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식을 하고 새 교과서를 받고, 통지표를 받아 온 아이들과 함께 종업 파티다. 백 점을 맞아온 날보다, 그 어떤 날보다 많이 축하하고 싶은 날이 종업식 날이다. 방학식 날엔 피자 또는 치킨 중에서도 비싼 걸 시키고 콜라도 1.5 리터로 통 크게 쏘면서 축하 파티를 벌이곤 한다. (부재가 일상인 아빠는 빼고. 미안~) 올해도 무사히 !보다는 올해도 잘했어! 진짜 잘했어! 적극적인 의미로. (현승이 표현대로 자랑은 않.이.지.만) 어릴 적에 종업식을 떠올리면 통지표와 함께 받은 상장 한두 개가 늘 있었던 것 같다. 그걸 가지고 집에 가서 대단한 칭찬을 받진 못했지만 한 학년을 마치며 받는 기분 좋은 보상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종업식은 늘 무언가 풍성했던 기억이 있다.

 

채윤이도 현승이도 학교에서 상을 받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 현승이는 글을 잘 쓰니 상을 많이 받아오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상 받을 만큼 특별한 실력이 못 되기도 하겠거니와 엄마의 지성이 부족하기도 할 터. 특별한 실력이 없으면 엄마가 열심히 학교 일도 하면서 상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께 피력해야 한다는데, 이 엄마는 '의지가 약해소~' 아이들에게 '스마미생, 아니 스미마생'이다. 상이 없어도, 통지표으; 성적란이 빈약해도 우리들의 즐거운 종업 파티, 고고씽.

 

종업식 마치고 일찍 집에 와 뒹굴다가 '엄마, 언제 와? 출발했어?' 전화해대는 현승에게 '아직 멀었어.' 뻥을 쳐놓고 깜짝 파티 장을 봐왔다. 망원시장에서 제일 맛있는 '순이네 고릴라' 떡볶이와 순대, 현승이가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딸기, 채윤이가 사랑하는 마카롱이 오늘의 메뉴. 양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를 빼앗듯 받아 풀어헤치는 두 녀석이 흥분해서 난리가 났다. "와, 엄마 나 종업식 했다고 드디어 비싼 딸기를 사 왔구나. 이 비싼 딸기를! 내가 좋아하는 이 딸기를!" (아우 찔려. 한 팩에 삼천 원짜린데) "오 마이, 오 마이, 오 마이 마카롱!" (얘는 감동받아 흥분하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영어가 튀어나오는데 성적표의 영어 점수는 왜 그 모양?) 삼천 원짜리 딸기 한 팩, 천사백 원짜리 마카롱 두 개에 이렇게 행복해하다니. 저렴한 녀석들.

 

떡볶이 2인분과 순대 내장 섞어서 1인분을 먹는다. 품절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간, 허파, 오소리감투, 순대, 떡볶이. 1차로 간이 품절되고 골라먹던 허파가 마지막 한 조각 남았을 때, 두 녀석 포크가 동시에 꽂혔다. 그러자 현승이 재빨리 자기 몫의 마카롱을 내놓으면서 "누나, 마카롱 줄게. 허파 내가 먹게 해줘." 아, 물론 계산 빠른 된장녀 누나는 "콜!" 마카롱 확보하고나서 다 들리는 혼잣말로  "이런 바보는 처음 봤어. 진짜."

 

마카롱을 허파 한 조각과 바꾼 남자. 그 남자는 통지표를 가져와서 그랬다. "엄마, 우리 선생님 정말 날카로우셔. 내가 맨날 그랬지? 우리 선생님 애들을 일일이 다 파악하고 계신다고. 진짜야. 내 통지표 보니까 정말 그렇지? 통지표를 비슷하게 대충 써주신 게 아니고 진짜 그 애에 대한 얘기를 쓰신 거 같지 않아? 와, 다른 애들도 이렇게 써주시려면 정말 힘드셨겠다. 그런데 우리 선생님이 원래 그래." 아닌 게 아니라 아이에 대해 세밀하게 관찰하셨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성까지 담긴 날카롭지만 따스한 코멘트라고 생각했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친구들 사이에서는 활기차나 대외적으로는 수줍음이 많아 잘 나서지는 않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확하게 잘 표현하고 판단력도 있어서 어른스러움을 엿볼 수 있음. 학습 면에서는 이해력이 좋으나 수업 중 잡담을 줄이고 공부하는 것에 대해 귀찮아하는 마음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꾼다면 실력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됨. (관계 지향적) 혼자 있기보다는 같이 어울려 지내는 것을 좋아하여,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냄. (예체능) 몸의 움직임이 빨라 공놀이 게임을 잘하며, 음악 활동에 즐거움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참여함. 

 

허파를 좋아하는 남자는 색칠한 부분을 다시 읽으며 '헐, 이걸 어떻게 아셨지?' 감탄해 마지 않았다. 나도 음악치료 하면서 치료 계획서, 진보기록, 종결평가서 등을 쓰면서 머리 쥐어뜯어 본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선생님의 세심한 관찰과 노고에 두 배로 감사한 마음이다. 이래저래 기분 좋은 종업 파티에 들떠 두 아이 엽기사진도 여러 장 찍었는데 공개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중2, 초5. 잘 마쳤다. 장하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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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지난겨울 2015.02.17 19:56 신고

    십대 두 명과 이리 사이좋게 지내시다니... 싱기방기

    • BlogIcon larinari 2015.02.18 23:18 신고

      사이좋게 지내는 얘기만 공개하기 때문에
      전자동 뽀샵 처리된 일상입죠.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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