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사진은 휴가였던 주일에 양화진에 있는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찍은 것이다.
오후에 다른 교회 예배를 드리기 위해 여유가 없어서 부랴부랴 나왔다. 아쉬움에 카메라를 꺼내드니 카메라 렌즈가 꽂히는 씬은 성당의 십자가와 하늘, 그리고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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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따라 살고 싶은 그 분의 삶은 내게 약속해주셨다. 새의 자유로움 같은 날개를 주겠노라고. 그 분의 진리를 가슴으로 알기만 한다면 새의 날개처럼 자유로와질 것이라고.
아주 가끔 나는 느낀다. 그 분이 가르치신 진리 안에서 새의 날개처럼 자유로운 내 마음을. 그 어떤 무거움에도 땅으로 추락하진 않을 것 같은 가벼움이고,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평안이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의 내 삶은 새의 날개 같은 천국의 자유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먹고, 자고, 똥 싸는 일을 살며 그렇게 사는 자들의 의무이자 특권인 걱정 근심 주식회사를 차려놓고 허우적대는 것이 열심을 다해 사는 생활인의 자세인 것처럼 산다.

가끔은 걱정 근심 주식회사가 파산을 맞는 일이 있다. 파산을 하면서 모든 빚을 내 맘에 떠 넘기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것들이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며 올라온다. 그런 날을 난 '영혼의 어두움 밤' 이라고 부르는 법을 배웠다. 정호승 시인의 시어로는 '그늘'로 부르는 것을 빌려왔다. 마음 밑 바닥에 있는 많은 욕구들이 떠올라와 의식의 수면 위에서 '니 속에 이런 쓰레기가 있었던 거 몰랐지?' 하는 듯 나를 조롱한다.

이제 나는 나의 그늘이 점점 커져서 나를 덮치는 날에 그 그늘을 사랑하고 껴안는 법을 배운다. 잠시 분노와 좌절의 감정으로 헷갈리지만 그게 네 탓도 아니고 그의 탓도 아니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건 내 무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고, 결국 그 깊은 곳에서 올라온, 처음엔 쓰레기처럼 보였던 부유물들이 나를 더 잘 알게 하는 것들임을 깨닫는다. 결국 나를 덮친 그늘은 다시의 내게 새의 날개를 달아줄 날을 알리는 햇살의 다른 면임을 안다.

그러기에, 나는 햇살 비치는 나의 하루를 사랑하듯 그늘진 나의 하루를 마음으로 껴안는다. 햇살 비치는 날보다 훨씬 더 아픈 일이지만 그늘 속 숨어 있는 가시들이 따겁고 아프지만 기꺼이 있는 그대로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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