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한 달을 지내는 남편이 드디어 일몰을 제대로 봤다고 했다. 바다 뒤로 넘어가는 해를 제대로 본 날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던 터이다. 바다보다 구름이 먼저 삼켜버린 해를 보면서 아쉬웠지만, "나름 멋있다"는 식으로 위안을 하고 있었다. 한라산 등반으로 이틀을 보낸 좋은 친구들과 공항에서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단다. 뚜벅이로 지내다 마지막 짐을 빼서 나가야 하는 일정에 맞춰 렌트를 하고, 해안도로를 달리다 선물을 받았다면서 사진을 보내왔다. 선물이라고 했다. 종훈, 동조 두 형제가 내려왔던 이틀 전에는 일몰을 기대했으나 마주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돌고래 출몰. 돌고래를 보았다고 한다. 셋 중에 자기만 봤다고... 맞다, 선물이다.
일몰을 보고 쓴 남편의 글을 보고 잠이 들었다. 나는 군산에서 사경회 강사로 삼 일을 지내는 중이었다. 둘째 날 집회를 마치고, 잠들기 직전 남편이 올린 일몰 영접 글을 읽었다. 그 감동이 내게로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그렇게 잠이 들고 새벽 5시쯤인가 잠에서 깨었다. 하늘을 보며 잠들고 싶어서 커튼을 열어둔 채로 잠에 들었다. 해 뜨는 방향이 어딘지, 내가 있는 곳은 동서남북 어딘지, 그런 감각이 없다. 새벽하늘이 붉게 물든 것을 보고, "어, 저기서 해가 뜨나? 예쁘네..." 하고 사진 한 장 찍어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다 깨버린 상태라 침대에 누워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어라? 저거 혹시 일출이야? 싶은데... 어머나 세상에, 올라오는 것이다! 해가!!! 무방비 상태로 일출을 영접했다. 선물이다. 어마어마한 선물이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협재에서 진 해가 오늘 군산 은파호수공원 쪽으로 올라왔어!"
칼 라너의 말처럼 일상이 신비이다. 일상이 신비로 가득찼다. 자연이 신비이지만, 자연을 신비되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 선물이다. 남편에게 종훈, 동조 두 사람이 선물이 되었다. 내게는 지극한, 세심한 환대의 군산하나충신교회 고승표 목사님이다. 숙소 하나를 정하는데도 선물로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신비가 널렸다. 사랑이 널렸다. 꿈모임에서 아주 작은 들꽃 꽃마리를 비유 삼아 "꽃마리를 구별하는 눈만 있으면 볼 수 있다. 꽃마리가 지천에 널렸다. 하나님의 선함도 그렇다. 하나님의 선함과 신비가 지천에 널렸다."는 얘기를 했었다. 지천에 널린 그분의 사랑을 몰라보고 눈이 어두워져 있을 때, 가끔 이렇게 하늘과 바다와 호수를 동원해 서프라이즈 해주시니 그 하나님 참 섬세하고 좋으신 분!
4기 동반자 과정 시작하고 한 달. 기도가 무르익어 간다. 한 달의 목표는 마음을 여는 것이었는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내 마음 중심에 계신 그분께 마음을 열어야 하는(열었으면 하는) 시간이었는데. 서서히 무르익고 있었다. 기도를 마쳤다는 '강제 없는 보고'가 무심하게 단톡에 올라오면 순간 내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 감사합니다, 기도하는 당신 감사합니다... 어제 아우팅으로 먹고, 웃고, 걸으며 기도하면서 푸르른 하루를 보냈다. 모임을 마칠 때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라는 리추얼을 하는데, 리추얼은 상징 행위이다. 상징에는 체험과 진실이 담겨야 한다. 체험과 진실 없는 리추얼만큼 공허한 것이 있을까. 예배는 가장 고귀한 리추얼 중 하나이다. 성도 간의 하나 됨, 하늘 아버지와의 하나 됨의 체험 없는 예배의 공허함은 넋 놓고 유튜브 영상에 빠졌다 나온 공허감과 비할 수 없다. 어제는 그저 먹고 수다 떨고 잠깐 걸으며 기도하는 대단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의 실체를 채우는 시간이었다. 살아있는 교회였다. 푸르른 교회였다. 어제 하루의 캠핑장 교회로 인해 감사하고 감사하다. 연구소 카페 동반자방에 나눈 (모임 후 마음에 심겨진 것을 나누는) "씨앗 심기"글이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백 번, 수천 번 되뇌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확인이 불가능한 진리입니다. 사랑을 위한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다는군요.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아니 그렇게 우리 마음을 지으신 예수님께서는) 문 밖에서 서서 두드리십니다. 강제로 문을 열지 않으십니다. 강제하지 못하는 사랑입니다. 나를 좋아해 달라고, 나를 사랑해 달라고 피를 토하며 매달려도 얻을 수 없는 것이 누군가의 마음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은 안에서 열려야 합니다.
마주한 두 사람이 각각 안에서 열고 나오면, 그때 사랑이 시작됩니다. 연구소가 강의도 할 수 있고, 숙제도 낼 수 있고, 기도하도록 격려할 수도 있는데... 마음을 여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몫입니다. 모두 자기 마음의 문을 열고 나와야 연결이 됩니다. 마음의 왼손 바닥을 위로 하고, 마음의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오게 하여 포기야... 마음을 포개야 비로소 연결됩니다.
연초록 나뭇잎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 친구들이 우리를 내려다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처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받아들여 연결되는 존재가 되시오, 그게 참 행복이오. 맛있게 먹고, 많이 웃고, 몸이 기뻐하는 연결의 하루를 누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주살이 하는 남편이 제 손으로 요리를 해서 먹는다. 어마어마한 요리를 한다. 세상에나 양파를 기름이 구워 먹는단다. 기름 두르고 소금 간 해서 굽는 양파 요리라니 말이다. 이건 김종필 남편이 백종원 된 사건이다. 이제 곧 파스타도 하겠다!
양파 수확철인가 보다. '이삭 줍기'라고, 밭에 남은 못난이 양파를 얻어서는 어떻게 먹나 검색하다 이 어마어마한 일을 하게 되었단다. 구워서 먹어보니 이렇게나 맛있을 수가 없다고. 양파가 달다고,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한다. 펜션 매니저님 통해서 양파를 보내왔다. 남편 식으로 그냥 올리브유에 구웠다. 과장이 아니었다. 같이 먹던 현승이가, 와! 달아! 양파가 달아! 했다. 흰 즙이 나오는 싱싱한 양파를 처음 먹어본다. 어느 놈 하나 똑같이 생긴 놈이 없이 개성 넘친 비주얼이라 더 멋지고, 더 맛있다.
광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SRT 수서역 대합실이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나왔는데 버스와 지하철이 딱딱 맞아서 많이 여유로운 시간이 되었다. 이틀 간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늘 주일, 한참 전에 약속된 강의가 있는데 못 가게 되면 어떡하나… 누워서 기도하고 걱정하며 뒹굴었다. 온갖 최악의 상상을 하다 병원에 다녀왔다. 그렇다. 진즉 병원에 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러다 말겠지, 푹 자면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져야만 해. 이러면서 일주일, 열흘, 보름을 지내는 거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는 정말 아닌 것이다! 몸은 영혼이 보내는 최초 또는 최후의 신호다!”라고 마이크 들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다. 실은 무시가 아니라 두려워서 못 본 척 하는 것이다. 아프면 무섭다. 머릿속으로 최악을 상상하기에 더 무섭다. 그래서 무서워서 병원에 못 간다. 이틀 침대에 누워 회개했다. 병원에 다녀와 검사받고 일단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바로 조금씩 나아지는 몸을 느끼며 진심으로 내 몸에 미안했다. 병원을 가라고 답답해 하며 한숨 쉬는 현승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오늘 아침 꽤나 좋아진 몸으로 집을 나섰다. 담당 목사님과 주고받은 문자를 확인하니 기차 도착시간을 잘못 알려드린 것이다. 픽업 나오시는 권사님께 문자를 했더니 답신이 이렇게 왔다. “계단 올라오시면 제가 신앙사춘기 들고 서 있겠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생기가 들어왔다. 이런 마중은 처음이다.
지하철에 앉아 문자를 주고받고 고개를 들었는데 건너편에 우리 현승이 초딩때 만큼이나 귀여운 남자 아이가 날 쳐다보며 자꾸 웃는다. 오?! 아니다. 내 옆에 앉은 제 엄마다. 자리 바꿔줄까? 하고 일어서니 기다렸다는 듯 폴짝 날아 제 엄마 옆에 앉아 뭐라 조잘거리며 좋아한다. 생기 더욱 충전이다. 눈을 뗄 수 없어서 자꾸 보게 되었는데, 그 옆에 앉은 연배 있으신 남성분의 백팩, 거기 달린 세월호 뱃지다! 감사, 연결감, 사랑… 이런 감정들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연결은 치유이고 치유는 연결이다. 내 몸, 내 마음, 내 영혼, 나와의 연결은 이웃과 연결이다. 나와 이웃과의 연결은 그분의 현존에 머무는 일이다. 내 몸 잘 돌보겠다고, 회복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다시 기도드린다.
거의 한 20여 년 전, 전에 하던 기도로는 신앙을 부지할 수 없어서 방황하던 때 <영혼의 성>을 만나 읽었습니다. 어려운 말은 아닌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가슴 깊은 곳을 울리며 “뭔가 있는 느낌”이고… 가톨릭 책이라 생각하니 금서 읽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그 책을 혼자 읽고 또 읽고 필사하며 긴 외로운 시간 보냈습니다. 어느새 함께 나눌 벗들이 하나둘 곁으로 모이더니, 연결된 자매들의 힘을 받아서 논문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높은뜻정의교회 중보기도 세미나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시작 전 기도생활의 어려움을 나눴는데, 제가 겪었던 부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부르짖는 기도, 청원기도로 어제와 다르지 않은 기도 제목을 반복하며 오는 공허감, 무엇보다 더 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은 강의 들으시는 눈빛으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타락한 권력으로 교회가 무너져가던 시기, 남자 사제 루터가 말씀을 들고 그 교회를 나오는 개혁을 했다면, 비슷한 시기를 살던 데레사는 자신의 자리에서 기도를 통해 자신을 개혁하고 공동체를 개혁했습니다. 그 기도의 기록이 <영혼의 성>입니다. 진입장벽이 높긴 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의 독서법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이는 전형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며, 마치 보석을 채굴하는 것처럼-사실이 그렇다-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저는 어제 강의에서 체험적으로 알아듣는 집사님, 권사님, 형제님들의 눈을 보았습니다. 정재상 목사님의 목회가 참 고맙습니다. 몰랐던 이 오랜 영성의 샘물들을 오늘에 잇대는 목회를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영성, 영성 목회를 거창하게 표방하지 않고도, 가만히 필요한 일을 하시는 목사님의 행보가 부럽고 감사합니다. 응원 드립니다.
거긴 날씨가 어때요? 여긴 엄마가 아는 그 날씨예요. 자주 흐려요. 가득한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흐린 날인 건지 하늘이 늘 뿌예요. 봄이 오는 길목이 험난한 것 같네요. 엄마가 보낸 이 땅의 마지막 시간, 그때처럼 막막한 날씨의 연속이에요. 거긴 날씨가 좋죠?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 있네” 어렸을 적에 많이 부른 노래 탓인가, 밝고 찬란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으려니 싶어요. 날씨만 상상해도 좋아요. 엄마가 얼마나 싱싱하고 생생하고 행복할까 싶어요. 요며칠 내 마음은 비가 쏟아지기 일보 직전이에요. 누구든 툭 건드리기만 해라, 울어버릴 테니, 하는 심정으로 눈물을 장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전 엄마, 라고 부르는 순간 깨달았어요. 아, 엄마와 보낸 마지막 시간, 그 애달팠던 계절이 도래했구나!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때였죠. 기약 없는 시간, 예측 불가, 면회 불가의 시간이었어요. 엄마가 입원한 요양병원 건물 앞에 서서 올려다보던 창문, 그 너머 하늘이 마냥 흐렸던 기억이 또렷해요. 한 번, 두 번, 세 번. 엄마 없는 이 계절이 벌써 네 번째네요.
엄마 떠나고 바로 코로나를 서너 달 앓았던 느낌이에요. 자발적 자가 격리에, 칩거하며 글을 썼어요. 오직 쓰면서 슬픔을 견뎌냈던 것 같아요. 그 몇 달, 엄마 영혼도 미처 여길 떠나지 못하고 내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그리고 나는 죽은 엄마를 팔아서 또 책을 냈죠. 《슬픔을 쓰는 일》이라고 제목을 붙였어요. 슬픔을 쓰다니, 글로 쓸 수 있는 슬픔이 슬픔일까 싶었어요. 쓰면서도 수치스러웠는데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신형철의 책도 있으니 슬픔은 그냥 그렇게 되는대로, 각자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쓰거나 공부하거나 그렇게 마주하는 것인가 봐요. 엄마 없는 하늘,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와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쓰기’로 숨을 쉬었어요. 그리고 소중한 것을 배웠어요. 슬픔을 드러내면 누군가는 같이 울어준다는 것을요. 물론 위험한 일이었어요. 그만 잊어라, 장수하시고 좋은 곳 가셨는데 뭘 그리 유별나게 구느냐, 믿음의 사람이 천국을 소망해야지... 그런 소리가 이미 들리는 듯했고요. 슬픔 앞에서, 아니 모든 감정 앞에서 다들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허둥지둥 내놓는 위로의 말이 많이들 어설퍼요. 어설픈 말은 ‘아무 말’이 되어 티슈같이 얇아진 슬픈 마음을 찢어내곤 하고요. 엄마, 그래도 내놓기 잘했어요. 상처투성이 알몸을 내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웠는데, 말없이 함께 벗어주는 이들이 있더라고요. 어설픈 말 대신 조용히 자기 흉터를 내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드문 공감과 연결에 힘을 얻었어요. 슬픔을 쓰고, 슬픔을 내놓고, 몰래 눈물 훔치던 손들을 맞잡고 보니 내놓길 잘했구나 싶어요. 그래서 엄마, 나는 엄마를 잃고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엄마의 딸로서는 달라졌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새롭게 엄마를 만나고 있잖아요. 엄마도 이미 알고 있죠?
‘슬픔으로 슬픔을 공부했던’ 신형철 교수는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 낸 사람만 바꾼다.’라고 하더라고요. 사건 속에서 감당하고 겪어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감정, 감정‘들’이었어요. 슬픔인 줄 알았는데 무기력이었고, 감정이 없는 것 같은 감정이기도, 때로는 분노, 어떤 때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이기도 했지요. 감정의 강이 흐르고 흘러 어떤 대사작용을 일으킨 것이 분명해요. 그해 부활주일 예배가 생각나요. 사상초유, 맞아요! 사상초유의 온라인 부활주일 예배였어요. 엄마 떠난 지 한 달여 지난 때였을 거예요. 노트북 앞에서 멍하니 앉아 예배를 시청하다 설교 후 부르는 찬송에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이 되었어요. ‘사셨네, 사셨네...’ 이 가사에 왜 그리 화가 치밀던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예수님의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몸의 부활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부활인가. 격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어서 베란다로 주방으로 서성거렸던 거, 엄마 혹시 봤어요? 엄마의 몸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웠었어요. 엄마 목소리, 혈관이 툭툭 튀어나온 손등, 그리고 매끄러운 손바닥, 맨질맨질한 이마. 설령 천국에 가서 엄말 다시 만난다 해도 그 그리운 몸이 아닐 것이라는 상상 때문이었는지 ‘부활’은 고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즈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천국 소망’이었던 거 알아요? 누구든 내 앞에서 천국, 소망... 이런 어설픈 위로를 들이밀기만 해봐라. 완전 무장을 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달라졌어요. 순순한 마음이 되었어요. 천국 소망까지는 아니어도 엄마가 있는 천국을 간절히 그리는 마음이 되었어요.
엄마가 떠난 때가 하필 사순시기였어요. 2주기 즈음이에요. 역시 사순기간이었어요. 산책길에 바흐의 칸타타 <Actus Tragicus>를 듣고 있었어요. 귀에는 장송 음악이 울리는데, 내 몸이 담겨 걷고 있는 길은 연한 새순이 돋아난 나무며 풀로 연둣빛의 새봄이 한창이었어요. 죽음의 노래와 폭발하는 봄의 생명력이라니, 부조화로구나 싶었는데, 어쩐지 그 부조화가 나쁘지 않은 거예요. 엄마 돌아가시던 그해 사순시기의 칩거를 생각하면 2년 만의 이 봄은 믿기지 않는 현실이죠. 다시는 생명의 기쁨 따위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았었거든요. 사무치도록 그리운 엄마이지만, 상실감의 텅 빈 자리에 2년 전의 그 슬픔의 타나토스(tanatos)와는 다른 에로스(eros), 즉 생명의 기운이 일렁거렸어요. 귀에 울리는 칸타타의 합창 가사는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이니라(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였죠. 엄마의 때가 얼마나 좋은 때였는지 생각했어요. 낯선 침상에 누워 외롭게 보낸 생의 마지막 시간, 혼자 내쉬었을 마지막 숨을 생각하면 어떻게도 떨쳐낼 수 없는 몸서리쳐지는 안타까움이에요. 사상초유의 팬데믹, 우리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격리상황이었기에 엄마를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어요. 버려진 느낌은 아니었을까,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거든요. 그 봄, 그 길에서, 엄마의 때는 가장 좋은 때였겠구나, 싶은 거예요.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가장 좋을 때였다는 확신이 드는 거예요.
바흐의 생은 그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웠대요. 열두 살에 내가 아버지를 여의였던 것처럼. 바흐도 십 대 초반에 부모님을 잃었고, 사랑하는 첫 부인을 일찍 잃었고, 열두 명의 아이를 서너 살이 되기 전에 죽음으로 잃었다고 해요. 부모를, 아내를, 어린 자녀들을 죽음으로 잃고 잃었던 고통이 바흐 음악 곳곳에 흐르고 있어요.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은 여러 죽음과 상실의 얼굴이라니, 그 봄날처럼 찬란한 슬픔이에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 그러나 슬픔과 분노에 매몰되지 않았던 바흐, 그의 음악이 나를 위로하고 만져요. 엄마 떠나고 바흐 음악의 더욱 가깝게 들려요.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이니라.” 만나고, 사랑하고,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 하나님의 때인 것처럼, 헤어지고 슬프고 절망하고 실패하는 때도 하나님의 때예요. 이렇게 받아들이고자 하니 다시 눈물이 나요. 바흐는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함께 곡을 만들었을까요. “평화롭고 기쁘게 나는 떠나네,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내 마음과 정신은 위로를 받았네, 부드럽고 고요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죽음은 나의 잠이 되었네.” <Actus Tragicus>의 마지막 아리아 가사예요.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29).”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니 이 무슨 아름다운 우연인가요? 시므온과 안나. 아기 예수님을 만난 두 늙은 예언자를 읽을 때마다 나는 엄마를 떠올려요. 과부가 되어 팔십사 세가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하던 안나,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았던 안나는 꼭 엄마 같다고 생각했죠. “평화롭고 기쁘게 나는 떠나네, … 죽음은 나의 잠이 되었네” 이것은 엄마의 노래예요.
엄마와의 이별 ‘사건’을 감당해낸 나는 이렇듯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가끔 그 시절 일기장을 펼쳐보면 ‘이 감정이 어디 갔지?’ 싶어요. 저항할 수 없는 감정의 강물에 휩쓸려 몸을 가눌 수 없었던 기억이 또렷한데, 여기저기 뒤져봐도 그때 그 감정은 없어요. 여전히 엄마 몸이 그립고, 그 손 다시 잡고 싶고, 당장이라도 전화 걸면 “딸이여?”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눈물이 차오르지만. 그때와는 달라요. 슬픔의 강물은 부활주일 찬송부르던 때처럼 어느 순간 분노의 물결이 되었어요. 그리고 어떤 때는 죄책감과 우울로 얼굴을 바꾸며 찾아왔고요. 지금은 그리움이에요. 또렷한 그리움이에요. 신기한 것은 그리움이 차오르는 순간, 엄마를 가장 가까이 느껴요. 엄마, 이제야 나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몸을 입고 인간이 된 이유를 알 듯해요. 아주 잠깐 인간의 몸으로 사시다 그 몸을 버리고 돌아가신 이유를요.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예수님의 몸이 되었어요. 그 보이지 않는 몸이 일하기 시작해요. 두려움과 호기로움 사이 좌충우돌했던 베드로의 인격이 변형되는 것을 봐요. 삼 년을 함께 먹고 자고 했던 선생님의 몸이 사라진 자리, 거기서 베드로는 비로소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못다 한 삶을 살아요. 이제 선생님의 부재는 현존의 다른 이름이에요.
상실의 텅 빈 공간에 슬픔, 분노, 죄책감, 수치심, 허무감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해요. 엄마, 나 는 이제 알아요. 슬픔도 분노도 죄책감도 사랑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요. 베드로에게도 그랬을 거예요. 선생님을 지키겠노라 칼을 휘두르던 호기로움도,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제자임을 부인했던 그 비겁함도, 닭 우는 소리에 나가 통곡하던 배신에의 죄책감도, 밤을 새워 텅 빈 그물을 끌어 올리던 그 무기력과 수치심조차도 선생님을 향한 사랑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엄마, 이제 묻고 싶어요. 물을 수 있어요. 실은 엄마의 안부는 그리 궁금하지 않아요. 4년의 세월을 지내며, 상실의 시간을 겪어내며 엄마의 영혼을 느껴요. 빛나는 영혼을 느껴요. 해처럼 빛나는 그곳에서 엄마 영혼이 그렇게 빛나고 있을 거예요. 엄마, 예원이, 예원이 말이에요. 예원이는 잘 지내고 있나요? 엄마 돌아가시고 “사모님, 얼마나 마음이 아프세요?”라고 메시지 보내왔던 예원이가 한 달 남짓 지나고 천국으로 떠났어요. 떠난 엄마를 새롭게 만난 시간이 애도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예원이 애도 작업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어요. 엄마를 끌어안고 슬픔의 강을, 분노의 강을, 죄책감의 강을 건너는 동안 예원이의 존재는 그저 잊고자 했어요. 죽은 예원이를 잊고자 하니 살았던 예원이도 생각할 수 없었어요. 그러자니 예원이 이후의 모든 젊은 죽음에 눈을 맞출 수 없었어요. 슬퍼할 자격, 분노할 자격조차 없는 것 같아 차마 뉴스를 볼 수도 없었어요. 예원이의 안부를 묻고 싶어요. 엄마, 예원이 만났죠? 호기심 가득한 그 큰 눈을 봤죠?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내고 기억하는, 그리고 훅 내미는 그 따스한 마음도요. 예원이가 검은 봉지에 홍옥을 사서 건넨 일이 있어요. 사모님이 홍옥 좋아하신다고. 홍옥은 엄마가 더 좋아하잖아요. 홍옥은 엄마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과가 된 거 거든요. 그런 아이예요. 이미 알죠? 천국에도 벌써 소문이 났을 거예요. 엄마, 예원이에게 내 안부도 전해줘요. 그리고,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도요. 지켜주지 못해서, 그렇게 절절한 긴급 구조 요청을 보내왔는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줄 수 있어요?
엄마 떠나보내고 다른 내가 되었으니 저도 이제 용기를 내볼게요. 나를 그렇게 좋아하던 예원이였는데 내가 잘하지 못해서 그 생명을 놓친 것만 같아서, 누군가 “네 책임이야!”라고 비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피하고만 싶었어요. 하지만 이조차도 떠난 예원이를 향한 내 부족한 사랑이었어요. 죄책감도 수치심도 내 부족한 사랑이에요. 올 4월 기일에는 예원이를 기억하는 청년들과 함께 작은 추도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몇몇 청년들이 예원이 상실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알았지만, 그조차도 외면하고 싶었어요. 엄마, 이제라도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 볼게요. 죽음을 막을 수는 없어요. 피조물의 한계, 인간의 한계, 저의 한계를 받아들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있어요. 죄책감, 미안함, 분노, 허무감으로 예원 언니 예원 누나를 만나고 있는 청년들과 얘기 나누고 싶어요. 그 모든 감정이 사랑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함께 일깨워야겠어요. 드러낸 슬픔, 겪어낸 감정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이제 용기를 내볼게요. 죄책감을, 부끄러움을 드러내 볼게요.
엄마와 함께 예원이가 그립고, 예원이와 함께 오래전 천국으로 간 아름다운 청년 한솔이도 그리워요. 한솔이도 잘 지내죠? 엄마,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천국을 그릴 때가 있어요. 그리움은 내 존재에 딱 달라붙어 이제 나의 일부가 되었어요. 그리운 얼굴들을 가까이 느끼는 방법은 그리운 얼굴을 그리워하는 길밖에 없어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한 구절이 자주 생각나요.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엄마를 그리고, 엄마보다 한참 먼저 천국에 가신 아버지를 그리고, 예원이를 그리고, 한솔이를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던 마음이 이제 모든 것을 그리는 마음이 되고 말아요. 그리움이 이끄는 길을 끝까지 가보면 거기엔 늘 나의 하나님이 계셔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천국에 볼모로 잡고 계시는 하나님이었어요. 그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이 나의 신앙이었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 하나님이 아니에요. 그리운 모든 영혼들을 가장 빛난 모습으로 품고 계시는 것을 알겠어요. 떠난 모든 이를 향한 그리움은 그분을 향한 그리움에 닿아요. 엄마, 나는 하나님이 그리워요. 엄마의 얼굴을 그리며 천국을 그려요.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은 천국이고,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은 지옥’이라고 엄마를 닮은 중세 신비가 시에나의 카타리나(Santa Caterina da Siena 1347-1380)가 말씀하셨어요. 그리운 얼굴을 다시 만날 때까지 오늘 이 순간을 천국으로, 사랑으로 살도록 할게요. 곧 만나요. 엄마.
'유다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보편적으로 곡해되는 것은 아닌가. 며칠 전 묵상하다 그런 생각을 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내가 팔리지 않았을 텐데..."라는 뜻이라거나. 누군가는 예수님을 배신해야 십자가 사건이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걱정. 그렇다면 차라리 유다는 악역일지언정 구원사역에 기여한 것이네, 하는 논평 등. 적어도 내가 아는 예수님의 마음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다. 내가 아는 예수님이 오해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인자가 배반당하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이것이 전혀 뜻밖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인자를 배반하여 넘겨줄 그 사람은, 이 일을 하느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때, 이미 배반자로 돌아선 유다가 말했다. “랍비님, 저는 아니겠지요?”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유다야, 나를 속일 생각을 마라.” (마 25:24, 메시지성경)
당신의 운명, 아니 소명이 유다 한 사람으로 인함이 아님을 아신다. (우리도 알지 않나?) 성경에 예언되었고,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다.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 당신 자신도 그 운명을 거스르고 싶어서 겟세마네에서 그렇게 간구하셨지만 결국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실 것을 아신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유다의 영혼을 향한 절절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예수님의 길이 있고 유다의 길이 있다. 너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차라리 좋았겠다는 것은, 결코 돌이키지 않는 유다의 영혼, 마지막까지 돌이킬 기회를 제공하시나 끝까지 완고한 유다의 영혼을 향한 안타까움이다. 그렇게 가까이서 예수님과 함께 하고도 결국 천국을 거절하고 마는 그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절절한 마음이다. ‘이미 배반자로 돌아선 유다’. 돌아선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지 못하신다. '마음'은 어떻게 못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 무능하기로 선택한 사랑이다. 세상 모든 것 다 할 수 있어도 "당신이 나를 좋아하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사랑이다. 우격다짐으로, 강압으로 얻어내는 마음은 사랑이 아니다.
이렇듯 완고한 영혼이라니, 그 완고한 영혼에 갇혀 고립되어 있다니... 그러느니 유다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거절할 자유까지 허락하시며, 마음을 열어 당신께 돌아서길 기다리신다. 그렇게 사랑하신다.
속는 생각, 속일 생각
예수님의 발에 비싼 옥합을 붓는 여인에 분개한 유다가 말했다. “저렇게 한심한 일을 하다니! 이것을 큰돈을 받고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유다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꿈과 야망을 사랑한다. 그 마음이 사랑이었다면, 존재 자체가 사랑이신 예수님을 몰라볼 수 없다. 3년 내내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그분의 '능력'을 보면서 "자기 꿈"을 키웠을 것이다. 그렇다 유다는 자기 꿈, 자기 이상을 사랑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조국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착각한다. “유다야, 나를 속일 생각을 마라.”라고 하신다. 무력하게 말씀하신다. 이 무력한 사랑은 아픈 사랑이다. 가장 큰 사랑이다.
예수님, 오늘도 제게 말씀하십니다. 신실아, 나를 속일 생각을 마라. 천국의 언어로 포장한 저의 마음을 꿰뚫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제 자존심을 세우고, 저의 에고를 드높이는 일을 두고 당신을 사랑하여 하는 일이라고 착각하는 제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속일 생각을 마라, 하시면서 저 자신에게 속고 있는 저를 일깨우십니다. 제 꿈과 이상을 사랑하면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제 마음을 정조준하여 말씀하십니다. 신실아, 나를 속일 생각을 마라. 무력하게 온유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알아보는 순한 마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