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됨.
불혹의 고개를 넘어서며 오늘의 내가 있게 한 베스트를 꼽아보자면 단연코 글쓰기이다.
수년 전 싸이 미니홈피를 통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난 번 이사를 하다보니 글쓰기의 시작은 중학교 1학년 겨울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직후로 거슬로 올라가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열 세 살 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지금까지 쓰고 있으니 28년을 이어온 글쓰기 인생이다. 으하하.... 더 신기한 것은 그 때부터의 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일기는 말할 것도 없이 유치하기 그지없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반공 선언문' 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원고지 앞에 놓고 아버지가 불러주시던 대로 받아 적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유비무환' 이라는 말을 설명하는 글을 썼던 기억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써 준 글로 처음으로 상을 받아 놓고는 '나는 글을 잘 쓰는 아이'라는 자아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엄마보다는 아버지를 더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변의 사람들이 변하는 걸 보고서 어디다 풀어낼 데 없는 사춘기 시절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작한 것이 일기쓰기였다. 초기의 일기는 아버지를 뺏어간 하나님에 대한 원망, 사람들에 대한 원망... 이런 것들이었다.


시골에서 서울로의 전학이라는 변화를 겪으면서 외로움과 열등감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정의 배설구 내지는 말 없이 들어줄 친구같은 것이 필요했는데 역시 일기쓰기였다.
사진을 찍으면서 읽어보니 공부를 하려면 일단 일기를 써야했다. 일기를 쓰지 않는 동안은 공부도 하지 않았다고 여러 곳에 적혀 있었다.


일기와 더불어 편지는 또 다른 그 당시 내 인생의 주력사업이었다. 전학을 와서는 시골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주고 받기 시작한 편지이다. 세어볼 엄두도 내보지 못한 양의 편지가 일기장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 이 편지함에는 두 분의 보석같은 선생님이 계신다. 두 분 다 국어선생님이셨는데 사춘기 제자에게 오랜 기간 동안 따뜻하게, 성실하게 편지로 소통해주신 분들이다.


중 3 때 국어선생님은 고등학생 시절 내내 편지를 주고 받고 가끔은 만나곤 했던 분이다. 내가 대학진학 한 이후 전교조 초기에 일찌기 해직되셨다. 내가 믿는 예수님이 인간 예수님으로 어떤 분이셨는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등을 늘 장문의 편지로 설명해 주시곤 하였다. 가끔 만나면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나 김남주의 시집 같은 것들을 사주시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고딩을 데리고 의식화를 하셨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편지 몇 통을 읽어보다가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게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계셨구나.


대학시절을 비롯한 20대에는 다이어리에 짧은 일기들을 썼다. 그 시절 세계관이 흔들리고, 변하고 다시 형성됐던 시기인데 긴 글들이 없어서 아쉽다. 매일 매일의 짧은 단상들만 네 개의 학생수첩에 빼곡히 적혀있다.


글쓰기가 성장의 도구가 되고, 치유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 필수조건은 '정직함'이라고 한다면 '정직함' 자체를 목표로 인식하고 새로운 일기이다. 스물 일곱 되던 해에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고 과외를 하면서 인생의 모퉁이를 돌고 있을 때, 내가 싱글이라는 것이 커다란 두려움으로 밀려왔다. 이 나이에 결혼도 못하고, 직장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고.... 눈물로 한 달을 지새다가 시작한 미래의 배우자에게 쓰는 편지형식의 일기이다. 당시 대학원 여성학과 진학을 위해서 공부하고 있던 중이라 남성과 여성에 관한 얘기, 내가 그리는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 읽은 책 얘기를 쓰면서 싱글의 외로움을 풀어나갔다. 아주 정직하게 쓰기로 맘 먹고, 늘 가장 정직한 느낌을 그대로 옮기려고 했다. 대학노트 한 권을 거의 다 채웠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연애하고도 한참 후에 결혼이 확정됭었을 때 이걸 보여주었다. 그 때 남편이 했던 첫 마디 잊을 수가 없다. '왜 이리 길어?' 헉!  이 노트의 맨 마지막 장은 남편의 글(첫 번째 사진)로 마무리 되어있다. 그 긴 걸 다 읽고나서 써 준 것이다.

20대 후반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 일기에는 남편과 헤어진 시절의 얘기, 신혼 초에 좌충우돌 하던 얘기들이 있고 최근의 의식성찰 얘기들로 이어진다.

<하나님을 만나는 글쓰기> 라는 책이 있는데 내 글쓰기 여정은 딱 '하나님을 만나는 여정'이었다. 정직하게, 아주 정직하게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결국 아주 깊은 곳에서 만나게 되는 분은 그 분이었다. 그리고 머리로 알던 그 분을 마음으로 알아가게 되는 과정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과정은 진행중이다.

언제부턴가 혼자 은밀하게 하던 글쓰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소통을 의식하고 쓰는 글은 감정적이기만 하던 글에서 균형을 생각하며 쓰는 글로 조금씩 옷을 바꿔 입었다. 글쓰기를 통해서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던 것이, 글을 쓰기 위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흥미로운 변화도 생겼다.

나와 글쓰기, 나와 하나님과 글쓰기...
어설픈 사랑고백처럼 표현을 할수록 이 아름다움의 실체와 멀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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