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계절이 계절의 때를 알고 찾아오고, 계절이 떠날 때를 알아 순순히 떠난다.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는 계절, 제 때를 알고 찾아온 계절이 교차할 때, 나의 계절을 생각한다.
계절이 좋은 설교이고 계절을 마주할 때 나는 정직한 구도자가 된다. 깊고 고요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럴 땐 이런 이유로 저럴 땐 저런 이유로 산책을 포기할 수 없지만,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이 이 즈음 같은 때가 없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을 보느라 이 즈음 산책 길엔 목이 빠진다. 이 즈음엔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낮이고 밤이고 간에.
* 재밌는 사연 끼워 팔기 *
(JP와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며 등 대고 대화 중) JP : 야아, 공기가 차다. 계절이 지나가고 있어... SS : 그러게... 계절이 지나가고 있네... (사이)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이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약간 병짓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떤 단어로 버튼이 눌리면 내 안에 있는 시나 노래 가사가 막 줄줄 나온다. 평생 있던 증상인데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JP : 와아... 당신 왜 서울대 못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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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와 채윤이 식탁에 마주 앉아서) 채윤 : 배 맛있다. 달다... 아빠, 배나무에도 꽃이 피어? JP : 당연하지! 배꽃이 예쁘지. SS : (계란프라이 만들면서 등으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배꽃... 배꽃?... 이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귀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병짓...) JP : 와놔, 정신실 왜 서울대 못 갔어?
연휴 마지막 날, 아이들 늦잠이 더 늦어진다. 둘이 일어나 아침 묵상하고 밥 먹고 커피 마시도록 아이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휴일이니 깨우지 않아도 되지만, 깨우고 싶기도 하고. 어제 끓인 김치찌개를 데우며 밥을 안쳤다. 그리고 남편에게 "작전명 초파리!" 하고 말했다. 김치찌개 데우는 냄새가 퍼지면 하나씩 기어 나올 것이다. 멜론 깎아 식탁에 놓아 달달한 향기 퍼지면 초파리들 모여들듯이.
반응은 금방 오지! 주방 옆 방에서 큰 초파리 등장. "크로와상 먹을래?" "아니, 나 밥 먹을래." 남편에게 눈으로 확인. "거 봐! 초파리 작전 성공이지?" 추석 헤세드로 스팸이 풍성하고 햅쌀이 반짝반짝... 어제 김치찌개에 스팸 한 통 더 추가하고 금방 한 햅쌀밥이니 세상 제일 맛있는 밥 아닌가! 초파리 둘 시간 차 공격으로 나와 처묵처묵 하는 뒷모습이 맛있고 사랑스럽다.
도촬 당한 줄도 모르고 앉아 아침 먹고. 지금 현재 시점으로 기록당하는 줄도 모르고, 마주 앉아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개봉할 영화들 얘기로 조잘거리는데. 내 몸은 노트북 앞이지만 귀는 식탁이다. 오래 마음에 담아 두고 싶은 순간이다.
현관 나서자마자 빰에 닿는 바람에... 그 가벼운 밤 공기에... 가을로 가득 찬 계절이 지나는 하늘에... 이미 다 써놓으셨으면서… 읽고 있는데... 알고 있는데... 숨이 막히도록 느끼고 있는데... . . . . . . . 대놓고 이러신다. 지나가는 사람 다 보는데 민망하게 이러신다. 안다구요. JESUS님!
추석 음식 준비를 하다 손을 베었다. 상처가 크진 않은데 깊어서 피가 콸콸콸 솟아났다. 처음 있는 일인데 여러 번 겪었던 것 같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명절 음식 준비하는 어느 여인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고, 내 일인데 내 일만 같이 않고, 남 일 같은 내 일, 내 일 같은 남 일이라 여겨졌다. 피의 연대... 여성들의 연대는 피의 연대!
음식 준비라야, 바비큐 재료 장 보는 것, 월남쌈 재료 준비, 국 하나 끓이는 정도였다. 아이들 다 빠지고 어른 다섯이서 펜션으로 가는 명절이라 (평소보다) 가벼운 일이었다. 명절이 내게는 (아니 모든 여성에게) 단지 일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이기도 마음의 문제이기도. 과도한 책임감, 그보다는 죄책감, 혐오감을 마주하고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20여 년 전 명절의 기억으로 올 추석을 살지 않겠다 결심하고 기도하니 더욱 가벼워진다. 펜션 명절 이튿날은 화담숲 산책이었다. 이전의 기억이 아니라 오늘 여기의 공기를 호흡하며 걸으니 살아서 걷는 느낌이었다. 40년 전 명절의 기억으로 오늘을 아프게 살아가시는 어머니. 그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부분과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길었구나 싶다. 한계를 인정하며 숲을 걷는 시간, 무겁지만 가볍고 슬프지만 감사했다.
잠시 혼자 걷는 시간도 생겼는데... 생명력 한껏 머금고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꽃봉오리들을 만났다. 소국! 아, 얼마나 고운가!
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다친 손가락이 엄지이다. 지혈하느라 꽁꽁 싸매기도 했고, 아프기도 하니 자꾸 힘을 주게 되어 엄지 척이 되었다. 바비큐 저녁 식탁. JP는 저쪽에 서서 고기를 굽고 나는 어머니, 시누이, 아주버님과 마주 앉아 식사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손가락으로 "쵝오!"를 외치고 있는 거다. 어머님이 말씀하셔도 쵝오! 평소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는 아주버님 말에도 쵝오! 고기 맛있어요, 쵝오! 달이 참 예뻐요, 쵝오! 그걸 깨닫고 현타가 와서 혼자 빵 터졌는데, '시'님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이걸 나눌 수도 없고... 웃참 하느라 죽을 뻔한 나 진짜 쵝오! 큭큭큭.
남은 월남쌈 야채에 새우 한 봉지 다 데쳐서 편안한 저녁 식사, 쵝오! 어쨌든 쵝오! 누구든 쵝오! 당신도 쵝오!
엊그제 <꿈과 영성생활> 집단 여정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내게 교회란?" 질문을 가져온 분의 답은 "엄마 아빠를 대신한 곳, 엄마 아빠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준 곳"이라고 했다. 교회 아닌 어디에서도 주목받거나 칭찬받지 못했는데 칭찬받고 사랑받았던 곳이라고. 비슷한 답을 하는 분들이 있었고, 내게도 교회는 그런 곳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을 보낸 교회에 다녀왔다. JP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은 곳이다. 두루두루 큰 사랑을 받았고 열정을 다해 사랑했던, 그러다 깊이 절망하고 상처를 안고 떠나온 곳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늘 예측불가, 설명불가라... 좀 놀라운데 그냥 "다녀왔다"라고 쓰겠다. 모님이 강의하러 오신다고 다른 교회 다니고 있는 부러 수련회에 참석해 준 친구들이 큰 격려가 되었다.
그 시절, 사랑을 많이 주셨던 권사님들 뵈어서 울컥했다. 사랑받았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권사님 아이들을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내 나이 스물 여섯 청년 시절에 만났으니, 얼마나 긴 세월인가. 스물여섯 청년이었던 나를 예뻐하시더니 권사님들을 이제 곧 스물여섯이 될 채윤이도 알고 기억한다. 제 나름의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돌아보면 교회를 확신하는 시절이었다. 확신의 근거는 사랑받고 사랑했던 사랑의 유통이었고. 한때 받은 사랑이 몸에 축척되어 있어서 교회를 확신할 수 없던 메마른 날에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확신'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어야 하는 건가. 확신 없는 날을 견디게 한 것이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이라면, 확신도 사랑이고, 확신 없음도 사랑인가?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 영상이 있다. 6월에 찍고 8월에 방송에 나왔는데, 어쩌다 "교회의 딸"이란 캐릭터를 잡았다. 태어나보니 교회의 딸. 교회에 대한 확신은(사랑은)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였나. 나는 교회의 딸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것인가? 오글거려서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영상을 뒤늦게 공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