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라면"

푹푹 찌는 방에서 설교 준비하다 나와 에어컨을 껴안고 있는 남편 등에 대고 "저녁 뭐 먹지?" 혼잣말처럼 물었다. 더위에 쩔고, 설교 준비로 저 세상으로 간 정신 탓이리라. ‘아무말'이 나왔다. '아무말'에 응답하여 저녁 메뉴를 정했다. 냉라면.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 낮에 끓인 김치찌개로 일찍 저녁식사를 마친 현승이가 골뱅이 캔을 사러 냉큼 다녀왔다. 이래저래 저녁은 남편 혼자 먹는 거였다. 냉라면 일 인분 만든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라면 양이 적어 부족할 것 같다며 채윤이가 물만두를 하겠단다. 물만두 한 접시 추가요! 

"만두"

믿기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남편이 전에 어느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있을 때, 담임 목사님 없는 점심식사 자리였다. 갈비탕인지 뭔지를 먹으면서 후배 전도사님들이 "만두 하나 시켜도 되겠습니까?" 하는 말에 당연히, 기꺼이 만두를 추가해서 먹었다. 나중에 담임 목사님에게 혼났다. 정말, 만두를 추가했다는 이유로. 만두가 죄는 아니었겠지. 내가 당한 것처럼 민망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여보,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만두를 보면 내가 무조건 추가 주문해줄게!"

"만두도 있겠지"

만두에 관한 김종필스러운 에피소드가 하나 또 있다. 얼마 전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주일 점심이 없는 날. 예배 마치고 오는 길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채윤이와 내가 한 차에, 남편은 뒤늦게 혼자 출발한 차에서 메뉴 선정을 위해 통화를 하고 있었다. 두 여자는 이미 냉면으로 합의를 본 상태고. 남편은 세 번 예배, 세 번의 설교를 한 상태라서 든든한 밥 같은 것을 먹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래? 그게 좋겠어?" 이런 후렴구에 돌려 말하는 것으로 충분히 유추 가능. 나름대로 몇 번 소심한 주장을 하다가 "그래. 냉면집 가자. 만두도 있겠지." 하는 말에 이쪽 차에 나란히 앉았던 둘이 빵 터졌다. 욕구를 내려놓는 남자의 자기 설득, 또는 자기 위안이랄까. 이후로 "만두도 있겠지"는 김종필 아빠 특유의 정서와 태도를 표현하는 관용어구가 되었다.

"물만두"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물만두를 데쳐주는 채윤이 마음은 착한 아빠 마음을 알아주는 착한 딸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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