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손에 넣은 중2의 시를 공개한다. 특히 두 번째 시에는 깊은 빡침과 함께 한 사람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이 절절하게 담겨 있는데, 그 대상은 시인의 엄마이자 첫 번째 독자이며, 시인의 시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자처하는 바로 '나'이다. 일기 쓰 듯 감정을 토해낸 시가 엄마 눈에 띄었다는 것을 알고 시인은 아노미 상태가 되었다. 없는 데서는 누구 욕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마음으로 썼는데 당사자에게 들켰으니, 그것도 (가끔은)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는 엄마와의 필화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왜 마음대로 봤냐!'며 [웃고 있는 가면]을 시노트에서 부~욱 찢어내고 말았다. 엄마로서 동시에 시적 타깃으로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정신줄을 가다듬었다.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허벅지를 찌르며 참고 사과하고 대화하여 화해에 이르렀다. 그리고 어느덧 여름방학(두 편의 시는 각각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즌에 쓰여진 것이다). 느슨해진 틈을 공략하여 작품의 블로그 게재 허락을 받아냈다. (어떻게든 아들 시라도 팔아서 인기를 얻어보려는 현시욕의 승리!) 쉽게 볼 수 없는 질풍노도의 중심에서 쓰인 시 두 편을 공개한다.
[그렇게 된다는 건]
철이 든다는 건 가방을 진다는 것이다.
아래는 소박하지만 꿋꿋한 드넓은
초원이 있지만 인간은 탁한 하늘의 끝을
보기 위해 더 무거운 짐을 메고 산을 오른다.
나는 산을 오르고 있다.
나는 나를 깎으며 한 발 한 발 내딛던 그것을
시간이 갈수록 더 무거운 가방을 드려 올라갔던
그 불안함의 안대를 벗고 초원을 향해
뛰어 내려갈 것이다.
그 산을 내려가며 난 내 사람들에게
속삭여 줄 것이다.
어린 시인, 꼬마 철학자에서 본격 청소년 시인 돌입을 알리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마포 한강변을 추억하고 그린다. 자전거를 달리고, 비밀 기지를 만들고, 거기 숨어 들어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염탐하던 어린 시절을 그린다. 아무 걱정 없이 놀기만 했던 시절, '엄마, 나 정말 학원 안 보낼거야? 중학교 가기 전에 수학 같은 걸 배우고 가는 거래? 나 학원 좀 보내고 그래' 했던 천진난만 했던 시절.
천당 밑 분당의 교육열 속에 내던져진 시인은 난생 처음 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앞에서 철이 들어버린다. 소박하지만 꿋꿋했던 어린 시절의 초원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덮치고 있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한 시간 정도 엄마를 앉혀 놓고 자신이 살고 싶은, 살고 싶지 않은 세상에 대해 토로한 후에 써내려간 시이다. 시를 내밀며 시인은 눈물을 글썽였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며.......
[웃고 있는 가면]
결국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떠들어대는 것이다.
결국 아닌 척하고 싶어서
베베 꼬아서 말하는 것이다.
다르지 않다는 걸, 결국 다를게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난 더 비참해지고
그는 더 뻔뻔스러워진다.
[철이 든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시인은 1학기 중간고사를 쳤다. 나름대로 어떤 과목에선 좋은 성적을 냈고 어떤 과목은 많이 부진했다. 어, 하니까 되네! 하는 기쁨과 역시 안 되는구나! 두 가지 감정을 다 맛 본 듯한 시인은 기말고사에는 더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기말고사가 다가오자 시인은 태도를 바꿨다.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로 '왜, 도대체 공부를 해야 하냐?' 새롭고도 뜬금 없는 분노를 터뜨렸다. 시험기간이 다가와도, 막상 시험기간에도 그다지 공부하지 않았다. 공부를 종용하면 '내가 지방이 1그램에 몇 칼로리인지, 이런 걸 왜 외워야 하냐?며 의미를 따져 묻는다. 10시만 지나면 내일 시험공부 다 끝났다며 잠자리에 들었다. 마지막 날 시험을 앞두고 엄마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우려는 반발을 낳았고 반발을 설화(舌禍)를 낳았으니. '그래도 시험 기간만이라도 최선을 좀 다해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네가 대충 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 그러자 시인은 '대충 사는 게 왜 나쁜데? 나는 최선을 다해 살고 싶지 않다고! 대충 살고 싶다고!' 선언했다. 대화 또는 우려표명의 협상은 결렬 되었다. '그럼 대충 살아! 니 인생이니까 니 맘대로 살라고!' 그리고 시인은 제 방으로 들어가 시험공부 대신 시를 썼다. [웃고 있는 가면] 고상한 척 하면서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는 보통 엄마와 다를 것 없는, 나는 그런 엄마이다.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사실 나는 더 뻔뻔해진 것이 아니라 너보다 더 비참해졌다. 임뫄! 짜식아!
시험 시즌이 지나고 널널해진 여름 방학. 아침 일찍 일어난 시인은 갑자기 '엄마, 나 도시락 싸 줘' 읭? 도, 도시락이요? '나 자전거 타고 나가서 탄천 어디에 앉아서 엄마가 싸 준 샌드위치 같은 걸 먹고 싶어' 여유부림 끝장판을 보여준다. 싸주기는 어렵고 사줄 수는 있다. 가는 길에 빠바에 가서 샌드위치 사라, 했더니 기분 좋아 하신다. 극도로 좋아진 기분에 '현승아, 그런데 그 시들 말이야. 블로그에 올려도 돼? 네가 결국 시는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쓰는 거라며' 했더니 '엄마, 내 시가 옛날하고 달라져서 블로그 오는 사람들이 좀 그럴 걸' (무슨 독자 걱정?) '그래서 엄마가 올리고 싶은 거야. 사춘기의 복잡한 마음을 시로 쓸 수 있는 애는 거의 없어. 정말 보기 드문 시지' (비굴비굴, 취향저격 설득) '그래? 뭐 그러면 올리든지!' (의외로 쉽게 허락)
이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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