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아침이다.
삼십 여명의 친척들이 모이고,
7남매 맏이신 수줍은 아버님께서 안 수줍은 척 더욱 무뚝뚝한 말투로
'다같이 묵도하심으로 추석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신다.
가끔 헷갈리셔서 '묵도'가 '묵념'이 되기도 한다.
막내 아들이 작성한 기도와 설교를 줄줄줄 읽으시고,
찬송은 막내 아들 가족과 어머니가 대표로 부르는 분위기로 부르다
어색한 예배가 끝난다.
전날부터 준비한 추석음식이 차려지고 남자들이 식사를 하고,
그 상을 보완하여 어머니, 작은 어머니, 사촌 아가씨들, 며느리들이 식사한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한다.
추석 아침이다.
아버님도, 그 많던 친척들도 사라지고
어머니와 두 아들의 가족, 가끔은 딸이 함께 모인다.
막내 아들인 김 목사가 조카 아이에게 어색한 농담을 던지며 아이스를 브레이킹한다.
설교 같지 않은, 추석 설교 같지 않은 어떤 이야기를 짧게 전해준다.
찬송은 어머니와 막내 며느리가 대표로 부르는 분위기이다.
어색한 예배가 끝난다.
며느리들이 준비해 온 음식과 어머니표 기본 메뉴로 상을 차린다.
먹는둥 마는둥 다함께 아침을 먹는다.
예전의 설거지에 비하면 라면 먹은 냄비 닦는 기분이라는 식으로
후다닥 마친다.
추석 아침이다.
계란과 빵, 사과 등으로 네 식구의 평소같은 아침이다.
김 목사인 아빠가 한결 여유있게 아재 개그를 던진다.
영화표를 예매한다. 영화시간까지 각자 보내기로 한다.
현승이는 추석 아침을 달리러 자전거를 끌고 강으로 나간다.
채윤이는 내일 레슨이라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김 목사인 남편은 나의 서재인 거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나는 기꺼이 내어주고 식탁에 앉는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을 읽는다.
추석 아침의 풍경은 이렇게 달라진다.
명절을 두통과 함께 보내시던 어머니의 추석은 허브 마사지와 함께 하는 휴양.
내게는 매번 새롭게 복잡하고 어려웠던 추석이었다.
그 중 한 번은 치명적인 모멸감의 추억을 남겼기에 추석의 바람이 볼을 스치기만해도
잠시 고통이 밀려온다.
여느 날처럼 지내는 오늘같은 추석이라니. 격세지감이다.
좋은 것도 힘든 것도 마치 영원할 것처럼 설레발칠 일이 아니다.
열아홉에 시집 오셔서 수십 년 '장손 며느리 여자'로 살아오신 어머니.
서른 하나에 시집 와서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 여자'로 살아온 나.
여자 사람으로 사느라 누르고 억압하고 외면했던 또 다른 나를 살려낼 일이다.
창조적, 능동적, 직관적인 야성을 찾고 살아낼 일이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의 추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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