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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SS 영혼의 친구

아버님, 생신상이 쫌 복잡합니다

larinari 2010.01.21 08:10



아버님.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아버님의 생신입니다.
아버님이 사랑하시는 막내 며느리가 아버님 생신상 차렸습니다.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자주적으로 차렸으면 기쁨이 있었을텐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지라 기쁨이라는 조미료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생신의 주메뉴, 어머님 (나름의) 지혜로움인 영덕게 놓아요.
저 영덕게를 선택하신 어머님의 지혜. 어머님 당신께는 충만한 지혜의 말들이 그저 어머니 한계에서, 어머니께서 원하는 걸 얻고자 하는 지혜일 뿐일 때, 그 지혜의 말씀은 영덕게의 엄지발가락 끝처럼 날카로운 것이 되어 제 마음을 찌르고 상처를 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갈비찜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 그것으로만 오지 않고 때론 너무 과도하거나,  너무 믿거라 하여 표현되지 않기도 하지요. 오랜 시간이 제게 가르쳐 준 것, 때로 넘치거나 부적적해 보이는 사랑의 표현에도 쉽게 오해하지 않는 것을요. 그래서 이 갈비찜이 사랑인 것을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화려함으로 뾰로퉁한 마음을 감춰보려고 준비한 양장피 입니다. 색색의 재료들을 썰고, 볶고, 가지런히 담아 내놓으면서 감추려던 제 마음 제대로 가려졌는지요/
ㅠㅠㅠㅠㅠㅠㅠ





감추고 누르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로 차올랐던 일종의 분노 같은 매운 골뱅이 무침입니다. 새로나온 매운 골뱅이에 태양초 고추가루로 양념한 불같은 맛이지요. 바보같은 제 자신에 대한 분노, 누군가 바보 같은 나를 이용하는 건 아닌가, 바보같은 나를 업신여기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분노로 잠시 분노로 변하기도 했었습니다.
 





골뱅이 무침으로 입안을 달군 매운맛을 희석시키시라고 올린 굴전입니다. 벌건 음식에 비교해보니 누워있는 굴전들이 착하고 순한 마음 같이 보여요. 서운함과 자기비하로 복잡한 제 마음이지만 아버님을 향한 순한 사랑도 역시 있다는 거, 아시죠?






토마토 카프레제.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요리하는 제 자신을 위한 음식이예요. 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만든, 아버님께는 음식이 아닌 이것을 상에 올려요. 토마토 위에 치지가 아버님이나 어르신들께는 가당치도 않은 조합이지만 저 이쁜, 저 색다른 음식이 만드는 제 마음에 색다른 신선함을 불러일으켜요. 그러면서 저는 생각해요. '아, 나 참 요리 좋아해. 새로운 거 또 한 건 했어. 역시 난 삶은 요리야...' 그러니 아버님 맛있게 안드셔도 저 하나도 섭섭하지 않은 음식이예요. 헤헤...







저는 초록빛 사람이예요. 초록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초록빛 사랑을 나누고 싶기도 하지요. 비록 이번 생신상을 차리는 제 마음 복잡하고 울퉁불퉁하기도 했지만 저는 저를 잃지는 않을 거예요.
다시 저 자신을 추스리고, 마음을 회복하고, 더 깊이 두 분과 제게 주어진 사람들 사랑하는 일을 포지하지 않을께요.

그리고 아버님이, 어머님이, 남편이, 제게 맡겨진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님을 용서할께요. 사람들이 하나님 같은 사랑을 줄 수 없음도 다시 용서할께요.






이렇게 김수영할아버지의 생신을 지냈어요.
울퉁불퉁한 제 마음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래서 힘들고 아팠지만 이렇게 글과 사진으로 제 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 저는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가요?
이제 많이 편안해요. 저는 지금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으니까요.

아버님 진심이 담긴 생신축하를 조금 늦게 드릴께요. 축하드려요. 아버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저희 곁에 계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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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Comments
  • 프로필사진 BlogIcon hs 2010.01.22 08:43 와~!
    맛있는 음식을 많이두 차리셨네? ^*^
    복잡한 마음은 있으셨다지만 그래도 모두 기쁘셨겠어요.
    복잡한 마음도 이번에 놓친 기쁨의 조미료로 다 날려 버리세요.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0.01.22 09:32 네~^^
    나이 한 개 더 먹었더니 복잡한 마음 풀어헤쳐서 들여다 보는 것도, 날려버리는 것도 시간이 좀 빨라졌어요.ㅎㅎㅎ
    루악커피 마셔야 하는데... 2월이나 돼야 맛볼 수 있겠나봐요.ㅠㅠㅠㅠ
  • 프로필사진 myjay 2010.01.22 08:54 생신상 차리느라 고생하셨어요. 저야 맛난 사진 보며 침흘리면 그만이지만 음식 준비하시는 사모님의 고생을 그 누가 알리요. (도사님이 아시겠죠..ㅋㅋ) 저는 어제 장인어른 생신인 걸 아침에 깜박해서 전화를 점심 때 드렸어요. 어른들 잘 챙겨 드려야 하는데.. 암튼 맛난 사진 한참 눈팅하다 갑니다. 샤샤샥~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0.01.22 09:35 저는 사실 음식하는 일이 웬만해서 몸고생은 잘 안돼요. 워낙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일이다 보니깐요.
    이번 생신은 저희 가족의 연약함과 복잡함이 종합선물 세트로다가 제게 직격탄으로 날아들어 쫌 맘이 그랬지요.

    그래도 그 와중에 '괜찮아. 음식해서 포스팅 한 개 할 수 있잖아' 이런 생각도 했다는...
  • 프로필사진 mary 2010.01.22 09:28 야~ 이제야 그 푸르딩딩 화면이 바꼈네! 했더니..
    이건 뭐.. 하나 둘 셋.. 일곱가지네. 언제 어뜨케 다했디야?
    한 반만 해도 훌륭했을거 같은데, 손님이 많으셨나?
    넘 열심히 하자면 이래 저래 후유증이 생기는거 같아~ 에쿠 허리 휜다.

    내가 볼 때 아버님 말고 모님이 젤 좋아라 했을 음식은 아래 두가지야.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0.01.22 09:36 위에 두 개는 어머님이 해오신 거예요.^^;;

    사실 저 음식에 밥하고 국 끓이는데가지 실질적으로 세 시간 밖에 안걸렸어요.ㅎㅎㅎ 손님의 범위, 이런 게 갑자기 달라지고 막 그러는게 당황이 되는 거지요.ㅋㅋㅋ
    mary님은 뭐가 젤 맛있어 보이세요?^^
  • 프로필사진 mary 2010.01.22 09:58 뭐이? 3시간밖에? 진짜 달인이네..
    나두 아래 두개, 그리고 영덕게. 영덕게를 한번도 못먹어봤거덩.
  • 프로필사진 iami 2010.01.22 13:12 아니, 이런 불쌍해 보이는 광고를!
  • 프로필사진 forest 2010.01.22 20:23 저두 영덕게 한번두 못먹어봤어요...(요것도 광고예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0.01.23 14:41 동해바다에 고기가 안잡혀서 횟감이 없으면 미사리 수산물 센터에서 공수해간다는 설이 있어요.
    어쩌면 저 놈들도 미사리에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 놈들일지 모르니 미사리에서 몇 키로 사다 드시면서 영덕에서 왔다 하시면 어떨까요?ㅋㅋㅋㅋ
  • 프로필사진 2010.01.22 09:57 배고픈 밤
    잠이 안와 불끄고 눈 껌벅거리며 모니터를 보는 중에
    맘이 안좋으신 일이 있으셨구나 하면서도...
    결국에는 사진에 눈이 팔.립.니.다...ㅠ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0.01.23 14:35 맘 안 좋은 일 정리됐으니깐 포스팅도 된거야.
    어느 사진에 눈이 팔렸냐?
    맘에 새겨둘께.ㅋㅋ
  • 프로필사진 iami 2010.01.22 13:18 JP가 별 의미 없이 단 한 번 나오는 걸로 봐서,
    JP도 뭔가 서운하게 한 것 같군요.

    기쁨과 진심이 담긴 생신상,
    힘내서 내년엔 꼭 해 드리셔요.
    그게 모님다워 보여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0.01.23 14:37 ㅎㅎㅎ JP는 대체로 잘해요.

    JP의 어머니고 JP의 가족일 뿐이라고 생각할 때는 아무런 관련 없어도 그가 미웠는데 이제 억울하게 연루시켜서 싸잡아 미워하는 일은 안할려고요.ㅋㅋㅋ

    내년엔 꼭 그러겠습니다. ^^
  • 프로필사진 forest 2010.01.22 20:29 저는 이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기쁘게 할 것이 아니면 하지 말라고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다보면 마음이 아주 복잡해지지요...
    복잡한 마음을 이리도 잘 풀어내시고,
    풀어낸 마음 잘 다독여 늦었지만 축하의 조미료를 듬뿍 발라
    다시 드릴 수 있다는 것도 쉽지는 않지요.
    다음엔 덜 힘들게, 그러나 기쁘게 하는 방법이 찾아지면 좋겠어요.
    저도 며칠 있으면 어머님 생신인데...
    기쁨이 조미료가 듬뿍 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의 부담을
    다 내려놓고 있으려구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0.01.23 14:39 사실 처음에는 기꺼이, 기쁨으로 시작한 일이예요.
    이제 모, 이런 일에 더욱 자발적으로 기쁘게 하는 방법을 다 알았다 싶었는데 의외의 일로 맘이 무너지드라구요.
    다행이 오래 가지 않아 빨리 제 속이 명쾌하게 알아차려서 저도 살고, 남편도 살고 다같이 살았어요.ㅎㅎㅎ
  • 프로필사진 hope 2010.01.22 22:44 고생하셨네용~ 저희 어머님께선..역시 신상(?)에 밝으심ㅋ
    토마토 카프레제를 말씀하시더라구요..
    토마토에 치즈가 올려져있는 음식이 있었다고^^
    아.. 전 분노라고 하시나..염치없이 골뱅이무침이 먹고잡네요ㅋㅋ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0.01.23 14:40 그 신상 어떻게 만드는지 배우라는 주문은 안하시던가?
    골뱅이 자체가 디게 매운 그야말로 신상이 나왔더라구.
    저거 완전 불골뱅이지.ㅋㅋ
  • 프로필사진 mary 2010.01.24 19:48 답글달러 왔더니, 오홀~ 포스팅이 그새 사라졌군.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0.01.24 20:31 다시 나타날테니 댓글 달아주세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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