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5일
내적 여정 세미나 1단계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요즘 SNS 흔한 게 온라인 강의 포스터지만,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zoom 강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 9월 5일은 '역사적'이란 진부한 표현이라도 갖다 붙여야 할 날이다. 지난 5월부터 zoom 강의를 경험하긴 했다. 언택트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연구소도 발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었지만 내적 여정만큼은 아니지 싶었다. 설령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내적 여정 세미나는 멈추는 게 맞지, 어떻게 화면으로 보며 마음을 나누겠냐고, 혼자 생각했다. 결국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하고 말았다.
2020년 5월
미주 코스타가 온라인으로 개최된다는 소식과 강사로 초대하는 메일을 받았다. 연거푸 몇 번 거절했던 터라 죄송한 마음, 온라인이니 집에서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안도감으로 덜컥 수락하고 말았다. Kosta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 하더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강의는 미리 찍어 보내야 하고, 사전 홍보 책 소개 영상 숙제도 덤으로 받았다. 휴대폰으로 대충 찍으면 되려니 싶었는데 Kosta가 호락호락해야 말이지.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겠는 웹캠과 탁상 마이크 같은 걸 검색하고, 남편은 또 어디서 얻어오고. 새로운 주제의 강의 준비도 부담 백배인데, 새로운 강의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5월 한 달을 보냈다. 알고 보면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 "모른다" "모르는 영역이다" 이 의식으로 내가 얼마나 두려움에 휩싸이는지 알게 되었다.
2020년 7월
Fear To Faith Now, 드디어 온라인 코스타가 열렸다. 아,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전향해야 하는 지금! 새벽 5시, 강의를 위해 ktx 타러 나가보긴 했지만 강의를 할 시간은 아니다. 고요한 거실, 노트북 앞에 홀로 앉아 코스타 세미나 강의라니. 모든 것이 새롭다. (『모든 것을 새롭게』! 헨리 나우웬 신부님 책 제목 잘 지으셨네요.) 두 번의 강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두 번째 강의를 마친 새벽, 멍하니 새벽산을 바라보며 감동을 머금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화상 강의로 메시지 전달이 제대로 되겠나, 마음의 소통이 일어나겠나,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만 빨리 끝내고 다리 뻗고 자는 게 목표다, 이것 뿐이었다. 30분도 되지 않는 질의응답 시간, 말로 글로 전해져 오는 질문과 반응에 마음 깊은 곳이 떨렸다. 상실, 애도, 고독, 영성. 3월 엄마 돌아가신 이후 붙들고 있던 것을 말로 꺼내놓을 때 어떻게 들려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도 경험과 상황이 다른 해외 유학생들에게 말이다. 적어도 내 안에 일어난 파장은 랜선을 타고 갔다 부딪쳐 다시 돌아온 메아리였는데,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아픔과 갈망이 다르지 않다는 것.
온라인 Kosta 덕에 COVID-19가 가져온 변화에 빨리 적응하게 되었다. 낯선 상황, 모르는 것에 대한 내 두려움이 낳는 완고함과 방어 또한 부끄럽도록 생생하게 마주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몸과 몸이 함께 하지 않는 만남'을 폄훼하며 과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 주먹 불끈 쥐고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쟁이 노인네 같았다. 신비로운 인연이다. 최근 몇 년은 참석도 못했고, 예전 그 만남의 기억을 간직할 뿐 이제 멀어진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처음 참석했던 그때처럼, Kosta는 나로 하여금 두려움에서 한 발 내디뎌 강사로서 다른 자리에 서도록 한다.
2020년 8월
올 여름은 그렇게 서서히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8월에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연구소 식구들과 zoom으로 자주 만났다. 예정된 워크숍을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취소한 아쉬움에 zoom에서 모였다. 재미나게 모였다. 케이크를 준비한 생일 축하도 하고. 글쓰기 모임에선 글을 낭독하고 들으며 눈물 찍어내는 일이 잦았다. 랜선이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구나! 손가락만 하게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도 울고 웃으며 연결될 수 있구나. 랜선이 아니라, 우리들이 신비한 존재구나! 비록 몸으로 마주칠 수 없지만 영혼으로 이렇듯 연결되고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로구나. 존재의 신비여!
2020년 9월
지도자과정 2학기도 온라인 강의가 되어야 했다. 정식 개강 전에 책 나눔으로, 가벼운 수다로 zoom모임을 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 '낯선 것에의 두려움' 뽀개기 시도였다. 어렵지 않게 2학기 개강 첫날 모임을 마쳤고. 6주 글쓰기 과정도 마쳤다. 이게 웬일인가! 고집쟁이 장로님처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했던 이유는 '몸'이었다. 몸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런데 zoom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프라인 모임보다 '몸'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비록 눈동자의 흔들림은 보이지 않지만(집단 여정에서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습기, 긴장은 빼도 박도 못하는 마음의 거울이다.) 몸이 그것을 대신한다. 화면으로 보이는 몸이 말보다, 글보다 크게 말한다.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 연결과 소통의 신비란!
2020년 9월 6일
9월 5일 토요일 오전 10시. 역사적인 첫 온라인 내적 여정 세미나를 진행했고. 9월 6일 주일 0시 30분. Kosta 간사 수양회 강의를 했다. 식구들 잠든 한밤중에 거실에 앉아 찬양 하고, 간증을 듣고, 강의를 했다. 주제는 '희망'. 이토록 희망 없는 시절에 희망을 말하는 것은 너무 허망한 일 아닌가.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 현실이 아프거나 막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희망은 말해져야 하고, 발굴되어야 한다. 없지만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요즘 내 영성의 길잡이가 되고 있는 선생님은 14세기 여성 신비가 노르위치의 줄리안인데,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를 살았던 영적 선배, 언니이다. 아침마다 아껴서 읽는 그의 저서로 영혼이 촉촉해진다. 14세기 살던 언니가 아침마다 내게 들려주는 말이 있다. "All shall be well!" 잘 될 거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다. 단단한 내 고집이 부서지는 한, 그래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한 잘 될 것이다.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 있고, 사람이 있지만 어제의 내가 깨지는 한 이 어려운 세계와 사람이 내게 흘러들 틈이 생길 것이다. All shall be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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