푸하하 채윤이 너무 귀여우시당~~
    요즘 학원에서 초등학생들 보다보면 정말 어른보다 더 바쁜거 같아요. 이 학원 끝나면 바로 어디 가야하고 이거 해야하고 잠도 새벽 2~3시에 잔대요. 숙제하느라 어후...ㅠ 한창 놀고 웃고 떠들어야하는데 이리저리 학원만 왔다갔다하는 애들이 안쓰러워보여요. 그렇다고 공부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말이죠.

    즐겁게 신나게 배울수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미 전 다 자라서 아숩지만, 흑흑 ㅠㅠㅠ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2.12 15:42 이미 다 자라다니...
    40이 넘은 나도 즐겁고 신나게 배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말이다. 아직 시작도 안한 것일 수 있다.
    즐겁고 신나게 배울 수 있는 거 이제부터 찾기!
  • 프로필사진 forest 2009.12.09 23:31 완전 채윤 넘 이쁘지 않나요?
    어머님, 채윤이를 믿어주세요.
    저두 그때는 마음이 성급했었는데 다 키우고 보니
    일찍부터 믿어줄걸 그랬다 싶어요.
    요부분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
    왜케, 나는 채윤 얘기만 올라오면 완전 채윤편이 되는걸까요? ㅋㅋ
    아마도 믿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있어서 그런건 아닐까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2.12 15:44 아이를 믿어주는 그 믿음이 진정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임을 요즘 깊이 생각해봐요.
    앞으로도 제가 채윤이 현승이를 믿어주지 못하고 질퍽거릴 때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세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9.12.10 01:16 애한테 영어가르치다 하도 싫어해서 결국은 다 놓아버렸던 것 같아요. 그 뒤로도 영어하라고 잔소리는 했지만요. 피아노도 싫어한다는 이유로 그만두게 하고. 지금은 본인이 좀 아쉬워하는 듯도 해요.
    잘 판단이 안서요. 그냥 무엇인가를 하면 그걸 밀어주면 되긴 될 거 같은데 사실 좀 불안하긴 하죠. 미술 공부하는 애들이 그림만 잘그리면 되지 왜 우리가 공부까지 해야 하냐고 말하면 그건 쫌 아니다는 생각도 들고. 모든 것의 기본은 갖추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거든요. 채윤이는 말하는 거로 보면 생각이 조리있어서 걱정안해도 될 듯도 싶고. 도무지 종잡기가 어렵네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9.12.12 12:07 오늘자 한겨레의 이계삼 컬럼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어서 여기 적어보려구요. 고등학교 선생인 그는 "학생의 상위 30 퍼센트엔 미친 경쟁만 있을 뿐 교육은 없고, 그 반대편 하위 30퍼센트엔 불량과 일탈만 있을 뿐 교육은 없다"고 적어 놓았더군요. 저는 그 대목을 보고 혹시 내가 우리 아이를 교육이란 이름으로 미친 경쟁으로 내몬 적은 없었나 한번 물어보았고, 또 우리 아이에게 공부의 중압감을 강요하여 결국 불량과 일탈로 내몬 적은 없었나 한번 물어보았어요. 다행스럽게도 그렇질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질문을 가끔 물어가며 아이를 키우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균형잡기 딱좋은 질문이잖아요.
    마치 채윤이를 우리 모두가 키우는 것 같아요. ㅋㅋ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2.12 15:41 실은 저는 그제 한겨레 신문에서 김규항씨의 글과 김의겸편집장의 글을 남편과 함께 읽고 공감하고 자성하고 그랬어요.

    예수님의 '회개하라'가 단지 '이제부터교회를 다녀라'가 아니라 총체적 회심, 즐거움의 전복이라고 하면서

    '바로 어제까지만해도 남보다 많은 돈을 벌고 여느 사람들과 삶의 외형적 격차를 벌리는 걸 인생의 즐거움으로 알던 사람이 한순간 벼락을 맞은 듯 가난한 사람을 보면 내가 많이 가셔 저렇구나 싶어 민망하고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눈에 밟혀 그들과 함께 하는 게 훨씬 즐거운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 그게 회개다'

    하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완전히 와닿는 얘기가..

    '오늘 반이명박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그 사실(즐거움의 전복)은 또렷하게 드러난다. 물론 그들과 이명박은 전혀 달라 보이며 실제로도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반이명박 싸움은 이명박과 그들의 다름을 끊임없이 부각함으로써 이명박과 자신의 동일함(돈과 외형적 가치를 인생의 중심에 두며 그 기준으로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의 동일함)을 은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라고 하는데 제 속을 들킨 것 같더라구요.

    자본주의와 적당히 심지어 아름다울 정도로 타협한 기독교를 비판하면서도 제 안에는 채윤이가 은근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위를 점유하는 아이가 되지 못할까봐 안절부절하고 있는 모습이었다죠.
    그러면서 믿음, 신앙 운운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감사해요. 저는 두 분이 아이를 양육한 방식을 가까이서 봤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낼 수가 있어요. 결과적으로 타코가 이룬 성공 때문이 아니라(그건 아주 드문 일일거예요.^^) 중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 살게 하는 게 부모의 몫이 아닐까 싶어요. 헌데 제 안에 깊이 침투한 맘모니즘과 자본주의식 성공지상주의라니....

    아, 왜 눈물이 나죠...ㅠㅠㅠㅠ
  • 프로필사진 hs 2009.12.10 08:41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쓰다보니 인생의 정답은 예수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이들 교육에도 정답이 없는 것 같죠?
    생각할수록 어려운 문제....
    하지만 늘 쌓이는 부모님의 기도와 본인이 매사에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텐데 그러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죠?
    우리는 아이들 교육은 끝났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예지,현지가 생기니 조금씩 신경이 써집니다.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2.12 15:47 저를 키우신 엄마를 생각해보면 돈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기도 하나로 키우셨는데 이렇게 잘 키우셨으니ㅎㅎㅎ... 그리 걱정을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
    세상도 교회도 무조건 잘 되고, 성공하고, 높아지는 것이 최고로 가르치는 세상이 되니 조금만 정신줄을 놓으면 애들을 달달 볶는 엄마가 되기 십상인 것 같아요.
  • 프로필사진 iami 2009.12.10 10:26 애들도 보고 배우며 자란다는 게 맞다면,
    제 경험에서 반성해 보자면,
    부모가 "do & don't" 리스트를 들이대기보다
    좋은 자극과 선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친구, 선후배, 선생님, 환경을
    만날 수 있도록, 그래서 스스로 동기부여 되도록 도와주는 게
    짱~이라고
    이 연사 한 마디 외칩니다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2.12 15:49 이렇게 앞서 가신 선배님들이 응원해 주시니 든든하고 위로가 돼요.
    이 포스팅을 계기로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에 마음을 쏟고 있어요. ㅎㅎㅎ
    감사해요.
  • 프로필사진 mary 2009.12.10 12:14 난 채윤이의 마지막 두 마디와(원래 엄마가...) 엄마의 급 상담받는 그 기분을 읽으며 큰소리로 웃음이 터져버리네. 어쩔까나..이.

    울아들말야 넘 무식하면 안돼니까, 그래도 자기능력만큼은 노력하게 도와주는게 맞으니까 매일 저녁 구몬공부 시키면서 문득'왜 꼭 이렇게 해야하나? 중요한건 아이의 행복아닐까? 애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해 ㅠ.ㅜ' 그런 생각이 들었지. 어쨋든 안하겠다고 힘들다고 생짜로 뻣대는건 아니니깐 옥신각신하며 죽 했던거같아.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거같아.

    나두 털보님처럼 종잡기어려워.
    애가 따박따박 자기주장하고 나서면 그게 더 확신이 안서지.
    애를 믿고 하고픈 일을 하도록 지켜보는게 과연 맞는건지, 그래도 부모로서 해야할 일을 하도록 끝까지 지도하는게 맞는건지.
    이건 초딩뿐 아니라 성인이라 외치는 대딩엄마의 숙제이기도 해.

    그냥 한가지 작게 제안하자면
    채윤이가 엄마에게 바라는게 마음풀고 친절하게 대해달라는거니깐
    한동안 그렇게 해주라는거.
    지금 초3인데 한 일년 하고픈대로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2.12 15:52 엄마가 욕심을 내는 이상 마음 풀고 친절해지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이 날 이후로 아직까진 마음 풀고 친절해지기 잘 하고 있어요.
    저는 통제지향적인 편이라서 애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mary님의 성품을 많이 보고 배우고 있습죠.^^
  • 프로필사진 쳇 거바라 2009.12.10 23:39 ㅎㅎㅎㅎ ♥♥♥♥ ㅠㅠㅠㅠ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2.12 15:53 내가 딱 그래.
    웃기고,
    사랑스럽고,
    불쌍하고 슬프고...

    또 눈물나네.
  • 프로필사진 I'm dreaming Ssam! 2009.12.13 22:10 채윤이.. 너는 잘 할 수 있다아아아~ 라고 응원해주고 싶어요.

    웅웅..구냥 채윤이보면서
    또 싸모님 글 보면서 가끔 느낀건데-
    저랑 비슷한 구석 있는 것 같아용.
    아닌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2.15 00:19 신고 그 비슷한 구석에 대해서 한 번 논해봐야겠는데...^^
    어제(아니 그젠가?ㅎㅎㅎ) 흐뭇하고,
    아쉽고, 기쁘고, 슬프고 그랬지?
    노래하느라고 떨리기까지 하고...^^
    두 쉐펄드 모두 축하받아야 하고 축복받아야 할 날 이었던 것 같아. 축하하고, 축복한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采Young 2009.12.14 00:30 신고 아 정말 CD 한장에 들어갈 내용을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 시러여. 그런데 그런 주입식 교육받고 집에서 적용하는 채윤이^^

    채윤이가 매력적인 건 정말 색다름 때문인 것 같아요.
    식상한 방법으로 떼쓰기 보단 마음을 담아서 힘들다는 편지를 쓰구
    뾰로통 삐져있기 보다 엄마가 친절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탁 터놓고 물어보고
    앞으로 길이길이 기억될 마지막 멘트"엄만 잘키울 수 있어. 엄마 원래 애 잘키우잖아"로 이렇게 여러 사람 떡실신 만들고

    이런 매력소녀 같으니 ^^

    그나저나 똥카페 업뎃된 거 알려드립니다. 이번에도 곰댕이가 한마디 강한 욕을 날리네요 ㅋㅋㅋㅋ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2.15 00:21 신고 나 애들 비타민 보충 시킬려고 파프리카 엄청 밥상에 올리는데... 쫌 떨렸음.ㅋㅋㅋ

    난 힘을 얻었어. 채윤이가 잘 키울 수 있다면 잘 키울 수 있는거야!
  • 프로필사진 forest 2009.12.16 11:21 모님, 업뎃 좀 하세요.
    아~ 글쎄, 챈이가 잘할 수 있다잖아요.ㅋㅋ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2.16 11:25 태클 들어올 것 같아서 지금 간단하게나마 하나 올리자 하고 있는데요...ㅎㅎㅎ

    오고가는 태클 속에 함께 자라는 블로거 세상~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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