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정동의 인도 음식점 '갠지스'의 맛과 비주얼을 다 따라잡았다. 핵심은 카레 담는 청동 그릇이다. 이것은 정말 따뜻한 관찰력, 세심하고 고요한 사랑의 결과이다. 뭘 먹었네, 어쩌네, 애들하고 농담 따먹기 하는 걸로 연명하는 이 블로그를 진심 다해 찾아와서는 행간까지 꼼꼼히 읽고 기도해 주는 윤선이 작품이다. 지난번 귀국해서 만났을 때 받았다. 보정동 카레 집 사진 올린 것을 보고, 거기서 본 카레 그릇을 찾아 여기저기 발품 팔았을 윤선이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말로 안 해도 느껴지는 그 마음. 언니... 이렇게만 불러줘도 느껴지는 마음.
깨끗이 씻어서 싱크대 안에 모셔 두었는데... JP는 “언제 그 그릇에 카레 먹냐"고 한 번씩 채근을 해댔고. 제대로 먹으려고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다 인터넷에서 파는 '난'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릇빨 제대로 살려서 카레를 먹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서 날아온 소식. 윤선 태훈의 책이 드디어 나왔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남편에게 알리고 다음 날인가, 그다음 날인가. 알라딘에서 두 개의 택배가 왔다. 하나는 김종필, 하나는 정신실. 각각 득달같이 주문한 것이다. 같은 책 두 권을 나란히 놓고 보니, 이게 우리의 마음이구나 싶다. 그나마 윤선이와 나는 책으로 글로 자주 연결되고 있지만 태훈과 종필은 자잘한 소식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2004년에 가정교회에서 함께 했던 짧은 만남으로 우리 마음 깊이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진심으로 신뢰하는 유일한 선교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JP 역시 태훈이라면 언제든 마음 활짝!이다. 네팔 파송 후 처음으로 귀국하여 했던 선교보고를 기억한다. 그때 내가 썼던 글의 제목도 생각난다. "자랑 없는 선교 보고"였다. 후원이 절실하지만, 후원을 위해서 사역을 팔지 않으려는 마음이 보였다. 잘한 게 왜 없겠냐만, 그저 받아들이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만 말했었다. 잡은 그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기막힌 사연으로 네팔 언약학교를 맡아 경영하고 어려운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훈련받아' 좋은 선교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네팔 선교사로 현장에서 훈련받기 전부터 이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정직한 사람이어서 정직하고 좋은 선교사가 된 것이다. 자랑스럽다. 이들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다.
청춘을 드려 천국을 산다
제목 참 잘 지었다. 결혼하자마자 바로 선교사로 나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파송되기 전 잠깐 우리 '목장'에서 머물렀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우려와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보냈었다. 청춘을 드린 건 내가 확실히 아는데... 천국을 살았을까? 살았다고 한다. 본인들이 살았다면 산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도 청춘을 드렸다. 천국을 살았을까? 산 것 같다. 살고 있는 것 같다. 불쑥 이런 마음이 든다면 산 것이다.
스터디 카페에 가는 현승이에게 오늘은 도시락 싸줄 게 없다고 했더니 샌드위치 사서 들어가겠단다. 아침도 빵인데 점심까지 빵은 좀 그렇다 싶어서 이리저리 굴려도 뭐가 떠오르질 않는다. 현승이가 "아, 간장 계란밥을 내가 해서 가져가야겠다!"라는 말에, "오, 그러면 엄마가 파기름 내서 계란볶음밥 해볼게!" 하고 텅 빈 냉장고에 생존한 계란과 파로 볶음밥을 만드는데 식탁 의자에 앉은 종알종알 현승이.
와, 오늘은 공부가 잘 되겠다.
왜?
맛있는 도시락이 있으니까. 그게 기분이 달라. (이런저런 종알종알....) 도시락, 도시락이란 말 자체가 좀 설레지 않아?
대용량 양념 닭갈비를 사서 마늘, 파 등 더 넣고 양념을 했는데도 맛 감각이 뛰어난 애들 입맛을 속이질 못했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냄새도 잡고 맛도 더 내줄 이런저런 양념을 추가하고 양배추, 고구마, 떡, 깻잎을 넣어 함께 볶았다. 정자동 닭갈비 맛집에서 넣는 걸 다 넣어본 것이다.
캬아, 엄마! 역대급이야. 대박 맛있어. 너무 맛있는데! 안 되겠다. 식당처럼 사이다까지 한 캔 해야겠다.
나는 (식구들보다 두어 시간은) 일찍 일어나는 새다. 일찍 일어나 연구소 카페에 '읽는 기도' 필사해서 올리고,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 묵상 나누고, 기도하고, 글 좀 쓰고 있으면 늦게 일어나는 새들이 한 마리씩 나온다.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늦잠 자는 채윤이를 제외하고 JP(제이피, 아니고 종필로 읽어야 함)과 현승 두 남자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이 여름 아침 식사는 아이스 라떼와 빵 한 조각이다. 그러고 앉아서 아침을 먹노라면 나는 뭔가 막 신이 난다. 신이 나서 이 얘기 저 얘기, 농담 따먹기를 하노라니... 어느 날 현승이가 말했다. "와, 나 여기 앉을 때부터 엄마가 입을 쉬지를 않네. 조잘조잘조잘조잘..." 그러자 JP이 "나 그래서 귀에 염증 생긴 거야." (귀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이석증' 재발인가, 하고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귀에 염증이 생겼단다.) 니 엄마 때문에 귀에서 피가 나. 이쪽 귀잖아. 딱. 그래서 염증 생긴 거야 "
나 저항 없이 인정했음. 왠지 정말 그런 것 같아...ㅜㅜ 그래도 좀 참을 수는 없음. JP은 매사 좀 귀찮아 하는 스타일이라... 귀찮게 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하지 말라고 짜증내면 더 귀찮게 하고 싶다. 귀 염증, 내 탓이라 여기겠음. 이번 기회에 진심 회개하고 장난 그만치기로! (JP에게는)
늦잠 자고 싶은 채윤이가 "제에~발 좀 아침에 엄마 아빠 식탁에서 얘기 좀 하지 말라고오! 잠 좀 자자고오! 아, 진짜 그리고 얼음 꺼내는 소리... 진짜!!" 한다. (채윤이 방이 주방 바로 옆) 그런 말을 들으면 또 참을 수가 없다. 다음 날 아침, 라떼 만들려고 얼음을 푸다가... "김채윤 깨워야지, 김채윤 짜증 나게 해야지. 우헤헤..." 얼음삽으로 통을 휘저어서 소음을 일으켰다. 신이 나서 아드레날린이 폭발이다. 커피 내리던 현승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