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이 하버드대 교수직을 버리고 캐나다의 장애인 공동체 '새벽'으로 가기 직전에 쓴 일기가 있습니다.
<새벽으로 가는 길> 올 초에 이 책을 손에 잡은 이후 굵직굵직한 몇 번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었습니다. 
휘리릭 읽고 만 것이 아니라 잠들기 전에 아껴서 조금씩 읽었기 때문에 눈으로 읽지 않고 마음으로 읽었으며
헨리 나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책 한 권을 요약하는 듯한 일기 한 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베드로의 인생 말기에 대한 예언을 인용하면서 '넘겨지는 것'에 대한 묵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사역의 완성은 수난 즉, 십자가의 고난으로 이루어집니다.
헨리나웬은 말하기를 당신 뜻대로 다니시고, 설교하시고, 병든자와 약한 자들을 먹이고 치유하시던 예수님이 제자 가룟유다에 의해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던 그 순간 사명의 완수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인자는 자신에 관해서 기록된 대로 떠나갑니다. 그러나, 불행하구나,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마 26:24)

넘겨지신 후에는 그 분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당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적들은 그 분을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우고, 침을 뱉고, 조롱하고, 발가 벗기고, 벌거숭이 상태로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에게도 이런 예언을 하셨습니다.
'당신이 젊었을 때에는 당신 스스로 (허리띠를)띠고 당신이 원하는 데로 걸어다녔습니다. 그러나 늙으면 당신은 두 손을 내밀 것이요, 그러면 다른 이가 당신 (허리띠를) 매어주고서는 당신이 원하지 않는 데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요 21:18)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당신의 행동이 수난으로 가는 과정이 당신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참된 성숙은 나로부터 행위를 비롯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팔을 펴고, 넘기워지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일고 난 후 '주관하는 자' 가 되지 않기로 기도했습니다. 내 삶에서도, 남편과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도, 내게 주어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주관하지 않고 그들이 그들되게 하며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 기도가 바로 삶에 응해지기라도 하듯 올 한 해 있었던 중요한 갈림길에서 나로부터 비롯된 선택이 없었습니다. 순간순간 주관하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치며 그걸 포기할 때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이제 저는 압니다. 더 큰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나를 남에게 넘기우는 것, 내 삶의 주도권이 남에게 넘어가고 궁극적으로 그 분에게 넘어가는 것이 당장은 내 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자유라는 것을 마음으로 배웠습니다. 아무 슬픈 계산 없이 진정으로 나를 넘겨줄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요즘은 순간순간 두 아이에게 나의 선택권과 시간을 넘겨주는 훈련을 합니다. 싸울 일이 없고, 혼낼 일이 없고, 소리지를 일이 없어 행복합니다. 바라건데 이 마음이 날이 갈수록 흐려지지 않기를요. 날이 갈수록 더 잘 내어줄 수 있게 되기를요.

* 사진은 최병성 목사님의 이슬 사진입니다.
  
'헨리 나우웬'으로 이미지 색을 하다가 최근 광우병 사태 때 망발에 가까운 설교로 속을 뒤집어 놓었단 '오 oo' 목사님, 그 분의 설교가 도통 헨리 나우웬이 말하고 살았던 방향과 반대로 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전 oo' 목사님이 둘 다 최근에 쓴 칼럼에 헨리 나우웬을 인용했더군요. 갑자기 포스팅 할 마음이 싹 사라졌으나 마음을 다스려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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