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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은 책, 나온 책/신앙 사춘기

찌르든 싸매든

larinari 2019. 8. 11. 09:28


최영미 시인이 최근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이 내놓은 작품이 원치 않는 방식으로 소비할 때 작가는 뭔가 제재를 해야 한다고. 본인은 그러지 못했고, 돌아보면 그래야 했었다는 얘기였다. 어떤 마음인지 알겠으나 막을 수 있는 일인가 싶다. 출간은 물론이거니와 신변잡기 한 줄이라도 SNS에 쓰는 행위는 읽는 사람 마음대로 읽히기를 각오하는 일이다. 저자거리에 내놓을 때는 이미 독자의 것이다. 현시욕에 불타 자기를 쓰고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사람이 감수해야 할 마땅한 짐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늘빛 향기'에 출연한 영상이 한 주간 방송되고 유투브에 올라왔다. 내 영상 오글거려 못본다는 칭얼거림도 그만 해야겠다. 남편과 함께 방송을 봤다. 첫 시청자이고, 가장 많이 신경 쓰이는 시청자이니 평이 궁금할 수 밖에. 어째 표정이 좋질 않았다. (언제는 표정이 좋은 사람인가요?)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다. 책 내용은 더 비판적이고, 무엇보다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지나치게 개인적인 간증으로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내 표정에서 더 얘기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읽혀졌다고 했다.


촬영하고 나서는 홀가분하고 마음이 가벼웠는데 남편의 말에 덮어두었던 감정과 생각이 올라왔다. 처음 방송 섭외가 왔을 때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매체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신앙 사춘기>가 담지한 날것의 감정들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진보 언론에 기고한 글을 '간증'이라는 형식으로 말로 푸는 것인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솔직하게 말씀 드렸다. 담당 작가님 말은 괜찮을 거라고 했다. 


방송 전 인터뷰를 하고 나서는 자괴감이 들었다. 역시나! 책에 담은 바로 그 이야기가 나오질 않았다. 간증이라는 형식의 한계이자 은혜로운 방송이라는 제한 때문이었다. 하지 말 걸 그랬다. 방송에 나갈 걸 생각하니 기도가 절로 나왔다. 작가가 책을 내고 책에 담은 얘기를 솔직하게 할 수 없다는 건 최영미 시인이 말하는 원치 않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일에 작가 스스로 앞장 서는 일이 아닌가. 


막상 촬영 때는 편했다. 동창 윤유선과의 반가운 만남 덕이기도 하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획을 확실하게 긋었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방송을 보고 남편의 반응을 보니 조금 서글퍼졌다. 연재를 시작할 때 '찌르고 싸매는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 말이 올무가 되어 벌벌 떨며 찌르느라 울고, 싸매느라 다시 울며 썼다. 헌데 이번 방송에서는 싸매기만 한 것 같아 드는 자괴감이다. 


하루 이틀 마음에 담고 묵혀보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뉴스앤조이 연재 당시에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되지는 않았다. 그 역시 매체의 특성 때문이었을 것. '찌르면서 동시에 싸매기' 위해서 그토록 고통스러웠는데 정작 독자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찌르는 용도로 공유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교회가 싫고 특히 목회자를 혐오하는 이들이 자기 방식대로 가져다 쓰는 것을 보면서도 자괴감이 들었었다. 


쓰는 나의 마음 그대로를 읽어줄 독자가 어디 있겠는가. 가당치 않은 일이다. '책만 보는 바보'라 불리는 나 역시 책을 통해 나를 읽는다. 찌르는 칼이 되든 싸매는 붕대가 되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쩌면 그리고 나는 (아직) 착하고 순한 그리도인들에게 더 애정이 많다. 책의 표현대로라면  종교중독자, 착한 나쁜 그리스도인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런 이들은 회개할 것이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바라는 바, 강사로 작가로 소비되고 싶은 방식은 일단 싸매고 서서히 찌르는 식이다. 청년들이 멘토를 찾아 돌아다니며 묻지 말고 스스로 의심하고 책을 읽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는 청년들이 답답하다. 하지만 이미 그러고 있는, 자의식 충만한 청년들은 가르칠 것이 없다. 책하고는 담 싼 청년이 한 권이라도 읽게 만들고, 자기 안의 힘을 믿고 주체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이 내 기쁨이다. 한 사람, 한 권이면 된다.


페미니스트로서 더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지만 교회 안의 착한 자매들을 얻고 싶어서, 여성의 편이 되고 싶지만 성인지 감수성이 개발되지 못해 죄의식 속에 분노하는 남성을 잘 설득하고 싶어서, 목회자에게 당한 성폭력이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인 줄 알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조차도 채근과 압박으로 듣는 생존자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늘 어정쩡함에 머문다. 역시나 자괴감 만발이지만 내게 닿은 한 사람을 잃지 않으면 된다.    


찌르든 싸매든, 

칼이 되든 붕대가 되는 

그것은 읽는 사람, 보는 사람 마음이다.

쓰고 말하고 설쳤던 나의 어정쩡함은 내 몫의 짐이다.

칼로 쓰든 가위로 쓰든, 화장실 휴지로 쓰든 마음껏 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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