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준비(대학 강의 아님), 논문 준비(박사 논문 아님)로 책 산성을 쌓아두고 있는데. 산성을 쌓은 벽돌 같은 책 틈에 저 두 권이 끼어 있었고 동시에 읽기를 마쳤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대학 들어가던 그 3월, 의식화 세미나 첫 책으로 읽은 것이다. 가끔 젊어서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 되면 "뭘 알고 이걸 읽었을까? 이해나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문득 이 책 생각이 났다. 대선 지나고 며칠 안 되었을 때인 것 같다. 욕먹고 또 먹고, 또 다시 먹어도 싼 우리 세대는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그 시절 민주주의는... 그런 생각을 하다 주문했던 것 같다. "뭘 알고 읽었을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시 읽어보니 대학 1학년 그 시절, 정말 숄 남매의 열정과 용기에 온전히 감정이입하며 읽었던 것 같다. 그때와 같은 피 끓는 심정은 찾으래야 찾을 수 없었지만, 왜 다시 읽고 싶었을까, 하는 마음이 알아지긴 했다. <컬러 퍼플>은 또 왜 갑자기 읽게 되었을까? 아, 벨 훅스의 부고 뉴스를 듣고 그의 책들을 다시 들춰보다 앨리스 워커에 이르렀고, 영화 <컬러 피플>을 보았었지.

왜, 지금 이 책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읽으면, 읽다 보면 찾아진다.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아, 이 문장을 만나려고!" 하게 된다. 바로 지금 만나야 할 문장들이 있는 것이다. 가령, 이런 문장들.

이 모든 일에도 한스에게는 쉽게 꺼지지 않는 삶에 대한 애착이 있었습니다. 그를 둘러싼 세계가 점점 더 어두워질수록 삶에 대한 애착은 점점 더 강력하게 그의 안에서 바깥으로 뻗어나갔습니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삶은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광휘를 부둥켜안았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p. 52

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 이 모든 것은 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까요. <아.미.죽> p.149

네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줘, 셀리. 좋아, 내가 말했어. 그는 덩치가 크고, 나이가 많고, 키도 크고, 턱수염이 희끗희끗한 백인이야. 하얀 옷을 입고 맨발로 다녀. (중략) 백인들의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이 그런 모습이잖아. 슈그! 내가 말했어. 성경은 하느님이 쓴 거고, 백인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그런데 왜 하느님이 그 사람들처럼 생긴 거지? 그녀가 말했어. 덩치만 더 클 뿐이잖아? 털이 좀 더 많고. 왜 성경도 백인들이 만드는 다른 것들하고 똑같은 거지? 어째서 자기들은 온갖 짓을 다 하는데 흑인이 하는 일은 저주만 받는 거야? (중략) 우리는 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난 아직도 모르겠어. 어쨌건 나는 머릿속에서 나이 든 백인 남자를 몰아내려고 노력중이야. 그 남자를 신경쓰느라 신이 만드는 세상을 제대로 본 적이 없거든. <컬러 퍼플> p. 257,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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