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일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올해로 20주년 마이너스 2년이다. 주일 출근하는 남편 홍삼이라도 챙겨주려고 일어나 흐느적거리는 정신줄로 거실에 나갔는데 '이게 뭐야!' 눈이 번쩍. JP♥SS, 하트 풍선과 커플 사진 덕지덕지. 오호, 이게 딸내미 키우는 맛이지! 일 년 백수 채윤이가 가장 바쁜 날이 토,일 주말이다. 토요일 오전에는 고둥부 책모임, 오후부터 밤까지 찬양팀 연습, 마치고는 늘 '쫌만 놀고 갈게' 일정이 빡빡하다. 그리고 들어와 다음 날 주일 아침에는 일주일 중 가장 빠른 기상. 6시 30분에 일어나서 곱게 화장하고 7시 반이면 고등부 찬양팀으로 출근. 이런 연예인 스케쥴 중에 준비해준 서프라이즈라 더 기특하다. 역시 아들놈은 쓸 데가 없군. 그렇게 자상하던 그이가..... 가 아니고 그 아들놈이 입을 싹 씻는다. 아, 무심한 사춘기 아들이 된 덕에 처음으로 아이들만 두고 1박 여행을 다녀왔으니 꼭 안 좋은 것도 아니다. 현승이가 부쩍 '엄마 아빠 데이트 하고 와. 엄마 아빠 어디 가서 맛있는 커피 마시고 와' 하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말이 자꾸 '귀찮아, 꺼져'로 들린다는. 한때 현승인 이런 아들(클릭) 이었었었었었는데..... 93세 되신 엄마가 입을 열면 하시는 말씀의 93%가 옛날 얘기이다. 엄마를 타박하며 나도 자꾸 옛날 얘길 한다. 낼 모레면 얘기의 50%가 옛날 얘기 될 예정.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부부가 닮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고독한 인간 남녀는 늘 동질성을 가진 타자를 찾는단다.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닮은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에 빠질 때 동시에 빠지는 착각이 '어머, 우린 너무 비슷해' 이다. 기질이나 취향에서 동질성을 찾기 어려우면 하다못해 '어머 어머, 세상에 그 남자가 그 음악을 알더라. 그 음악 좋아한다는 남자 처음이야' 이렇게라도 갖다 붙이게 되는 것. 20 년 전 우리도 그렇게 시작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어머어머, 어떻게 이현주 목사님과 손봉호 박사님을 동시에 존경할 수 있어? 똑같애, 나랑 똑같애. 어머머, 시인과 촌장을 좋아한다니! 김현승 시인을 좋아한다니! 내가 미쳐. 이건 운명이야. 그렇게 시작한 운명적인 사랑은...... 개뿔, 한 달 만에 끝나고 말았다. 심지어 당시 처음으로 같이해 본 MBTI 검사에선 넷 중 세 개의 지표가 같았었다. 비슷한 게 아니라 비슷하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나와 비슷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받아줄 것이라는 착각이다.


결혼하고 보니 우린 모든 게 달랐다. (모든 게 닮았다더니! 모든 게 다르다고?) 작심하고 MBTI 공부를 함께 했는데 트루 타입을 찾아보니 네 지표 모두 다름, 정반대 유형이었다. <복음과 상황>에 'JP&SS의 사랑과 책'을 연재하던 시절엔 모든 게 달랐다는 것을 깨알같이 확인하는 나날이었다. 다름을 전제하고 글로 싸운 싸움에 독자들이 편을 나누어 공감하며 '우리 편 이겨라' 응원도 해주었다. 진지남과 익살녀 캐릭터도 그 즈음 확고해졌다. 이 캐릭터로 장사가 잘 되었다. 무엇보다 '다름'을 전제하니 둘 사이에 수월해지는 것이 많았다. '같음'을 전제하고 교제하다 한 달 만에 헤어졌는데 '다름'을 전제하고 살아보니 18년, 20년이 풍요롭다. 요즘 공부하고 있는 철학상담에서 주워들은 것으로 풀어보자. 타자에게서 자기성을 찾고자 하면 공연한 기대만 높아지고 병리적인 집착이 생길 뿐이다. 의지적으로 지향할 것은 자기의 타자성이다. 즉, 나와 달라서 불편한 '그'가 아니라 '그'와 버성기는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 갈등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라는 거울에 비친 낯선 내 모습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과정은 늘 고통이었지만 고통보다 큰 열매가 있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며 사랑의 깊이와 신비를 배워왔다.




짧은 여행 중에 각자의 폰카메라에 남은 사진이 재미있다. 밤 산책을 하며 남편이 찍은 건물 사진과 아침을 먹으며 식당 테이블을 찍은 나의 사진이다. 그림자와 함께 하는 실물 풍경이다. MBTI가 Carl Jung의 심리유형론에서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너는 외향, 나는 내향. 꽝꽝꽝! 흔히 이렇게 이름 붙이는 MBTI와 달리 Jung의 이론은 둘 사이의 통합이다. 즉, 외향형 사람의 무의식에는 내향적 성향이 가라앉아 있고, 마찬가지로 감각형 사람의 무의식에는 직관적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안에 다 있는데 어느 하나를 선호하여 사용하느냐가 성격을 결정한다는 것. Jung 슨상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향할 것은 둘 사이의 통합이다. 통합을 위해 쥐어짜낼 필요는 없다. 즉, 외향형 사람이 내향형 계발을 위해 힘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외향적 성향을 좋아하고 자유롭고 풍성하게 쓰면서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힘들을 믿으면 된다. 그렇게 생의 전반부를 살다보면 중년 이후에 자연스레 내향적 성향이 무의식에서 떠올라온다는 것이다.


반대유형인 남편이 내게 준 선물이다. 내게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성품들을 잘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처음엔 내게 없다고 느껴져 열등감으로 다가왔으나 어느 새 내가 남편을 배우고 있었다. Jung 식으로 말하면 내 안에 없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남편의 좋은 모습이 더 좋게 보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반대유형의 짝을 만나 살게 된 것이 큰 유익이다. 두 장의 사진처럼 그림자의 존재를 잘 비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남편과 내가 어떤 점이 비슷하다, 다르다 언표하는 것에 큰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장사 밑천이 떨어진 것 같다. 같은 지점을 찌르고 동시에 찔리는 갈등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굳이 MBTI 식으로 말하자면 논리적 맥락 자체가 중요한 사고형 vs 관계가 중요한 감정형의 대립이거나, 외향 내향 에너지의 차이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서로에 대한 신뢰보다 크지 않으니 찌르고 찔려도 이렇다 할 상처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결혼 18주년 선물 치고는 꽤 큰 선물이다.




우리가 함께 산 시간이 길구나, 했는데 얼굴로 먹은 나이가 고스란히 그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다. 5월의 그 싱그러운 신랑 신부는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가! 그런데 이상하다. 나이값 제대로 하는 저 사진의 얼굴이 싫은데 싫지가 않으니.


'김서방, 고마워. 아이구 고마워. 내가 우리 김서방 얼매나 이쁜지 몰라. 우리 까드락시런(까다로운 ㅜㅜ) 신실이랑 살아줘서 고마워.' 우리 엄마 녹음기에 오토리버스로 돌아가는 트랙이다. 워낙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말씀이라 반론이 불가하다. 까드락시런 김서방 맞추는 고충에 대해서 할 말이 백 개지만 참는다. 결혼 18 주년의 감사와 행복은 다 모세 할아버지 버금가게 온유한 JP 덕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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