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저 별들 중에서
유난히도 작은 별이 하나 있었다네
그 작은 별엔 꽃이 하나 있었다네
그 꽃을 사랑한 어린 왕자 살았다네.


현승이가 요즘 꽂혀서 부르고 또 부르고 듣고 또 듣는 노래.
담임선생님께서 한 번 들려주셨다는데,
뭣 때문인지 심금 울리는 감동을 받았나보다.


파마 한 번 시키고 싶어서 꼬시고 또 꼬셔서 결국 어제 말고야 말았다.
저렇게 해놓으니 영락없는 어린 왕자! 으흐흐...


"엄마, 난 이 부분이 젤 좋아. 꽃이여 내 말을 들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또 좋은 부분이 멜로디가 똑같애. 왕자여 슬퍼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요.... 좋지? 이 부분.."


좀 커서 <어린 왕자> 읽으면 엄청 빠져들 스타일이긔.
우리 집 어린 왕자 늦잠 자고 일어나신 알흠다운 모습인데... 알흠답고 귀엽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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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생모짜렐라 치즈를 아낌없이 올려 구운 것도 모자라,
그 비싼 토마토 올려주고 빌사믹크림 뿌려주셨사오니,
부티가 좔좔 흐르나이다.


식사할 시간도 없이 심방하시며,
교회 소식지 원고 쓰시느라
피곤과 긴장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정줄 놓지 마소서.


채 한 입 씹기도 전에 "맛있지? 대박이지?"
촐랑거리는 장금이의 본심을 헤아리시사 몸과 마음과 영혼이 늘 튼튼하소서.


대개 생계와 삶의 기쁨과 영성이 남편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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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골을 끓여서 한 번 먹을 양만큼 담아 얼렸다. 시어머니께로 가는 사골이었다. 두통 때문에 냄새에 예민하셔서 당신 손으로 끓이면 입맛이 떨어져 드실 수 없다고 하셔서 언젠가부터 어머니께 사골이 생기면 내가 갖다 끓여서 인건비를 사골국물로 떼고 다시 갖다드리는 시스템이 생겼다. 물론 내가 자발적으로 그러겠노라 한 것이다. 나는 사골 끓이는 게 쫌 재밌는데다 최대한 어머니가 뭔가를 하시고, 뭔가를 나눠주셔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로와지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어머니를 위하고, 자발적이었던 일이었는데 이번엔 좀 껄쩍지근한 마음으로 주고 받는 형국이 되었다.

 

2.

며느리 편에서 보자면 유달리 요구가 많으신(당신편에서는 전혀 그 반대로 생각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신혼 초부터 기사로, 같이 살 때는 김치담그는 도우미 아줌마로, 어머니의 대리 주치의로, 하시라도 말씀을 들어들어야 하는 상담자로 많은 역할을 요구하셨다.
어머니과 관계맺기 1단계 시절에는 '거절하지 못함에 대한 자괴감'에 힘이 들었다. 마음으로는 어머니의 요구가 과하다 여기면서 '안돼요'를 적재적소에 꽂질 못해 '어...' 하다가 불려나가고 '어...' 하다보면 운전하고 있고 그랬다. 이건 뭐 내가 자발적으로 섬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끌려다는 것이니 내 몸만 괴롭지 하다못해 효도를 했다는 어떤 고차원적인 기쁨조차 잘 느낄 수 없었다.

 

3.

부단히 괴로워했다. 겉으로는 착한 며느린데 속으로는 항상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 통합되지 못하는 내 정서 때문에 말이다. 그럴 때 남편이고 누구고 '아니, 그렇게 하고나서 힘들면 처음부터 못한다고 하던지!' 이러면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게 되면 이렇게 고민하겠냐고! 하면서... 마음의 여정을 하면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이냐, 사랑이냐' 사실 어머니의 과한 요구에 거절하는 못하는 것은 내가 착해서도 아니고, 사랑해서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착한며느리가 되지 못할까봐 두려움, 부모님조차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말 뿐인 신앙인이 될까 두려움, 남편의 인정과 칭찬을 잃을까봐 두려움.... 기타 등등이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서는 거절을 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훨씬 마음이 자유로와지고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4.

어머니를 수 많은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어머니의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드리면서 정말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해 드리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만성두통과 불면증은 사랑받아야 나으실 거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내가 다니던 가톨릭의 기도피정에 모시고 다니고, 가끔 야외로 모시고 나가 하염없이 시간을 두고 어린시절 상처 이야기도 들어드렸다. 매일 매일 통화하며 어머니가 하루를 지내며 누구를 만나서 얼마나 훌륭하게 살아내셨는지 들어드리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읽기 쉬운 치유에 관한 책을 사다드리고 급기야 어머니의 병이 마음의 문제임도 인식시켜드리고 상담받는데 까지 모셔갈 수 있었다.

 

5.

작년 이 맘 때 아버님께서 갑자기 암선고를 받으시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아서 천국에 가셨다. 아버님의 짧은 투병기간 동안, 돌아가신 이후에 어머님의 선택과 행동에 많이 실망이 됐다. 다시는 어머니를 마주할 수 없을 만큼 어머니의 인격과 신앙에 실망스러워졌다. 아버님을 그리며 매일매일 우시는 것조차 슬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이었다. 마음으로 애를 쓰지도 않았지만 몸이 어머니를 향해서 움직이질 않았다. 어머니로부터 멀리, 거리를 두고 싶기만 했다. 다시는 예전처럼 어머니를 사랑하게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버님을 잃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하시고, 마음 붙일 교회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어머님의 말씀과 행동 역시 최악으로 치달으시는 것 같아 짧은 전화 통화 조차도 버거웠다.

 

6.

그럴수록 담담해지고 차거워지는 내 마음이다. 그 동안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도 몸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 어머님께 다가가 사랑해드릴 수가 없다.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어머님이 몹시 섭섭해하실 뿐 아니라 내 마음을 더 얼어붙게 만드는 언사도 서슴치 않으셨지만 그저 어머님과 선을 긋고만 싶다. 기회가 있으면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 드리고 입에 발린 격려나 칭찬은 한 마디도 내지 않았다. 어머님이 가장 힘들 때 가장 기대고 싶으실 내가 이러고 있는 게 죄송하긴 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걸 하겠다고 나설 힘이 이젠 내게 없다.

 

7.

어머님께 말씀 드렸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여전해요. 제가 행동이 달라졌어도 어머니에 대한 마음까지 달라진 건 아니예요. 그리고 괄호에 다음 말을 괄호에 넣었다. 그러나 다시 예전처럼 어머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지금으로선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요. 그러나 이제껏 어머님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제 힘으로 못했어요. 정말 모르겠고 길을 잃을 때마다 성령님 그 분이 신비롬게 안내하시고 그 손 잡고 왔어요. 혹, 그 분께서 다시 제 손을 잡고 끌어가신다면 회복될 수 있을거예요. 어머니, 여기까지예요. 지금은 여기까지예요.

 

8.

사골 한 그릇 한 그릇에 그 전 같은 따스함이 없는 걸 어머니도 아실 것이다. 따스함은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실낱 같은 의지 함 줌은 있다. 어머니 뿐 아니라 관계며 삶의 모든 문제에서 힘겨울 때마다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라며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곤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저 사골에 담았다. 나의 노래를....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다.

 

 

 

 

 

저녁이 되면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봐도 돼? 지금 예배 드려? 아빠 언제 와?' 이랬싸코.
오늘 아침에는 급기야 '엄마, 아빠 얼굴을 5일쯤 못 본 것 같애'
하면서 아빠를 그리워하기도, 기다리기도, 좋아하기도 하면서......


낮에 놀다가 뜬금없이 이렇게 꺾어주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가 싫지? 아빠 때문에 너무 힘들지 않아? 막 간식 달라고 하고..... 또 커피 달라고 하고... 자꾸 엄마한테 하녀처럼 뭐 시키고 힘들게 하잖아. 밥 먹을 때 막 신문보고~오. 트위터만 보고~오... 아빠가 싫지?"


라는 말에 뜨거운 반응이 없자.


"아니~이, 손님 오면 엄마가 음식 다 한 건데 막 자기가 한 것처럼 잘난 척 하고 (풉, 여기서 부터 자체 흥분) 음식이 쫌 이상하다 어쩌다 그러며~언, 에이그 정신실~ 이러면서 뭐라고 구박하는 것처럼 하고 꼭 잘난 척 하는 거 같애. 에이, 커피 맛이 아니다... 이렇게 하고.... 아빠가 싫지?"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별 호응이 없는 걸 알아차리고 조용히 다시 <CSI>로 빠져듭니다.


아빠, 이 사람.
좋긴한데.... 엄마를 사이에 두고 보면 그냥 가만히 두기에는 참 껄끄러운 존재입니다.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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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가멜이 학교 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어?
출석번호가 1번이야.
'가'에 또 '가'니까 무조건 1번일껄.


누나는 봉사활동이라 일찍 가고,
혼자 거실에 엎드려 레고 들고 중얼거리다가, 엄마 옆에 와서 쫑알거리다 학교 가는 길.


(팔불출 드립 발사!)
우찌 이렇게 귀여운 애가 내 아들이 됐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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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오늘도 본당사수를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선다. 본당 도착 예배 전 35분. 이미 꽉 차 있고 간간이 한 두 자리 남아 있다. 오늘도 세잎이다. 30분 전이면 반주도 코드도 요란하지 않는 피아노의 선율이, 10분 전이면 중세 교회로 회귀하는 듯한 오르간 소리가 본당 작은 공간을 채운다. 이 빽뮤직에 젖어 침묵으로 기도하는 30분이 좋다. 일주일을 돌이켜보고,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점검해보고, 그리고 나는 결국 절대자 앞에 예배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깊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라는 고백을 하면서 눈을 뜨고 예배 드리고 싶은 심정 간절하다.

헌데 현실을 그렇지 않다. 뒤쪽에 앉으신 부부는 월말 회계보고 내용을 짚어보시며 나지막히 토론 중이시고, 몸을 던져 본당을 사수하신 타교회에서 오신 듯한 여자 교우 두 분은 '30분 전에 본당이 꽉 차도록 사람이 밀려드는 이유'에 대해 폭풍수다 중이시고, 어떤 날은 모녀가 스마트폰 들여다보며 앞으로의 학원 스케쥴을 짜기 열중하시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소근소근 소근소근.... 이렇게 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보통은 또 이렇다. 주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부터 예배로 향해 달려가는 마음이라 본당에 도착할 때는 내 맘이 홀리 홀리 홀리, 그 자체이다. 자, 본당에 도착했다. 안 쪽에 자리가 비어있다. (절대로 끝자리가 비어있지는 않다. 안이 텅 비었어도 보통은 먼저 오신 분이 끝자리를 잡고 앉아계신다) '저기... 죄송하지만 안으로 좀 들어갈께요' 라고 굽신굽신 할 때 밝게 웃으면서 '네, 들어가세요. 아니, 제가 들어갈께요' 라고 하시는 분은 찾아보기 어렵고 비켜주시며 인상만 안 쓰셔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소근거리는 분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기도는... 개뿔... 무슨 기도? 앉아서 그 분들을 판단하기에 바쁘다. '우이씨, 예배에 온 사람들이 것두 본당사수를 위해 30분 전 부터 이 자리를 지키는 열심이 특심이신 분들이 옆에 있는 사람 헤아려 배려하는 태도라곤 없고, 이기적이고....$%^&%*$#$%$#....' 라면서 말이다.


예배에 대해서 언젠가는 들었을 얘긴데 처음 듣는 얘기처럼 새신자반에서 배웠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죽는 일이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그렇게 꼬박꼬박 예배 드리고, 열심으로 예배 드려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예배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죽는 경험을 하지 않아서(못해서) 이다. 구약의 속죄제의 제물처럼 죄의 사함을 위해 내 손으로 제물을 잡아 손에 피를 묻히며 드려야 하고, 속건제 처럼 이웃에게 해를 끼치고 속인 일이 있으면 그에 대한 배상하는 것을 예배에 포함 시켜야 하고, 소제처럼 나를 곱게 갈아서... 가루처럼 갈아서 들여야 한다. 헌데, 예배의 의식만 있을 뿐 나를 갈고, 나를 죽이고, 나의 거짓과 속임수로 아픔 당한 사람들을 헤아리는 헤아림이라고 없다.


본당사수를 하고도 곁에 앉은 사람들의 경박함과 배려없음 등 사람냄새에 마음의 집게 손가락을 꺼내들고 흔드는 나는 도대체 무슨 예배를 드리고, 나를 어떻게 갈아내겠다는 것인가? 사회 보는 목사님의 목소리 톤이며, 성가대의 찬양에 일일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평가를 한다면 정작 예배하는 나 자신을 평가하는 일은 누구의 몫이란 말이가? 그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거룩한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 이상으로 절실한 것은 마음으로 든 집게 손가락을 거두는 것 아닐까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홀리한 표정과 눈물짓는 찬송은 됐다!  물론 그 집게손가락을 돌려 다시 내게로 향해 '거봐. 너는 언제나 그렇게 교만하고, 자의식이 강하고, 너만 잘났다 하지' 하면서 다시 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도 힘써도 나라는 사람은 곁에 앉은 조금 불편한 사람들을 잠시나마 마음으로 품어주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본당사수와 예배는 참된 의미가 될터이다.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 강변으로 나갔다. 조금 전 들은 주일 설교를 다시듣기 하며 걷는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삶에 대한 욕망을 매일 직시하고 매일 내려놓자. 내게 권력과 힘이 있어 이 거대한 도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한들 내 안에 나만 옳다하는 자뻑과 거짓과 욕망만이 도사리고 있다면, 예배는 그 욕망을 부추기고 합리화하는 도구가 될 뿐 아니겠나. 이제, 그런 예배 그만 드릴 때도 됐다 아니가. 예배는 끝나지 않았다. 남편, 아이들, 시어머니, 삶에서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을 향한 겉으는 온화한 웃음, 마음으론 공포의 집게손가락을 거두는 그 일. 그것이 여전히 내게는 끝나지 않은 예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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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16

 

삼진 : 모님, 모님. 제 유형은 언제 얘기해주시나 진짜 많이 기다렸어요.

모님 : 그러게. 그렇게 기다리더니 드디어 삼진이 이야기하는 날이 왔네.

삼진 : 요즘 일이 많은 때라 휴가 내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다행히 이번에 저희 팀이 낸 프로젝트 평가가 좋았어요. 어제 사무실 분위기 살짝 훈훈한 틈을 타서 휴가 냈어요. 후후.

모님 : 잘 됐다. 바쁜 삼진이랑 여유 있게 만나니까 더 좋잖아. 자 커피 마시자. 어제 볶은 거라 맛이 썩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한번 잘 내려 볼게.

삼진 : 네에, 모님 커피는 언제 볶은 거라도 좋죠. 그런데 모님, 혹시 루왁커피 아세요? 명품 커피라고 하던데…. 저 얼마 전에 인도네시아 갔다 왔잖아요. 그때 그거 마셔봤거든요. 와우~ 좋던데요.

모님 : 커피 열매를 먹은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얻어지는 커피빈이지. 그걸 현지에서 마셔 봤다구? 루왁커피 드신 입맛에 모님 커피가 성에 차시려나? 호호. 자, 마시자.


삼진 : 왜 그러세요~ 제겐 모님 커피가 진정 명품 커피죠. 명품 커피 나왔으니 이제 명품 강의를 들려주시지요.

모님 : 고뤠? 시대가 요구하는 유능함, 자신감, 기민함과 활동성까지 갖춘 3유형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 볼까? 이렇게 얘기해주니까 기분이 좋지?

삼진 : 아, 뭐 옳으신 말씀이네요. 하하. 농담이요. 모님, 3유형의 자아이미지가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능력이 있다라는데 제가 뭐 그리 성공한 사람인가요? … 아닌가? 성공을 안했다고 볼 수는 없는 건가?

모님 : 그치? 아직 목이 마르지? 하하. 그러면 삼진이 말로 한번 표현해 봐. 어떤 이미지라고 생각해?

삼진 : 그저 열심히 하죠. 뭐든 열심히 잘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웬만한 건 다 잘하죠.

모님 : 대체로 어디서든 주목받고 사교성과 적응력이 뛰어나지. 일을 할 때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눈에 보인다며? 어느 3유형이 그러더라. 자기는 반으로 자른 토스트 어느 쪽에 잼이 더 많이 발라졌는지, 어느 줄에 서야 빨리 살 수 있는지 딱 보면 안다고.

삼진 : 하하하. 그래요? 맞아요. 성공의 길이 눈에 보이는데 안 하고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이해가 안 되기도 하죠. 사실 아까 말씀드린, 저희 팀이 낸 프로젝트라는 거요. 그거 제가 기획한 거거든요. 이대로 가면요… 모님, 저 연말 안으로 승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님 : 퇴근도 늦고 힘들어 보이는데 삼진이가 회사생활을 참 즐겁게 하는 것 같애.

삼진 : 네, 제 적성에도 맞고요. 무엇보다 저희 회사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요.

모님 : 자아이미지의 또 다른 이름 집착으로 넘어가 보자. 3유형의 집착이 성공이라는 거 알지? 3유형들은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데, 3유형들에게 있어서 성공은 곧 선이고 진실이라는 거지.

삼진 :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성공하는 3유형이 악하고 거짓되다고 들리는 건 뭐죠? 성공할 능력이 있어서 성공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씀은 아니시죠? 설마.

모님 : 물론이지.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야. 3유형은 자신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인정받는 것에서 찾는다는 거지. 그러다 보니 성공 자체에 목을 매게 되겠지. 잘되고 잘하고 성공한 것으로, 눈에 띌 정도로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으로 존재감을 확인한다고 하니까.

삼진 : 아, 그러니까 성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공을 통해서 주목받는 것이 목적이다 이 말씀이죠? 맞네요. 뭐… 그런 것 같아요.

모님 :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허영에 빠지기 쉬워. 세련된 옷차림, 명품, 상표, 외모 같은 것들이 자신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지.

삼진 :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저번에 여행 갔다 오면서 샀어요. 모님, 3유형이 아니라도 명품은 다 좋아하잖아요. 모님은 명품 안 좋으신가요? 좋으시죠? 헤헤헤.

모님 : 좋지 왜 안 좋아? 3유형이 '성공적인 모습'만 보이려다 보니까 외모나 인상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얘기야. 월세방에 살아도 세단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도 하지.

삼진 : 아, 뭐 그런가요?

모님 : 3유형은 성공에 집착하는 만큼 실패를 결사적으로 회피해. 일의 실패를 곧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실패한 3유형보다 비극적인 것은 없겠다.

삼진 : 모님, 그런데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패한 경험이 거의 없어요. 다 잘 됐던 것 같아요.

모님 : 정말 그럴까? 대부분의 3유형이 자신의 실패를 잘 인정 못해. 실패했다 해도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든지 하면서 말이야.

삼진 :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좀 다른 경우 아닌가요?

모님 : 작년쯤인가? 삼진이가 교회를 옮기겠다며 한동안 잠수 탄 적 있었지? 그때 왜 그랬는지 다시 말해줄 수 있니?

삼진 : 그때 얘긴 갑자기 왜요? 뭐 관련이 있는 건가요? 음… 좀 더 체계적인 청년부 교육이 있는 교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아, 물론 우리 청년부가 부족하다기보다 왠지 그때는 지적인 욕구가 막 솟구쳤던 것 같아요.

모님 : 그때 교회도 몇 주 빠지고 나름 슬럼프였던 것 같은데 단지 체계적인 교육에 대한 아쉬움뿐이었어?

삼진 : 유도심문하시는 것 같아요. 기분이 쫌 그런데요….

모님 : 아, 미안해. 내가 말을 해 볼게. 물론 어느 정도 내 추측이야. 작년 초에 삼진이네 조가 부흥도 하고 분위기도 참 좋았었잖아. 그런데 그러다 조원 한두 명 하고 어려움이 있었지?

삼진 : 아, 그거요. 제가 후배들한테 잘해줄 땐 잘해줘도 아닌 건 못 봐주잖아요. 그런 걸로 애들이 좀 섭섭해 했었죠.

모님 : 그래. 그런 일들로 조모임이 잘 안되고 어려웠었던 걸로 기억해.

삼진 :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정말…. 애들이 참 철이 없어요. 진심으로 대해주는데 그렇게 선배 마음을 몰라주다니요.

모님 : 어쩌면 그게 삼진이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실패의 순간인지도 모르겠어. 조원들이 잘 따라주지 않고, 삼진이의 강점을 봐주는 것이 아니라 약점에 주목하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 그러면서 모임은 시들해졌고…. 조장으로서 네가 맡은 조가 어려워졌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자는 거야. 자기가 맡은 일은 항상 성공하고 잘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실패라 여겨서 3유형의 회피가 나왔던 건 아니냐는 거지. 3유형들이 실패의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실은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면서 직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삼진 : (울컥) 모님… 그때 제가 조장으로서 실패했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모님 : 아니. 조장으로서 실패했단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패했으면 좀 어떠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내 기억으론 그때 삼진이의 슬럼프가 오래갔어. 그리고 내내 청년부의 구조적인 문제나 후배들의 철없음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 그게 3유형으로서 실패를 회피하는 방식은 아니었을까 하는 거다. 너무 힘든 얘기지?

삼진 : 살짝 각오는 하고 왔지만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네요. 생각해 볼게요. (표정과 자세를 추스르며)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말씀해주세요.

모님 : 3유형의 근원적인 죄는 거짓과 기만인데 자신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진실을 가장한다는 의미야. 아까 말했지. 3유형에게 있어서 성공이 곧 선이고 진실이라고.

삼진 : 아, 제가 3유형에 관한 설명 읽어 봤는데요. 3유형이 거짓말을 잘한다고요?

모님 : 거짓말이라…. 성경 인물 중에 야곱이 3유형이거든. 야곱이 형 에서에게 장자권을 사는 장면, 형으로 변장해서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 받는 장면이 3유형의 거짓과 기만을 딱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성공하기 위해서 또는 성공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진실을 가장한다는 거야.

삼진 : 야곱이 3유형이었군요?

모님 : 응. 부부싸움을 하고도 모임에 가서 세상에 더없는 잉꼬부부처럼 행동하는 남편에게 기만이라고 했더니 3유형인 남편이 그러더래. '그 순간의 분위기에 충실했을 뿐이다. 나는 진실하다.'라고 말이야.

삼진 : 핫! 처음으로 공감이 가는 얘기네요.

모님 : 이렇듯 그 순간에 가장 적절하고 가장 멋지고 성공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확인하려 하는 3유형이 쓰는 방어기제는 동일화야.

삼진 :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모님.

모님 : 자신의 일, 훌륭한 역할, 지위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거야. 목사님이 그럴듯한 설교를 해놓고 그 설교가 자신인 줄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맨 처음 에니어그램을 소개할 때 말한 것처럼 역할이나 신분 등 내적 외적 페르조나는 우리가 필요에 의해서 쓰는 거잖아. 페르조나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순 없지. 3유형들은 자신의 성공한 이미지, 역할, 잘 나가는 회사 등을 유독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거야. 때문에 정직하게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누구보다 어려울지도 몰라.

삼진 : 휴우~ 좀 피곤해지려고 하네요.

모님 : 그래. 힘들 거야. 듣고만 있어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아까 야곱 이야기를 했다만, 야곱은 가능한 한 모든 계략을 동원해 하나님과 겨루고 사람과 겨루며 성공을 얻어내려고 해. 놀랍게도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사 41:14) 인물 야곱에게 복 주시길 거절하지 않으셨어. 성공과 실패의 잣대는커녕 그분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지. 삼진아, 3년 동안 함께 먹고 마시며 삶으로 가르치신 예수님이 실패한 조장이었다는 거 아니? 조원들로부터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배신을 당하고 조모임은 와해되고 홀로 십자가의 길로 가셨어. 십자가의 비밀은 실패의 비밀이란다. 곧 부활절이네. 철저한 실패와 사망 없이 부활은 없어. 삼진이 지금 많이 힘들지?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하자. 남은 휴가 반나절은 몸을 좀 푹 쉬어주면 좋겠다.

삼진 : 그러게요.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네요. 하여튼 감사해요. 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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