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우정. 계층, 학력, 나이, 직업이 다른 여성들의 서사가 교차하는 윤이형의 소설 『붕대 감기』

성육신에 대한 낯선,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혐오와 폭력의 종교에 맞서는 리처드 로어 신부의 『보편적 그리스도』

 

남자 사람 목사가 읽고 있는 책은 『붕대 감기』

여자 사람 작가가 읽는 책은 『보편적 그리스도』

 

그렇다.

 

 

 

 

 

 

드디어 찾아서 손에 넣었다! 남편 득템!

 

연말 연시 준비할 일이 많아 가까운 곳에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나섰다. 이천 쌀밥을 운운하며 갔는데 쌀밥도 보리밥도 아닌 인도 커리를 먹고 근처 도자기 파는 곳에 들렀다가 몇 년 찾아 헤맨 바로 그것을 발견했다. 인사동 같은 델 가면 우물, 마중물, 펌프... 하면서 돌아다니곤 했었는데 늘 실패. 도자기 가게 아이쇼핑 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내가 발견했다. "여보, 이거 봐. 당신 이런 거 좋아하잖아." 아이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찾던 거라고!!! 두 번도 망설이지 않고 펌프 모형, 옹기, 물을 올리는 진짜 펌프를 샀다. 

 

이천 아울렛에 가서 엄청 싸게 나온 신발을 보고, 마침 신발이 필요하다며 들었다 놨다 결국 놓는 것으로 끝났다. 사라고, 내가 사주겠다 해도 아직 신을만 하다며 결국 내려놓고 말았다. 신발에 열리지 않는 지갑이 신지도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펌프 모형에는 열린 것이다. 나같으먼 신발을 사겠네! 바보! 놀려보지만. 실리보다 명분을, 실용보다 의미를 사는 남편이 고맙고 좋다.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찾아다니는 열정과 기꺼이 사고마는 낭비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거룩한 낭비'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중 특기할 만한 인물이다. 생존하고, 결국 생존하여 치유자가 된 사람이기에 그렇다.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문학가, 예술가들이 생생한 작품을 남기고도 스스로 목숨을 거둔 일이 많다. 그 생생한 기록을 읽다보면 일상으로 돌아와 계속 살아남는 것이 차라리 기적처럼 느껴진다. 빅터 플랭클을 오래, 결국 살아남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 자신이 던진 질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왜 어떤 사람은 결국 살아남는가? 삶의 의미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살아 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 그 의미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이 극한의 사선 앞에서 버티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의미치료'를 창안하였다. 고통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으로 치유 가능하다! 단지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치료책만은 아닌 것 같다.

 

일상의 다른 말은 '소소한 행복'이 아니라 '미세 부조리의 축척'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은혜로 덮고, 다 주님의 뜻이 있겠지 싶어 수용하고 살지만 내 뜻대로 되는 일상이 몇 개나 되는가. 부조리한 일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다른 말로 ‘의미'의 발견이다. 부조리 속에서 조리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견뎌야 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 의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고, 이성과 논리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용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돈이면 옷과 신발을 사서 멋지게 보이는 게 낫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펌프 장식물을 사서 끼고 있는 것이 무슨 유익이람. 돈도 안 되는 일에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집어 치우라는 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을 위한 희생으로 자기를 소진하지 말라는 조언을 거스르는 바보같음 말이다. 의미를 발견한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의 신앙은 이렇듯 내가 발견한 십자가의 그분, 그 의미에 대한 깊은 헌신이다.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고 확신할 때 인간은 엄청난 힘을 얻는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 상징들이 맡고 있는 일몫이다... 자기 존재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는 느낌은, 한 인간을 단순히 소유하고 소비하는 존재로부터 보다 나은 존재로 도약하게 한다. 그런 의미를 느끼지 못할 대 인간은 자신을 비참한 존재로 인식한다. 만일 자신을 떠돌아 다니는 양탄자 직공(천막 만드는 사람)에서 더도 덜도 아닌 존로 인식했다면 사도 바울은 실제로 아무것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그의 삶의 진실은, 자신이 '주의 사자'라고 하는 내적인 확신 가운데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의견은 역사의 증언이나 후세의 판단 이전에 이미 퇴색하고 없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자신을 확실하게 잡아 쥐게 한 신화는, 단순한 직업인 이상의 위대한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신화는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

 <인간과 상징> 카를 융

 

의미와 상징은 얼마나 소중한 낭비인가. 인간을 거룩한 존재, 초월하는 존재가 되게 하는.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내적으로 깊이 품기 위한 상징으로서의 의례와 상징물들. 손에 쥔 연기처럼 빠져가는 낭비, 그러나 이 얼마나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인다. 이 부조리한 일상을 믿음으로 견디게 하는 힘은 지금 여기서 발견하는 '의미' 그것이다.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의 낭비는 과연 무엇인가. 

 

카를 융의 말처럼 인생에 '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종교이고 종교의 상징일 텐데. 인생을 더 천박하고 일천한 것으로 추락시키는 종교가, 교회가 견딜 수 없는 오늘. '실용'을 팔아 '명분'을 사는, 의미와 상징을 사는, 보이지 않는 가치에 자기를 소비하는 바보 하나를 지켜보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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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아버지 돌아가신지 38년 되는 날이다. 38년. 38년이라니! 3년도, 8년도 아니고 38년이라니. 하루 전날, 12월15일에 동생 집에서 추도예배를 드렸다. 추도예밴지, 생신예밴지, 명절인지. 아이들은 일 년 중 가장 신나는 날이다. 맛있는 것 먹고, 사촌들과 재밌게 노는 날. 축제 같은 날이다. 남편이 예배 인도를 하고, 내가 기도했다. 툭 나온 첫문장에 이끌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에 이끌려 고향 한산에 다녀왔다.

 

"하나님, 38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 그 겨울에는 세 식구가 남아 너무도 추웠습니다." 연이어  마 3:16-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본문으로 남편이 설교를 했다. 주제는 단연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 엄밀하게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사랑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신으로 인간이 된 아들은 사람의 몸을 입고 견뎌야 할 고통을 견뎌냈다. 바로 그 한 마디 때문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38년 전에 아버지를 잃은 동생과 내게 아버지 사랑에 관한 기억을 나눠 달라고 하였다. 사춘기 아들이 둘, 우리 현승이 귀염둥이 막내까지 아들 넷이 조르르 앉아 있었다. 나는 원래가 수도꼭지라 기도할 때부터 '고장'이 났지만. 장군인 동생도 말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아까 누나가 기도할 때 첫 문장이... 아버지 돌아가신 그 겨울이 참 추웠다. 아니,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는 늘 추웠다. 그 전을 생각하면 네 식구가 함께 있고, 한 마디로 따뜻함의 기억이다.'라고 말했다.

 

예배 마치고 밥을 먹으며 동생은 네 식구가 함께 '십계' 영화를 보고 가족탕에 갔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내게는 없는 기억이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 이전의 기억까지도 다 검은 칠을 해버린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자꾸 '전과 후'라는 말을 했다. 같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지만, 같은 죽음이지만 동생과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구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내게는 'before' 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인가, 조금 혼란스러웠다.

 

추도예배 마친 다음 날, 12월 16일. 남편과 속초 하루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밤새 꾼 꿈의 연장으로 고향의 그 길에 가고 싶어졌다. 아버지 돌아시고, 엄마랑 동생 바로 서울로 이사하고, 혼자 집사님 댁에 남겨져 있던 몇 개월. 슬퍼도 울지도 못하고, 그리워도 맘껏 그리워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지냈던 시간. 학교 가던 그 논길이 생각 났다. 12월 16일, 그곳은 얼마나 추운 걸까? 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말 없이 남편이 동행해주었고, 오가는 근 여섯 시간 운전해주었고, 추웠던 날 나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었다. 조용히 내 뒤를 따라 걸어주었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혼자인 듯, 그러나 뒤를 따르는 남편 덕에 외롭지 않게 38년 전의 길을 다른 마음으로 걸어보았다. 문제는 오직 '추위'로 기억되는 그 겨울을 느껴고자 세 시간을 달려갔는데... 날이 너무 푹해서, 심지어 올라오는 길에 살짝 차 에어컨을 돌려야 할 정도였다. '추웠던 기억'은 떠나보내라고 더운 입김 불어 넣으시는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산 다녀온 다음 날 남편의 윗입술이 불룩불룩 하더니 툭 터져버렸다.  뭐 힘든 일이 있다고 입술이 터졌어? 월요일 운전이 힘에 부쳤던 것이다. 장거리 운전, 힘들다 힘들다 했었는데. 말없이 김기사 노릇 했지만 몸이 됐구나! 상처의 치유는 누군가 상처로부터 흐르는 피고름을 빨아 먹어주는 심정으로 견뎌줘야만 치유된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찌른다면 다뤄지지 않은 상처들 때문일 텐데. 내 인생 치명적 상처로 가장 많이 찔리고 아팠을 사람이 남편이다. 한산에 다녀온 하루처럼, 함께 하는 세월 내내 내 상처로부터 흐르는 쓴 물을 묵묵히 마셔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산 13년의 행복이 그대로 상실감과 결핍이 되어 38년 째 실락원의 방황이다. 내적 여정을 통해 그 기억을 새롭게 써가며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 만나 제가 누웠던 들것을 들고 제 발로 걸어 나가듯 이제 제대로 털고 일어나려 한다. 더는 그 추위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뜻이고, 자기연민의 늪에서 나오겠다는 뜻이다. 

 

올라오는 길, 겨울도 봄도 아닌 푸근한 날에 갈대밭을 거닐었다. 남편은 신성리 갈대밭이 참 좋았다고 자꾸 얘기한다. 다행이다. 남편에게도 좋았던 곳이 있어서. 아내의 짐을 함께 지고 슬픔에 동참하는 착한 남편에게 그분이 주신 선물인지 모른다. 배우자 선택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기 이성 부모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13년 딱 함께 살아주고 떠나 그리움만 남긴 아버지이지만 좋은 사람이었던 게 분명하다. 가만한 사람, 가만한 사랑으로 함께 하는 저 사람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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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의견의 차이 또는 갈등이라 해도 좋을 상황을 인내로 헤쳐 나가는 시간, 숨을 고르며 남편이 자주 하던 말이었다. 다르다고 생각했고, 다름의 간극이 멀어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있을까 싶은 시점에서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은 달래고 어르는 말처럼 들렸었다. 달래지고 얼러지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같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차분하게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다'고 설득하는 태도 때문에 달래졌던 것 같다. 

요즘 자주 속으로 생각한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구나!" 남편과는 물론이고 아이들과도 그렇고. 많은 경우 그렇다. 3인칭 시점으로 지켜보는 '말'들은 대부분 같은 마음을 다른 언어로 표하고 있다고 느낀다. 같은 마음이란 '평화와 자유' 같은 것들이다. 화해와 연결, 이해하기 이해받음 같은 것들이다. 문제는 언어가 담은 마음이 아니라 그저 언표만을 듣고 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귀와 눈이다. 서로 다른 뜻(마음) 이 아니라 같은 마음 다른 표현이기에 더 어렵구나, 이런 생각도 한다.   

적어도 남편과는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음'에 대해 빨리 감지할 수 있다. 그러자 우리의 차이가 보인다. 그러자 내가 보인다. 더욱 또렷이 보인다. 알고도 모르고 모르지만 알았던 내가 잘 보인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지점은 에너지와 속도의 차이이다. 나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남편은 부러 천천히 뒤처져 숙고한다. 알고보면 같은 결론, 같은 뜻이다. 나는 '계획 세우기'로 뜻을 향해 나아가고, 남편은 명확한 마침표를 위해 뜻을 갈무리 한다.  말을 하다보면 간극이 엄청나지만 뜻이 같고, 바라보고 있는 곳이 일치한다.

안성의 있는 미리내 성지를 걸었다. 같은 뜻으로 걸었다. 뜻을 담은 소리가 달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알아듣는 귀가 생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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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성서한국에서 만난 학생이 하나 있다. 강의 후 개인적인 질문을 해왔는데 바로 다음 강의를 시작해야 해서 답을 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아니, 단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 두 마디 답이 아니라 잠시라도 대화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미리 잡힌 상담 스케줄이 있었지만 틈새 시간을 빼서 만나자고 했다.

내용은 이렇다. 목사의 딸이다.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여러 이유로 고통스럽다. 교인들 시선이 부담되어 불편하고 싫다, 교회를 떠나고 싶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신다. 아니, 그래라 허락하셨다 다시 안 된단 번복하신다고 한다. 목사 딸로 사는 게 부담된다는 그 이상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답게 진실하게 신앙생활 하고픈 간절함’으로 읽혔다.

부모님이 딸을 설득하며 대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 ‘교회에서 네 등록금을 대는데 네가 다른 교회를 가면 어떡하냐’이다. 이 문장을 들을 때 다리가 풀렸다. 강의에서 이미 말했다. ‘부모를 떠나야’ 자기 발로 서는 신앙, 삶을 살 수 있고 그것은 갈등을 자처하는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더 성숙한 사랑 하게 되는 일이라고. 그 이상의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교회에서 주는 등록금은 아빠 직장의 복지이다. 목회자인 너의 아빠와 교회 사이의 문제다. 그 돈에 대한 채무감은 네 몫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내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목사 딸인 학생에게도 그 부모님에게도 감정이입이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늘 말한다. 아빠가 목사인 교회가 힘들면 언제든 교회 옮겨도 된다. 아이는 대번에 그런다. “엄마 아빠가 입장 곤란해지잖아” 곤란함은 엄마 아빠 몫, 엄밀하게 말하면 목회를 선택한 아빠의 몫이니 그 짐을 너까지 질 필요는 없어” 이렇게 말하지만 마음까지 쿨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학생 부모님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등록금 얘기에서 읽히는 ‘밥벌이로써의 목회’의 무게 또한 공감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에게 하듯 확신을 갖고 말했다.

학생은 부모님을 맞서는 게 두렵다고 했다. 설령 자신의 뜻이 관철된다 해도 부모님이 교회에서 겪어낼 시선이나 여파를 상상하면 두렵다고. 거기까지 얘기하고 헤어졌다. 돌아와서 자주 그 학생을 떠올렸다. 떠오를 때마다 기도의 마음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딱 한 달이 지난 9월 첫날 아침에 기적처럼 학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부모님과 대화를 잘해서 좋은 타협안을 찾았다고. 청년부 예배에는 가지 않고 대예배만 드리기로 했다고. 대화로 얻은 이 결과는 자신의 가족에게 있어 엄청난 도전이고 변화라고! 감동이다.

누가 정해준 답이 아니라 학생 자신이 맞서서 얻은 결과, 얼마나 소중한가. 헤어질 때 그 불안한 표정 잊을 수 없다. 그 불안과 두려움에 머물러 대면할 수 있어서 얻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목사님 또한 큰 용기를 내신 것일 터. 학생의 말대로 그 결과를 얻기까지의 대화는 가족에게는 큰 도전이며 변화였음을 알겠다. 학생은 물론 그 아버지 목사님, 가족에게 마음의 응원을 보내게 된다.

(‘아이가 견뎌야 할 가장 큰 짐은 바로 부모의 무의식적인 삶이다’라는 제임스 홀리스의 말에 아프게 동의한다. 청년들 만나 상담하다보면 그들이 끙끙거리며 지고 있는 짐은 대부분 부모가 자기도 모르게 지운 집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물며 목사의 딸, 후보자의 딸이라는 이름을 달고 대놓고 부모의 짐을 지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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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일,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다.

결혼식 당일 오전에 도산공원에서 야외촬영을 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사람 뿐이다.

야외촬영에선 저 사진의 철쭉이 진홍빛으로 강하게 남아 있을 뿐.


20년이나 살았다니, 내가 김종필과 20년을 살았다니, 헐헐헐.

자꾸 노래를 부르니 남편이 그런다.

왜애? 억울해? 너무 오래 살았어? 5년만 살려고 했어?

아니, 청년 김종필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그 사람과 20년을 살았다니 말이야.


눈 뜨면 베란다 창에 매달려 있다.

미세먼지 가득한 봄날을 견디게 해준 고마운 풍경이다.

저 풍경이 아니었으면 미세먼지 스트레스에 폐암이 걸렸을지 모른다.


20년 전 5월1일도 저렇듯 푸르렀겠구나.

결혼식 마치고 양평길을 드라이브 했지만 저 빛깔을 본 기억이 없다.

온통 사람이었다.

20년이 지났고, 50 나이를 먹은 덕에 나무 하나하나가 보인다.

지구에 사람만 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들풀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결혼기념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문득, 남편 김종필이 참 좋고 고마워서 아이들과 있는데 말했다.

엄마는 엄마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았어. 뭔 줄 알아?

아빠를 만나기 위해서였어. 아빠를 만나러 이 세상에 태어났어.

사춘기 현승이는 비위가 안 좋은지 슬며시 자리를 떴다.


그가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모습을 본다.

무력하게 지켜본다.

저 사람만의 사막 필살기를 지켜보며 내가 배웠고 성장했다. 

그것이 처음부터 좋아 보이진 않았었다.

좋거나 나빠 보이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가 존재하는 방식, 그가 인생의 사막과 강을 마주하는 방식에 이제 난 입을 닫는다.

깊이 존경한다.


사춘기 아들도, 블로그 독자도 느끼해 속이 울렁거리겠지만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 

저 사람을 만나 인생 30대 이후를 함께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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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 양치질을 하려다 덩그러니 꽂힌 그의 칫솔과 눈이 맞았다.

헤 벌어진 모양이 그의 늘어진 런닝셔츠 같았다.

울컥 뜨거움이 밀려 올라왔다.


칫솔 떨어진 거 체크하고 사다 놓을 줄은 알아도 쉽게 바꿔 쓸 줄은 모르는 사람.

사다놓기 무섭게 새 것 좋아하는 두 여인이 바꾸고 또 바꾸는 사이

여전히 헤 벌어진 채로 꽂혀 있는 그의 칫솔.


새 칫솔을 하나 뜯어 꽂아 놓았다.

새 칫솔도 어쩐지 헤 벌어진 낡은 칫솔처럼 보이니 이건 무슨 조화냐.

허세를 모르는 주인을 벌써 닮은 것이냐.


그가 내게 주는 사랑은 날마다 새로운데, 

그의 칫솔은 새 것을 꺼내 놓아도 낡아 측은하니 양치질 하는 손이 느려지고 느려진다.

그의 오늘이, 그의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길 기도하다 내 이가 다 닳겠네.

아직 쓰지 않은 그의 새 칫솔을 오래 들여다 보며, 오래 양치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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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셨던 오빠가 앞산을 보시며 

"상록수가 좀 있어야 겨울에도 푸르른데, 상록수가 하나도 없구나." 하셨었다. 

아, 그렇구나. 산의 갈색이 유난하다 싶었더니.


겨울산, 겨울나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나무를 보면 주문을 걸며 눈을 흐리게 떴다. 

어서 봄이 와라. 어서 봄이 와서 푸르러져라. 금방 봄이 올 거야. 봄이 올 거야.


오빠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내게 상록수가 필요하지 않다.

이 쓸쓸하고 슬픈 겨울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오지 않은 봄을 가불하여 환상으로 도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겨울산의 겨울이 참 길구나 싶었다. 

작년 12월 17일에 이사 왔는데, 길가에 개나리가 피었는데 산은 아직도 겨울산이다.

겨울이 참 길구나! 그래도 산이 있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있으니 춥지 않다. 슬프지도 않다.


남편은 "산 색이 달라졌어. 안 보여? 얘들아, 안 보이니? 보라색으로 바뀐 거야."

혼자 UFO를 본 것처럼 흥분하고 그러는데, 애들은 물론이고 솔직히 나도 감흥이 없다.

도대체 뭐가 달라져다고? 


봄은 왔지만 바람은 찬 월요일에 앞산에 올랐다.

따뜻하게 입고 노부부처럼 말 없이 1열종대로 걸어 산에 올랐다.

손톱만 한 연두색 초가 미약하게 봄을 밝힌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다음 주가 되면 일제히 봉우리를 터트리겠네!

진달래도 분홍빛 초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칙칙하다.  


종필 님의 마음을 뺏은 보라빛의 실체 확인!

고개들어 본 높은 가지에도 아기 같은 새순이 가득하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대놓고 초록은 민망하다며 겨울산 품은 갈색으로.


찬바람 쌩쌩 봄의 산을 올랐다 내려간다.

이쯤엔 시나 노래가 하나 튀어나와야 제격이지.


산 밑으로 마을로 내려가자 

내 사람들이 또 거기에 있다.

맨발로 맨발로 내려가자 

내 그리스도가 또 거기에 있다.  


홍순관 <산 밑으로>


내려오는 길목엔 쓰러져 누운 큰 나무 한 그루. 에고, 어쩌다!

그 옆엔 쓰러지는 나무에 치어 덩달아 화를 입은 작은 나무 한 그루. 에고, 너는 또 무슨 죄냐!


산 밑으로 마을로 내려가자 

내 사람들이 또 거기에 있다.

맨발로 맨발로 내려가자 

내 그리스도가 또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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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설교 준비 부담으로 가장 무거운 발걸음, 토요일 출근의) JP 아빠 

또는 남편이 부드럽게 명했다.
장보러 나간다고 했지? 나 김밥 하나 사다 줘.


아내와 딸, 두 여자의 장보기는 늘 그렇듯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늦게 출발, 

도로는 늘 예상보다 밀리고, 한두 번 네비를 잘못 보고 차를 돌리고 돌리고 한다.

두 여자에겐 일상이거니와, 점심을 기다리는 남자에겐 혹독한 시간.

(일까? 아니면 익숙해진, 각오 된 일상일까)


엄마, 시간이 이러면 아빠 점심이 너무 늦어지는 거 아냐? 배 고플텐데.

그러네! 아빠한테 전화 해.

뭐라고? 그냥 아빠가 사서 먹으라고?

아니. 우리가 늦게 갈 거니까 배 고프지 말라고.

일단 걸어. 엄마가 말 할게.


여보, 설교 준비 잘 돼? 우리가 장 보고 당신 점심 갖고 가면 늦을 거 같거든,

그러니까 당신 배 고프지 말라고. 배 고프면 안 돼. 알았지?

어, 알았어.

그래.

어.

응.

그래.

어.

응.

갔다 올게.

응.

끊어.


용건보다 긴 어, 응, 음, 그래....... 를 듣다 일그러진 채윤이 얼굴.

아니 썩어버린 딸의 표정.


김채윤, 부럽지.

어.

모가 부러워?

맘대로 조종 할 수 있는 남자가 있는 게 부러워,

배 고프지 말라면 배 안 고프고, 화를 내도 이쁘다 하고, 

넘넘 부러워.

야, 그런데 이런 남자는 세상에 없어. 너 아빠 같은 남자 찾지 마.

싫어!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아빠 같은 남자 찾아서 결혼 할 거야,

그게 내 복수야, 그런 남자 찾아서 엄마빠 앞에서 더 꽁냥꽁냥 할 거야, 

나는 교회 안 다니는 사람 이런 사람 만나는 게 복수가 아니야, 

반드시 아빠 같은 남자 만나서 엄마 약 올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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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 저녁에 뭐 먹어?"

이런 불온한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여보, 저녁은 치킨 시켜 먹을까?" 라고 한다. 

이 어정쩡한 주체적 태도를 어여삐 여겨 내가 말한다.

"아냐, 저번에 맛있다던 통삼겹살 구이 할 건데."

"힘들잖아. 그냥 뭐 시켜먹자." 

훈훈도 하여라.


이사 와서 한 달 내내 오가며 기웃거렸던 

집 들어오는 길목의 '누룽지 백숙'을 먹기로 한다.

끌차를 끌고 내려가 장을 보고 주문한 백숙을 찾아온다.

귀때기가 떨어질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다.

엑스레이 같은 나뭇가지에 걸린 달이 예뻐서 사진 찍으려 했더니

달은 안 잡히고 그의 형광색 잠바에 촛점이 꽂힌다.  


채윤이가 좋아하는 게맛살, 채윤이가 좋아하는 팽이버섯을 섞어 전을 부쳤다.

그리하여 이 전의 이름은 '채윤전'이니!

전을 부치는데 채윤이 동생 현승이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주방으로 온다.

새로 알게 된 김광석 노래라며, 들어보라며.

김광석 노래에 맞춰 전을 굽자니 

고소한 기름냄새와 함께 달달한 희열 같은 것이 코 끝을 간지른다.

일주일의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없는 주일 저녁,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일상의 무게로 어깨는 쳐지고 고개는 떨궈지지만

알 수 없는 좋은 느낌이 텅 빈 마음을 채운다.


포장해 온 백숙과 채윤전을 배부르게 먹고 치우느라 분주한데

이번엔 흥얼흥얼 부르는 현승이의 노래가 귀를 간지른다.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이다.

이런 저런 일상의 짐이 무겁지만 

살아야 할 이유 역시 이 일상이다.


양손에 무거운 짐 다 들고 저만치 걸어가는 형광색 잠바가 있는 세상.

덕분에 내 손은 비어 있어 달을 찍고, 하늘을 찍고,

달을 빙자하여 형광 잠바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찍었다.  

e편한세상! 이 편한 세상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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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8. 24. 신실누나가 줌


97. 9. 10 다 읽음

불안한 세상. 하나님의 허위와 견고한 평화


책 정리하다 표지 안쪽의 메모 들춰보는 재미가 좋다.

97년 8월에 신실 누나가 준 책을 다 읽은 종필이 저런 메모를 남겼다.

신실 누나는 종로서적에 간다는 종필에게 마침 사야할 책이 있다며 같은 책 두 권을 사다 달라 부탁했다.

두 권을 사다주니 한 권을 종필에게 줬단다.

이건 딱 봐도 작업이구만.


성공한 작업이라 더는 심장 쿵쿵거릴 일 없지만,

20년 전 20대의 신실과 종필에게 불안했던 그 세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 시절에도 하나님의 허위를 감지했다니 맹랑한 20대였구나 싶고,

견고한 평화라니 믿어지질 않는다.


괜히 작업을 건 것이 아닐 것이다.

불안한 세대에 불안 해소의 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고

차라리 불안의 바람에 흔들리고 방황하는 정직함에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흔들리는 세대의 연인이 되어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었으니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엇 하나 번듯하게 세운 것이 없지만

그때 책 두 권을 부탁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작업 걸기를 잘했다.

죽을 때까지 흔들리겠으나 

흔드는 바람이 거셀수록 조금씩 조금씩 평화의 뿌리는 견고해지지 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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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째 이사인지 헤아리다 포기했다. 아무튼 오늘, 지금도 이사 중. 내 짐이 마구 풀어 헤쳐지는데 정작 내가 할 일은 없다. 조금 민망하고 마음만 분주할 뿐. 분주한데 심심한 순간이다.


그 어느 때보다 과감하게 책을 정리했다. 30년 보물처럼 끌어안고 있던 여성학 책을 정리했다. 역시나 30여 년 된 ‘기독교세계관’에도 단호하려 했는데. 나란히 꽂힌 같은 책 두 권들에 눈길이 머물어 결국 처분하지 못했다. 남편과 내가 서로를 모르고 살던 시절에도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는 증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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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는 

7시에 켰던 클래식FM 라디오를 끄고,

설거지와 정리 마친 깔끔한 거실에 커피 한 잔 내려 앉아서

메시지 성경을 읽고, 기도 시간을 갖는

묵상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었었었었었다.


아침 9시는 

클래식FM의 새 진행자, 오래 전 세음 진행할 때보다 말이 훨씬 많아진 김미숙의 목소리 반,

식구들 목소리 반,

시끌시끌한 거실과 한 통속인 주방에서 반찬 만들기 딱 좋은 시간이다.


어쩌다 점심 도시락까지 싸들고 나가게 된 1인 사원인 직장에 가는 종필, 입시생 채윤이.

돌고래상가에서 사 온 김치가 있고, 비비고 새우 볶음밥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으니.

한참 키가 크고 있는 현승이도 있으니. 

날날이 주부라도 반찬을 안 만들 수 없다.

그나마 가장 시원한 시간, 어차피 조용히 보낼 수도 없는 아침 9시에 반찬을 만든다.


미역냉국에 넣다 깨가 쏟아져버렸다.

깨가 쏟아져서 엄청 들어갔다.


82년생 김지영을 온 가족이 읽은 후, 

식구들이 나름대로 너도 나도 가사에 참여한다.

현승이도 밥을 하고 채윤이는 늘 설거지를 하고, 남편은 그 모든 걸 하고 허드렛일 도맡는다.

다들 그렇게 알아서 열심히 하는데도 땀 뻘뻘 흘리며 반찬 몇 가지 하다보면 짜증 지수 점점 상승.


도시락 싸들고 다들 나간 후에 마음이 고요해지면

미안함이 밀려온다.

점심 잘 먹었다는 남편 톡에 내가 얼마나 힘든지 토로하다 고백한다.

"어쩌구저쩌구 블라블라 나불나불........ 그래서 예민하게 굴었던 거야.

어차피 하는 것 이러고 짜증 내고 싶지 않은데."

돌아온 답신.


"그러면 수고한 줄 몰라. 고마워 하지도 않아. 정신실은 완벽해."


그 짜증을 수고로 번역하여 다 받아주시니 이 사람, 참! 참으로 참한 사람, 착한 사람.

착한 남편과 주고 받는 메시지에 깨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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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때문에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닌 밤이다.

환경의 영향을 직방으로 받아 감정이고 행동이고 널을 뛰는 나는 안방-거실, 침대-소파를 오가는 밤이다.

잠결에 에어컨을 틀었다 껐다, 스마트폰을 들어 뉴스를 봤다 말았다 하는 밤이다.


새벽이 되어야 더운 공기도 진정이 되고 나도 진정이 되는 것 같다.

5시쯤 되면 제대로 잠을 자기 시작한다.

침대에 안착하여 제대로 잠이 들기 시작하는데 '끙끙' 본능적으로 안 듣고 싶은 소리가 들린다.


눈을 반만 뜨고 보니 죽은 듯 자던 남편이 일어나 엎드려 끙끙거린다.

여보, 아파?

아니야. 가슴이.....


'아니야'까지만 접수하고 잤다.

잠이 들자 꿈이 널을 뛰었다.

잠들기 직전에 회피한 것을 꿈이 정직하게 이어 받았다.

남편이 죽을까 봐 두렵다.


신혼 초, 내가 정말 김종필과 결혼 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할 때 매일 걱정하고 매일 확인했다.

김종필, 죽으면 안 돼! 죽어도 죽으면 안 돼!


가장 사랑하던 남자를 죽음으로 잃어버린 여자의 병 짓이다.

가장 행복하던 순간에 행복을 빼앗긴 자.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중학교 1학년 12월.

그 12월의 1일, 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행복이 극에 달했던 신혼 초, 그 트라우마가 되살아 와 매일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죽음'은 입에 담지도 말라고 김종필이 화를 냈다.

그럴 때마다 '아, 당신은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모르는구나,

입에 담지 않는다고 피해지지 않아. 당신은 죽음을 모르는구나.'

좌절했다.


2011년. 

아버님과 한솔이를 한 달 사이에 잃은 남편은 비로소 죽음을 알게 된 듯 했다.

2012년 봄, '죽음을 짊어진 삶'이란 글을 쓴 남편은 나보다 한 걸음 앞서게 되었고 든든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 써야 할 원고가 두 개.

집중하고 싶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자 얼른 정리하고 늘 드리는 '향심기도'부터 시작했다.


향심, Centering prayer인데.......

한 곳으로 향하지 않는 마음으로 침묵 가운데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다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말이 방언처럼 터졌다.

 

주님, 노회찬 의원 돌려주세요. 이럴 수는 없어요!

그리고 바로, 

'주님 채윤이 아빠 죽으면 안 돼요.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지만 저는 견딜 수 있지만

채윤이와 현승이 좀 봐 주세요. 저처럼 아버지 잃은 상실감에 청소년기 보내지 않게 해주세요'


향심기도 드리다 중간에 포기한 것 처음.

그러다 밑도 끝도 없는 기도가 터져나온 것도 처음.

이게 내 본 마음인 것은 자명한 일.


한참 기도하다 눈물 끝에 웃음이 좀 났다.

가장 행복한 때에 사랑을 잃는 법이니, 다소 불행한 지금 사랑을 잃을 리 없을 거야. 

이럴 때가 아니고 원고를  쓸 때지!


원고, 채윤이 입시, 선교 여행 가 있는 현승이, 설교 준비하는 종필,

마음에 살아 있는 여러 벗들을 떠올리며 기도하다 눈을 떴다.


-----------


김종필, 죽어도 죽지마. 

죽으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라고 했더니,

알았어. 당신한테 죽으면 두 번째 사망이야? 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에 빼앗기는 일은,

내가 죽은 자처럼 사는 것과 같다.

두 번째 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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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식사 한 번 하시자고 조르고 졸랐다.

몇 달 졸라 허락하시더니 결국 저녁식사 후 잠깐 들러 차 한 잔이다.

시 또는 기도문 한 편을 써오셔서 낭독하셨다.

딱 한 시간 앉아 계시다 일어서시며 폐를 많이 끼쳤다 하셨다.




현승이 왔구나,

이름을 불러주시고 흰 편지봉투를 쥐어 주셨다.




사랑하는 채윤아,

교회에선 늘 무섭게만 보이는 장로님께서 

제 이름을 기억하고 다정하게 부르며 쓰신 편지에 감동 크게 먹은 채윤이다.



생은 어쩌면 이렇듯 기대와 다른, 예상을 빗나가는 만남과 위로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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