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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SS 영혼의 친구

18년 만의 기적

larinari 2017.04.09 20:47




18년 전, 혼수로 마련한 그릇 세트가 있다. 신혼집 그릇으로는 조금 올드했으나 딴에는 멀리 내다본 선택이었다. 결혼 1, 2년 살 것도 아니고. 시간이 가도 질리지 않는 스타일이 좋겠다 생각했다. 아직도 질리지 않고 잘 쓰고 있으니 좋은 선택이었다. 신혼 때 반복되던 '끼임 사건'이 있었다. 무심코 설거지를 하다 보면 국그릇에 반찬그릇 하나가 끼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웬만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세 번 정도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 두 번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으나 결국 분리를 포기해야 했다. 국그릇을 깨고 반찬 그릇을 살렸던 것 같다. 세번 째는 경험으로 학습된 바가 있어서 둘 다 살렸다. 어설피 빼내려 애쓰다 결국 더 꼭 끼어버린다는 것을 알았기에 포개어 놓인 상태에서 바로 알아차렸고, 초동대처를 성공적으로 했다. 신혼 1년 안에 있었던 일이다. 그 이후로 18년 살림을 하면서 '끼임 사건'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이나 나나 설거지 때마다 저 둘을 따로 놓아두는 것을 거의 기계처럼 해냈다.


어느새 채윤, 현승이가 가사를 도울 정도로 자랐다. 필요에 따라 밥을 짓거나 설거지 하는 일을 맡아 해주곤 한다. 그러다 보니 18년 동안 잊었던 '끼임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채윤이가 설거지하며 벌어진 일인데 오랜만에 국그릇을 만난 반찬 그릇 녀석이 국그릇 안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나오질 않는 것이다. 강의 마치고 늦게 집에 왔더니 '엄마, 미안. 요즘 일일 일사건이야. 그릇 두 개가 끼었는데 빠지질 않아. 아빠가 그러는데 둘 중 하나를 깨야 한대." 으아, 진즉 설거지를 가르칠 때 알려둘걸! 신혼 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채윤이도 여러 방법으로 분리를 시도한 것 같았다. 뜨거운 물 붓기, 깨끗하게 말려서 마른 천으로 감싸안아 빼 보기. 사실 그 사이 다른 애정하는 그릇들도 생겼고, 내게는 큰 미련이 없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한 놈을 포기해야지, 뭐! 이래저래 바빠서 망치로 한 놈 깨는 일을 미루고 있었다. 싱크대 앞을 얼쩡거리던 현승이에게 '끼인 애들'이 발견되었다. '엄마, 기름칠을 하면 안돼?' '어?! 기름칠생각 못 해봤는데.....  '굿 아이디어! 기름 줄 테니 니가 한 번 해 봐'


전에 안 해본 일을 참으로 좋아하는 현승이, 신나는 놀이 발견. 왠지 될 것도 같다 싶은 마음에 현승이 손에 넘기고 남편과 커피 마시며 수다수다 하고 있었다. 쏴아~ 물소리가 나서 보니 기름 떡칠을 해놓은 채로 물에 씻고 있는 것 아닌가. '야, 기름칠을 하랬더니 왜 물을 틀고 그래? 이게 모야?' 조금만 예민하게 반응해도 10배의 '짜증 나'로 반응하는 '중2 국가안보요원'이 그릇을 내팽개쳤고, 엄마는 품위를 내팽개쳤다. '잔소리잔소리 고래고래..... 니 방이나 정리해!' 엄마의 분노폭발은 턱도 없는 곳으로 튀어야 제맛이니까. '끼임 사건'은 그렇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 20여 분 후. 기적이 발생. 그릇 정리를 하며 쓱 밀었는데 끼어 있던 그릇이 쑥 빠지는 것이다.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글을 읽는 당신에겐 '웬일'이 글자일 뿐이겠지만 내겐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결혼 18년 만의 기적이다.


불현듯 가슴 콩닥거리던 1999년 봄의 노랑이 살아온다. 거실 겸 주방의 벽지가 파격적인 노란색이었던 하남시 낡은 상가 건물의 꼭대기의 신혼집. IMF 위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신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들어간 집이었다. 신혼의 꿈을 담기에는 너무 낡고 지저분한 집이었지만 기꺼이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다만 벽지를 원하는 대로 해주시길 부탁드렸다. 예비신랑과 심사숙고 끝에 벽지를 골랐다. 띠 벽지를 두르고 위아래 다른 벽지를 하되 거실과 방 전체 아래쪽은 파랑이었다. 거실은 파랑에 노랑, 방은 파랑에 아이보리. 집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아주 마음에 드는 벽지를 골랐으니 그 벽을 그려만 보아도 좋았다. 행복한 꿈은 며칠이었다. 어머님께서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전격, 이중벽지의 파랑 부분을 편집하신 것이다. 거실은 샛노랑, 방은 갈색에 가까운 아이보리. 꽝꽝꽝. 아니 척척척. 내 의견 따윈 묻지 않으시고 도배를 끝내 놓으셨다.


이 일로 남편은 난생처음 어머니와 언성을 높였다. 드라마에서 보던 그대로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점잖던, 착하고, 속 깊던 아들' 태도 변화에 분노하셨다. 샛노란 거실과 칙칙한 안방 벽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어머니의 태도였다. 당신의 판단엔 1도 오류가 없으시다며. 꽃이 흐드러졌던 캠퍼스 벤치에 앉아 했던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가 새롭게 살아온다. 눈 앞에 펼쳐진 봄 풍경, 마음에 그렸던 결혼 풍경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소리가 귀에 쟁쟁 울렸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샛노란 거실 겸 주방은 마치 의도된 파격처럼 신혼집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 신혼의 주방에서 국그릇과 반찬 그릇이 끼는 사고가 일어났고, 빼려고 애쓸수록 더 꽉 끼어버려 결국 둘 중 하나는 죽어 나가야 끝이 나곤 했었지. 가끔 그 일을 복기하며 우리의 관계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결혼 초, 어떤 지점이 서로의 취약한 지점인지도 몰랐다. 갈등이 생기면 풀겠다고 애쓰다 더 꼬이기도 했다. 결국 하나가 깨져야 끝이 나는 건데, 늘 남편이었다. 먼저 미안하다고 손을 내밀었고, 나를 살리고자 자기를 깨뜨리곤 했다.

 

그때 그 벽지 사건에서 남편의 태도가 내편에선 공평이었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배신이었고, 그 사이에서 남편이 감당해야 했던 아픔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내게 일종의 회심이 일어났다. 사랑의 회심이었고 마음의 치유이기도 했다. 일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것, 어머님 또는 동서와의 갈등, 남편의 중대한 진로변경. 결혼생활에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시시각각 들이닥쳤다. 마음에 꼭 드는 이중 벽지 골라놓고 기다리는 부푼 마음에 마음대로 끼어든 어머님의 독선같은 틀어짐. 이런 일들은 어머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선같았다. 남편의 한결같은 태도와 성품이 있어 일상의 평화가 지켜졌다. 그 처음 벽지 사건에서 그랬던 것처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하고 따뜻하게 편이 되어주는 남편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다. 이 경험을 울궈먹으며 강의도 하고 글도 쓰지만 우리의 결혼은 동화가 아니니까. 그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는 당연히 아니다. 때로 콱 막히는 답답한 지점에 서게 되고, 서로 취약한 지점을 건드려 상처를 내고, 얼음처럼 냉랭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여전히.


언제부턴가 '남편을 다 안다'고 하는 전제를 의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마음 다 알아'가 아니라 '갈수록 당신을 모르겠어'로 바라보는 것이 이 시점의 사랑이 아닐까. 낯선 눈으로 바라보기. 주일 예배에 가 앉으면 남편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설교단 위에 오르기 전 남편의 고독한 뒷모습을 낯설게 바라본다. '당신 자신이 되어요. 당신 자신이 되어 설교하세요' 둘 중 하나를 깨버려야만 했던 그릇 끼임 사건의 놀라운 해결. 이런 것들을 예사롭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며 안 되는 지점에서 알 수 없는 기름칠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인생의 숲엔 언제나 새로운 길이 있다는 것. 어제 남편의 설교처럼 '모든 절망 속엔 이미 희망이 배태되어 있다는 것'.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온갖 역설과 신비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두 그릇을 다 살린 기적이 그 믿음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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