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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부터 지금까지를 주욱 돌아보면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크고 작은 변화들을 떠올려보면 몇 년의 세월을 산 듯한 느낌.
그런데, 한솔이가 떠난 지 1년이 되었다고 하니 1년이 이렇게 순식간에 갈 수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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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5일 한솔이 나무가 있는 정읍에 다녀왔다.
조용히 가족끼리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어찌어찌 하여 이렇게 반가운 얼굴들 함께 하였다. 





각자 조금씩 의미가 다른겠지만,
장로님과 권사님께는 언어도 다 풀어내실 수도 없는 1년의 세월이셨겠지만....
슬픔의 1년을 모두 각자의 몫으로 살아내고 함께 모였다.
가까이서 지켜봤던 남편에게 한솔이가 남긴 것들이 얼마나 큰 지, 얼마나 어려운 숙제였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서 우리를 덮치기 전에 죽음은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았던 두려움이었다.
한솔이가 떠나가고, 아버님이 떠나가시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뼈아픈 경험과 인정과 그리고 그 끝에 새로운 믿음의 싹이 돋아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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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이 나무에 다녀와서 쓴 꼬마 철학자 현승이의 일기다.
열 살 현승이가 저런 일기에 저런 제목을 달고, '어차피 죽을 거면 살 필요도 없다'는 말을 써낸다. 문득 현승에게도 '죽음'은, 그리고 그에 잇닿은 삶은 새로운 의미였겠구나 싶다.
그냥 마음 어딘가가 찌리리 하고 아픈데...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현승이도 자신의 삶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과 죽음의 신비를 알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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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차 안에서 있었던 치유적 대화.


현 : 엄마, 엄마는 어디서 살 때가 제일 힘들었어? 덕소 아이파크? 어디야? 어디서 살 때 제일 힘들었어?
엄 : 음.... 엄마는 백조현대 살 때 제일 힘들었어.
현 : 맞어. 그때, 그치?
엄 : 뭘 맞어. 엄마가 힘들었던 걸 알어?
현 : 아, 그런가? 엄마 백조현대 살 때 뭐가 제일 힘들었어?
엄 : 그때 아빠가 신대원에 있을 때였잖아. 엄마는 일을 제일 많이 할 때였고... 아빠가 없는데 일하고 와서 너희들을 혼자서 잘 돌봐주기가 힘들었던 것 같애.
현 : 맞어. 그래서 엄마가 그때 우리를 많이 때리고 집도 나가고 그랬었지?
엄 : 허거걱! 야아~ 많이는 안 때렸어. 집도 한 번 밖에 안나갔는데..... 그렇게 생각이 돼? 그래 맞어.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 땐 정말 힘들었었던 것 같애. 현승이 그때 많이  놀랐었지? 너 그래서 요즘도 엄마가 운동가서 조금만 늦어도 불안해서 전화하고 그러지.
현 : 그런가? 그런가봐.
(난입 채윤, 이런 류의 얘기 별로 안 좋아하는 특징이 있음)
챈 : 맞어. 엄마 그때 진짜 힘들었겠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가 샤워도 못했잖아. 우리가 욕실에서 놀다가 '엄마 다 놀았어' 그러면 엄마가 들어와서 우리 머리도 감겨주고 목욕시켜주고 둘 다 해줘야 했잖아. 그리고 나 공부시키고...

엄 : 맞어. 채윤이 1학년 때라 받아쓰기 시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 둘 다 저녁마다 힘든 시간이었어.
챈 : 나 2학년 때는 선생님도 너무 그랬잖아. 구구단... 엄마 그때 진짜 속상했었지?
: 아빠가 금요일날 와도 놀아주지도 못하고 토요일날은 초등부 설교준비하고 그랬지?
엄 : 금요일에 오면 집에서 목장모임 했잖아. 밤 늦게까지... 토요일엔 출근하고 설교준비하고, 주일엔 초등부 했지.
현 : 그러면 월요일날은 또 천안 갔잖아.
챈 : 그래서 엄마가 월요일날 맨날 아빠랑 통화하면 울었지?
엄 :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때 정말 힘들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수술도 했었어.
현 : 엄마, 그러면 그 중에서 뭐가 제일 힘들었어? 우리가 말을 안들어서? 아니면 목이 아파서?
엄 : 음... (울컥ㅜㅜ) 엄마가 그때 제일 힘들었던건....  좋은 엄마가 안되고 나쁜 엄마가 되고 있는 것 같애서 힘들었어. 너희 잘못도 아닌데 엄마가 자꾸 화를 내게 되고... 너희가 잠들면 미안해서 혼자 울고 그랬어.
챈 : 헐, 그런 일이 있었어? 나는 그런 건 전혀 몰랐는데.... 엄마가 그랬구나.
현 : 누나가 말을 안들었지? 그리고 나는 엄마를 너무 힘들게 했지?
엄 : 지금 생각해보니 너희가 그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어. 엄마 마음이 힘들어서 너희를 잘 받아주지 못했지. 그리고 그런 엄마 자신 때문에 또 화가 나고 그랬어. 그래서 엄마가 그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 너희가 잘못한 게 아니라 엄마 마음이 편하지 못했던 게 문제였어. 정말 미안해.
현 : 엄마... (쓰다듬 쓰다듬)
챈 : 아.... 모 괜찮아. 그래서 그때 엄마가 그렇게 하니까 아빠가 놀아주지도 않는데도 더 좋아졌어. 엄마가 싫어서 아빠다 더 좋아졌으니까. 그러니까 꼭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 그게 오히려 좋은 점이 되기도 했어.

엄 : 엄마가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너희한테 미안한데....
챈 : 그래. 알었어. 이 얘기 그만 하고 다른 얘기하자. 현승아, 너 아까 학교에서 우리 교실 복도에 왜 왔어? $%#$^#&#%#$%%...

우연한 대화로 마음에 남아 있던 짐 하나 살짝 덜어내다.
아이들은 어떻게 부모를 자라게 하는가?
아이들이 부모에게 주는 것이 이제  재롱 이상이다.  

아이들이 나를 성숙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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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7


사라 
  모님. 이거….

모님
 
  오, 안개꽃 진짜 예쁘다. 고마워. 그런데 사라 미모에 가려 안개꽃이 죽는데….

사라 
  에이~ 모님….

모님
 
  사라가 커피 안 마시던가? 허브티 줄까? 모카 마타리라고 좋은 커피가 있긴 한데.

사라 
  커피 괜찮아요. 연하게 주시면 돼요. 마타리라는 이름이 왠지 끌리네요.

모님
 
  커피의 귀부인이라고 불린단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이기도 하고. 고흐가 좋아하는 커피였대.

사라 
  고흐요? 아… 고흐. 저 지금은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싶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그림 공부하면서 고흐 그림 좋아했었어요.

모님
 
  그래? 오늘의 커피 제대로 선택했네. 커피에서 느껴지는 고상함이 사라에게서 느껴지는 느낌하고 비슷하단 생각을 했거든. 고매하신 사라 양. 호호호.

사라 
  모니~임. 놀리지 마세요.

모님
 
  아니 지난번에 칠규가 그렇게 부르기에. 호호. 자 커피 마시자. 이렇게 안개꽃만 모아서 꽃다발을 만든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잔잔한 느낌이 전혀 새롭다.

사라 
  이해인 수녀님의 <안개꽃>이라는 시가 있어요. 그 시에 '장미나 카네이션을 조용히 받쳐주는 별무더기'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언젠가 한 번쯤 안개꽃만 한 다발 사봐야겠다 싶었거든요.

모님
 
  4유형의 자아이미지가 나는 특별하다, 독창적이다 이거지. 뭔가 나는 남과 다르다, 군계일학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생각해?

사라 
  (뜸들이다가) 음…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모님
 
  암요. 다 특별하죠? 큭큭큭. 웃어서 미안. 어쩌면 그렇게 너다운 답이냐.

사라 
  …….

모님
 
  4유형들은 뭐랄까 비밀처럼 슬픔을 간직한 인상이지. 언제든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눈, 말소리도 구슬프다고 해야 하나? 때론 이런 인상이 지나쳐서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기도 해.

사라 
  모든 4유형이 다 그런 표정일까요?

모님
 
  아, 물론 이런 표정을 짓는다고 다 4유형이란 것은 아니야. 대체로 이런 비슷한 인상이라는 거지. 표현이나 생각이 색다르기 때문에 뭔가 개성적이고 독창적이고 예외적으로 느껴져.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에 민감해서 대체로 독특한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딱 사라가 그러네.

사라 
  네… 네? 뭐가 딱이에요?

모님
 
  예술적인 재능 말이야. 물론 이것도 모든 예술가들이 4번이라는 게 아니라 4유형들은 남다른 심미안이 있다는 얘기야. 자연에 대한 친화력도 커서 풀이나 동물들이 말을 걸어온다며?^^

사라 
  아, 저번에 육미가 독립해서 이사했잖아요. 그때 제가 화분을 사갔는데 육미가 물을 얼마 만에 줘야 하냐는 거예요. 제가 '쟤네들이 다 알아서 목마르다고 해.' 그랬더니 애들이 다 쓰러지더라고요. 이런 건가요?

모님
 
  호호호. 그래. 또 정서적인 강도가 높은 사람들이지. 특히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을 발견하는 눈이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자신들이 소외감을 많이 느껴봤다는 뜻 아닐까?

사라 
  네에….

모님
 
  이런 4유형들이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 특별함이야. 나는 남과 달라야 한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다르다는 것 때문에 이해 받지 못 한다는 소외감에 시달리는 거야.

사라 
  뭔가… 그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제 안에 항상 공존하죠.

모님
 
  옷을 사러 갔는데 '이거 요즘 유행하는 옷이에요.' 하면 살 맘이 생기니?

사라 
  아니요. 오히려 '하나밖에 없는 옷이에요.' 하면 끌려요. (소리 없이 웃으며)

모님
 
  특별함에 집착하기 때문에 때론 너무 튀거나 비정상적으로 비치기도 하고 심지어 위험하고 강렬한 모험에 뛰어들기도 하지.

사라 
  모험이라… 모험이 제게 어울리는 말일까요?

모님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또는 이루어질 수 없어 보이는 상대만 골라서 연애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비극적 낭만주의에 빠져드는 것…. 이런 것 말이야.

사라 
  아….

모님
 
  강렬하고 극단적인 정서생활을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가슴형의 에너지를 안으로 쓰는 4유형은 온통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지. 그래서 타인에게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보이고 감정기복이 심하게 느껴져. 4유형의 감정기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으로 많이 힘들어 한다는 거 알고 있니?

사라 
  누가 누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제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까요?

모님
 
  4유형들이 대체로 그러더라. '니 맘을 알겠다'고 하면 '니가 내 속을 어떻게 알겠느냐'며 뒤집어지고, '그래 모르겠다' 하면 자기 맘 몰라준다고 더 상처 받고 말이야. 깊이 이해 받고 싶으면서 동시에 거부되는 자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거지.

사라 
  그래서 제가 늘 슬프다고 느끼는 걸까요?

모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슬프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지도 않지.

사라 
  아…. 맞아요. 딱 그런 느낌이에요.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하세요?

모님
 
  보통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에 가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해. 넌 어떤 것 같니? 경치가 정말 아름다운 곳에 갔다, 어떤 생각이 들어?

사라 
  음…. 저는 작년 겨울에 설악산에서 설경을 마주했어요. 그때 숨이 멎도록 너무 아름다워서 이런 곳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아름다움의 최상급은 왠지 그렇게 통할 것만 같….

모님
 
  죽음을 상상하지 않는 4유형이 없다고 해. 죽음도 늙어서 죽는 것처럼 비참한 것이 없고 사랑의 절정의 순간에 죽어야 하지. 흰 백합꽃에 둘러싸이는 건 기본 옵션? 호호호.

사라 
  이런…. 아, 모니~임.

모님
 
  완전 공감? 큭큭큭. 자, 특별함에 집착하는 4유형은 모든 평범한 것을 회피해. '혹시 내가 평범한 것 아냐?'를 두려워한다는 거지. 그러다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것, 정상적인 것까지 회피하게 된다고 해.

사라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대체로 친구들이 하는 대화에 끼기가 힘들어요. 그네들이 흔히 하는 얘기들이… 뭐랄까… 제게는 무의미하게 다가온다고나 할까요? 그냥 제가 섬 같은 느낌이에요.

모님
 
  한마디로 천박하다고 느껴지는 거 아니고?

사라 
  그… 글쎄요. 암튼 남들과 같아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똑같은 교복, 유니폼…. 이런 거 입어야 하는 거 정말 좀 그래요.

모님
 
  아하하… 그거 생각나? 너 지난번에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목에 스카프 두르고 있었던 거. 뭐라도 해서 어떻게든 다르고 싶었던 건가?

사라 
  그런가요? 후후후.

모님
 
  근원적인 죄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질투 또는 선망이 4유형의 근원적인 죄야. 모든 것을 비교하고 질투한다고 하지. 선망하지 않는 대상이 없고. 누가 나보다 더 멋있고 품위가 있는지, 더 안목이 있는지, 더 천재적인지….

사라 
  더 사랑받는지, 더 건강한 정신을 가졌는지, 더 정상적인지… 요?

모님
 
  그렇지! 남들과 달라야 하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질투의 눈길을 보내는?

사라 
  아, 현실의 사랑이나 행복이 매혹적이면서도 혐오스러운 혼란스러움, 이런 거군요.

모님
 
  이런 표현을 확실히 잘 알아듣는구나. 소유하게 되면 싫증을 느끼고, 멀어지면 그리워하는 것을 반복한다지. 그래서 연애도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사라 
  어머….

모님
 
  이렇듯 특별함과 평범함 사이의 딜레마 속에서 4유형이 쓰는 방어기제는 인위적인 승화야. 느낌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상징, 의식, 멋 부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거지.

사라 
  인위적이라는 말씀이 뭔지….

모님
 
  예를 들면, 로맨틱한 음악, 붉은 장미 한 송이, 물에 띄운 양초와 와인이 있는 테이블… 이런 설정과 분위기로 상징적 표현을 한다는 거야. '사랑해'라고 말로 해도 마음을 알아줄까 말까인데 말이다.

사라 
  '사랑해' 한마디로요?

모님
 
  너무 간단하니? 그 엄청난 감정을 '사랑해' 한마디로 딱 자른다니…. 후훗. 어쩌면 특별하고 특별한 나를 유형 하나에 집어넣어 설명하는 것도 어불성설같이 느껴지진 않아?

사라 
  어, 빙고요! 지금 내내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고, 속할 수도 없는 것 같다고요. 복잡하고 설명이 안되는 게 인간 아닌가요?

모님
 
  예, 많은 4유형들이 모여 앉아 '우린 서로 다르다'며 그렇게 말씀들 하시더구먼요.^^ 사라야, 그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덩어리는 '너'가 아니야. 감정과 너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눈이 있으면 좋겠구나.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는 들풀 하나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이 사라를 바라보고 계셔.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사람들에게 오해나 상처를 받았다며 붙드는 소외감, 슬픔의 늪 같은 것들이 사라에겐 '치장'일지도 몰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지금 여기, 우리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그분의 눈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일진대, 또한 가장 성스러운 지점 아니겠니?

사라 
  장미도 카네이션도… 심지어 그것들을 조용히 받쳐주는 안개꽃도 아닌 들풀 한 포기를요? 음…. (끄덕끄덕) 들풀 하나도 그분이 가꿔주시죠. 하찮은 들풀이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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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사회적, 교회적, 국가적 모든 삶에서 회의 그 자체였던 시절이 있었다. 신비? 신비는 커녕 그저 정상범위 안에서 삶이 돌아가기만해도 좋겠다는 싶었었다.
몇 년 전 5월 회의가 극에 달하던 어느 시점에서 일주일 정도 밥도 못 먹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헨리나우웬의 <영성수업>-직접 쓴 책은 아니다- 을 읽다가 '커다란 의문, 근본적인 의문, 보편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이 영성지도를 구하는 것'이라는 저 구절을 읽었다. '의문을 품으라'라는 한 문장으로 마음에 새기면서 거의 끊었던 곡기를 다시 찾게 되었었다. '그래. 회의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용기있게 의문을 품자. 그 분이 의문을 풀어주실 때까지 어설픈 믿음의 시늉으로 섣부른 타협하지 말자' 이 정도의 통찰로 몸과 영혼에서 탄수화물을 다시 받아들이며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때 기꺼이 정직하게 품은 의문들이 하나 씩 둘 씩 내 인생의 신비로 바뀌어가는 것은 아닐까?




 #1의 신비

지난 한 주는 신비의 일주일이었고, 신비의 주제는 '기록'이었다. 주 중엔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를 하였다. 그리고 그 매체에 기고를 하기로 되었다. 인터뷰 요청은 블로그를 통해서 이뤄졌고, 만남 자체도 이 블로그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때문에 블로그와 관련하여 일상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뷰하시는 기자께서 짧은 시간에 많은 글들을 읽고 오셨고, 편하게 나눈 이야기들이 내겐 삶을 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날을 꿈꾸게 한 고무적인 만남이었다. 그저 쓰고 싶어서, 10여 년 개인 블로그에 꾸준히 써 온 글들이 1500 개가 넘는다. 곧 출간될 책, 기고글이 인연이 되어 시작된 이런 저런 강의 역시 이 곳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퍼질러 앉아 주절거린 글 때문이다.


#2의 신비

작년에 인연을 맺은 죠이서지부 리더훈련에서 에니어그램 강의를 하게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리더훈련이 좀 더 실질적인 열매를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간사님 중 한 분이 찾아왔다. 이런 저런 의논 끝에 텀을 두고 서너 번의 강의를 하되 그 기간동안 '(의식성찰)일기쓰기' 숙제를 주기로 했다. 말하자면 한 세 달 동안 개인적으로 일기형식의 글을 쓰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라이프스토리 한 편을 써서 나누는 것을 강의와 병행하겠노라 했다. 사실 에니어그램 강의를 통해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안내하고 싶은 건 '정직한 일기쓰기 훈련'이었다. 마음으로만 갖고 있던 걸 어떨결에 시도하게 되었고 지난 주 금요일 첫강의를 하였다. 결국 10여년 인터넷 글쓰기, 30년 일기쓰기를 통해서 나의 외면과 내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의 신비

남편이 오래 꺾었던 붓을 다시 집어 들었다.(이 식상한 표현!ㅋㅋㅋ) 어떤 이유에서인지 묵상도 글쓰기도 안된다며 오래 힘들어하던 남편이 조금씩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새단장하는 등 그답지 않은 적극성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내게 기쁨이 되었다. 
아무 때나 여러 방향으로 에너지가 팍팍 분출되는 나와는 달리 충분히, 아주 충분히 고인 것들만 길어올리는 남편의 기록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삶을 기록하는 것은 삶을 관조한다는 것이고,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은 나 밖으로 나갈 힘이 생겼다는 것이니 이 어찌 기뻐할 일이 아니겠는가.


#4의 신비

대박은 그렇게 보내고 맞은 주일이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우리가'라는 주어 한 마디로 '기록'이라는 화두를 끌어내 설교를 들려주시는 것 아닌가. ( 이 설교는 내 말로 옮길 수가 없다) 설교를 들으면서 지난 일주일의 여정을 관통하는 신비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는 감히
고백한다. '내 아버지께서 기록하시니 나도 기록한다' 기록하되 타인을 향하여가 아니라 내 내면을 향하여, 기록하되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기록하되 내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욕구를 헤아리며, 기록하되 내가 불필요한 힘을 가하고 있는지를 헤아리며 정직하게!

보잘것 없는 내 일상의 아주 미미한 것들에 영원의 현미경을 갖다대는 일로서의 '기록'으로 일상에서 보물찾기를 하겠노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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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할머니의 며느리야?

아빠의 엄마한테 엄마는 며느리잖아.


그러면 엄마의 엄마한테 아빠는 뭐야?


아~ 사위! 사위가 그거구나.


그런데 '사위' 그러면 그냥 말이 사위 같은데....

'며느리' 그러면 뭐지.... 말이 좀.... 말이 다르게 느껴져.

며느리라는 말은 그냥 딱 '며.느.리.' 이런 말이 아니라 시종이나 하녀...느낌이 들어.


그냥 나도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드는거야.




장래 내게 며느리를 맞게 해 줄 아들아!
엄마는 나름대로 며느리 피해의식 많이 극복하고 건강하게 며느리 하고 있다는 생각인데....
혹시 니 눈엔 그렇지 않은게냐?
아니면 이 부조리한 가부장적 틈새에서 끼인 며느리들의 흐느낌을 특유의 민감한 감수성으로 느껴버린 것이냐!
하이튼 너도 모르게 느낀 그 느낌, 여사롭지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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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는 아이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꽂고 강으로 나갑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는 벌써 몇 회 짼데 아직 1장을 넘어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30여분 설교를 듣고, 나머지 시간은 이런 저럼 음악을 들으며 강변을 걷습니다.
환하던 주변이 조금씩 어스름해지면 가로등이며 성산대교의 불빛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달과 인공위성 하나.


태초에 '빛이 있으라. 궁창이 있으라' 하신 그 말씀으로 만들어졌을 저 달,
그 분이 자신의 형상을 본따서 흙으로 만든 그 사람들이 만든 높고 낮은 건물들과 빛들.
하늘에서 땅에서 참으로 조화롭게도 빛을 발합니다.


귀에 울리는 사도행전 속 이야기들과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은 내 마음에 하늘의 이야기와 일상의 이야기를 오묘하게 공존시킵니다. 하늘의 삶을 살고 싶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일상입니다. 정말 내가 진실로 신앙하고 있다면 그 신앙은 하늘이 아니라 일상에서 빛을 발할 것입니다.

갑자기 목사님의 설교가 뚝 끊어집니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립니다.
"엄마,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음식이 몸에 들어가서 있는 데가 어디야? 위지? 나는 위가 작은가봐. 응.... 맞아. 다 먹을 수 있는데 버섯을 못 먹겠어. 알았어. 그러면 최대한 먹어볼께. 엄마 어디쯤이야? 빨리 와"
집을 나서면 차려준 밥을 아직 먹지 못하고 버섯과 양파를 접시에 고스란히 남겨놓고 께작거리고 있을 현승이의 목소리입니다. 이것이 일상입니다. 조용한 묵상으로 침잠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아이들의 요구, 이런 것들이요.


참 일이 많은 한 주 입니다. 원고 마감이 있고, 늘 하던 강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하기로 한 첫 강의가 있고, 한참 쉬었던 수업도 있었고, 새로운 글쓰기 만남을 여는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시험이 있어서 나름대로 시험에 들어있고.... 큰 부담으로 눌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김치가 떨어져 오이소박이도 좀 담가야겠고 밑반찬으로 피클도 만들어야겠고 당장 아침에 먹을 국은 뭘 끓이지? 모든 걸 진짜 잘해내야겠다는 욕심이 올라올 때 더 불안해집니다.
이게 일상이고 일상은 영원에 닿아있습니다. '내 힘으로 다 잘해서 인정도 받고 이름도 날려야겠다' 하며 눈이 흐려지는 순간 일상의 빛 역시 흐려질 것 같습니다. 일상의 빛이 흐려지면 영원을 담은 일상이 뒤트리면 천상의 빛 또한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작은 성공에 마음 높아지지 않고 작은 실패도 마음을 내팽개치지 않는 오늘을 위해서 사랑이신 그 분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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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 나 계주 뽑힐 걸 그랬나봐" 오늘 아침 먹으면서 현승이가 그랬습니다. 어제 5월4일 있을 소체육대 연습을 하고나서 계주를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대충 들었던 며칠 전 반에서 계주선수 뽑는 달리기 얘기가 생각납니다.
조별로 1,2등을 뽑아서 그 아이들끼리 달리기를 했는데 하다보니 자신이 1등으로 달리더랍니다. '어, 이러다 내가 계주에 뽑히면 어떡하지? 한 번도 안 해봤던 건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속도를 줄여서 3등을 했고, 1,2등 두 친구가 계주 대표로 뽑혔답니다.
아이구야, 그 때 속도를 줄였다는 얘기가 그 얘기였구나. 대표로 뽑힐까봐! ㅠㅠ


2.
그 얘기를 들으면서 채윤이가 그랬습니다. "맞다. 김현승 일곱 살 때 운동회 때도 그랬잖아. 1등으로 달려가서 결승점 앞에서 그냥 서버렸잖아. 그래서 따른 애가 1등했어" 그런 일도 있었네요. 달리기를 처음 해봐서 규칙을 모르나보다 하고 지나갔었는데.... 그 때도 현승이가 눈 앞에 있는 1등을 피해버렸군요.


3.
토요일 수영교실에 겨우 적응을 했는데 5일제 수업이 되면서 그 반이 없어지고 새로운 반이 만들어졌어요. 갑자기 아이들이 엄청 많아지고, 처음 두어 주는 테스트해서 레인배정 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더군요. 학부모 대기실에서 현승일 지켜보면... 그저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나를 주목하지 않을까? 이게 관건인 아이 같아요. 숨고, 또 숨고.
현승이가 일곱 살 부터 꾸준히 수영을 해온데다 진짜 좋은 선생님 만난 덕에 평영과 배영은 자세며 모든 게 선수 수준이예요. 저학년 그룹이니까 3학년인 현승이가 거의 제일 잘한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매 번 맨 꼴지에 가서 서는 거예요. 아이구, 속 터져. 앞에 친구들이 자유형 팔꺾기도 안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가고 있으면 그저 거기 맞춰서 쉬었다 가고 쉬었다 가고...
그러기를 5주 정도 하고나서 수영선생님이 '어, 현승이 너 수영 잘하네' 하면서 맨 앞으로 보내주신거죠. 그래. 숨고 숨어도 결국에는 자기 자리 찾게 되기도 하지만.


4.
수영 5주를 지켜보는 동안 나대기 본능 충만한 엄마는 속이 부글부글 하기도 했지만 그저 지켜보았어요. 엄마한테 나대지 말라고 하는 것 만큼이나 현승이에게 나서라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일테니... 1등을 해서 주목을 받느니 그 1등을 포기하겠다는데요.
"엄마, 나 계주 뽑힐 걸 그랬나봐" 오늘 아침의 이 한 마디면 족하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자신으로서는 필연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에 대해서 반추해보고,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배운다면 그걸로 족한 겁니다. 현승이는 현승이고, 현승이는 채윤이가 아니니까요. 그저 그렇게 생긴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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