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에 한 노래 있어 11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야라고 소개 받을 때가 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무얼까. 친절한 사람, 합리적인 사람, 잘 돕는 사람, 이해심 많은 사람, 유연한 사람 등. 나는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 부를까 생각해보니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에 둘러싸인 삶은 행복하다. 위선적인 사람, 위협적인 사람, 비열한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산다면 불안이고 불행일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고 싶고,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꿈속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좋다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 사람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눈동자를 그렇게 오래 바라볼 수 있을까? 민망함도 두려움도 없이 오래오래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담긴 연민과 사랑을 잊을 수 없다.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다 알고, 이미 받아주는 듯한 그 눈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눈빛 교환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 또한 세상의 모든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다 담은 소리이다. 그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내 대답을 기다린다. 재촉도 추궁도 없이 내가 준비되어 말할 때까지 기다린다. 내 말을 다 들은 후 말없이 자기 몸의 일부를 보여준다. 처참한 상처의 흔적이다. 놀란 내게 그 목소리가 말한다. ‘당신을 위한 사랑의 흔적입니다.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이렇듯 상처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를 옥죄던 사슬이 풀어졌다. 내 영혼을 꽁꽁 묶어 더 깊은 어둠으로 끌고 가던 그 사슬, 죄의 사슬이 말이다.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어느 바닷가 거닐 때

그 갈릴리 오신 이 따르는 많은 무리를 보았네 (1)

 

그 사랑의 눈빛과 음성을 나는 잊을 수 없겠네

그 갈릴리 오신이 그때에 이 죄인을 향하여

못자국난 그 손과 옆구리 보이시면서 하는 말

네 지은 죄 사했다 하시니 나의 죄짐이 풀렸네 (2)

 

찬송가 134장은 나를 꿈꾸게 한다. 그리하여 2000년 전 갈릴리로 이끈다. 거기서 어떤 사람, 어떤 남자, 참 좋은 사람을 만난다. 그렇다. 예수님은 갈릴리 가난한 동네의 한 남자로 이 땅에 오셨다. 어떤 좋은 남자, 한 좋은 사람으로! 일상의 언어로 쓴 하나님 말씀이라 일컫는 유진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으로 그 사람예수를 읽어본다. ‘둘러앉은 사람들을 일일이 쳐다보며 말씀하셨다(3:34).’ ‘예수께서는 그들의 비정한 종교에 노하여, 그들의 눈을 하나씩 쳐다보셨다(3:5)’ 사람 예수님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손으로 병자의 몸에 손을 대며 스킨십 하셨다. 그리하여 그분의 앞에 앉아 거짓 없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가르침 받은 사람들은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메시지 속으로 들어간 나도,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찬송 가사에 잠긴 나도 그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다. 역사 속으로, 역사를 통틀어 가장 좋은 사람으로 오셨다. 우리는 자주 사람의 몸을 입고오셨다고 말하면서 잠시 사람으로 둔갑하신 신화 속 예수님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사나운 바다를 향하여 잔잔하라고 명 했네

그 파도가 주 말씀 따라서 아주 잔잔케 되었네

 

그렇게 사람 좋은 예수님은 풍랑을 잠재우는 능력, 병을 고치는 치유력,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까지 보여주신다. 게다가 가난한 백성을 율법의 짐으로 옭아매는 종교 지도자들을 도통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눈 똑바로 뜨고 하실 말씀을 하셨다. 가난하고 천한 사람, 천하다 멸시받는 이방 여인까지 일일이 눈 맞추던 따스한 사람 예수님은 풍랑 앞에서, 종교 권력 앞에서 누구보다 강하고 물러섬 없는 사람이었다.

 

꿈이 아니다. 한 밤의 꿈일 수 없다. 그 만남은 꿈을 깨서 2017년 가을을 걷는 나의 일상에서 오히려 생생하다. ‘좋은 사람의 기준을 몸소 제시하셨기에 그에 따라 오늘을 살고자 한다. 갈릴리 사람처럼 살고자 하는 나의 오늘에 그분은 살아 계신다.


나 주께서 명하신 복음을 힘써 전하며 살 동안 그 갈릴리 오신 이 내 맘에 항상 계시기 원하네. 내가 영원히 사모할 주님 부드러운 그 모습을(통일 찬송가 번역) 곧 뵈옵고 그 후로부터 내 구주로 섬겼네(4)

 


< QTzine>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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