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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김종필 대표'도 아니고,
그 이름도 어색한 '김종필목사'
오늘 목사되고 첨으로 주일예배에 축도를 했습니다.
1부 예배 마치고 그 분께 온 메세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는데 울컥했어'
2부 예배엔 실시간 영상예배로 화면 캡쳐해서 저 사진을 건졌습니다.
3부 예배엔 본당사수 하고 그 분의 축도를 머리 조아리고 실시간으로 받았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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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안수를 받은 주일에는 매 예배마다 담임목사님 대신 축도를 하는 배려 깊은 전통이 있네요.
게다가 5부 예배엔 결혼식이 있어서 이재철목사님과 나란히 주보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이.... 하악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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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안수받고, 바로 그 주 토요일에 결혼식 주례를 하는 영광이 있었어요.
극강동안으로 인한 우려가 있었지만 특유의 진중함으로 어렵고 떨리는 첫 주례를 통과했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주례하는 당신보다 내가 더 떨려서 죽는 줄 알았고, 집에 와선 떡실신이었소)
감사하고 신비롭게도 늘 그리운 가족같은 한영교회 분들이 여러 분 계시는 자리에서 안수 후 첫 설교, 첫 축도를 했다는 게 믿어지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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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교회 회보에 '부활'에 관한 칼럼을 써야했지요. 딱 작년 이 맘 때 샘물호스피스로 간 한솔이, 아버님의 암선고 이후로 남편에게 죽음과 부활은 얼마나 뼈아픈 주제였는지요.

월요일 안수식,
수요일 결혼강의와 총선,
토요일 주례,
주일 축도.
옆에서 지켜보며 그 어떤 일보다 가장 고통스럽게 해낸 일이 이 원고였습니다.

그렇게 의미있은 많은 '처음'들이 있는 한 주가 지나갔습니다. 그의 글의 결론처럼 1년이나 지속된 고난주간을 직면하며 죽음을 짊어졌으나 부활의 영광을 함께 사는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1.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내가 속한 개신교 아닌 천주교의 성인들과 신부님들의 가르침과 책을 통해서 영성의 샘물을 마시는 시간들이었다. 기도원이 아닌 수녀원, 통성기도가 아닌 침묵으로 1년에 한 두 번 피정을 통해서 생전 처음 기도를 배우는 아이처럼, 생전 처음 예배하는 아이처럼 기도와 미사에 앉아 있곤 했었다.
울트라 정통 보수 대한 예수고 장로회 합동 출신의 우리 엄마가 알면 '얼라, 천주교가 이단 아녀. 얘가 미쳤네' 하셨을 것이고. 내가 속했던 교회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행보다.


2.
'주님, 이거 주세요. 저거 필요해요. 아, 이건 제가 잘 모르겠으니까 아버지 뜻대로 하세요. 그리고... 암..... 또 뭐더라..... '
기도는 하나님께 뭘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 그 분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정작 내 기도는 요구사항 늘어놓기가 끝나면, 조금 정직하게 내 맘의 복잡한 실타래를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만큼 내놓고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쩝쩝거리는 그런 나날이 오래되면서부터였다.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이 찬양 참 좋아하는데 기도 속에서 깊이 그런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있지만 길을 알 수 없는 그런 시절이었다.

알 수 없는 신비에 이끌려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가톨릭영성을 접하고, 여러 번의 침묵피정을 통해서 비로소 정직한 기도, 듣는기도, 쉬지 않고 하는 기도를 조금 알게 되었다.


3.
살아갈수록 삶은 신비에 가깝다.
애를 써서 선택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저 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만 붙들고 있었는데 어느 새 나는 처음에서 멀리 와 있었다. 내게 익숙하지 않는 가톨릭 예전의 언어들, 형식들 속에서 때로 어리둥절 했다. 그리고 그 낯설음이 버거웠던 어느 어느 경당에 앉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이 낯선 곳에선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배운 신앙의 전통이 있는데 왜 거기선 내게 기도를 가르쳐주지 않는거지?' 동냥젖을 얻어 먹는 아기처럼 배고파 정신없이 먹지만 마음까지 편안한 건 아니었다.


4.
게다가 목회자 사모인 나는 '보여주기 위한 기도'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았다. 자아가 강한 난 그런 강요에 순순히 굴하지 않았고 남편 역시 '당신이 기도하고 싶을 때 새벽기도 가라'며 그로서는 하기 힘든 지지를 해주었다.
그렇다고 당당한 것은 아니었다. 꼬박꼬박 새벽기도 하지 않는 사모는 '기도하지 않는 사모'이고 그런 사모는 남편에 도움이 안되는 결정적 결격사유를 가진 자였다. 그런 목소리가 밖인지 안에서인지 늘 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난 정말 나쁜, 잘못된, 사모에다가 천주교에 물든 부족하기 까지한 사모였다.


5.
교회 주변을 걷다가 양화진 책방 앞에 섰다. 책방 유리에 새겨진 글에 눈이 번쩍한다.
'이래저래 양화진은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그 이야기 중,
천주교와 개신교의 화평한 조우를 모두어
양화진 책방을 열었다'
양화진 책방을 운영하는 홍성사의 정신과 100주년 기념교회의 영성은 같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다. 어쩌다보니 나 '천주교외 개신교의 화평한 조우'를 꿈꾸는 그런 곳에 몸과 마음과 영성의 뿌리를 세우게 되었다.


6.
이것은 참으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이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세밀한 위로이고,
다시 그 분 앞에 조용히 무릎 꿇어 기도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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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씽크대 앞에 꽃이 피었습니다.
한 송이 두 송이 꼬맹이 쥬스병에 꽂아 둔 꽃들이 볼수록 사랑스럽습니다.
저기 꽂힌 꽃들이 들꽃이면 더 그럴듯 하겠네요.
저렇게 꽂아두는 꽃 바라보는 걸 좋아합니다.
소박하고, 일상스럽고요.





남편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부끄럽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목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소박한 안수식에선 사실 아무 감흥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님, 친정엄마 두 분이 가장 감동에 겨우셨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의 절친님들께 죄송합니다.
누구보다 함께 기뻐해주실텐데 미리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 가장 욕 많이 먹는 사람들이 목산데... 목사되는 게 뭐 자랑할 일이라고...' 
라며 갓 나온 따끈따끈한 김목사님이 그러길 원했습니다.
그래도 우연히 알게되어 찾아와 준 친구들이 있어서 마음 따뜻하고 고마웠습니다.





베스트 샷! 입니다.
이런 사진 좋아요. 다들 끝나고 돌아갔는데 늦게 소식을 들은 친구 둘이 얼굴만 보겠다고 달려와서 껌껌한 교회 주차장에서 찍었습니다. 이웃주민 영주가 자기 한 몸 바쳐 희생하여 베스트샷 건졌습니다.^^
떠나면 끝인 줄 알았는데 두고두고 TNTer들이 삶의 위로와 기쁨이 되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만나면 좋은친구~우. 나의 TNTer들 고마워요. 사진에 없다고, 함께 하지 못했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줘하지 말아요. 마음으로 모두 함께였어요.



 



목사가 별 건 가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 구석구석에서 하늘의 삶을 살아내고,  그 속에서 건져 올린 소박하지만 살아있는 말씀으로 그 나라를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당신 그렇게 걸어가는 길에 함께 할께요. 오늘처럼, 그렇게 살아요.

 

 

 

 

 

 

마지막 강도사의 밤. 강도사 파티가 열렸습니다.
(뭔 말이다냐?)
그러니까, 두 분의 강도사 딱지 떼기 전 날 밤에 야채 쫌 김에 말았다는 얘기입니다.
(뭔 말이냐고?)
그러니까 목사안수 받기 전 날, 미국에서 날아온 일명 성호삼츈과 승주이모, 그리고 하린이와 한결이 가족이 벼르고 벼르다 방문하여 하룻밤 보내면서 놀다보니 강도사 파티가 되었다구요.




이 시대 가장 부끄러운 이름 중 하나인 '목사'가 되는 일.
참 중요한 일인데..... 정말 대단한 날인데......
월요일에 있는 목사안수보다 더 중요한 날이 수요일이라는 것에 사구동성의 마음을 모읍니다.
수요일이 중요합니다. 투표가 중요해요. 선거가 중요해요.
선거를 통해 목사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의 책임을 다하는 작은 행동이 중요합니다.


작은 일상이 중요합니다.
이 시대의 많은 목사님들이 손가락질과 질타 속에서도 무탈하게 잘 지내시는 것처럼 살지 않으려면 바로 지금의 일상이 중요합니다. 바로 지금, 매일 뼈아픈 자기성찰을 해야지요. 그럴 듯한 종교인으로 포장지를 한 겹 한 겹 덧씌워가고 있진 않은지. 눈에 보이는 성공이 목회의 성공이라고 착각하며 진정한 자기를 잃고 가지는 않는지.

 



둥실둥실 순둥이 한결이가 투표권을 가질 즈음에,
그 즈음에 우리 나라는 얼마나 살 만한 곳이 되어있을까요?
그 즈음에 아빠들은 어떤 목회자, 어떤 신학자가 되어 있을까요?


그 때가 염려된다면 지금을 잘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 미래는 수많은 오늘과 오늘, 또 오늘과 오늘이 연결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오.늘.은.
닥치고!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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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저 별들 중에서
유난히도 작은 별이 하나 있었다네
그 작은 별엔 꽃이 하나 있었다네
그 꽃을 사랑한 어린 왕자 살았다네.


현승이가 요즘 꽂혀서 부르고 또 부르고 듣고 또 듣는 노래.
담임선생님께서 한 번 들려주셨다는데,
뭣 때문인지 심금 울리는 감동을 받았나보다.


파마 한 번 시키고 싶어서 꼬시고 또 꼬셔서 결국 어제 말고야 말았다.
저렇게 해놓으니 영락없는 어린 왕자! 으흐흐...


"엄마, 난 이 부분이 젤 좋아. 꽃이여 내 말을 들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또 좋은 부분이 멜로디가 똑같애. 왕자여 슬퍼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요.... 좋지? 이 부분.."


좀 커서 <어린 왕자> 읽으면 엄청 빠져들 스타일이긔.
우리 집 어린 왕자 늦잠 자고 일어나신 알흠다운 모습인데... 알흠답고 귀엽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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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생모짜렐라 치즈를 아낌없이 올려 구운 것도 모자라,
그 비싼 토마토 올려주고 빌사믹크림 뿌려주셨사오니,
부티가 좔좔 흐르나이다.


식사할 시간도 없이 심방하시며,
교회 소식지 원고 쓰시느라
피곤과 긴장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정줄 놓지 마소서.


채 한 입 씹기도 전에 "맛있지? 대박이지?"
촐랑거리는 장금이의 본심을 헤아리시사 몸과 마음과 영혼이 늘 튼튼하소서.


대개 생계와 삶의 기쁨과 영성이 남편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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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골을 끓여서 한 번 먹을 양만큼 담아 얼렸다. 시어머니께로 가는 사골이었다. 두통 때문에 냄새에 예민하셔서 당신 손으로 끓이면 입맛이 떨어져 드실 수 없다고 하셔서 언젠가부터 어머니께 사골이 생기면 내가 갖다 끓여서 인건비를 사골국물로 떼고 다시 갖다드리는 시스템이 생겼다. 물론 내가 자발적으로 그러겠노라 한 것이다. 나는 사골 끓이는 게 쫌 재밌는데다 최대한 어머니가 뭔가를 하시고, 뭔가를 나눠주셔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로와지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어머니를 위하고, 자발적이었던 일이었는데 이번엔 좀 껄쩍지근한 마음으로 주고 받는 형국이 되었다.

 

2.

며느리 편에서 보자면 유달리 요구가 많으신(당신편에서는 전혀 그 반대로 생각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신혼 초부터 기사로, 같이 살 때는 김치담그는 도우미 아줌마로, 어머니의 대리 주치의로, 하시라도 말씀을 들어들어야 하는 상담자로 많은 역할을 요구하셨다.
어머니과 관계맺기 1단계 시절에는 '거절하지 못함에 대한 자괴감'에 힘이 들었다. 마음으로는 어머니의 요구가 과하다 여기면서 '안돼요'를 적재적소에 꽂질 못해 '어...' 하다가 불려나가고 '어...' 하다보면 운전하고 있고 그랬다. 이건 뭐 내가 자발적으로 섬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끌려다는 것이니 내 몸만 괴롭지 하다못해 효도를 했다는 어떤 고차원적인 기쁨조차 잘 느낄 수 없었다.

 

3.

부단히 괴로워했다. 겉으로는 착한 며느린데 속으로는 항상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 통합되지 못하는 내 정서 때문에 말이다. 그럴 때 남편이고 누구고 '아니, 그렇게 하고나서 힘들면 처음부터 못한다고 하던지!' 이러면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게 되면 이렇게 고민하겠냐고! 하면서... 마음의 여정을 하면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이냐, 사랑이냐' 사실 어머니의 과한 요구에 거절하는 못하는 것은 내가 착해서도 아니고, 사랑해서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착한며느리가 되지 못할까봐 두려움, 부모님조차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말 뿐인 신앙인이 될까 두려움, 남편의 인정과 칭찬을 잃을까봐 두려움.... 기타 등등이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서는 거절을 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훨씬 마음이 자유로와지고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4.

어머니를 수 많은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어머니의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드리면서 정말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해 드리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만성두통과 불면증은 사랑받아야 나으실 거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내가 다니던 가톨릭의 기도피정에 모시고 다니고, 가끔 야외로 모시고 나가 하염없이 시간을 두고 어린시절 상처 이야기도 들어드렸다. 매일 매일 통화하며 어머니가 하루를 지내며 누구를 만나서 얼마나 훌륭하게 살아내셨는지 들어드리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읽기 쉬운 치유에 관한 책을 사다드리고 급기야 어머니의 병이 마음의 문제임도 인식시켜드리고 상담받는데 까지 모셔갈 수 있었다.

 

5.

작년 이 맘 때 아버님께서 갑자기 암선고를 받으시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아서 천국에 가셨다. 아버님의 짧은 투병기간 동안, 돌아가신 이후에 어머님의 선택과 행동에 많이 실망이 됐다. 다시는 어머니를 마주할 수 없을 만큼 어머니의 인격과 신앙에 실망스러워졌다. 아버님을 그리며 매일매일 우시는 것조차 슬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이었다. 마음으로 애를 쓰지도 않았지만 몸이 어머니를 향해서 움직이질 않았다. 어머니로부터 멀리, 거리를 두고 싶기만 했다. 다시는 예전처럼 어머니를 사랑하게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버님을 잃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하시고, 마음 붙일 교회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어머님의 말씀과 행동 역시 최악으로 치달으시는 것 같아 짧은 전화 통화 조차도 버거웠다.

 

6.

그럴수록 담담해지고 차거워지는 내 마음이다. 그 동안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도 몸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 어머님께 다가가 사랑해드릴 수가 없다.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어머님이 몹시 섭섭해하실 뿐 아니라 내 마음을 더 얼어붙게 만드는 언사도 서슴치 않으셨지만 그저 어머님과 선을 긋고만 싶다. 기회가 있으면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 드리고 입에 발린 격려나 칭찬은 한 마디도 내지 않았다. 어머님이 가장 힘들 때 가장 기대고 싶으실 내가 이러고 있는 게 죄송하긴 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걸 하겠다고 나설 힘이 이젠 내게 없다.

 

7.

어머님께 말씀 드렸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여전해요. 제가 행동이 달라졌어도 어머니에 대한 마음까지 달라진 건 아니예요. 그리고 괄호에 다음 말을 괄호에 넣었다. 그러나 다시 예전처럼 어머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지금으로선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요. 그러나 이제껏 어머님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제 힘으로 못했어요. 정말 모르겠고 길을 잃을 때마다 성령님 그 분이 신비롬게 안내하시고 그 손 잡고 왔어요. 혹, 그 분께서 다시 제 손을 잡고 끌어가신다면 회복될 수 있을거예요. 어머니, 여기까지예요. 지금은 여기까지예요.

 

8.

사골 한 그릇 한 그릇에 그 전 같은 따스함이 없는 걸 어머니도 아실 것이다. 따스함은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실낱 같은 의지 함 줌은 있다. 어머니 뿐 아니라 관계며 삶의 모든 문제에서 힘겨울 때마다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라며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곤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저 사골에 담았다. 나의 노래를....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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