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고용안정 지원금을 주겠다고, 지난번에 줬는데 또 주겠다고, 가급적 추석 전에 주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태어나서 일도 안 했는데 돈을 받긴 처음이다. 아니다. 두 번째구나. 아니, 세 번짼가. 전에 살아보지 않았던 세상, 코로나 세상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첫 번째는 지난 3월이었다. 이런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올해 초, 몇 개월 앞의 강의들이 약속되어 있었다. 코로나 세상이 오고, 대면 예배가 불가능해지면서 모든 강의 약속은 잠정적으로 취소되었다. 강의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를 논의하던 교회로부터 갑자기 강사비 입금 문자가 왔다. 이미 시간을 빼놓으셨고 강의 준비도 하셨을 테니 강사비를 드리는 게 맞다, 는 취지였다. 아이구, 아닙니다! 강의도 안 했는데요! 이런 문자를 보내고 다시 답신이 오가다 선지급된 것으로 정리되었다. 자유로운 대면 예배가 가능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할, 하고 싶은 곳이다. 모든 강의가 취소되고, 수입원이 끊어진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에서 돈이 아니라 마음 때문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자본주의를 거스르며 이렇게 살아야지, 결심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는 재난지원금을 네 식구 몫으로 받았는데,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는 용도로 썼다. 이런 걸 두고 돈이 스쳐지나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돈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어느새 잔고가 없다는 말에 여러 장으로 나눠 받은 카드를 바꾸고, 금세 또 바꾸고. 그렇게 스쳐갔지만 고마운 지원금이었다. 특고·프리랜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을 뒤늦게 알고, 설마 또 주겠나 싶어 관심 없다가 마지막 날 부랴부랴 신청을 했었다. 서류는 역시 공기관 발행 서류. 어린이집 여러 곳보다 학교에서 했던 치료가 도움이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부랴부랴 필요한 서류를 보내준 제자 뮨진의 도움이었다. 재난지원금과 달리 현금 입금이 되어 '지원' 받은 느낌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추석 얼마 전 2차 긴급 고용안전 지원금을 준다는 문자가 오더니, 추석 전에 따악! 입금이 된 것이다. 코로나 세상 아닐 때도 명절 보너스 받는 삶은 아닌데. 명절 앞두고 입금된 지원금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 불러 자유 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내리라" 

 

재난지원금을 받고 얼마 안 되어 친구들을 만났다. 지원금 얘기가 나왔다. 나는 입도 떼기 전에 대화의 흐름이 정해져서, 끝내 나는 입을 떼지 못한 대화지만. 초긍정 마인드를 가진 친구 얘기에 입이 딱 달라붙었다. "야야, 나라가 돈을 주니까 받기는 하는데. 나는 걱정이야. 이렇게 세금 다 퍼 쓰다가 우리 애들 때는 어떻게 되는 거냐? 이렇게 선심 쓰다가 나중은 어쩌려고 그러지?" 했다. 이쯤에서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끼어들질 못했다. "그래도 좋긴 좋더라. 공돈 들어와서 뭘 할까 하다가, 이번에 그걸로 선글라스 바꿨어. 애들도 같이" 여기서도 한 번 틈을 봤는데 바로 이어지는 "핫핫핫핫...." 하는 웃음소리에 포기하고 말았다. 상당히 구차하게 느껴지는 내 얘기를 먼저 해야 내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는 게 어떠냐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 생각도 나고. 핫핫핫핫, 초긍정 웃음소리에 묻혀 같이 웃고 말았다.  

 

집주인에게 정색하고 다시 물어 확인했다. 정말 주인의 부모님이 들어오시는 게 맞냐. 그게 아니라 임대차3법 피해서 전세금 올리려는 거라면, 원하는 만큼 올려주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담판 지을 생각이었는데. 주인이 들어오겠단다. 집을 알아보는데 이 동네, 저 동네 전세라곤 없다. 이유는 거의 한 가지! 주인이 들어온다. 핫핫핫핫.... 이럴 때 웃어야지. 있지도 않은 전셋집인데 전세가 상승은 말로 할 수가 없다. 1억이 웬 말이냐! 1억 5천이 웬 말이냐! 이런 우리 형편을 듣는 주변 분들이(주변 분들이 전세 사는 분이 없다ㅠㅠ) 우리보다 더 화를 낸다. 전셋값 잡는다더니 탁상공론으로 전세 사는 사람들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정부를 향해 욕을 욕을 해대는데. 듣고 있자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법망을 피해 "주인이 들어간다"며 뻔한 거짓말을 하고, 세를 올리는 사람들은 집주인인데. 보아하니 향후 몇 달 전세도 놓지 않고, 주인이 들어오지도 않아 빈집이 허다할 텐데. 그 집에서 나온 사람들은 몇 천씩 대출을 받고도 들어갈 집을 못 구해 전전긍긍일 텐데 말이다. 2년 만에 전셋값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 4년 후 올릴 때도 상한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탁상공론이 된 것은 집으로 돈 버는 사람들 '욕망'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그 정도로 법 만들면 세입자들 보호가 된다고 여긴 것은 집주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탁상공론 아닌가. '법 사이로 막 가는' 부동산 놀이에 하루 이틀 단련된 분들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있다. 가족이 어디 아프면, 아픈 몸이 걱정이 아니라 병원비 걱정으로 마음이 내려앉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들이 사는 세상도 있다. 잘은 모르겠다. 2년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집이 1억 씩 벌어주는 세상? 핫핫핫핫...... 언젠가 우리 모두 돌아갈 나라가 있다. 몸의 한계를 벗어나 그분과 함께, 그분처럼 살아갈 세상이 있다. 그 세상을 여기서 미리 사는 것이 내 꿈이다. 강의도 안 했는데 들어온 강사비, 일도 안 했는데 들어온 생계 지원비와 명절 전 입금된 현금 50만 원. 이런 일들은 언젠가 돌아갈 그 나라가 있음을 믿으라는 표식처럼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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