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란 말 알아?

무슨 뜻인지도 알아? 알지? 조심해.


(다음 날도)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이 말 알지? 무슨 뜻인지 정말 알지? 엄마가 잘해야 돼.

난 이 말이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히히.


(며칠을 두고 한 번씩 이 레퍼토리를 반복함)



개학을 앞두고 방학 동안 물놀이 한 번 못한 아들 현승이와 데이트 하기로 했다.

맛있는 거 뭘 먹을까? 기분 좋게 내려갔는데 차 앞에 차가 있다.

빌라 주차장에선 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옆집 차니까.

심지어 어젯밤에 같은 시간에 들어와 누가 먼저 나가나 확인하고 주차한 것이니까. 

흠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이 없다. 어? 설마.....

슬픈 예감의 엔딩은 틀리는 적이 없는 것이 원래 각본.

가..... 강남에 있는데요. 죄송해요. 어제 미리 얘기도 하셨는데.

하..... 할 수 없네요.

다행히 작은 차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옆차만 빼면 살짝 꺾어 나갈 수가 있다.

저..... 401혼데요. 402호 차가 앞에 있는데 차를 두고 나가셔서요. 혹시....

어..... 저는 출근해서 회산데요.

네..... 네.

아들과의 데이트는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폭염에 뚜벅이 데이트는 거부할 텐데.


엇, 옆동이긴 하지만 왼쪽 차를 빼도 가능하겠다. (작은 차 큰 기쁨!)

사무실 같은 걸로 쓰고 있는 옆동 1층 차인 것 같은데. 현관도 활짝 열려있다.

똑똑똑, 저.... 죄송한데요. 옆동인데요. 차를 빼야 하는데 다들 집에 안 계셔서요.

혹시 차를 좀 움직여주시면 제가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죽으란 법이 없다. 이렇게 해결되어 아들과의 쾌적한 데이트 고고씽.


하려고 차에 딱 타서 기분 좋게 출발하려는데.

엄마, 엄마 왜 그렇게 잘못한 사람처럼 그렇게 말해? 굽신굽신.

화가 잔뜩 난 표정이다. 영락없는 사춘기 표정.

엄마가 뭘? 그냥 친절하게 말한 거지. 너는 소리 지르고 쎄게 말하는 아줌마 싫어하잖아.

그런 게 아니잖아. 엄마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네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냐고!!!!!!

차를 막아놓고 그냥 나간 옆집이 잘못이잖아.

그리고 차좀 빼달라고 하면 되지 왜 잘못한 사람처럼 그렇게 해.

아, 진짜 그러네. 옆동인데 일하고 있는 아저씨한테 폐 끼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니까....

아니다. 실은 굽신거리고 친절하고 약한 척하면 거절하리 못할까봐 그랬나봐.

정말 그러네. 엄마가 과하게 굽신거렸네.



과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었다. 그리고 생각하니 차를 막고 나간 옆집과 통화할 때 조차도 과하게 친절했다. 친절이 나빠서는 아니다. 친절한 말과 행동만큼 내 마음도 부드럽고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분노를 억누른 친절, 친절로 상대를 통제하여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의도. 이것은 친절하지 않음보다 더 악한 것이 될 수 있다. 속에서부터 엄청난 아하!가 올라왔다. 그렇구나. 내가 여전히 이러고 있구나. 내게 소박하나 절실한 기도제목과 목표가 있다면 '투명한 말'이다. 마음에 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기. 기며 기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기. 설령 그렇게 하는 것에 당장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아낼 수 있는 힘 말이다. 때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사랑일 수 있음을 얼마나 지난하게 배웠던가. 물론 말도 행동도 착하고 친절하면 좋겠지. 그러나 친절과 착함 그 자체가 아니라 몸에 밴 친절한 척, 착한 척으로 살고 싶지는 않은데. 너무 오랜 습관이다.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 은근한 자부심도 있었는데. 아들이라는 맑은 거울이 실상을 비춰주었다. 백설공주 계모의 거울 물렀거라. 우리집엔 고성능 요술 거울이 두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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