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서 하는 포스팅이다. 논문을 썼다. 다 썼다. 다 쓴 지가 한참이다. 쓴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논문심사를 필두로 여전히 논문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연은 구구절절이다. 탓을 하려면 나를 탓해야 한다. 영성 공부를 위해 굳이 가톨릭학교로 가야 하는 나, 내 탓을 해야지. 책임전가를 할 곳은 언제나 있다. 굳이 거기까지 보내시는 그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끼워둔 그분을 탓하면 딱 좋은데...  "니가 갔잖아??!!" 하시면 딱히 할 말도 없고.

 

지금은 제출, 반송, 재제출, 반송, 재제출... 논문 온라인 제출 단순노동 놀이를 하고 있는데. 할수록 우울해지는 놀이이다.

 

논문 탓이 아닐 수도 있다. 해마다 이때면 아무 일 없어도 우울해지고, 억울해지고, 슬퍼지고, 텅 비고... 좀 그런 때니까. 12월 16일은 아버지 추도식 날이다. 인생 "치명적 잃어버림의 날". 42년 전 놓친 아버지의 손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그 잃어버림이 이제 낯설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 나쁜 것 같지도 않다. 오늘의 나를 만들고 만 '상실'이니까. 아버지 손을 찾다, 기도의 길을 찾다 여기 이 끼인 자리까지 왔으니까. 

 

논문 초록 붙여본다. 우울해서. 이거 읽고 누가 "논문 기대된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사진은 논문을 가지고 했던 연구소 5주년 특강 장면이다. 진행 상시간이 부족해서 하려던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그것도 우울한 이유 중 하나. 아빌라의 데레사와 내가 닮았다고, 남편이 논문 쓰는 내내 말했다. 이 사진은 뭔가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초록

 

‘탈종교’라는 시대적 물결과 함께 교회 ‘안 나가’기로 작정한 그리스도인, 일명 ‘가나안’ 교인이라는 언표가 통용된 지 10여 년이 되었다. ‘영적이긴 하지만 종교적이진 않다’는 뜻의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은 2023년의 한국 기독교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주요 용어 중 하나이다. 가나안 교인 현상의 내적인 면을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외적으로는 부패한 교회와 타락한 목회자에 대한 실망으로 교회를 떠나지만, 내적으로는 제도 교회 너머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으로 ‘영적인 감각’에 민감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시대적 영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영성의 전통 안에서 기도의 길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아빌라의 데레사가 쓴 『영혼의 성』을 영적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한 여성의 기도체험 기록’으로 바라보고, 기도 안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변화, 그로 인한 영성생활의 변화를 탐구하였다. 『영혼의 성』에서의 기도는 내면 중심에 계신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며 동시에 내적 자아를 만나가는 과정이다. 『영혼의 성』의 일곱 개의 궁방에서 기도하는 자아는 여러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다. 이 고통과 어려움은 극적 신비체험으로 일거에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합일에 이르는 7 궁방에 이르기까지, 기도하는 사람 데레사는 자아 인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즉, 기도 안에서 겪는 어려움을 그대로 마주하고 기록한다. 그 여정에서 자아 인식은 변화되고 새로워지는데, 궁극적으로 삶의 정향이 달라지는 회개(metanoia)의 체험이다. 『영혼의 성』의 기도가 오늘에 주는 교훈은 첫째, 기도의 내면성과 자기인식의 중요성이다. 통성기도, 즉 밖으로 크게 소리 내어 드리는 기도는 개신교의 자랑이며 동시에 한계이다. 시대의 영적 요청을 받는 개신교회의 기도는 『영혼의 성』을 통해서 밖을 향해 부르짖는 기도에서 침묵을 통한 내면성의 기도로 안내받을 수 있다. 또 기도를 통한 영적 성장은 투명한 자기인식의 길과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말씀의 빛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지금 여기서 마주하는 고통과 인간적 욕망이 영혼을 어디로 이끌어가는지 명확하게 바라보고 성찰하는 것 또한 오늘에 필요한 기도라 할 수 있다. 둘째, 내면을 향하여 깊어진 기도는 도덕적 영적 삶의 열매로 드러나고, 기도 안에서 내내 놓치지 않은 자기인식은 자기함몰이 아니라 이타적 사랑이 되어 이웃을 향한 자기 개방이 된다. 셋째, 기도하는 사람들의 교회 일치에 대한 소명에의 확인이다. 데레사가 살았던 16세기 스페인의 시대적·영적 상황은 오늘의 시대, 특히 개신교의 영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와 종교권력자들은 타락했고, 그럴수록 대중의 영적 갈망은 깊어져 간다. 30여 년 차이로 동시대를 살았던 마틴 루터와 아빌라의 데레사, 이 두 사람의 외적 행보는 달랐다. 하지만 무너져가는 교회와 혼탁한 영성의 시대에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영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선조들의 기도로부터 배울 때, 오늘 여기의 기도는 교회 일치라는 자연스러운 열매로 맺히게 될 것이다.

 

논문 제목 : 기도 안에서의 자기인식과 영적 변화에 대한 연구:『영혼의 성』을 중심으로

 

그리고 데레사 성녀의 자작 기도문, Sólo Dios basta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말라(Nada te turbe)
그 무엇에도 너 무서워하지 말라(nada te espante)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todo se pasa)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Dios no se muda)
인내함이 모두를 얻느니라(la paciencia todo lo alcanza)
님을 모시는 이(Quien a Dios tiene)
아쉬울 무엇이 없나니(nada le falta)
님 하나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Sólo Dios bast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