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김치통 부여잡고 눈물 흘리던 암울하던 시절이 있었다.
눈물 없이 먹을 수 없는 김치 이야기..... 아, 휴일만 되면 긴장되던 그 시절이여...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김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때는 바야흐로 2003년 5월.
위로 손녀 딸 셋을 보신 시부모님께 잠깐 외출하셨다가도 그 놈 얼굴 보고파서 서둘러 들어 오시도록 했던 그
손주놈이 태어난 지 딱 4주가 지난 토요일이었다. 그 손주놈을 낳은 며느리 조리원에서 2주, 친정에서 2주의
산후조리를 마치고 온 주말에 어머니는 김치를 하셨다. 두 종류의 김치를 대따 많이 하셨다.
아직은 산후조리중, 내지는 이제 막 산후조리를 마친 며느리와 함께 장을 봐서 김치를 하신 것이다.
아직 산후조리 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며느리는 몸이 힘든 것보다 대접받지 못했다는 마음에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말았다. 바로 며칠 전,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마치고 오는 아침에 엄마가 울었었다.
'아이구, 내가 늙어서 우리 신실이 조리도 제대로 못혀주고.... 자꾸 물에 손대게 허고....'  엄마가 생각나서
더 많이 울었다.

그렇게 김치 시련은 시작되었다. 그 때 부터 시작해서 시어머님과 함께 살던 3년여의 생활은 휴일만 되면
김치 때문에 긴장을 해야했다. 쉴 만한 휴일이면 '김치하자' 하시던 어머니.

많은 눈물의 시간을 보내며, 김치 냉장고 쪽은 쳐다보기도 싫은 나날을 보내며 조금씩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열 아홉에 맏며느리로 시집 오셔서 대식구 살림을 꾸리시던 어머니는 쌀독에 쌀이 떨어져 가거나,
김치독에 김치가 떨어져가면 불안하신 거였다. 이제 그런 걱정 하나도 하실 일이 아님에도 마음은 아직
그 시절을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어머니을 이해하게 되자 늘 눈물을 삼키며 배추를 절이고,
달랭이 무를 다듬던 며느리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 김치 이렇게 안 하셔도 돼요. 어머니도 힘드시잖아요. 사서 드시는 게 어쩌면 훨씬 싸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가는데....
어머니께 한 번도 '어머니 저 김치 하기 싫어요' 말한 적이 없다. 그저 김치 하자 하시면 묵묵히 했고,  대신 밤에 남편의 품에서 울고불고 하였다. 휴일마다 김치 계획을 잡으시는 어머니와 살면서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음식'이 김치가 되었고, 그럼에도 같이 아침 저녁으로 먹어야 하는 김치처럼 어머님와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현실.... '바보같이 할 거 다 하고 그렇게 마음만 다쳐서 그러냐? 그렇게 뒤돌아서 힘들거면 앞에서 못한다고 하지....' 이런 내 안의 목소리가 날 괴롭혔다. 그런 나를 향해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릴 때 두 배로 견디기 힘들었다. 헌데! 어머님이 우리 침실을 엿보셨나? 내 마음을 읽어버리셨나?

한 집에 살다가 마주보는 현관으로 어설픈 분가를 하고 다시 하남과 덕소로 분가를 하는 사이 어느 때 부턴지 어머님이 김치 하자고 부르시질 않는다. 단지 같이 살지 않으니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님이 김치 담그기에서 며느리 열외시키기에 꽤 노력하시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김장도 친구분 하고 하신다. '어머니, 저 갈까요?' 하면 '바쁜데 뭘 오니? ' 하시면 다 해놓으면 가져가라신다. 이런 어머니를 보면서도 아직도 마음 그릇이 작은 며느리는 '가져가라'는 말씀에도 때론 귀찮아 투덜거렸다.

수년 전 목장모임을 하면서부터 어머님이 '이번 주에는 뭘해서 대접하냐? 김치는 있냐?' 라고 자주 물으셨다.
'그냥 뭐 한 가지 해서 먹었어요. 저는 여러 가지 안 하고 한 가지만 하니깐요 그렇게 힘 안들어요' 하면 '넌 참 어떻게 손님이 안 무섭냐?' 하시면서 희한하다 하시고, 일면 기특해 하시는 것도 같았다.
여름이 되면 열무김치를 담궈주시면서 '열무김치에 국수 말아서 모임을 해라' 하시고 겨울엔 신김치 주시면서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게 끓이면 딴 반찬 필요없다'고도 하신다.

이젠 어머니 몸도 많이 안 좋으시고 김장 하시지 마시라고, 두 분 얼마 드시지도 않는데 사드시라고 말씀 드려보지만 어머님 마음 그게 아닌 걸 안다. 손님 오는데 김치 없으면 더 심란하다시며 니네가 우리보더 더 가져가라신다. 

여전히 어머니는 예전의 상처에서 못 벗어나시고, 그 때문에 김치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음도 안다. 당신 몸이 그럴 수 없일 지경이라도, 다 드시지도 못할 김치를 하고 또 하시는 중독같은 선택으로 김치를 하시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가끔 수용해 드리기 어려운 꼬이고 꼬인 심리적인 요인들이 있다 할지라도 일정정도는 우리 가정을 향한 사랑임을 이제 난 알 수 있다.

현승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김치를 담그고는 눈물로 밤을 지샜던 나는 김장 때가 되면 나름대로의 긴장이
되지만 이젠 아주 조금 사랑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김장하는 날, 여전히 순간순간 마음이 경직되고 긴장의 순간을 맞닥뜨리지만  '아~ 어머니! 그렇게 콧물 많이 나오실 것 아까 소금 덜 넣고 마음껏 떨어뜨리실 걸 그랬어요. 근데 저는 제가 한 것만 가져갈께요.ㅋㅋㅋ' 하면서 함께 웃을 수도 있고, '이거면 충분해요. 어머니! 어머니 진짜 김치 욕심 그만 내셔야 어머니도 살고 며느리도 좀 살죠' 하면서 속에 있는 말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번에 해서 가져온 배추김치, 백김치, 달랭이김치는 특별히 곱씹고 곱씹으며 먹을 예정이다.
곱씹다보면 한 두 번 입맛으로 느낄 수 없는 아주 깊이 숨어있어 쉬 맛볼 수 없는 어머니의 속깊은 사랑의 맛일 느껴질 것이다.

아, 긴장되는 김장 이젠 쉽게 된다. 아, 김장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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