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실기시험을 치루느라 기진녹진(기진맥진하여 녹초가 된 상태)한 채윤이.

다행히 실기시험 기간이라 하루 쉬게 되었습니다.

아침 먹고 두 남자들 나간 후에 설거지 마치고 조용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햇살이 만든 한 평짜리 방에 채윤이가 앉아 있습니다.

뭘 하나? 봤더니 화분들 아래 놓인 실바니안 패밀리를 꺼내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한때, 채윤이가 놀짱이었던 그 시절의 무수한 이야기를 간직한 토끼 패밀리입니다.

엄마가 주시하는 걸 알고는 깜짝 놀라 "노는 거 아냐. 정리하는 거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새 한 뼘 햇살로 만든 방도 사라지고

채윤이도 사라졌습니다.

실기시험 전날에 채윤이는 학교 수업 마치고 오후 3시에 연습실에 들어갔습니다.

밤 10시가 되어 태우러 갔더니 조수석에 쓰러지듯 몸을 던지며 "배고프다" 합니다.

저녁 안 먹었냐 물으니 시간이 없어서 못 먹었답니다.

3시부터 10시까지 무려 7시간 밥도 안 먹고 연습했다는 얘깁니다.

아, 채윤이 아빠 딸이었군요.

7시간 동안 밥을 잊고 뭔가에 열중하는 것? 글쎄요. 엄마로서는 상상이 안 됩니다.

그렇게 하고 싶던 신학공부 하던 시절, 채윤이 아빠는

8시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도서관에서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드랬었드랬지요.

채윤이에게도 아빠 피가 흐르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연습을 했으면 실기시험을 엄청 잘 봐서 피아노를 들었다 놨다 했어야 할텐데

베토벤을 칠 때 왼손을 여러 번 틀렸다며 속상해 합니다.

성적도 그닥 잘 나오진 않을 것입니다.

실바니안 패밀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그 다양하고, 당차고, 끝간 데 없는 상상력으로 다채롭던 표정을요.

자기들을 쥐락펴락 하던 시절 채윤이의 표정을요.

그때 그 채윤이, 잃어버린 채윤이 표정을 찾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강의 후 포럼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연호 대표 바로 옆에 패널로 앉아 있었다는 걸 자랑하려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아, 저 진짜 채윤이 진로 때문에 심각하다구요.

잃어버린 채윤이 표정을 찾아야 합니다!

네네, 물론 보시다시피 자리배치 끝내줬습니다.

무대 전면이 궁금하시다면 뭐 보여드리죠.

 

 

 

 

청중으로 와 있던 남편에게 사진 좀 제대로 찍어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건만.

엉망으로 찍어놨더군요.다행히 또 다른 지인이 사심없이 찍은 사진이 있었습니다.

세계 행복지수 1위 국가인 덴마크를 1년 6개월 취재했던 오연호 대표는 여러 번 말했습니다.

'사진 보세요. 애들이 표정이 좋아요'

'표정이 좋아요'

좋은 표정이 보이는 이유가 있더군요.

쾌활 명랑 엉뚱 당당하던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서 말이 없어지고,

표정이 없어지고,

하는 말이라고는 '아무거나요'로 변하는 것을 아프게 지켜봤던 거지요.

그분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채윤이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처럼 빛나던 우리 아이들의 표정이 어쩌다 그렇게 썩었을까요?

잃어버린 그 표정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찾을 수 있을런진 모르겠지만

뭔가 꿈틀거려야겠다는 뜻은 분명해졌습니다.

채윤이 표정이 이대로 계속 썩어가도록 두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뭐든 해야겠지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거 사진 자랑 아닙니다.

저 대한민국 청소년의 엄마로서 완전 진지합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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