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땅에 있는 성전에서 섬깁니다." (히 8:5)
어제 자 묵상 말씀이다.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서 히브리서를 나누고 있다. "이 땅의 삶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천국을 바라보고 여기는 그림자처럼 여기며 살자. 천국은 좋은 곳, 여기는 하찮은 곳!" 이원론적 인식으로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땅의 성전이 하늘을 반영한 것이라고 왔다. 땅에 있는 성전이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의 모형을 본떠 만든 것이다. 원형은 하늘에 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는 주기도문도 생각난다. 내가 지금 여기, 이 땅에서 하는 예배와 삶 전체가 하늘의 모형을 비춘 그림자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린다. 스캇 펙이 쓴 사후 세계에 관한 소설 제목은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는 말씀의 역방향의 가능성이다. 관계는 이렇듯 상호적인 것 아닌가.
하늘의 모형을 비추는 그림자가 된 오늘이 천국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사는 오늘 하루가 저 영원한 천국과 이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침 말씀 묵상은 하루 분 일용할 영의 양식이라 여기는데... "오늘의 양식"이 그것이었다. 실은 전날 남편과의 말다툼으로 마음이 먹구름이었다. 오늘 마음의 지옥을 살면서 죽어 눈 뜬 곳이 천국이길 바랄 수 있겠는가, 생각하며, 지옥 같은 마음을 해결해야겠구나 싶었다. 오후에 용기 내어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과할 용기, 내 잘못과 내 마음의 결핍을 인정할 용기는 오전에 있었던 "꿈 집단"의 나눔 덕이다. 진실한 대화로 내 마음을 알게 되었다. 전날 밤 남편에게 휘둘렀던 날카로운 말의 칼은 '연결'에의 갈망이었다. 꿈 작업의 힘을 빌어 자존심 내려놓고 진심의 사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었다. 한참 후에 답신이 오고... 지옥 같았던 마음에 천국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모처럼 개인 하늘이 아까워 저녁 산책에 나섰다. 빗물 웅덩이에 하늘이 담겨 있는 이 멋진 장면을 발견! 누추하고 답이 없고 엉망진창인 웅덩이 같은 내 마음에도 하늘이 담겼다. 땅이 하늘에 가 닿을 수 없으니 하늘이 내려와 땅에 담겼다. 만나려면 서로의 간격이 좁아져야 한다. 중간 지점에서 만나든, 누가 더 빨리 달려 많이 움직이든 어쨌든 움직임이 필요하다. 오늘 여기서 하늘을 살 수 있는 이유는 하늘이 친히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육신 사건이다. 스펙터클한 내적 전쟁을 가만히 정리해 준 한 장면의 선물이다. 그러고는 오늘 아침의 연구소 묵상은 또 이러하지 않은가! 이분을 얼마나 성실한 분인가. 내게 필요한 말씀을 얼마나 성실하게 반복해서 또 하고 또 하고 또 들려주시는 분인가.
예수님의 육화는 우리가 인간으로 있는 곳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만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느님이 둘 사이의 간격을 하느님 편에서 완전하게 극복하신다. 구원의 문제는 그것이 십자가에서 극적으로 연출되기 전에 이미 해결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베들레헴에서 이미 밝혀졌다.
자기를 지킬 수 없는 어린 아기 안에 하느님이 숨어 계시고 드러나셨듯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적 능력이 언제나 무능한 사람들 안에 감추어져 있다. 하느님이 사랑받고 나누이려면 나약한 인간의 몸을 입는 모험을 감당하셔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가슴을 울리고 일깨우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개념이나 신학 이론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물론 이것을 시도하는 이들이 있긴 하다). 사람은 사람하고 사랑에 빠진다.
나약한 어린아이 안에 하느님은 완벽하게 숨어 계시고 거기에서 완벽하게 그리고 더없이 사랑스럽게 드러나신다.
마트에 감자가 박스로 나와 쌓이기 시작하면, 감자 가격이 만만해졌다 싶으면, 감자철이 온 것이다. 그러면 어김없이 채윤이가 "감자 샐러드 먹고 싶다. 엄마 감자 샐러드 해 줘." 한다. 우리 채윤이는 귀신이다. 많은 날 많은 끼니를 트레이더스 반 조리 음식으로 살고 있지만, 이럴 때 한 번 대대적으로 해봐야 한다. 오이도 사다 줘, 감자도 으깨 줘(부드럽고 착한 남자 현승이 손에 으깨진 감자라 이번 샐러드엔 덩어리가 무척 많음.) 현승이가 많이 도와줬다. 맛있게 만들어졌다. 만드는 것보다는 먹는 역할에 충실한 채윤이가 맛있게 드시면서...
"엄마, 그런데 감자 샐러드에 왜 햄을 넣는 거야? 다 햄이 들어가 있어. 그러면 완전히 맛이 이상해. 다른 맛이야."
보통은 다 넣는다. 너희는 엄마 샐러드에 익숙해서 그렇다. 처음부터 그렇게 먹었던 애들은 그게 또 제일 맛있는 거다. 그러니까 익숙한 맛을 맛있게 느끼는 거다. 주절주절 지루한 설명을 하고는 "그래서! 절대 음식은 없어! 다 상대적이야" 라고 했더니.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우연히 찾아든 선물같은(다른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 시간이었다. 대학원 4학기를 완전히 마치는 마지막 종강 날이었다. 수업 마치고 늘 수녀님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곤 했는데, 학생으로서 특혜였다. 그날 수업으로 시작하여 별별 얘길 다 나눈 것 같다. 이건 진짜 상상도 못 한 일인데. 대학원 생각을 하면서 학교를 결정하는 문제로 의논을 하기도 했었다. 이 학교로 결정하고 "어느 신부님 강의는 꼭 들어보라"는 말씀을 해주실 때도 이런 날을 상상이나 했냐는 말이다. 4학기 차에 수녀님이 우리 대학원에 강의를 나오시게 되고, 그 과목은 무려 <중세 여성 신비가들>이었고, 박사논문으로 연구하신 베긴(Begine) 신비교사 '안트위르펜의 하데위히' 강의였으니! 이건 하나님께서 너~어무도 나만 생각하시는 건 아닌가 싶으신 것이었다. 너무 내 위주로 커리큘럼 짜고 계신 건 아닌지. (나한테 왜 이러시냐고, 도대체 왜 나한테...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진짜 많이 투덜거리고 대들었는데... 하나님, 당신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학기 세 과목은, 아니 세 분의 교수님은 인생 종합 선물 세트였다. 오랜 시간 '스승의 날'마다 박탈감 같은 걸 안고 보냈다. 신앙 사춘기를 통해 젊은 날 존경하던 스승님들 다 보내고 텅 빈 마음이었을까? 올 스승의 날에는 정말 세 분 스승님께 정성을 다해 마음을 표현했다. 지난날의 박탈감이 다 치유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 마치고는 수녀님과 차 한 잔 하자는 발걸음이었는데, 갑자기 정해진 반포대교, 그리고 입구를 잘못 찾아 들어가 카페와는 한참 멀어졌고, 걷는 게 힘드실 것 같아 빈 벤치가 보이면 무조건 앉자고 우겨서 자리를 잡았다. 앉자마자 이게 무슨 일! 바로 반포대교 분수쇼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자리는 로열석이었다!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 담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횡단이 아니라 종단이었다. 1517년 종교개혁 시대의 담을 넘어 초세기부터 16세기 스페인 영성에 이르는 영성의 강을 여러 차례 오르고 내린 것 같다. 간간이 고대 그리스까지도 거슬러 올랐었다. 이 강물에 몸을 맡겨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며 흘렀다. 예습, 복습, 자기주도 학습. '습'이란 습은 다 하며 행복했다. 목말랐던 바로 그 배움이 딱 거기 있었고. 그렇게 헤엄치다 발에 땅이 닿아 디디고 섰더니 원래의 내 자리이다. 내가 나고 자란 교회, 혹독하게 신앙 사춘기를 겪었던 엄마의 품, 엄마의 교회, 개신교회, 지금 여기의 교회. 그간 가졌던 많은 의문들이 2000년 영성의 강물 위에서 나뭇잎 한 장 같은 것이 되었다. 횡단의 대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종단으로 밝히 알게 된 출생의 비밀 같은 내 영성의 역사로 자부심이 커졌다. 그렇게 보낸 4학기 마지막 강의를 마친 밤에 참 잘 어울리는 종강파티였다.
현승이는 마주 앉은 사람 말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신공을 갖고 있는데... 비법은 '질문'이다. 사람사람에게 맞춤형 질문을 조곤조곤 던지는 것이다. 아빠에게는 철학이나 성경 관련, 엄마에게는 꿈을 비롯한 사람 마음에 관한 것, 누나에겐 음악이나 친구, 영화 같은 주제. 엄마빠 함께 앉아 식사하며 음식 얘기하는 중(내 보기엔 질문 꺼리가 떨어져서 대충 내보낸 질문) "학센 알아? 먹어봤어?" 한 마디 하고 주일 저녁으로 특템하였다. 주일 오후엔 아빠가 살짝 나사가 풀리면서 지갑도 막 느슨해지는데. 뭔가 색다른 맛있는 무엇을 먹으며 셀프 위안을 얻으려는 뜻도 있는 것 같고. 암튼 덕분에 남해 독일마을에서 먹어봤던 독일식 족발, 슈바인 학센을 먹었다.
최 선생님은 주변 모든 이들을 위한 상담자 같으시다. 선생님 댁 현관 앞에서 울며 나오는 한 여자분을 만났다. 내담자려니 했는데, 친구분의 며느리란다. 얼마 전 치매 증상으로 요양병원에 가신 선생님 친구분, 그 소식으로 선생님도 한동안 적잖이 힘겨워하셨었다. 듣자 하니 어머니 요양병원 입원 후 자녀들 사이 갈등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다친 며느리가 선생님을 찾은 것이다. 집에서 치매 어머니를 모시던 분이다. 스쳤지나 듯 마주쳤지만, 고통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일은 뭔가 남 일 같지가 않다.
선생님, 힘들어 보이세요. 좀 쉬실까요? 그러게. 기력이 없네. 이젠 상담도 접어야 할 때가 됐나 봐. 잠깐 있어 봐. 으읏짜, 내가 뭘 좀 먹어야 한다. 네, 선생님. 어여 홍삼 드시고요. 오늘은 좀 쉬세요. 저는 다음에 올게요. 예이, 사람아! 가긴 어딜 가? 노인네랑 놀아주고 가야지. 기력 없는 노인네 내쳐 두고 가버린다고? 걱정 마오. 벌써 다시 힘이 나는 걸. 아니요, 기운이 없어 보이셔서요. 하긴 또 제가 인간 비타민이니까요. 에너지 팍팍 드리겠습니다. 헤헤. 힘든 얘기 들어주는 게 보통 에너지 드는 일이 아닌데, 선생님 대단하신 거예요. 그래? 정 선생은 상담할 때 들어주는 게 힘들어? 저요? 어... 저는 인간 비타민이니까, 스스로 비타민 주입이 가능하니까 그리 힘들지 않죠. 헤헤. 상담 일 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그렇잖아요. 번 아웃이 오기도 하고요. 선생님은 그런 적 없으세요? 왜 없어? 그런데 나는 아픈 얘기 듣는 거 어렵진 않아요. 차라리 부동산 얘기, 건강식품 얘기, 연예인 얘기하는 친구들 수다가 더 괴로워. 교만한 노인네야. 후훗... 오,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나는 상담이 좋아요. 아프고 힘든 얘기 하려고 상담 오는 거니까, 사실 그게 다 인생의 진실 아니오! 진실한 얘기는 아플지언정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는 않아. 차라리 근사하게 포장하고 좋은 말만 오가는 대화가 에너지를 더 뺏더라. 정말 그러네요. 좋은 말 대잔치가 피곤한 게 그런 거였군요. 진실한 대화! 그런 의미라면 저도 상담 안 힘들어요. 셀프 비타민 주입은 취소구요! 헤헤. 고통이 진실이지. 그래, 고통이 진실이야. 삶은 고해라고!
누가 문제예요? 딸이에요? 며느리예요?
그런데 선생님, 친구분 자녀들이요. 따님도 계속 전화하시는 거 아니에요? 전에 따님이 소식 알려주시고 상담도 하고 그랬던 거잖아요. 올케 시누이가 마주하고 싸울 얘기를 각각 선생님께 하는 거 아니에요? 야, 이제 정 선생이랑 내 친구네 집안사까지 나누는 사이가 됐구나. 며느리는 오늘 처음 온 거야. 상담을 받겠다고 하는데 일단 보자고 했지... 아니나 다를까, 어디든 억울한 감정 쏟아놓을 곳이 필요했던 거야. 사정 아는 사람에게 제 마음 보여주고 싶은 거지 뭐.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부모님 모시는 사람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쪽저쪽에서 좋은 소리는 못 듣는 건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 같아요. 어라, 부모 모시는 속내를 겪어보지도 않은 정 선생이 어떻게 알아? 모셨다고 볼 수는 없지만요. 아이들 어려서 풀타임 일할 때 육아 때문에 함께 산 적 있거든요. 제 필요로 함께 사는 건데도요. 정말 힘들더라고요. 힘든 것 꼽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뭐랄까. 같이 사는 건 일상이잖아요. 한 번씩 왔다 가는 자녀들과는 어떻게 비교할 수 없는 처지인 거죠. 아까 현관에서 잠깐 스쳤는데도 그 며느님 마음이 느껴지던데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제 필요 때문에 함께 사는데도 그렇게 힘들었는데요. 연로하신 어머니, 그것도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게... 아아, 저는 상상이 안 돼요. 그러게나 말이야. 치매 걸리기 전에도 내 친구가 만만한 사람은 아니거든. 평생 교직에 있으면서 자부심도 컸고. 가르치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 말이야. 같은 사는 며느리 쉽지 않겠구나 싶었었어. 그 며느리 고생 많았지. 발병하고 요양병원 가기까지 한 3년인데, 처음에는 치매인 줄도 몰랐잖아. 하루하루 인격이 달라지는 시엄마 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 거든.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에효, 참.... 죄 없는 자식들이 서로 할퀴고 그런다. 어쩌겠어. 병원으로 가야지. 갈 데로 간 건데 딸은 또 못내 안타까우니까 제 올케한테 싫은 소리를 한 모양이야. 아오, 정말! 딸이 너무한 거 아녜요. 자기가 한 번 모셔보라죠. 노인네 세 끼 식사 차려드리는 것만으로도 큰 일이라고요. 그것도 치매 어머니를요. 너무 이기적이에요! 허허허, 그렇긴 한데. 정 선생이 왜 이리 흥분을 해? 왜? 시엄마 모시게 될까 겁나? 네?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흥분했나요? 헤헤. 시어머니는 아직 젊으시고 혼자 지내는 것 좋아하시니까요. 아흔 넘은 엄마가 동생네하고 사시거든요. 올케한테 늘 미안하더라고요. 한 번씩 엄마 보러 가는데 눈치가 보여요. 올케는 이것저것 식사 한 끼라도 신경 쓰일 거고, 복잡하네요. 뭔가, 마음이... 그렇구나. 딸 말도 그래. 걔도 제 입장이 있더라고. 제 엄마 성질도 알고, 그 성질 받아내고 모셔 준 올케가 고맙고 미안하대. 그래서 제 딴에는 한다고 했다는 거지. 치매 엄마 병원에 넣고 보니 마음이 갈피가 잡히지 않았나 봐. 저는 힘든데 병원 보내고 좋아라하는 것 같은 올케가 이해도 되지만 섭섭했대. 어쩌다 그 말 한 마디가 나와서 옥신각신하게 된 모양인데, 말이 오가면서 감정이 커진 거지 뭐. 아... 며느리가 좋아라 했어요? 속으로 좋아라, 했어도 좋다고야 했겠어? 벌써부터 병원으로 모시자고 한 건 딸이었어. 그런데 올케가 괜찮다, 괜찮다 했다는 거지.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인 거 알고 제가 나서서 추진했는데... 사리분간 못하는 엄마를 병원에 혼자 놓고는 몇 날 며칠 눈물 바람을 하다가 참았으면 좋았을 말을 내놓았나 봐. 어떤 말을 참아야 하는데요? 하긴, 참아야 하는 말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 그러면 선생님, 지금 누가 문제예요? 딸이에요, 아까 그 며느리예요? 양편 말을 다 들어보셨잖아요. 이런 경우 두 사람은 서로 어떻게 화해해야 할까요? 글쎄, 화해라... 화해만이 능사인가 싶고. 입장이란 게 있는 거잖아요. 정 선생도 며느리 입장으로 생각할 때와 딸 입장이 될 때 다르지 않은가? 어... 그러네요, 선생님. 입장이란 게 있죠. 아니, 그러고 보니 도대체 이런 때 아들 사위는 왜 사라지고 없는 거죠? 요양병원으로 모시지 않는 한 부모님 수발은 거의 여성들 몫이잖아요. 그것도 주로 며느리요. 오래전 읽었는데 제목도 잊히지 않는 박완서 선생 소설 생각이 나요. 『환각의 나비』라는 소설인데요. 치매 어머니 돌보는 문제로 딸과 아들 사이 갈등인데, 어머니 자신이 “내가 아들이 있는데 왜 딸 집에서 죽어야 하냐?”는 식이었거든요. 아들 집이면 결국 돌봄 노동을 맡는 건 며느리잖아요. 젊을 때 읽었는데도 마음이 참 복잡했었던 게 생각이 나네요. 에이구, 그냥 병원으로 가야지! 병원! 뭐 아들 집, 딸 집이야? 에이구! 정말! 맞아,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유교적,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뿌리가 깊어. 내 친구들만 해도 비슷하다니까. 노년에 딸 집에서 돌봄 받는 걸 은근히 부끄러운 것으로 여긴다고.
웰다잉, 잘 죽는 게 뭐지?
하아... 선생님 참. 막막하네요. 저도 마주해야 할 일인데... 양가 어머니들 생각하니까요. 집에서 편안히 돌아가시는 건 이상일 뿐일까요? 존엄한 죽음 같은 것 말이에요. 글쎄... 존엄한 죽음이라. 요즘은 웰빙이 아니라 웰다잉 웰다잉, 많이 하던데. 둘 다 콩글리쉬잖아. 웰다잉... 그게 무슨 뜻이야? 잘 죽는 게 뭐지? 살던 집에서 자식들 돌봄 받으며 죽으면 잘 죽는 걸까? 시설 좋은 요양병원에서 비싼 간병 받으면 존엄한 죽음이 되려나? 집에서 모실 자식 없고, 좋은 요양병원 갈 돈 없는 사람은 웰다잉도 애초 틀려먹은 거유? 그러게요. 저는 그 따님이 너무 이해되는 게, 제가 친정엄마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딱 한 가지이거든요. 집에서, 엄마 방에서 돌아가시게 해주세요. 엄마도 늘 그러시죠. 잠자다 불러가시면 좋겠다. 기도하다 불러가시면 좋겠다. 엄마가 쓸쓸하게 병원에서 돌아가신다 생각하면... 아, 생각도 하기 싫으네요. 그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면 좋겠지, 정말 좋겠지... (한참 생각에 잠겨 말이 없으시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여사라고 알죠? 그럼요.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 말씀하신 분이죠?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였던가요? 애도 전문가시잖아요. 그 5단계는 정말 일리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죽음에 대해 현대적 의미로 가장 잘 정리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 호스피스 운동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할 거야. 그 사람이 시한부 환자 5백여 명을 인터뷰하고 쓴 책이 『죽음과 죽어감 On Death and Dying』인데, 5단계가 그 책에서 나와요. 아... 읽어봐야겠네요. 정신의학자라고 다 그러지 않을 텐데, 죽음과 상실에 대한 남다른 영적 감각을 타고난 사람 같아요.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대하는 의료진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대. 환자 한 사람이 아니라 심박 수, 심전도, 폐 기능... 같은 것만 보더라는 거지. 사람, 그렇지! 한 사람의 죽음인데 말이야. 그런 계기로 일생 죽음을 연구했어. 그러니까요, 선생님! 한 사람, 하나의 고유한 생명,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인데 병원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럴 수도 없을 거고요. 그래서 노부모님 병원에 두는 게 애달픈 일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친구분 따님 마음이 또 이해가 되고요. 그래, 말 잘했어. 죽음의 외주화라는 표현을 하지. 퀴블로 로스도 아까 말한 책에서 그런 얘기를 해요. 조부모가 집에서 임종을 마주하고, 아이들은 그 과정에 함께 하고, 심지어 죽음을 금기시하지 않고 대화하고, 가족들이 함께 애도할 수 있다면 인생에 대해 큰 가르침이 될 거라는 것이지. 맞아요.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 그 이상 좋을 수가 있겠나. 그런데 그야말로 이상이지. 이상... 그렇죠. 저희 친정엄마도 지금은 혼자 화장실도 가시고 최소한의 자기 돌봄이 가능하니 집에서 사실 수 있는 거죠. 여기서 더 안 좋아지시면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아슬아슬해요. 어이구, 정 선생네도 올케가 고생이 많겠네. 맞아요, 선생님. 동생 가족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죠. 그런데 말씀 듣다 보니 그 딸이 이해가 되는 게요. 무슨 말을 못 참았을지 딱 상상이 되네요. 가끔 엄마한테 가서 보면 제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거든요. 조금 더 세심하게 챙겼으면 싶은 거예요. 그런 디테일들이 보일 때 참 힘들어요. 보여도 못 본 척해야 하는 거죠. 이런 것 좀 신경 써라, 잘 챙겨라, 한마디 하는 순간, 올케 입장에선 어이없고 서운하게 들릴 거예요. 그래서 꾹 참죠. 꾹 참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는 적도 많아요. 그러네요. 모두 마음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말 한마디면 사이가 나겠어요. 에고, 저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요. 그래, 어려운 거지. 저이들이 양쪽에서 울고불고하는 게 누구 잘못이 아니라고 봐. 지금 같은 가족 구조에서 집에서 생애 말기 돌봄이 가능한 집이 얼마나 되겠으며. 아까 정 선생이 말 잘했다. 한다 한들 그 짐은 고스란히 딸과 며느리 여성의 것이 되는 구조는 또 어떻고? 돈이 좀 있고, 입주 간병인을 쓸 수도 있겠지. 그렇더라도, 이것 봐. 이 사람들처럼 자식들 사이에서 뒤늦게 터지는 갈등이라니 말이야.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웰다잉이니, 존엄한 죽임이니, 말은 그럴 듯하지만.
부활의 확신이 곧 웰다잉의 길
선생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할까? 착한 자식 없고, 돈 없는 노인들도 생애 말기에 조금 공평하게 인간적 대접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복지국가가 뭐야. 이게 국가적인 대안이 생겨야지. 그러네요. 선생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존엄한 죽음이라는 게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네요. 나도 곧 죽을 사람인데 말이야... 어... 엇... 서, 선생님 오래오래 사셔야죠. 무슨 말씀이요? 뭐 그렇게 당황해? 허허. 기력이 없어서 상담도 못하겠는 노인넨데,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요, 선생님... 괜찮아. 여태 우리가 한 얘기가 내 친구 얘기도 아니고, 정 선생 어머니 얘기만도 아니고 내 얘기야. 나한테는 생애 말기 시간이 안 오겠어요? 죽음이 나를 비켜가겠냐고? 아...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지 알아? 말해줄까? 허허허.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이라고 알아요? 수식어가 많이 붙지만, 평화주의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분이 100세가 되었을 때 서서히 스스로 곡기를 끊으면서 생을 마감했어요. 자연사라는 게 기력이 떨어져 음식을 섭취할 수 없으면서 서서히 쇠약해지면서 죽는 것 아니유. 실제로 이런 식으로 죽게 되면 탈수 현상이 오고 피가 산성화되면서 고통 대신 행복감을 느끼게 된대요. 그런 복이 허락된다면 그리 죽고 싶네. 나는... 스스로 곡기를 끊는다... 결국 자발적인 안락사인가요? 조금 혼란스러운데요, 선생님. 나는 의료행위로 생명을 연장하는 게 싫어요. 스콧 니어링처럼 하진 못해도, 적어도 의학의 힘으로 더 살고 싶진 않으네. 그래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을 해두었어요. 아, 그러세요? 어떻게 그걸... 뭘 그리 놀라? 어떻게는 어떻게야. 그냥 가서 하면 되는 거야. 내가 신청했다 해도 나중에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또 안 된대요. 나는 오래전부터 아들에게 얘기해뒀어요. 연명치료 하지 말아 달라고. 콧줄로 영양공급 하는 것도 원치 않아요. 와아, 선생님. 디테일하시네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하게 행동하고 말씀하실 수 있으신 거죠? 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좀 놀라워요, 선생님. 이렇듯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고 관리하실 수도 있는 거군요. 죽음을 관리한다고? 에잇, 그렇지 않아. 죽음을 어떻게 통제 관리해? 차라리 나는 통제할 수 없기에 이러는 거예요. 사전 연명치료거부서를 작성해 놓는다고 내 죽음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될까? 그걸 기대해서 한 건 아니야. 그러면 왜 하신 거예요? 하하, 어찌 이리 순진한 표정이야? 내 말이 정신없는 노인네 같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고요. 그냥 좀 마음이 먹먹하고, 뭔가 좀... 계속 말씀을 듣는 게 힘들고 슬프네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니까요. 그래. 그럴 수 있겠네. 나는 웰다잉이란 말이 불편하더라고. 죽음까지도 자기 계발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평생 상담 일 하면서 발견한 것은요. 자기계발식 노력과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대부분의 고통이란 것이 인간의 통제 밖에 있거든. 하물며 죽음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실은 어떻게 죽을지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내가 열심한 불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기독교 신앙으로 분명하게 방향을 바꾼 것이 가족들의 죽음이잖아요. 아, 그 얘기해주셨었죠. 남편분과 어머님 돌아가신 후에 죽음에 관한 책을 읽으시며 슬픔을 이기셨다고요. 스캇 펙(Scott Peck) 박사의 소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이었던가요? 그 소설 읽으시고 죽음의 문제를 다시 보게 되셨고 신앙생활 시작하셨다고요. 기억력도 좋네. 맞아. 이제야 이해가 돼요. 선생님은 다른 게 아니라 죽음을 통해 회심하신 것이군요. 아까 속으로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의연하실 수 있을까? 의연함이 믿어지지 않아서 좀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그 근자감에 대해 여쭤보고 싶었죠. 근자감? 그게 무슨 감이야? 하하, 근거 없는 자신감이요! 젊은 많이 쓰는 줄임말이에요.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지. 어머니와 남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정말 죽음이 두려웠어요. 죽을 운명을 안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 실은 남모르게 목숨을 거둘 생각도 했었다오. 내 비록 선데이 크리스천이고, 믿음도 적지만... 죽음 너머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겠어요. 그리고 그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천국이라는 것도. 그 믿음으로 마지막 시간을 버티고 있지. 아니야. 버티는 거 아니다. 죽음 너머의 영원한 삶 때문에 사는 게 의미가 있어요. 부활 신앙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선생님, 믿음이 이렇게 좋으셨어요? 아, 부활 신앙. 그래, 나는 부활 신앙인이야. 부활을 믿으려면 먼저 죽음을 믿어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가끔 열심인 교인들을 보면서 안 죽을 것처럼 산다고 느껴질 때가 있거든. 사전연명의료향서 신청 왜 했느냐고 했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겠다는 게 아니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예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집이든 호스피스든 어디서 어떻게 죽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존엄한 죽음 아닐까. 아, 선생님 메멘토 모리요! 늘 메멘토 모리를 말씀하시는 이유이시군요. 그래, 메멘토 모리. 이 사람 참 기억력 좋고. 하하. 친구 며느리와 딸이 각각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어. 나도 마지막엔 어쩔 수 없이 하나 밖에 아들에게 의존해야 하겠죠. 정 선생 말대로 의연하고 싶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해둔 건, 아들이 져야 할 부담을 최소한으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죽든 기꺼이 받아들이며 죽고 싶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존엄한 죽음이에요. 선생님, 웰다잉의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부활에의 확신이 존엄한 죽음, 웰다잉의 길이에요. 부활을 믿으려면 내 죽음을 믿어야 하고요. 오늘 부활 신앙에 대해 한 수 배웠어요. 허허, 참 이 사람 기억력도 좋고 정리도 잘 해. 아이고, 배고프다. 죽을 때 죽더라도 배고플 땐 먹어야지. 밥 먹읍시다!
장맛비가 종일 내리는 날, 점심으로 비빔면을 했다. 고기만 달라고 하지는 않지만, 고기가 없으면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육식 인간 현승을 위해서 고기 몇 조각도 올렸다. 야채도 먹여야 하는데... 음, 배추를 얇게 썰어서 면과 함께 비볐다. 첫 입에 "으음... 역시 엄마가 삶으니까 면발이!"라고 한다. 면발의 식감을 말하는 건데, 아마 아삭거리는 배추의 지분도 있을 것이다. 비빔면을 베이스로 하여 고기와 야채를 균형 있게 잘 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