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버릴 거야. 각자 살릴 인형 골라가!"
정리하고, 그다음에 정리한 다음 또 정리하는 나날. 정리 대장 아빠가 인형 보따리를 풀었다. 한 번씩 "이번엔 싹 다 버리자" 해놓고도 막상 하나 씩 눈을 맞추면 또 집어넣게 된다. 이건 할아버지가 사주신 거, 이건 학교 바자회에서 처음으로 산 것, 내가 이렇게 하고 들고 왔잖아... 한 놈 한 놈이 다 사연이 있다. 가장 오래된 미키 미니 인형은 데이트 시절 남편에게 처음을 받은 선물이다. 철학과 4학년 학생 JP가 나름 큰돈 썼던 거고, 당시 미키 미니 덕질에 빠져 있던 나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더랬다. 그래서 못 버림. 테디 베어 네 마리는 채윤이 현승이 각각 두 마리씩 소유인데, 어쩌면 그렇게 어릴 적 채윤 현승을 꼭 닮았다. 특히 교복 치마에 츄리닝 바지까지 입은 테디는 당시 중학교 1학년 김채윤 그 자체. 그래서 못 버림. 결국 하나도 못 버리고 깨끗이 빨아 각자 사연의 주인공들이 끌어안고 흩어졌다.
그 와중에 구원받을 것인가, 버려질 것인가, 기로에 서서 아니 누워서 운명의 선택을 기다리는 애들을 놓고 잔인한 놀이 중인 열여덟 살 현승이. 양손에 주방 집게 하나 씩 들고 '인형 뽑기' 놀이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노트북 쳐다보고 있다 옆에서 저러는 열여덟 살 보고 녹았다. 이런 게 그렇게 좋더라.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