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마스크 해제 후 첫 산책. 날씨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연둣빛 나뭇잎들의 명도와 채도는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니 순간의 아름다움이다. 화무십일홍이라... 열흘 붉은 꽃이 없다 하니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며 보낼 일이 아니라 열흘의 붉음을 누리자는 주의이다.  걷는 일이야 언제든 좋지만, 이런 봄날 같으랴. 야외 마스크 해제라니 마스크 벗고 오늘 분량의 붉음, 아니 연둣빛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꿈모임 벗님의 별칭 중 하나가 '꽃마리'이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꽃이라고, 아주 흔한데 가만히 찾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하곤 한다. "오늘의 미션! 아기 손톱보다 작은 꽃마리를 만나는 것이다." 하며 집을 나섰다. 작은 들풀에 눈을 맞추자면 한 발 한 발 주저 않는 발걸음으로 걷는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 주저앉아 들여다보며 찾고 찾아야 한다. 과연 다음 꽃 검색도 인식을 못할 정도로 작은 꽃이었다. 사진을 찍어 단톡에 올리니 '꽃마리'님이 꽃마리가 맞다고 하셨다. 어쩌면 그렇게 조그만 녀석이, 어쩌면 그렇게도 의연하게 제 모양대로 피어있다. 누가 봐주든 말든 제 모양대로 제 자신을 뿜뿜 하고 있다. 애쓰지 않으며 제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야외 마스크 해제라는데, 마스크 안 쓴 사람이 나밖에 없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다. 이러다 마스크 안 썼다고 테러 당하는 건 아니겠지, 잠시 걱정이 될 정도였다. 마스크 쓰는 게 편하단 얘길 많이 듣는다. 가리는 게 좋다고. 우리 아이들이 그렇다. 마스크 벗을 자신이 없다고. 딱히 자랑스럽지 않은 얼굴, 반쯤 가리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적당히 가리고 살며 느끼는 안전함이 있지. 그렇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동시에 착용하는 게 몹시 불편하다. 눈이 부셔도 그렇다. 마스크 벗는 대신 선글라스를 쓰고 셀카를 찍어봤더니 정말 그렇다. 내 얼굴도 그렇다. 하관을 가리고 눈을 드러내는 게 그나마 낫다.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 꽃마리는 아무 걱정 없이 창조주께서 만들고 꾸며주신 그대로 제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딱 열흘을 피었다 지더라도 그러할 것이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마 6:30)" 하시는데, 우리는 가리고 숨길 것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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