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붉은 꽃이 없고, 열흘 연두연두 하는 나뭇잎이 없다. 나는 안다. 좋은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물론 고통 또한!) 그렇다고 허무주의자는 아니다. 꽃이 붉어봐야 열흘이니, 붉은 꽃의 아름다움을 누릴 시간은 지금 뿐임을 안다. 오늘, 지금 누릴 뿐이다. (물론 고통 또한! 지금 여기의 고통 밖에는 없다. 머물러 충분히 고통 당하면 된다.)

좋은 것? 남는 건 허무와 상실감이라고. 금세 사라진다고.
상처 받지 않는 길은 좋은 걸 좋아하지 않는 거야.
좋은 것이 생기면 얼른 도망가. 좋을 것 같은 다른 어떤 것으로 말이야!


이러며 지금 여기 아닌 저~어기 어디를 살아온 세월이 50년 세월이다. 이젠 어리석은 환상에 붙들리지 않는다. 지금 여기의 좋음을 놓치지 않는다. 써야 할 글도 있고, 읽을 책이 쌓여 있지만 일단은 걷기 위해 나서고 본다. 토요일,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미금역 쪽을 향했다. 연습실에 있는 채윤에게 연락했다. "엄마 지금 미금역으로 가는 탄천인데. 니 연습실 가까운 것 같은데." 그리고 채윤이는 튀어 나왔다. 목마르니 음료수 사오라는 말에, 자몽쥬스와 오렌지쥬스를 사들고.

봄은 따스한 바람으로 오고, 노랑에 가까운 연둣빛 생명으로 온다. 바람은 촉각을 겨냥하고 연두 빛깔은 시각을 저격한다. 그리고... 이 좋은 봄날 토요일, 아카시아꽃은 향기로 난입한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소올~솔" 불어와 후각을 간지르지. 채윤이 만나러 가는 길에 아카시아꽃이 향기로 말을 걸어왔다. 어디, 어딘데? 향기를 좇아 고개를 들었더니 바로 그 아카시아다. "하얀꽃 잎사귀 눈송이처럼 날리..." 하며 보니까, 눈송이가 아니라 구름이 되어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다. 진짜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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