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하루가 다르게 텅 비어 가는 나무 사이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텅 빈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것이 경이롭다. 잎이 없는 나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젊은 시절을 보냈는데, 그러고 있는 나를 알게 되었고 이유도 알았다. 그리고... 슬픔도 두려움도 없이 텅 비어 뻗은 가지를 바라볼 수 있다. 심지어 경이롭게. 눈을 떼지 않고, 뒷목이 뻣뻣해질 만큼 오래오래.
이젠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자꾸 이 가사가 입에 맴돌아 찾아보았다. 이문세의 <시를 위한 시>일 거라 생각했는데 <옛사랑>이었다. 그리운 것을 그리운 대로 둘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그리운 것이 새롭게 생겨나서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그대로 둬"지지가 않는다. 그리운 것 그 너머, 그리운 모든 것들 너머, 영혼의 바닥부터 그리운 그분인가.
이제 나목의 아름다움에 눈 맞추고 볼 수 있지만, 다시 새롭게 그리운 것들은 어쩔 수가 없네.
지난여름 대구 어느 교회의 수련회에 초대받아 다녀왔었다. 처음 만남이 아니다.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로 시작한 교회이고 오래전에 내적 여정 세미나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래전 그날이 참으로 의미 있는 날(영성 일기와 시국선언문)이어서 말이다. 이래저래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교회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 만난 목사님과 날수를 헤아렸다. "벌써 7년이네요! 아, 그래요? 7년이나 지났군요..." 하고 나는 당연히 촛불집회를 떠올렸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첫날, 졸이는 심장으로 내려갔던 그 길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뜨거웠던 겨울이 벌썬 7년 전의 겨울이구나! 헌데 목사님은 다른 기억을 말했다. "부임하신 지가 벌써 7년이나 되셨으니... 어떠신가요? 그때 남편 목사님께서 새로운 교회로 청빙 받으셨다고..."
아, 교회 7년! 꽉 채운 7년이구나... 7년이라... 도통 현실감 없는 세월의 헤아림이다. 최근 뉴스앤조이의 기획 기사로 몸 담고 있는 교회 이야기가 쓰였다. 나는 주야장천 나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무슨 생각을 했네, 어느 새를 만났네, 뭘 해 먹었네... 그냥 한 생각을, 스쳐 지나듯 만난 새 한 마리를, 만들어 먹은 음식을 글로 쓰면 다른 것이 보인다. 그것과 나 사이 거리가 생기면서 말이다. 뉴스앤조이 기사로 누군가 '써 준' 나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 이 느낌이 생경하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나의 이야기라 할 수는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나의 체험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기사는 현실감 없는 나의 7년을 살아있는 나의 역사로 느끼게 한다. 객관적인 기사에 나는 왜 위로를 받는 거지?
이 교회로 오는 일, 누구 하나 찬성하는 사람 없는 선택이었다. 현실감을 장착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고, 견디지 못할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모두들 힘들 거라고 했지만, 무엇이 힘들지 얼마나 힘든지 알 수는 없다. 힘들 거라고 말했던 이들이 알 수 없는 그 힘듦, 말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면서 아마도 이것은 '벌'일 것이다, 생각했다. 한국교회와 불특정 목회자를 싸잡아 혐오하고 냉소했던 신앙 사춘기 비행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은 죄를 착한 남편이 받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많이 회개했다.
연구소 카페에서 헨리 나우웬의 『두려움에서 사랑으로』로 영적 독서를 하고 있다. 이 즈음 주제가 "원망에서 감사로"이고, 엊그제 내용은 이것이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의 돌덩이를 깎아 원망의 돌조각들을 파내시도록 가만히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영성 계발이다. 돌조각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크고 작은 아픔이 있다. 익숙한 감정, 아까운 개념, 값진 아이디어, 결정적인 인생 계획, 정당화될 만한 태도, 습관적 행동, 특히 소중한 우정이나 공동체 를 내려놓아야 할 때마다우리 마음에 항변이 생긴다. 그러나 작업 중인 하나님의 애틋한 손길을 볼 용의가 있다면 우리는 알게 된다. 그렇게 많이 깎아 내야만 빈 공간이 생긴다는 것을. 거기서 비로소 우리가 채워지고 치유되어 마침내 하나님이 의도하신 우아한 춤추는 자로 변화될 수 있음을 말이다.
지난 주일, 추수감사주일에 현실감 없는 7년을 헤아리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자아의 돌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견디도록 도와준 눈빛과 표정과 손길들을 떠올리며 일일이 복을 비는 기도를 드렸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감사는 쉬운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다. 감사와 짝을 이루는 원망과 닿아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감사에는 원망과 상실감의 흔적이 어른거릴 테니 순도 100%의 감사란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원망의 흔적이 깊은 감사일수록 찐 감사일 거라고... 겨우겨우 부지하는 부족한 믿음을 가진 나를 스스로 격려한다.
7년 전, 더함교회에 강의 갔을 때 사모님께서는 아이를 품고 있었다.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저보다 어린 아기들을 돌보는 일곱 살 언니가 되어 있었다. 교회 동생들 돌보는 목사의 딸, 내겐 너무나 익숙한 나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 로은이가 손수 꽃을 한 송이 만들어 주었다. 팔공산 맑은 공기를 배경으로 사진 한컷으로 찍어 마음에 담았다. 7년은 그런 세월이다. 세상에 없던 생명이 나와 제 손으로 꽃 한 송이를 만들도록 여무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남은 여생, 뭘 하든 7년은 견뎌보기로 마음먹었다. 혹 내가 죄를 지었다면 7년 정도의 벌은 달게 받겠노라 결심했다.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복무했고, 느부갓네살이 교만의 죄로 7년 짐승 같은 생활을 한 것이 여사로운 일이 아니다.
수능 전날, 교육지원청에 수험표 받으러 가는 차 안이었다. 수능 며칠 전부터 예민함인지 긴장감인지 수능을 향한 어떤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분명 흐름이 있는데 감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나름 감지하지만 농담이라고 했다가, 배려라고 한 마디 했다가 된통 당하는 그런 사람 둘이 있고... (그게 나야, 둠빠둠빠 두비두바, 불쌍하다, 둠빠둠빠 두비두바, 하난 너야, 둠빠둠빠 두비두바...) 수능 전날이니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이었다. 입시생 심기 살피며 조심조심 수다 떨며 가고 있는데 옆 차선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쌩 지나갔다. 입시생 모자, 동시에 짜증 버튼이 눌렸다. 아, 진짜....
음... 현승아, 수능 시즌에 그런 법 있으면 좋겠다. 저렇게 수험생 스트레스 주는 사람들 다 신고할 수 있게 하는 거야. 그리고 감옥에 넣는 거야. 그러면 엄마 아빠가 제일 먼저 신고당할 거야. 아....! 그 다음 스카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 다 신고해야 하고... 아마 걔네도 나를 신고할걸. 서로 막 신고할 거야... 아....! 죄다 감옥에 있겠구나... 안 되겠네.... 법안 취소...
연구소 5년의 소중한 결실이라 할 수 있는, 내적 여정의 고민과 성찰을 담은 두 개의 논문을 기반한 강의입니다.
탈기독교 시대와 관련하여 부각되는 용어가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는 뜻의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입니다. SBNR을 키워드로 탈기독교 시대 중년을 위한 교회 교육에 관해 논문을 쓰신 김동준 목사님(동반자과정 2기)의 강의와, 아빌라의 데레사 『영혼의 성』의 기도로 논문을 쓴 정신실 소장의 강의입니다.
1강, 시대가 영성을 묻다 : 탈종교 시대 SBNR의 신앙 여정(김동준 목사) 2강, 기도의 길, 오래된 새 길 : 『영혼의 성』에서 배우는 기도(정신실 소장)
+ 강사 : 김동준 목사, 정신실 소장 + 일시 : 2023년 12월 8일(금) 오후 2:00~4:00 + 인원 : 30명(선착순) + 장소 : 처치 브릿지, 서울숲역 5분 (성동구 서울숲2길 32-14 갤러리아포레 지하 3층 B328-2) + 참가비 : 이만 원(후원자, 내적 여정 참가자 만 원) + 문의 : 010-7242-8624 + 신청 링크 : https://bit.ly/3kDbLfR
하늘이라고 늘 맑고 푸르러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알기에 어두운 하늘, 무거운 하늘, 먹구름 하늘에도 많이 순순한 마음이 되었는데...
그래도 모름지기 하늘이면 맑고 푸르고 그래야 하늘 아닌가 싶어 부아가 치밀거나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그러면 가끔 하늘이 창조성 끌어올려 작품 활동을 해주기도 한다. 신비롭다.
어느 새벽의 하늘, 어제 저녁의 하늘 사진이다. 어느 새벽에는 밤새 마음이 천국이었는지, 기분 좋게 눈을 떠 베란다 앞에서 저런 장난스러운 하늘을 만났고. 며칠 타나토스 에너지 상승하여 황폐해진 마음이었던 어제 저녁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오렌지빛 황홀경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