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수건 없어~어"


워우워우워, 빨래 돌려야 하는데 비가 온다. 실내에서 빨래 건조하는 것이 갈수록 견딜 수가 없다. 특히 수건을 실내에서 말려 쓰는 기분은 (가족들이 뭐라든) 내가 용서가 안 된다. 맑은 날에 옥상에 말리는 것을 노려야 하고, 기본적으로 거실에 빨래를 널어야 하니 손님 오는 날 또한 피해서 빨래를 돌려야 한다. 그러다보니 빨래가 밀리고 세탁기 돌리는 날이 자꾸 뒤로 밀리곤 한다. 아무튼 오늘은 비가 오고 하늘이 흐리다. 오전에 일보러 나가는데 저쪽 하늘이 맑게 개이기 시작.  아, 빨래 돌려놓고 나올 걸. 날이 쨍 개이면 오후에 한나절 말려도 될텐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랴부랴 수건만 먼져 돌려 옥상에 널었다. 비 오고 난 후의 공기며 햇볕은 한층 더 말갛다. 저 선명한 빨래 그림자만 봐도 마음이 뽀송뽀송하다. 살 것 같다.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른쪽에 비까번쩍한 강변의 아파트를 끼고 달리는 강북강변 도로 위였다.)

"저런 집에 누가 살까? 여보, 나는 이 땅에 살면서 집 걱정 한 번 안 해 본 사람과 내가 천국 가서 같은 대우 받고 같은 집에 산다는 건 좀 불공평한 것 같아. 2 년마다 오르는 전세금 걱정 한 번 안 해본 사람, 품위 유지를 위한 아파트 평수 늘리기가 아니라 거실에 해 들어오는 집에 살고 싶은 소박한 소망 한 번 못 이룬 사람들 말이야. 집안에 있으면서 낮인지 밤인지, 지금 날씨가 어떤지 알 수 있는 정도, 낮에도 불을 안 켜고 사는 집이 최대의 소망인 그런 사람들은 적어도 천국의 집에선 특별대우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감?"


첫 신혼집은 부모님이 세 놓으시는 오래된 집이었다. 한 10개월 살고는 남편 직장, 내 직장 핑계로 사당동의 작은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비로소 우리 둘만의 세상이 된 것 같았고 그 작은 집이 정말 좋았다. 문제는 바로 채윤이를 갖게 되고, 어마무시한 입덧에 돌입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3, 4월이라 황사가 심했고 내 속은 더더욱 황사로 뿌연 나날이었다. 먹었다 하면 바로 먹은 걸 확인해 보여주는 나날. 이 속이 뻥 뚫리는 순간이 있을까? 저 황사가 걷히면? 하던 시절이었다. 창문을 딱 열면 옆집 벽이 떡허니 막고 있었다. 입덧이 아니라도 '나무'를 참 좋아하는데. 저녁이면 옆에 있는 아파트 단지의 큰 나무 밑에 앉아 속을 달래고 들어오곤 했다. 그땐 입덧 탓만 했는데 지나고 나니 집 영향도 컸구나 싶다. 아기들 키우는 젊은 엄마가 볕 안 드는 집에 사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런 경우 대부분 우울감에 많이 시달리는데 그것조차 자기 탓으로 돌리며 죄책감까지 지고 이중으로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아니야, 집에 햇볕이 안 들어서 그래.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달리는 강변북로에서 남편이 말했다.

"천국은 지금 여기와 비교할 수 없는 곳이라서 그 차이가 상대적으로 아주 작게 느껴질 거야. 굳이 그 차이를 다시 떠올지 않을 만큼의 좋음이 있을 거야"

마음이 조금 뜨거워졌고 민망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주일학교 교사할 때 아이들과 부르며 참 좋아했던 찬양이 생각났다.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 있네' 언젠가 그 맨 처음엔 공평했겠으나 이제는 맘몬으로 인해 불공평해진 일조권. 햇볕을 쬐고 누릴 권리조차 불평등한 부조리한 이곳과 다른 차원의 세상, 천국이라니. 그런 천국을 믿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쨌든 오늘 같은 하늘, 오늘 같은 가을볕을 누릴 권리를 마음껏 누려야 하리. 얼른 빨래를 돌려 빌라 옥상으로 뛰어 올라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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