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꿈도 못 꾸었던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 채윤이와 시카고 다운타운을 활보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채윤이는 스타벅스에 들어서면 엄마보다 앞서 주문하는 곳으로 가 용감하게, 되는대로 주문을 합니다. 진동벨이 아니라 주문할 때 물어봤던 이름을 불러 음료를 내주곤 하는데 '애나, 애나!' 하고 불러주는 것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코스타 마치고 며칠 여행하는 동안 채윤이 아닌 Anna가 함께 했습니다. Anna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생후 18개월 즈음일까요? 채윤이가 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고유)대명사로 고른 것이 '안나'였습니다. 자신을 가리켜 안나, 안나 하니까 모두들 '안나야' 하고 불렀습니다. 채윤이 아빠는 아예 '김채윤, 정안나'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을 적용하기도 했었지요. 여행 셋째 날인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채윤이가 그럽니다.


"엄마, 난 미국이 너무 잘 맞아. 마음에 들어. 나도 모르게 자유로워지고, 내 속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 이제껏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온 것 같아."


아닌 게 아니라 수많은 영어 사람들 속 채윤이는 전혀 이물스럽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사람이 적은 길에 접어 들어도 금세 쫄아서 '야, 빨리 와' 웬만하면 '가지 마. 가지 마' 하는 엄마와 달리 어디든 가보고, 아무 데나 들이대 보려는 채윤이는 현지인 같았지요. 성문종합영어 몇 번을 본 엄마보다 알고 있는 영어 단어가 어쩌면 100개도 안 될 채윤이가 더 거침없고 당당합니다. 여기서  Anna 말고 채윤이의 영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채윤이는 유난한 언어감각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듣기와 말하기 발달이 빨라서 일찍이 대화가 되는 아이였지요. 영어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 입이 터질 것 같은 아이였습니다. 그땐 그랬지요. 영어공부에 성대모사를 도입하여 신나게 놀고 있는 한때 채윤이. 영상 하나 봐야겠습니다. 


채윤 열공 잉글리쉬


코스타 기간 동안 Youth Kosta에 참석했던 채윤이는 극한 이방인 체험이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선생님들 마저 우리 말이 되는 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워낙 적응력이 뛰어난 아이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습니다. Youth Kosta에 하루 풀참하고 돌아온 밤 11시.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울었습니다. 들리는 말이 '지저스' 밖에 없다고요. 다들 통하는 말 나만 못 알아들어 바보가 되는 느낌, 그 느낌 아니까.ㅜㅜ 자체 조를 만들어서 함께 했던 꽃친의 황쌤과 은율언니와 넷이서 머리를 맞대고 격려를 받기도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석했습니다. 중간에 하루 전체집회를 참석하고는 찬양과 말씀에 대박 은혜를 받기도 했구요. 일단 말이 들리니 은혜가 안 될리가요. 여기서 다시 Anna 말고 채윤이가 영어를 포기한 얘기도 함 보죠.


채윤 영어 접은 이야기


이렇듯 영어든 공부든 목숨걸지 않고 키우는 이 바닥 부모들에겐 그런 인생각본이 있던데요. 돈은 없지만 아빠가 모든 걸 접고 급 유학을 떠난다. 몇 년 유학생활을 통해서 가난체험 등으로 개고생을 하지만 아무튼 끝내고 돌아온다. 애들은 영어를 막 잘한다. 채윤이 엄마 아빠는 학원도 안 보내고 공부도 막막 시키지 않는 주제에 이런 인생 시나리오도 없었습니다. 중학교 가서 중간 기말 시험 때마다 어떻게 어떻게 본문 달달 외워서 영어시험 친 것이 전부. 이런 채윤이라서 도대체 영어말이 들리지 않고 표지판이 뭐라는지 읽히지 않지만 거침없고 당당한 Anna가 건재함을 확인했으니 다행입니다. 이렇게 귀환한, 아는 영단어 몇 개 되지도 않는 Anna, 재즈 피아노 하는 Anna의 내일이 사뭇 궁금해집니다.


"엄마 엄마, 내가 한국에서 재즈를 공부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여기서 보니까 휘튼 식당에서 접시 들고 걸어가는 흑인들은 걷는 그 자체가 스웩이야. 걷는 것만으로도 스웩인데 나는 그걸 연습해서 배우려고 하는데.... 그게 말이 돼? 나 미국으로 대학 올 거야. 미국, 완전히 내 스타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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